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2020. 2. 25. 18:54

국내 대학들은 삼월 중순 혹은 사월 초까지 개강이 연기되고 있지만, 우리 대학은 이미 금주에 개강했다. 물론 입학식도 생략되고 많은 것들이 생략된 가운데, 언라인으로 임시 진행하는 방식으로 개강을 했다. 교수와 학생들은 서로 접촉할 수 없고 오직 언라인으로만 소통한다. 나는 매일 내 수업내용을 비디오로 촬영하여 올리고 있다. 오늘도 내일 수업 내용 비디오를 제작해야 한다. 내가 총감독이고, 출연자고, 다 한다. 내가 능력자라는 사실을 발견한다. 신입생들도 착실히 언라인으로 과제를 제출하고 있다. 역시 인터넷 세대 주인들이라서 응답이 빠르다. 걱정은 기우였다. 

 

 

학교도 유령타운 처럼 적적하다. 달팽이들처럼 각자 연구실에 숨어서 일을 할 뿐이다. 

 

저녁에 한 학생이 내 연구실앞에서 들어오지도 못하고 기웃거린다. 중국인 학생이다.  들어오지는 않고 밖에 서 있다.  나 보러 온건가?  내가 운영하는 센터를 찾아 왔다. 물론 센터 서비스도 열지 않았다. 비상 상황이니까. 센터에는 아무도 없지만, "내가 센터다. 무슨 도움이 필요하지?"  언라인으로 모든 수업이 진행이 되니까 문제 상황이 많을거다. 그 학생은 프로그래밍 과제가 있는데 튜터가 도움을 줄 수 있을까 해서 왔다고 한다. 

 

 

 

 

 

 

 

 

내 연구실에 들어와 소파에 앉게 하고 차를 한 잔 주었다. '잘 지내니?' 기숙사 방에 틀어박혀 있어서 쓸쓸하다고 한다. 아직 교과서 주문한 것은 도착도 안했는데, 과제를 해야 하는 상황이라 난감한데 아무하고도 얘기를 하면 안된다고, 그래서 다른 학생들에게 가서 도움을 구할수도 없다고.  참 딱하다. 

 

 

지금은 비상상황이고, 다른 방도가 없어 언라인으로 수업을 진행하고 있지만 교수들 역시 이 상황이 학생들에게 매우 힘들 것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다. 그러니 설령 네가 기한안에 과제를 다 수행하지 못해도, 네가 이러한 상황을 교수께 이메일로 전하면 교수께서 문제 해결 방법을 알려주실거다 -- 이렇게 설명을 해 주었다. 안심되는 눈치이다. 

 

학생이 몇번이나 감사하다고 인사를 하고 나간 후에 나는 손 소독제로 손을 문지르고 학생이 만졌던 펜과 이러저러한 것들을 소독했다. 그리고나서 동료교수에게 이메일을 쓴다 아무개가 이러저러한 문제로 상담을 하러 왔으니 그에게 적합한 방도를 구해 주시면 감사하겠나이다.    나는 불안하다. 하지만 불안한채로 마스크를 하고, 유령타운 같이 고요한 학교의 복도를 가로질러 내 연구실까지 학생이 찾아오면 그를 소파에 앉게 하고 차를 내어준다. "야! 마스크 쓰고 들어와!" 하고 소리를 지르기도 한다, 그가 귀에 마스크를 걸고 있으면.  하지만 마스크도 없이 오는 학생에게는 아무 말도 안한다. 대신 내가 마스크를 단단히 쓴다.  하여간 나는 학생들에게 따뜻한 차를 주고 그들의 당면한 문제를 들어주고 해법을 찾아 준다. 그러면서도 학생이 나가자마자 히스테리컬하게 손 소독제로 여기저기 문지르며 법석을 떤다. 

 

자연인으로서의 나는 연구실 걸어 잠그고 아무도 상대하고 싶지 않다. 그나마 그것이 안전해 보이니까.  하지만 사회인인 나는 문을 열고 학생을 맞이한다. 왜냐하면 그들이 찾아가 의논할 상대가 나밖에 없어서 내게 온것이니까.

 

(아, 나의 사회적 자아는 내가 생각하는 나하고는 조금 다르구나 --- 손소독제를 히스테리컬하게 문지르며 그런 생각을 잠깐 했다.)  어서 이 어두운 시간이 지나가고 모두가 휴식을 취할수 있기를. 

 

 

Posted by Lee Eunm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