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ry/Life2018. 9. 26. 14:52

눈먼 고양이 폴 : 2015년 4월 사진




내가 '사도 바울(Paul)'이라고 이름 붙이고 '폴'이라고 부르는 눈 먼 고양이.  이 고양이는 어느 가을날 내가 덤불에서 녀석을 발견했을때, 아기 고양이였는데, 눈을 반쯤 감고 앉아 있었는데, 반쯤 뜬 눈이 빨갛게 충혈되어 있었고 눈에서 진물과 피고름이 흐르고 있었다.  아마도 멀쩡하게 태어났는데 뭔가 감염이 되어서 눈을 멀게 된 것 같았다. (잘 모르겠다.)  어쨌거나 이 야생고양이 가족에게 내가 해 준 것은 그냥 밥을 챙겨 주는 것 뿐이었다.  앞에 눈 감고 있는 고양이가 '폴', 그리고 저만치 뒷모습만 보이는 고양이가 '피터 (베드로)' 말하자면 기독교를 일으킨 양대산맥 '베드로'와 '사도바울' 두 성자를 기념하는 이름들이다. 


이 눈먼 고양이가  저기 보이는 덤불에서 태어나 5년을 살도록, 가끔 다른 거친 고양이의 공격 대상이 되어 고통도 겪지만 '사람들'중 어느 누구하나 이 고양이에게 장난으로라도 위험한 행동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도 나는 버지니아의 내 이웃들을  아주 '좋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이웃들중 아무도 아무도 이 고양이를 괴롭히지 않는다.  그래서 이 눈먼 고양이는 사람이 다니는 길을 사람처럼 다니기도 한다.


고양이 피터는 지난해에 어디론가 자신의 영토를 찾아 떠나버렸고, 폴은 아무래도 시각장애가 있다보니 집 근처를 떠나지 않고 여일하게 살고 있다.  폴은 어미고양이가 계절이 바뀔때마다 새끼들을 낳으면, 새로 생긴 '동생들'을 극진히 위했다.  어미 고양이는 새끼를 두배 더 낳고 중성화가 되었는데, 어미가 새끼를 낳으면 돌보는 것은 폴이었다.  동생들도 폴을 무척 따랐다. 그리고나서 그들이 성묘가 되면 그들은 폴의 곁을 떠나갔고 폴은 혼자가 되었다. 요즘 폴은 거의 혼자 시간을 보낸다. 가끔 어미고양이와 만나기도 하지만, 대체로 혼자 나타나서 밥을 먹고 혼자 자신의 처소로 간다. 


그런데, 큰애가 폴의 새로운 소식을 전해준다.


http://americanart.tistory.com/2778  


링크된 페이지에 소개한 '푸틴'녀석 (러시아산 하얗고 체격 큰 고양이), 이 녀석이 말하자면 동네 깡패이고, 우리 폴을 무척 괴롭히는 녀석인데 요즘 폴이 하얀 아기고양이들을 여러마리 이끌고 밥을 먹으러 온다고 한다.  물론 숫놈인데다 중성화된 폴이 새끼를 낳았을리는 없고, 어디선가에서 아기고양이를 발견하고 스스로 이들의 '보모'를 자처한 모양이다.  폴이 마치 어미고양이처럼 새끼고양이들에게 '밥 배급소'인 우리집 뒷마당으로 이끌고 오는 교육을 하고 있고, 새끼 고양이들은 배가 고프면 덤불근처에서 우리집만을 주시하고 있으면서도 좀체로 다가오지 않다가, 어디론가 가서 '폴'언니를 앞장세워가지고 우리집에 와서 밥을 먹는다고 한다.  (사진에서 수국화분 옆의 투명한 물그릇, 그것이 고양이와 새를 위한 물그릇이다).  아기고양이들이 이 물그릇 근처에 놓여진 먹이를 맛있게 먹고는 '폴'언니 근처에서 놀다가 덤불로 돌아간다고 한다.  어미는 누구인지 모르나 애비 녀석은 필시 그 '푸틴'녀석이라고 큰애가 전한다.


마음씨가 비단결인 우리 사도바울이 요즘 아기들의 보모가 되어 아주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니 나도 기분이 좋아진다.  아무것도 보이지도 않고, 더듬 더듬 기억에 의지하여 우리집에 밥을 먹으러 오는것이 전부인 이 고양이의 가슴에 '사랑'이란 것이 있어서, 보이지도 않는 남의 새끼들을 돌보다니, 생명이란 참 신기하다. 



너는 사랑을 표현할 수 있어서 기쁜거겠지? 그 아이들이 다 자라면 너를 떠나거나 혹은 너를 왕따시키며 괴롭힐지라도, 그래도 지금 당장 너는 사랑을 할 수 있어서 지금 기쁜거지? 






Posted by Lee Eunm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