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2021. 1. 27. 04:40

자가격리교도소의 나의 친구들: 나귀, 라디오, 라마. 

나귀와 라마인형은 크리스마스가 지난 후에 월마트에서 싸게 팔때 사온 것들이다. 

 

 

 

Day 8. 2021/1/20/수  ...자가격리=자택근무

 

 

날이 밝았다.  지난 수요일에 입국하여 이 감옥에 들어왔으니 만 7일째이고, 날수로는 8일째이다. 벌써 절반이 지났다. 실감이 안 날정도로 시간이 휙휙 지나갔다.  

 

내가 지루할 틈이 없는 이유는 매일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음주부터 시작되는 연수 프로그램을 준비하느라 바빴고, 여름에 진행될 연수프로그램 프로포절까지 모두 마쳐서 보냈다.  틈틈이 개강 준비도 하고, 이메일로 날아오는 각종 도움의 요청을 해결해주고 있다.  요청이란, 대학원 준비하는 학생들을 위한 추천서 쓰기를 비롯해 다양하다. 별로 놀 틈이 없는 가운데 놀멘놀멘 무리하지 않고 일하고 자고 한다.  나의 이러한 일상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우리 언니는 "너는 자가격리가 아니라 자택근무를 하는거구나" 한다. 그런건가? 나도 생각지 못한 것을 전업주부인 언니가 짚어내는 것을 보고 내가 깜짝 놀랐다.  우리언니는 집에 앉아서도 천리를 내다보는 통찰력의 소유자이다.

 

이제 나도 연수프로그램에서 내가 진행할 워크숍을 꼼꼼히 준비해야겠다. 이미 준비는 해 놨는데, 들여다보고 자료 보충하고 그러면 훨씬 알찬 워크숍이 될테니까.

 

Day 9, 2021/1/21   조 바이든 59대 미국 대통령 취임!!

 

 

미국시각으로는 1월 20일 정오.  한국 시각으로는 1월 21일 오전 2시. 미국의 59대 대통령 조 바이든의 취임식이 열렸다. 야호!  마침내 지긋지긋한 '그 자'를 뉴스에서 보지 않아도 된다.

 

취임식 생중계 보면서 '재택근무' 중.  구글닥을 이용한 프리-써베이를 하나 완성시켰다.  포스트-써베이도 이제부터 만들어야지.  시간은 잘 간다.  어떤 측면에서 이 '자가격리'가 내게는 일에 온전히 집중 할 수 있는 아주 귀한 시간을 제공하고 있다. 만사는 보는 시각의 문제라는 것을 다시한번 자각하게 되었다.  내가 갖는 이런 시간을 갖고 싶어도 못 갖는 -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생중계보면서 -- 취임식 직전에 화면이 두개로 갈라지고 한면에서는 워싱턴 의사당 장면이 보이고, 한면에서는 플로리다에서 대통령 전용기에서 내리는 '그자' 부부와 그 딸* 가족들 모습이 비쳐지고 있었다.  '저 자는 끝끝내 scene stealer 를 하는구나. 끝까지 후임자의 파티를 망치고 있구나. 정말 속속들이 사악하고 교활한 인간이군....이제 굿바이 굿바이 굿바이.  나와 우리 아이들의 제2의 고향인 플로리다를 당신과 당신 가족들이 오염시키지 말고 딴데로 가버려!!!!

 

Day 10. 2021-1-22-금  아니 벌써!

 

 

아니 벌써! 해가 솟았나! 창문밖이 훤하게 밝았네!

 

옛노래가 절로 나온다. 벌써 열흘째를 맞이했구나.  일을 한다면 하는거지만, 이럭저럭 꿈지럭거리고 지내다보니 하루하루가 휙휙 지나간다.  오늘도 여전히 나는 '미국시간'으로 살고 있는듯 하다. 내 일상은 대략 이런식이다.

 

자정 쯤에 잠이 깬다.  아이패드로 뉴스 확인하고 그냥 쇼핑 놀이 (쿠팡 물건을 들여다보며 장바구니를 채웠다 비웠다 이러는거. 사지는 않고 채웠다 비웠다만 반복한다) 좀 하다가 벌떡 일어나 좌탁 앞에 앉는다. 일단 이 좌탁 앞에 앉아서 노닥거리다보면 날이 밝는다. 

 

좌탁앞의 시간은 마법의 시간이랄까... 나는 매일 새롭고 창의로운 무엇인가를 해 내고 있다.  어제는 프리써베이를 하나 만들어서 다듬어 놓았고, 오늘은 내가 관리하는 프로그램의 써비스 향상을 위한 이용자 써베이를 또 하나 예쁘게 만들어 놓았다.  이걸 돌리면 - 이용자와 인턴들을 좀더 효과적으로 관리하고 보살필수 있게 된다. 이제 포스트-써베이를 완성 시켜야지. 

 

 

이렇게 좌탁앞에서 아침이 밝아올때까지 꿈지럭거리다가 열시쯤 자리를 털고 일어나 샤워하고 실내 환기-청소를 하고 - 엄마TV 김선생의 운동을 30분간 따라한다.  그러면 점심시간.  남편이 근처식당에서 따끈따끈한 한끼를 사다가 문앞에 갖다 준다. (고등어구이 백반, 치즈 오므라이스, 불고기, 뭐 매일 깨끗이 비우고 있다.) 그것이 내가 먹는 하루 한끼 식사이다.   그 외에는 사과를 반쪽 먹거나, 냉장고에서 요플레를 꺼내서 먹는다. 요플레 용기 씻어서 말려 놓은것을 보니 하루 한개씩 먹고 있다.  그리고 누워서 빈둥거리다가 잠이 든다.  밤에 잠이 깬다. 빈둥거리다가 좌탁앞에 앉는다 - 날이 샌다 - 일어나 씻고 청소하고 운동한다 - 점심을 먹는다 - 빈둥거리다 잔다 - 밤에 잠이 깬다 - 좌탁앞에 앉는다 - 일어나 씻고 청소하고 운동한다 - 점심을 먹는다 (아 그리고 서너시간 단위로 체온을 재서 자가격리 어플에 보고한다.)

 

슬기로운 자가격리 교도소 생활

 

 

새벽기도를 마치고 라디오를 틀으니 이정석의 노래가 흘러나오는데, 창밖은 어둡고 흐리고 어쩌면 비가 올것 같은 분위기이지만, 상상속으로 눈을 보며 노래를 듣는다. 겨울엔 눈이지. 

 

Day 11. 2021, 1월 23일 토요일  아이러니

 

벌써 11일째가 되었다.  매일 반복하는 말 -- "시간 참 빠르게 흐른다..."

 

오늘은 <인생의 아이러니>에 대해서 가벼운 푸념을 해보려고 한다  두가지 아이러니.

 

바이든 vs 트럼프

며칠전에 바이든 대통령의 취임식을 날밤을 새우며 보면서 기뻐하고 환영했건만, 어제 나는 "아, 트럼프 시절이 좋았어!!!!"를 외쳐야 했다.  사람이 이렇게 간사해. 몇년동안 트럼프라면 바퀴벌레처럼 싫어했는데 갑자기 트럼프 대통령이 그리워지다니... 사람 참 간사해. 나를 보면 알 수 있어. 이유는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하자마자 내린 행정명령 때문이다.  향후 모든 미국 입국자들은 코로나 음성확인서를 반드시 지참해야 하고 그리고 (아직 구체적으로 정해지지는 않았지만) 자가격리를 의무화 하겠다는 것이다.  인천국제공항 웹에 안내된 바로는 코로나 음성 확인서를 받는데 대략 20만원이 든다. 그리고 미국 입국이후에는 어떤 조치가 기다리고 있는 것인지? (아직 미국정부도 정해진 것은 없지만 곧 윤곽이 나오겠지). 미국의 코로나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필요한 조치이다마는 나로서는 갑갑할 따름이다.  아 (긴 한숨) 미국 한번 다녀오는데 오고가는 자가격리만 한달이 될지도 모른다는 이 막막한 피로감. 나는 여름에도 여지없이 가야만 하는데 말이지.  아, 주여, 도무지 제 인생은 어디로 흘러흘러 가려는지요.

 

조카의 이사

 

수재인 내 조카는 수재들이 다니는 학교를 졸업하고 수재들이 들어간다는 대기업에 들어가 성실하게 세금내고 사는 30세 청년이다. 결혼하여 아직 돐도 안지난 아이도 하나 있다. 평생 보수쪽에 표를 던지던 부모세대와 다르게 젊은이답게 진보쪽에 투표를 하면서 부모세대와 대립각을 세우기도 했지만 대체로 효자이고 모범시민이다.  내 조카는 최근에 신혼살림을 위해 마련한 전셋집에서 쫒겨나다시피 이사를 나와야 했다.  뻔한 스토리다. 집주인왈 "우리 부모님께서 들어와 사실것이니 계약갱신 안한다. 나가라" 는 것이었다는데,  뻔한거지. 정부의 부동산 정책의 '성공'으로 전세난이 터지니까 그 유탄을 착한 내 조카가 맞은거지. 그래서 내 조카는 전셋집이 구해질때까지 임시로 이산가족 생활을 하고 있다. 아기 엄마와 아기는 친정에, 조카는 친가에 각자 찢어져서 지내고 있는 중이다.  현 정부의 대단한 부동산 정책이 만들어낸 신종 가족도이다.  내 조카는 자신이 찍은 정당의 부동산 정책의 피해자가 된거지. 조카와 내가 한패거리가 되어 던진 표에 조카가 유탄을 맞은거다.  아...인생은 알수가 없어. 

 

 

 

 

Posted by Lee Eunm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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