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2022. 6. 17. 16:12

시민을 위한 평생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해달라는 요청을 받아서, 봄학기부터 시범적으로 운영을 해보고 있다.  정해진 학점을 이수하면 명예학위증까지 나오는 프로그램이다.  1년간 진행되는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세부 강의 일정을 짜는 가운데, 나도 그 중에서 한과목을 현재 진행하고 있다. 역시 프로그램 기획자가 직접 수업을 진행해봐야, 시민들의 희망사항이나 수업에 대한 기대, 태도, 문제점 등을 세밀하게 파악하게 된다. 10대 후반부터 6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시민들이 모여서 듣는 대학 수업. 실제로 내가 수업중에 가르치는 동일한 자료를 가지고 수업을 한다. 실제 대학과 차이가 있다면 가르치는 내용은 동일하지만, 시험이나 과제의 비중에서 차이가 난다. 

 

어느날 내 또래의 '가장'이신 중년 학생이 내게 질문을 했다 -"그런데, 이거 수료하면 수료증 나오는데 그 수료증을 어디다 써먹을수 있죠?" 좋은 질문이다. 내가 가르치는 과정을 수료했을때 무엇을 얻을수 있는가? 그 수료증이 어딘가에 내밀만한 실용성이 있는가를 묻는 것이다. 나는 이런 질문을 좋아한다. 구체적으로 어디다 써먹을지를 묻는 질문을 나는 좋아한다. (내 개인 취향이다.)

 

그래서 나는 답해줬다: 

 

"제가요, 버지니아에 있을때, 어느 조그만 대학에서 교수로 일을 할 때 인데요. 월급도 신통치 않고, 전망도 흐릿하고, 한마디로 앞날이 막막하던 때가 있었거든요. 그 때 제가 그냥 지역에서 제공하는 '간병사' 교육을 받았어요. 그 교육을 이수하고 간단한 시험을 통과하면 '버지니아주'에서 제공하는 '간병사 자격증'이 나오거든요. 그냥 파트타임으로 간병사 일을 하면서 돈도 벌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도움도 주고 그러면 내 삶이 조금 더 의미가 있겠다는 '막연한' 생각을 한거죠.  한편으로는 그 조그만 대학에서 벗어나 큰 대학에서 제대로 대우받고 교수를 하겠다는 희망으로 끊임없이 미국 전역의 대학에 이력서를 보내고 있었지요.  한편으로는 대학에 자리를 알아보면서 한편으로는 파트타임으로 뭔가 할만한 새로운 영역을 탐구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제가 그 간병사 자격증으로 뭘 했을까요? 저는 간병사로 일을 해 본 적은 없습니다. 하지만 그 간병사 자격증이 제게 큼직한 대학의 교수자리를 열어 주었습니다. 

 

그게 어떻게 된거냐구요?  제가 미국 전역의 주립대에 뿌린 이력서의 말미에, '특기사항'에 '버지니아주 간병사 자격증'이 적혀 있었는데 - 하필 바로 그것을 눈여겨 본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그 프로그램에서는 '영어교육을 전공한 박사급 후보들 중에서 특히 간호사와 의사들에게 영어를 교육 할 수 있는 후보자가 필요했던 것인데, 제가 간병사 자격증이 있다니까 인터뷰를 하면서 "그러면 너는 기초적인 메디컬 영어를 잘 알고, 그것을 가르칠수 있겠니?" 하고 묻는 것입니다.  나는 무조건 'Of course!'하고 확답을 했습니다.  최소한 나는 four vital signs 라는둥 뭐, 극히 기초적인 '병원 용어'를 설명할 수 있으며, 필요하면 관련 자료를 찾아서 공부하고 가르칠 역량이 된다는 것이지요. 왜냐하면, 나는  아무튼 전문직 간호사들에게서 바로 그 교육을 받았으므로. 그리하여, 저의 아주 특별한 (별것도 아니지만, 그 영역에서는 독보적이라 할수 있는) 자격증 한가지로 인해, 다른 영어교육전공 박사들과 차이를 보였고, 그 덕분에 꿈에 그리던 주립대에 말뚝을 박게 되었지요. 

 

자 그러니, 아무나 그냥 대충 60시간 정도 수업 들으면 딸 수 있는 '간병사 자격증' 그 별것도 아닌 것이 - 저의 꿈을 이루게 해주리라고는 저 자신도 상상도 못했다는 것이지요. 저도 그게 그렇게 될 줄을 몰랐어요. 그냥 막연히 뭔가를 배우고 싶었을 뿐. 

 

이것이 저의 대답입니다. 제가 제공하는 과정은 '자격증' 과정도 아니고, 딱히 내세울 것이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어떤 학생에게 이 과정은 디딤돌이 되거나 도약대가 될 지도 모르지요. 자, 이걸 어떻게 요리 할지는 선생님께서 직접 고민을 하셔야 하겠습니다."

 

 

사실 나는 이런 이야기를 하고 그냥 지나쳤는데 - 나중에 회의 하는 자리에서 이 프로그램 얘기를 하다가 - 회의 참석자 누군가가 비슷한 질문을 하길래 -- 내가 수업시간에 그런 질문을 받고 이렇게 답했다고 이야기를 하니 회의 참석하고 나가시던 어떤 분이 "그 간병사 이야기 말이에요. 놀라운 얘기네요. 늘 뵐때마다 저를 깜짝깜짝 놀래키시네요. 많이 배우고 갑니다" 하시는거다.  그래서..그게 어떤 사람을 놀래킬만한 에피소드였던가?  그럴수도 있으려나? 생각하며 몇자 끄적. 

 

 

 

 

Posted by Lee Eunm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