카테고리 없음2022. 12. 13. 22:25

 

 

 

CPR = Cardio-pulmonary Resuscitation 심폐소생술

AED = Automatic External Defebrillator 자동심장충격기 

Heimlich Method = 하임리히법

 

며칠전에 심폐소생술, 자동심장충격기 사용 방법, 하임리히 방법등 긴급구호관련 세가지 방법을 약 세시간에 걸쳐서 교육받았다. 2015년에 미국 레드크로스에서 교육 받을때는 50달러 넘는 돈을 내야했는데 이번에는 그것보다 더 양질의 교육의 무료로 받았으니 참 우리나라 좋은나라이다.

 

사진에 보이는 CPR 연습용 더미 (dummy, 사람 모형)는 2015년에 미국 버지니아에서 교육 받을때는 그냥 '더미'에 불과했는데 그 사이에 기술의 놀라운 발전으로 -- 우리가 제대로 정확하게 눌러눠야만 머리까지 불이 들어오게 만들어져서, 우리가 이걸 제대로 하는지 안하는지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놀라운 기술이다!!! 감동 받았다.)

 

그리고, 우리나라 응급처지 교육이 얼마나 좋아졌냐하면 - 이 교육에 참가한 모든 교육생들이 이 '더미'를 가지고 연습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냥 보여주기만 하고 구경만 하다가 나올거라고 예상했는데 그걸 참가자 모두에게 시키는 것에 감동을 받았다. 원래 교육은 그래야 하는거니까. (옛날에, 우리나라가 아직 가난하던 시절 나의 남편은 체육시간에 수영을 배웠는데 - 수영장은 꿈도 못꿨고, 학교 계단에 줄지어 서서 선생님의 구령에 맞춰서 허공에 팔을 저으며 수영하는 동작을 하고 그것으로 수영시험을 쳤다고 한다. 하하하하. 허공에서 팔을 저으며 수영시험을 치른 위대한 시대가 있었다. VR의 선구자들이었다고나 할까.)

 

AED할때 기억해야 할 것: 내가 쓰러진 사람을 봤다면 - 다가가서 의식이 있는지 '여보세요! 여보세요!' 하면서 어깨를 톡톡쳐서 의식을 확인하고 의식이 없다는 판단이 서면 근처의 사람을 손가락으로 지목하며 "어서 119에 신고하세요!"  다른 한사람을 지목하여 "어서 AED를 갖고 오세요" 하고 외친후 곧바로 CPR을 실행하며 119가 오거나 전화로 119의 지시를 듣는다. AED가 오면  패드 하나는 오른쪽 위에, 하나는 왼쪽 아래에 붙이고 전원 연결 -- 기계의 지시에 따라서 행동한다. 무조건 기계가 하라는대로 한다. 나머지 시간에는 죽어라고 CPR을 한다. (사람을 지목하여 지시해야 하는 이유는 '방관자 효과'를 막기 위해서이다. 누군가를 지목해야 그 사람이 움직인다.)

 

 

하임리히는 특히 민간인들도 잘 알고 있어야 하는데, 하임리히가 필요한 상황에서는 대체로 구급대원이 도착할 즈음이면 하임리히가 소용이 없는 - 곧바로 CPR로 가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명치 아래에서 안아 올리는 일을 반복해야 한다. 

 

이 교육이 의무사항은 아니었고, 원하는 사람이 가서 듣는 것이었는데 -- 내가 생각할때 이 교육은 전 국민이 의무적으로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옛날에 민방위훈련 하듯이, 이런 훈련은 전국민이 받아서 기본적인 것을 누구나 알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나는 원래 취미가 '배우기'라서 교육이란 교육은 모조리 받는 편이다. 만약에 내 학생이 수업중에 쓰러지면 내가 얼른 상황을 이끌어야 하니까. 

 

***

 

이 교육은 내가 속해있는 지역사회(?)의 '직원'들이 주요 교육대상이었던 듯 싶다.  유니폼을 입은 '직원분'들이 교육장에 많이 계셨고, 나같이 '자유롭게' 온 사람은 소수였다. 그러니까 어떤 분들에게는 이것이 '필수교육'이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직원'들 속에는 어떤 (뭐라고 하지?) 위계가 있다고 해야 하나? 그러니까 이 교육 현장에는 국장급 직원이 있는가하면 과장급, 일반, 혹은 경비직이나 청소용역직에 이르기까지 그 직장의 거의 모든 직급의 사람들이 모였던 것 같다. 나는 그들 조직에 속하지 않으므로 눈치 볼 것 없이 아무데나 내가 원하는 자리에 앉으면 되었지만, 그 직장의 고위직은 맨 앞에, 그 다음줄, 그 다음줄, 이런 식으로 직급이 보였다.  그런데, CPR 더미에 심폐소생술을 하는 시간에, 그 직원들에 속하지 않는 우리들은  '소방대원'의 지시대로 차례차례 무대에 올라가서 신나에 연습을 하고 자유롭게 내려오는데 -- 어떤 분들이 눈치를 보며 쭈뼛쭈뼛 하셨다. "내가 올라가도 될랑가? 언제 올라가지?"  내가 연습을 하고 내 코트를 벗어놓은 내자리로 오니, 그 내자리에 어떤 아주머니께서 엉거주춤 앉아서 무대쪽을 바라보며 마치 나의 도움을 구하는듯 혼잣말을 하셨다. "지금 나가세요. 저 앞에 서계시다가 앞사람 마치면 하시면 돼요!" 내가 말을 하니 아주머니는 고개를 갸우뚱하고 계셨다. "자 절 따라 오세요." 내가 아주머니를 이끌고 더미 앞까지 갔다. 소방대원이 아주머니에게 손짓하여 더미 앞에 앉게 하였다. 

 

 

아주머니는 아주 힘이 좋으셨다. 머리끝까지 불이 들어오게 - 요령껏 심폐소생술을 하셨다. 참 잘하셨다.  (나는 그게 힘들었고, 소방대원 선생님이 이렇게 해보라고 조언도 하고 했다).  아주머니가 연습을 마치고 뒷줄의 자리로 올라가시면서 내 곁을 스쳤는데 내가 "잘하시네요. 저는 어렵던데 참 잘하셨어요" 했더니 내 어깨를 툭 치면서 "그게 참 보는것하고 달러. 해보니까 훨씬 잘 알것어" 하면서 웃으셨다. 

 

 

내가 존댓말을 하고, 그 아주머니께서는 내게 친근하게 반말을 하셨지만 - 어쩌면 우리는 동갑내기이거나 혹은 내가 더 나이가 많을지도 모른다.  원래 고생한 사람들이 일찍 늙고, 멋 좀 부리고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 덜 늙는다.  그 순간 만큼은 우리는 '절친'이었다. 나중에 스쳐도 기억도 못하겠지만. 

 

내가 그 자리에서 발견한 것은 -- 어떤 사람들은 어떤 상황에서 대개 당당하게 행동하는데, 어떤 사람들은 대체로 자신없어하고 쩔쩔맨다.  그러니까, 응급처지 교육장에 들어섰을때, 그 곳에서는 모두 교육생일 뿐이다. 소방대원 선생님의 설명을 듣고 지시대로 연습을 하는 교육생일 뿐이다. 그런데 그자리에서 나는 자유롭고 당당한데, 자유롭고 당당하지 못한 분들도 보였다. 옛날에, 내가 시골집에서 서울 집으로 올라왔을때, 나는 내집에 내가 왔는데도 '눈치'를 보았다. 내 부모, 내 형제들과 함께 살게되었는데 '눈치'를 보았다. 나는 내집에서 당당하지 못했다. 나는 할아버지 할머니 집에서도 당당하지 못했고, 내 친부모 형제의 집에서도 당당하지 못했다. 어딘가 나는 어디에도 소속하지 않는 찌끄래기 같은 기분이었다.  그러면 눈치를 보게 된다.  그래서, 나는 사람들이 '눈치'를 볼때 그것을 쉽게 감지하는 편이다. 

 

내가 교육장에서 당당했던 이유는, 나도 늘 그런 곳에서 강의를 하는 사람이므로 거기가 그냥 내 교실 같아서였다. 앞에 국장님이 앉았건, 사무총장님이 앉았건 나는 신경쓰이지 않았다. 사실 나의 대화채널은 그들의 상관인 '대표'님이기 때문에... 그런데 연습을 하기위해 무대에 오를 차례를 기다리던 '아주머니'의 입장은 나와 달랐다. 아주머니는 아마도 청소용역을 하시거나 뭐 층층시하 였을 것이다. 그러니 자신의 차례를 얌전히 기다리며 혹시 자신이 실수하는게 아닐까 상황을 살펴야 했을거다. 바로 그런 '눈치'가 느껴졌기 때문에 내가 손을 잡고 더미까지 인도했던 것이다.  to be continued....

 

 

 

 

 

 

 

 

 

 

Posted by Lee Eunm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