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2022. 7. 14. 09:24

집으로 돌아온 후 나는 매일 책을 내다 버렸다.  장을 보러 갈때 끌고 나가는 바퀴달린 박스 - 그 플라스틱 박스 가득히 집에 쌓여 있는 책을 담아, 재활용폐기장에 내다 놓았다.  중고서점에 갖다 주면 돈을 좀 받겠지. 인근 도서관에서는 책을 기증해 달라는 현수막을 걸어 놓았지만, 내게는 책을 기증하러 돌아다닐 마음의 여유가 없다. 나는 극도로 피로하다. 기증하고 남과 나누고 이런 과정조차 내게는 힘드는 일이다. 그래서 그냥 재활용폐기장에 갖다 쌓아 놓았다. 많은 양이 빠져나가자 비좁던 거실이 다수 숨통이 트인다.  지금 내게 필요한 것은 읽고 쌓아둔 책이 아니라, 그것이 빠져나간 빈 공간을 차지하는 '신선한 공기.'  어느날 재활용장 관리하시는 아저씨가 내가 내다 놓은 책에 대하여 뭐라고 불만을 표시한다. 폐지보다 처리하기가 어렵다고 툴툴댄다. 그 분과 상대하기도 귀챦아서 책을 내다 버리는 일을 멈춘다.

 

나는 매일 장을보러 갈때 끌고 나가는 바퀴달린 박스, 그 박스가득 헌 옷을, 아까워서 버리지 않고 쌓아두던 플라스틱 반찬통들, 굴러다니는 선물받은 텀블러등, 집안을 채우고 있는 물건들을 담아서 내다 버린다. 쓰레기 역시 발생하는 즉시 내다 버린다. 신촌살이 하는 동안 냉장고 안에서 서서히 곰팡이 슬어가던 것들도 이제 대체로 정리되었다.  그럼에도 매일 냉장고에서 폐기물들을 찾아낸다. 나를 기다리다 썩어버린 것들. 미안. 네 잘못이 아니다.  내가 집에 올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안녕 잘가라.  뭔가 집에서 끄집어 내다 내다버릴때 나는 한결 내 삶이 가벼워짐을 느낀다.  이것도 스트레스 해소에 아주 좋은 것 같다. '도대체 이 많은 물건들을 왜 쌓아 놓은 것일까?  아무리 아무리 내다 버려도 왜 집은 여전히 비좁고 답답한가?  내가 정리를 잘 못해서인가?' 이런 생각에 빠지기도 하지만 개의치 않는다. 나는 오늘도 뭘 내가 버릴것인가 잠시 생각에 잠긴다. 

 

오늘은 기도하다 말고 연구실을 둘러본다. '내 저것들을 다 내다 버리리라' - 하며 몇가지 명백히 버려야 할 것들을 가늠해낸다. 

 

내 집이 텅 빌때까지, 내 연구실이 텅 빌때까지, 나는 매일 뭔가 정리하여 내다 버릴 것이다. 그자리를 헛헛한 공기와, 그리움과, 기도로 채우고 나는 어느날 증발 되기를 바란다. (죽겠다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아침이슬처럼 이 지상에서 사라지기를 희망하는 것이다.) 나는 나의 집을, 나의 연구실의 '기도의 집'으로 만들 생각에 잠겨있다.

 

 

 

 

 

 

 

Posted by Lee Eunm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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