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2019. 11. 19. 19:04

자왈 ~

三人行 必有我師焉

 

 

이런 말씀이 있다. 셋이 함께 가다보면 그 중에 내 스승 될 만한 사람이 있다는 말씀이다. 중학교 한문 시간에 배웠다. 

 

 

학기 중에 서너명씩 팀을 이루어 연구 과제를 해 내야 하는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팀을 짤때, 가능하면 대충 봐서 똘똘한 학생들을 한 팀당 한명씩 넣으려고 노력한다. 그들이 팀의 다른 학생들을 잘 이끌어서 팀 프로젝트를 성공시키기를 바래서이다.  물론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팀을 짜는데, 내가 개입할 틈을 보일때 슬그머니 그런 학생들을 '포석'을 하는 것이다.  학생들이 스스로 팀을 짜 내면, 내가 나서서 개입을 하지는 않는다.  자연스러운 것이 교육에도 좋으니까.  이렇게 최대한 학생들의 의견을 반영하여 내가 적극 개입하지 않고 팀을 짜다보면 똘똘한 학생들 여럿이 한팀에 들어가는가 하면, 정말 '걱정스러운' 학생들이 한팀에 모이기도 한다. 

 

 

이번학기에 정말 내가 한숨이 나오도록 걱정스러운 팀이 하나 있었다.  이 팀은 지난학기에 내 수업을 들었던 학생들인데, 모두 점수가 신통치 않았다.  한팀에 적어도 (말하자면) A 성적을 받을만한 학생 한명이 들어가 줘야 어느 정도 수준이 유지가 될 터인데 문제의 이 팀은 조직원 모두가 약체였던 것이다.  뭐 착하고, 소심하고, 별로 소리를 안 내고, 그냥 존재감이 잘 드러나지 않는 '안보이는' 학생들이 한 팀이 된 것이다.  그 중에는 지각 결석이 잦은 학생도 있고, 이래저래 약체인데...

 

 

그런데, 참 사람의 조직은 신기하다.  이 약체가 약체이긴 하다.  날고 기는 학생들이 모인 집단에서 만들어내는 작품과 이 '약체팀'의 작품이 약간 차이가 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그런데, 또 신기하게도 내가 염려했던 것 만큼 큰 차이는 나지 않더라는 것이지. 

 

 

이 약체팀에는 숨은 '돌쇠'가 한명 있다.  굉장히 성실한 학생인데 그의 성실성에 그의 성적이 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열심히는 하지만 뭐 숙제나 시험이나, 프로젝트나 좋은 점수를 받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지각 결석 하는 법 없이 꾀부리지 않고 성실하다. 그 '돌쇠'는 사교성도 별로 없어서 늘 혼자 다니고, 늘 혼자 숙제하고, 늘 성실하고, 말이 없고, 그의 이름을 부르면 마지못해 빙긋 웃고 마는 성격인데...  그 '돌쇠'씨가 어쩌다 그 팀의 '리더'가 된 듯 하다. 그가 왜 리더가 되었는가 하면, 적어도 그는 지각, 결석 안하고, 주어지는 숙제는 무조건 다 하고, 그러다 보니까 팀 프로젝트도 팀원들이 하건 말건, 협조가 되건 말건 혼자서라도 그냥 꾸준히 해 내는 것이다.  그는 누가 했네 안했네 따지는 법도 없고, 내게 와서 불평을 하는 법도 없고, 그냥 꾸준히 내 연구실을 들락거리며 모르는 것을 묻고, 뭘 더하면 좋은지 묻고, 내 조언을 듣고, 그리고 말없이 나가서 꾸역꾸역 일을 한다.  그래서 '날고 기는 애들이 모인' 다른 팀만큼 월등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평년작은 무난히 해 내더라는 것이다. 

 

 

또 재미있는 현상을 발견했는데, 약체팀에서도 '리더'가 수면위로 올라오듯이, 반대로 '날고기는 애들 모인 집단'에서도 리더는 '하나'더라. 리더가 될만한 애들이 여럿이 모였을때, 그 중 하나가 리더 역할을 하고 나머지는 게으름을 핀달까? Social Loafing 이라는 사회학 용어가 있기는 한데, 리더들이 모이면 모두 리더가 되는게 아니라 하나만 리더가 되고 나머지는 그냥 '덩어리' 노릇을 하는 것이다.  아 이것은 무슨 아이러니인가.  

 

 

그래서 인생 별거 없다. 길고 짧은 것은 대 봐야 알고, 상황에 따라서 바보도 천재가 될 수 있고, 천재도 바보로 전락할 수 있다는 말이지. 내가 최근에 발견한 현상은 대충 이러한 것이다. 천재도 바보가 되고, 바보도 천재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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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을 먹고 캠퍼스의 낙엽이 바스락바스락 부스러지는 소리가 재미있어서 낙엽 밟는 소리를 즐기며 산책하고 있는데 이메일이 날아왔다.  위의 팀 학생들이 연구보고서 초안에 대한 내 피드백을 받고 싶어서 연구실에 왔는데 안계시다고 언제 볼 수 있냐고.  그래서 바로 답을 했다. 지금 볼 수 있어. 1분안에 갈 수 있어.  밥 먹고 오는 길이지. 너희들 밥 먹었니?  나를 만나 보고 점심을 먹기로 했다고 한다.  그래서 애들 밥 사주고 피드백을 줬다.  참 보기 좋아서.  공부를 열심히 하는 모습은 참 보기가 좋다. 그것이 내 자식이건 내 학생이건 똑같다.  주어진 과제를 열심히 하는 학생을 보면, 무조건 다 해주고 싶어지는 것이다. 옛날에 나를 가르치시던 은사님들도 그러셨겠구나. 이제야 그분들이 왜 나를 예뻐했는지 알것도 같다. 

 

 

 

 

 

Posted by Lee Eunm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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