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2022. 6. 9. 04:10

요즘 유명한 사람의 부인 혹은 이름이 알려진 기혼여성에 대하여 '아무개씨'라는 호칭을 사용하는 것이 적절한가 아닌가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다. '아무개 여사님'과 '아무개 씨'라는 호칭 중에서 '아무개씨'라고 부르면 인권에 저해 된다는 주장을 하는 시민 단체마저 등장했다. 내가 살다가 이런 논란은 생전 처음 겪어서 흥미를 가지고 상황을 관조하고 있는 가운데, 내가 문제의 당사자라면 나는 '아무개씨'쪽을 환연하겠다.  

 

우선 나는 그 문제의 '여사'라는 어휘가 어디서 유래한 것인지 궁금하다.  중국이나 일본에서 온것이 아닐까 추측만 한다. (어딘가에서 왔겠지, 순수 한국어는 아닐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이 '여사'라는 호칭이 맘에 안든다. 여사, 여교수, 여의사, 여사장, 여류 시인, 여류 소설가 이런 '여'의 공통점은 어떤 사람을 일단 '여자'로 묶어 놓는다는 것이다.  사람이기 이전에 '여자'다. 이런 어휘나 호칭은 정치적으로 중립적이거나 올바르지 못하다.  그런 이유로 나는 일단 '여사'라는 호칭이 거슬린다. 

 

남편의 지인 중에 유학 동기가 한분 계신다. 남편을 통해서 알게 된 분인데, 우리가 한때 같은 대학에 소속해 있었고, 먼 타국 생활을 하는 동안 같은 도시에서, 같은 캠퍼스에서 시간을 보냈다. 뭐 그것 뿐이다. 친하지도 않았고, 그냥 아는 사이 정도였으며 몇년 사이에 두세번 조우했을 뿐이다. 그냥 어쩌다 스치면 '아이고 안녕하십니까' 하고 인사를 하는 정도.  그분도 모대학 교수가 되었고, 나도 교수가 되었다. 교수 사회에서는 서로 '아무개 교수님'이라고 불러준다.  어느날 이분이 연구하는 일로 내게 뭔가 물어볼것이 있어서 연락을 취하셨는데 꼬박꼬박 내게 '사모님'이라고 불렀다. 우리의 대화 주제가 연구자들 사이에서 나누는 연구에 관한 이야기인데 이분은 내게 꼬박꼬박 '사모님'이라고 칭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나는 그 '사모님'이라는 경칭이 내 몸에 붙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 왜냐하면 - 나는 그냥 내 이름으로 사람들에게 기억되길 바랬기 때문이다. '차라리 '아줌마'라고 불러라. 차라리 그게 낫겠다.  내 이름을 모르면 그냥 평범하게 '아주머니, 아줌마'라고 불러라' 말하자면 이런 입장이었다.  '사모님'이란 어휘에는 '아무개의 부인'이라는 뉘앙스가 강한데 나는 '아무개의 부인'으로 칭해지는 것이 싫다. 나는 누구 부인 이전에 나다. 나는 누구 딸이기 이전에 나다. 나는 누구 엄마이기 이전에 그냥 나다. 나는 나다.  아무튼 몇차례 전화 통화를 하거나, 내 연구실까지 방문하여 나와 의논을 하는 동안 그는 내게 꼬박꼬박 '사모님'이라는 경칭을 썼는데 - 나는 그 '사모님'소리를 들을 때마다 점점 화가 났다. 남편의 지인만 아니었으면 벌써 사단이 났을것이로되, 남편 체면 생각해서 듣기 싫은 호칭을 꾹꾹 참고 들어주었다.  그러다가 남편에게 지나는 말로 한마디 했다 --"당신 그 후배 그분 말야, 꼬박꼬박 나보고 사모님이래. 아유 기분나빠..."  남편은 내가 뭘 기분나빠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냥 그분에게 내가 기분나빠하고 있다고 알렸다고 한다. 그랬더니 그 분 설명으로는 '사모님' 호칭이 상대방을 가장 높여서 부르는 호칭이라서 내게 그렇게 불렀다는 것이다.  어떤 사회에서는 여성에 대한 극존칭이 '사모님'인 모양이었다.  그 후로 그분은 내게 아무런 호칭을 쓰지 않으면서 대화를 한다. 가령 그 전에 "사모님 안녕하세요!"라고 했다면, 이제는 그냥 "안녕하세요!" 한다.  그 '사모님' 소리 안들어서 그나마 나도 안도했다. 

 

 

'여사님'이 '사모님'과 다른 한가지는 '사모님'에게 '남편'이 필요하다면 '여사님'은 홀로 여사일수 있다는 정도일 것이다.  그래도 '김여사 운전'의 예처럼 과연 '여사'가 존칭인지는 애매하다. 요즘 존칭이 대세라서 '여사님!'하고 부르는 상황이 다양하다. 집에 청소하러 와 주시는 도우미님게게도 '여사님'이고 뭐 그냥 전에 '아줌마'라고 부르는 상황에서 요즘은 '여사님'이라는 말을 자주 쓴다. 그 여사라는 호칭이 정말 존칭이기나 한지 나는 헛갈린다.

 

 

그래서, 나는 '아무개씨'라는 호칭을 선호한다. "여사님", "사모님" 이런 이름 말고 그냥 "아무개씨", "아무개님" 이 더 좋다고 생각한다. 누군가 나를 얕보기 위해서 "아무개씨"라고 부른대도 나는 괜챦다. 그게 원래 내 이름이니까 말이다. 

 

 

Posted by Lee Eunm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