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merican Art History Sketch2018. 1. 27. 10:54


모처럼 아무 생각 없이 내셔널 몰에 있는 국립 미술관 (National Gallery of Art)에 들렀다가 내가 평생에 꼭 한번은 보고 싶었던 작품을 만나는 '행운'을 누렸다.   요즈음 국립미술관에서 잭슨 폴락 벽화 특별전시 중이다.  국립 미술관이 잭슨 폴락의 대작들을 많이 소장하고 있기는 한데, 이번에 특별 전시하는  '1943년 벽화'는 이곳에서 볼수 없었던 작품이다.  왜냐하면 아이오와 주립대 (University of Iowa) 미술관에 소장되어 왔기 때문이다.


대강의 사연은 이렇다.  뉴욕 맨해턴에 있는 구겐하임 미술관, 그 미술관 주인이었던 페기 구게하임이 간신히 입에 풀칠이나 하며 연명하던 잭슨 폴락을 미술관 직원으로 채용한 후에 그의 작품성에 눈을 뜨게 된다 (아직 잭슨 폴락의 '물감 뿌리기' 이전의 일이다.  페기는 폴락에게 그녀의 저택의 현관 벽을 장식할 작품을 의뢰하고, 그렇게 해서 탄생한 작품이 바로 이 '벽화 1943'이다.   후에 어떤 인연인지 이 작품이 아이오와 주립대에 기증이 되고 대학 미술관의 소장품으로 남게 되었다. https://uima.uiowa.edu/collections/american-art-1900-1980/jackson-pollock/mural/  해당 대학의 작품 소개 페이지를 링크한다.



그런데 지난 2008년, 엊그제 같은데 벌써 10년 전이구나.  미국 중서부에 크게 물난리가 난 적이 있는데 당시에 아이오와 대학교 미술관이 물에 잠기는 사태가 벌어지고 이 작품 역시 치명적이지는 않지만 손상을 입은바 있다.  그래서 후에 캘리포니아로 옮겨저서 수년에 걸쳐 복원 되었고,  오늘날 국립 미술관에 걸리게 된 것이다. 

2009년에 내가 한창 미국미술사 연구하고 잭슨 폴락의 작품들을 직접 만나보기 위해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과정에서 그의 대작이 아이오와에 있다는 사실과 수재를 당해서 전시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한꺼번에 알게 되었다.  폴락이 남긴 작품 중에서도 대작이라는데, 그걸 못 보다니... 당시에는 참 안타까왔다. 2011년 가을에 드모인의 주립대에 발표하러 갈 일이 있어서 스케줄을 짤때도, 혹시나 그것이 복구 되었나 보러갈까 궁리까지 했었는데, 당시에 악천후로 비행기도 취소되고 난리가 나서 모든 일정이 취소 된 적도 있었다. 


그런데, 그런 일들을 겪고나서도, 이제는 새카맣게 잊고 있었던 것인데, 미술관에 아무 생각 없이 갔을때, 내 눈앞에 '신기루'처럼 그 작품이 나타난 것이다. 복관 당첨 된 듯한 기분.  뒷통수를 한대 탁 맞았는데 기분 좋은 그런 기분.  뭐, 잠시 황홀했었다.  이 작품을 보러 한국 가기 전에 또 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몽글몽글 솟는다.  


아래 사진 설명:  알렉산더 칼더의 대형 모빌이 돌아가고,  중간층 (약간 어두워 보이는 층) 오른쪽에 잭슨 폴락 벽화 전시장이 보인다.  그 아랫층 대형 통유리벽 앞쪽에 관람객이 쉴수 있는 편안한 의자.  전시 구경하다 다리쉼 하러 그 소파에 가 앉아서 내가 뭘 했냐면...




수도쿠 풀었다. 하하하. 박물관 소파에 앉아서 수도쿠 풀었다.


몇해전에 내가 한참 전시장과 미술, 박물관에 미쳐 돌아다니고 있을때는, 시도때도 없이 거길 드나들면서도 늘 '도망자'처럼 헉헉대고 다녔다.  전쟁을 하듯이. 이걸 다 보고 읽고 알아야 한다는 강박증을 보이고 있었다. 사진을 찍고, 섦명을 읽고, 책을 사서 들여다보고, 공책에 정리도 하고...미친듯이 열정을 쏟았다. 


세월이 흘러, 그것이 까마득한 과거처럼 느껴지는 오늘날, 나는 전시장 소파에 앉아서 수도쿠나 채우며 논다.  물론 전시장을 돌아보기는 한다. 그러나 내가 꼭 보고 싶은것 몇가지 보면 더이상 볼 생각을 안한다.  마치 부페식당을 처음 알게 되었을때, 조금 먹으면 손해라는 피해의식에 휩싸여서 맛이 있건 없건 무조건 많이 많이 담아다가 배가 터지게 먹고 가슴이 답답해지고 골치까지 아프게 먹어야 돈 값을 한다고 상상하는 시기가 있다.  처음엔 미친듯이 먹는다. 하지만 몇차례 겪다보면 초특급 부페라도 심드렁해지고, 맛있는것이 아니면 잘 안먹으러 든다. 나는 나의 태도의 변화를 대강 이런 식으로 이해하는 편이다 (그냥 오늘 앉아서 그런 생각을 했다. 내가 왜 이러는가 혼자 사색해보다가...)


폴락의 '벽화'를 보면서 나는 문득 피카소의 '아비뇽의 처녀들'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는데, 내가 왜 그런 느낌이 들었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그냥 데자뷰라고 해야 하나?  분명 두개는 다른 작품인데, 나는 벽화 앞에 서서 '아비뇽의 처녀들'을 생각하고 있었다.  이건 나도 설명을 잘 못하겠다.  다음에 가서 다시 보고, 자료도 좀 찾아보고 -- 내가 왜 이런 느낌이 들었는지 분석을 좀 해봐야겠다. 



음. 수도쿠는 내가 생각이 복잡하고 심드렁해질때 '타이레놀' 처럼 찾아서 풀어보는 나의 게임이다.  요즘 드는 생각은, 이것 다 마치고나면 집에 아이들이 공부하고 남아있는 '수학의 정석' 책을 처음부터 차근차근 풀어볼까 한다.   시험걱정 없이 심심풀이로 하는 수학이 더 재미있을지도 모른다.


2018, 1, 26, 금. 맑음. 

Posted by Lee Eunm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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