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merican Art History Sketch2018. 1. 28. 22:37



https://www.nga.gov/exhibitions/special/weems-kitchen-table-series.html


https://www.nga.gov/exhibitions/special/weems-kitchen-table-series.html



며칠전 국립미술관 (National Gallery of Art, Washington DC)에 갔을때, 동관에서 특별전시중이던 재미있는 사진전을 보았다. 캐리 매 윔스라는 작가의 '식탁' 시리즈.  부엌 식탁이 주인공으로 이 식탁을 중심으로 사방에서 24시간 일어나고 있는 상황을 시리즈로 사진에 담은 것이다.  사실 나도 식탁에서 밥도 먹고, 책도 보고, 글도 쓰고, 친구와 차도 마시고, 뜨개질도 하고, 고양이와 놀고, 온갖것을 다 하면서도 (아직 식탁에서 섹스는 못 해 봤다...) 식탁의 풍경이 이렇게 다채로울수 있다는 것을 자각하지 못했었다. 전시장 입구를 제외한 네 벽에 이 시리즈가 걸려있어서 전시장 가운데에 서서 빙 둘러보면 마치 내가 식탁 중앙에 서있고 그 상태도 하루종일 식탁 주위의 사람들을 관찰하는 듯한 기분이 든다. 


이 사진전을 기록하는 이유는, 사실 나는 '사진 예술'에 별로 매력을 못느껴서 미술관 산책중 사진전시회는 대충 지나가기 일쑤이다.  만약에 내 블로그를 처음부터 끝까지 꼼꼼하게 읽은 어떤 사람이 있었다면 그는 눈치 챘을것이다, 내가 사진전에 대해서 단 한번도 글을 쓰지 않았다는 사실을. 그런데 이 사진전은 내 발을 한참 붙들고 못 움직이게 했다.  이 시리즈 전체가 어떤 이야기, 드라마를 보여주는 것 같아서 그랬을것이다.   한장의 사진속에서 시각적 구도나 깊이나 뭐 그런 사진 고유의 예술성을 들여다봐야 한다면 나는 재미가 없다.  그렇지만 사진에 대해서 관심도 없고 문외한이라고 하더라도 '식탁'을 주제로 한 이러한 연작 앞에서면 스스로 여러가지 이야기를 생각해내거나 자신의 식탁에 대하여 다시 생각하게 될 것이다. 


평범한 사람이 이 사진속의 식탁에 대해서 정감을 느끼는 이유는, 우선 식탁 그 자체와 의자들이  아주 전형적인 '아메리칸 스타일' 서민용 식탁세트라는 것이다. 아마 월마트에 가면 백 몇달러짜리 이 식탁세트가 판매가 될 것이고, 사람들은 상자를 사다가 직접 조립해서 사용해야 하며, 조립하기 귀챦으면 굿윌 같은 고물상에 가서 남이 쓰다 버린 이 테이블 세트를 사도 그만이다. 사실 내게도 사진속의 똑같은 식탁세트가 있었는데, 대학원시절 선배가 학위마치고 귀국하면서 살림 처분할때 내게 그냥 쓰라고 넘겨주고 간 것이다.  나는 그것을 수년간 사용하다가 이사하면서 남쓰라고 줘버렸는데, 의자 하나는 아직도 우리집거실에 남아 있다.  사람들이 살수 있는 '가장 싼' 서민용 식탁세트, 그 주위에 살아가는 서민들. 결국 일반적인 미국인들 정서속에 이 식탁이 스며들어있는 것이다, 마치 우리 조부모님이나 부모님 세대의 사람들에게 개다리 소반의 정서가 스며있듯. 사진을 보면서, 관객은 자신만의 추억에 잠길 것이다. 


그래서, 나는, 소세키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처럼, '나는 식탁이로소이다'나는 타이틀로 어느집의 식탁이 주변 상황을 스케치하고 그 집 식구들의 일상을 고자질하는 그런 이야기를 써보면 어떨까 하는 영감을 받았다.  어떤 '영감'을 주는 작품.  좋은 작품이다. 내게 영감을 줬으니까, 설령 내가 그것을 구체화하지 않는다해도, 그런 상상만으로도 유쾌해질수 있으니까.



Posted by Lee Eunmee
Diary/Life2018. 1. 28. 06:11


내가 여기 있다가 한국으로 가게 되면 가장 아쉬운 것은 나의 친구 '에코'와 헤어지게 된다는 것일게다.  나의 귀염둥이 아들 챨리는 '스피커' 매니아라고 할 수 있다. 녀석은 온갖 종류의 스피커를 모으는 일에 '혈안'이 되어 있고, 크지도 않은 집의 창고에는 귀신딱지 같은 스피커들이 쌓여있다.  나는 내가 한국 가기 전에 저 귀신딱지들을 다 내다버려야지 하고 벼르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이런 스피커 매니아 덕분에 그 시스템의 혜택을 가장 많이 누리고 있는 이는 바로 나 자신이기도 하다. 



찰리는 '에코'라는 그 스마트 기기를 집안의 세군데에 장치를 해 놓았다 (하나면 충분한데 왜 세개씩이나? 이 대목에서 나는 이해가 안간다.) 그리고는 각각의 에코에 별도의 스피커들을 이리 저리 연결해 놓았다.  세개의 에코는 각자 세마리 강아지처럼 개별적인 기능을 한다 (나는 그렇게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이 에코들을 총동원해서 한가지 일을 시킬수도 있다. (이것은 최근에 알게 된 것이다). 



그러니까 각각의 위치에서 각자에게 주어진 일 (예컨대, 베드룸 불을 켜라 꺼라 뭐 이런)을 하는 에코들이지만 만약에 내가 "Echo, play music everywhere!" 이렇게 말하면 온집안 구석구석에 설치된 스피커가 한꺼번에 음악 소리를 낸다는 것이다.  (그걸 왜 이제서야 알려준거야? 진작에 알려주지! 내가 한탄을 하자 찰리가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내가 몇번이나 말했는데 엄마가 귀담아 듣지 않았쟎아요."  음...그랬을거야...)



그래서, "Echo, play Renaissance music Everywhere" 주문을 외워서 흘러나오는 아름다운 음악속에 나는 앉아있다. 온집안에 숨어있는 열개 가까이 되는 스피커들에서 음악들이 흘러나오자, 내 주변의 공깃방울들이 마치 보슬비 방울처럼 내 온 몸을 감싸고 내 머리를 쓰다듬고 나를 위로해주는 듯한 기분이 든다. 내가 음악의 바닷물 속에서 물고기처럼 유영을 하는데 산들바람이 불고, 물결에 이리저리 일렁이는 산호초 사이로 작은 물고기가 되어 떠도는 그런 기분.  이럴때 음악은 천상의 관능미를 전한다. 


관능적이며 

성스럽고 

상쾌한... 


내가 생각하기에 어떤 '기쁨'에서 '관능미'를 제거하면 그것은 본연의 기쁨에서 뭔가 결여된 미완의 기쁨일것이다.  사람이 '몸'을 갖고 있는 '신체적'이며 '물리적인' 존재로 살아가는 한 '관능미'는 선을 완성시키는 요소일것이다.  





Posted by Lee Eunmee
Diary/Life2018. 1. 28. 05:50



큰 아들 존의 고양이인 우리 나비는 약 9개월 정도 된 암코양이이다.  존의 직장 근처의 길거리 고양이에게서 지난 3월쯤 태어나서 존의 직장 사람들이 먹이도 주며 키웠는데,  어미가 근처 도로에서 교통사고로 죽은것이 발견 되었고 새끼가 혼자 남아서 꿋꿋하게 지내는 것을 존이 데리고 온 것이 지난 여름. 여름 방학 기간에 내가 집에 와 있는 동안 입양을 해서 내가 돌보다 떠났고 나비는 존의 무한한 애정을 받으며 지내왔다.  


짐승들이 대개 그러하듯,  나비도 내가 저를 극진히 위한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고 내가 집에 있는 동안에는 늘 내 곁을 맴돌고 있다.  특히 나비가 내게 와서 스킨십을 해 댈때는 두가지 경우인데 (1) 밥달라고 조를때, (2) 내가 책상이나 테이블에 앉아서 책을 보거나 컴퓨터를 들여다볼때.  배고플때 아양떠는 것은  당연히 생존을 위한 행동으로 보이는데, 내가 책상에 앉아 있을때 살갑게 와서 부비대고 근처를 안떠나는 이유는 뭔지 잘 모르겠다.  내가 뭔가에 집중하거나 몰두할때 그것에 대해서 '질투'를 하는걸까?  나는 대체로 이런 풀이를 하는 편이다.  옛날에 우리 개 왕눈이도 내가 공부를 하고 있으면 내 책상위에 올라 앉아 내 책을 엉덩이로 깔고 앉거나 하는 식으로 나의 공부를 방해하다가 지치면 그냥 책 모퉁이에서 배를 깔고 자고 그랬었다.  그래서 나는 그 당시에 '바실라르'의 초의 불꽃에 나온 '드방빌의 고양이'를 생각해냈었다.  밤새 'burn the midnight oil' (밤새 책상 앞에서 공부를 하는) 주인의 곁에서 촛불처럼 지키는 고양이에 대한 사색의 대목이었다.  내 개가 그 고양이 흉내를 낸다고 생각했었는데, 요즘 우리 나비가, 내가 책상에만 앉으면 따라와 책상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을 본다.  책속의 사색이 빈말이 아니었어...



우리 나비에게는 존이 모르는 여러가지 행동 양식이 있다.  나는 '관찰자'라서 물끄러니 뭔가를 볼때가 많으니까, 어느날 우리 나비의 어떤 습성이 눈에 들어왔다.  나비는 생후 약 3개월까지는 어미를 따라서 길고양이로 살았고, 야생고양이로서의 유년시절을 보낸 셈이다.  그래서 우리 나비는 밥을 먹다가 밥그릇에 밥이 남으면 뭔가로 덮어서 은폐하려고 한다. 


먹다 남은 음식을 은폐하는 것은 많은 야생동물들의 본능적 행동이라고 알고 있다.  전에 나의 야생고양이 피터 (장님 폴의 형제)를 먹이기 위해서 덤불 굴 입구에 먹이를 갖다 주었을때 피터는 배불리 밥을 먹고나서 밥그릇 위에다가 낙엽을 긁어서 덮었다.  그 행동이 신기해서 조사를 해보니 그것이 야생동물들의 자기보호용 행동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피터는 거실밖 포치에 밥을 줬을때도 주변에 나뭇잎 하나 없을때에도 밥을 먹고 나면 밥그릇 주변을 박박 긁어서 뭔가로 덮는 '시늉'을 했다.  고양이들이 용변을 본 후에 흙으로 덮듯, 남은 음식도 동일한 양식으로 덮으려고 한 것이다. 


아래의 사진 두장은, 고양이가 먹다 남긴 밥이고, 그 밥그릇을 나비가 키친타올로 덮어 놓은 모습이다.




고양이의 습성을 잘 모르는 사람이라면 이것이 조작된 것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심지어 우리 나비의 주인이라고 할만한 존 역시 내 말을 믿지 못하겠다는 반응이었다.  나비가 키친타올로 음식 그릇을 덮어 놓았다고?  하지만 이것은 사실이다. 


얼마전에 내가 곱게 수놓은 손수건이 고양이 밥그릇위에 살포시 놓여있는것을 발견한 나는 '아니 내가 수놓은 보자기를 누가 여기다 덮어놓은거지?'하고 치워놓았다.  그런데 이튿날도 그 손수건이 고양이 밥그릇에 덮여있는거라.   그때 나는 고양이의 습성을 생각해냈다.  나비 네가 한 짓이냐?  마침 그 수놓은 손수건은 테이블 아래의 바구니에 놓여 있었는데, 나비가 발끝으로 긁어다가 덮었을것이다.  나는 손수건을 접어서 높이 올려놓고, 그 대신에 키친타올을 한장 뜯어다 밥그릇 주위에 놓아 주었다.  역시나 예상대로 나비는 키친타올을 긁어다가 정확히 밥그릇위에 덮어 놓았다.


뭐 그렇다고 사람 손으로 하듯 살포시 그렇게 덮는 것은 아니다. 내가 관찰해보니, 다른 고양이들이 하듯이 밥그릇 주면을 그냥 앞발로 박박 긁는다. 그러다가 주변에 뭔가 잡히면 앞발 손톱으로 그걸 끌어온다. 그냥 지속적으로 박박 긁으면서 그런 행동을 하는데, 그러다보면 자연스럽게 그 종이(손수건)가 밥그릇 위까지 올라간다는 것이지. 우리집 아이들은 아직 한번도 그 광경을 목도한 적이 없으므로, 원래 이야기를 잘 지어내는 엄마가 뻥을 치는거라고 상상하는 눈치이다. 이젠 자기네들도 어른이기 때문에 어릴적처럼 쉽게 넘어가지는 않겠다는 단호한 태도이다.  (내가 상상의 이야기로 아이들을 많이 곯려 먹었기 때문에, 이번 일도 나의 뻥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어쨌거나 나비는 이렇게 얌전하게 제 밥 남은것을 덮어 놓았다. 나중 간식 생각나면 다시 와서 먹고 또 덮어 놓을것이다.  이 장면을 비디오로 녹화하면 좋겠지만...내게 그런 열정은 남아있지 않다.  믿거나 말거나, 고양이들은 제 밥을 잘 덮어놓을줄 안다. 아마 교육시키면 설겆이도 할수 있을거다.  나비는 나보다도 훨씬 깔끔하게 제 살림을 잘 해내며 살고 있는것이다. 




Posted by Lee Eunmee
World Art2018. 1. 27. 11:12

워싱턴 국립 미술관 (National Gallery of Art)에서 요즘 뭉크 소장품 특별 전시회를 하는데, 가장 내 눈을 끌었던 작품.  (사진은 국립미술관 페이지에서 다운 받았다.) 나는 이 작품 앞에 서서 다이어리에 대충 스케치를 하였다.  미술 작품 맘에 드는 것이 있을때, 전에는 미친듯이 사진을 찍는 식으로 사냥을 했지만, 이제는 그런 모든 사냥질이 내게는 부질없어 보여서, 맘에 드는 것을 대강 스케치를 하여 손과 마음에 담고, 구체적인 이미지는 웹에서 찾아보기로 했다.  스케치를 하다보니 아주 짧은 시간 대충 하는 것이지만 사진 찍을때 볼수 없는 것들이 보인다.  시골집 마루 무늬 같은 나뭇결 무늬. 그래서인지 어딘가 멜랑콜리 하면서도 따뜻하고, 슬프면서도 위로가 된다고나 할까.  설명하기 힘든 감정이 몰아닥치는데 - 그게 위로가 된다.  특별한 경험이었다.  (내게 기괴하게면 여겨지던 뭉크가 이렇게 따뜻한 작품을 남겼으리라 상상도 못했다.  그래서 뭉크에게 급 관심).



스미소니언 역에서 내려서 국립 미술관에 가는 도중에 스미소니언 자연사 박물관을 거치게 되는데, 나는 대개 이곳에 들른다. 자연은 신의 예술 작품이고, 예술은 인간의 작품이고. 


자연사 박물관에 가면 그리 크지 않은 '산호 수족관'이 있는데, 예쁘니까 가면 꼭 들러서 들여다본다.  

한참을 들여다봤다. 



몇해전부터 해 오던 '인류의 기원' 전시장이 아직 유지 되고 있었다.  인류 최초의 예술이라고 알려진, 동굴의 손바닥 자국.  이걸 보니 잔잔한 호수같던 마음에 파문이 인다.  손짓해 부르는 누군가가 있어 셀수 없는 시간이 흐른 뒤에도 여전히 내게 손짓하는것 같아서. 




나도 내 손을 갖다 대 본다.  잘 지냈니? 응 나도 잘 지냈어...   누구에게라고 할 것도 없이, 가서 손음 맞대고 인사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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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의 공백 혹은 차이  (0) 2015.07.07
Posted by Lee Eunmee
American Art History Sketch2018. 1. 27. 10:54


모처럼 아무 생각 없이 내셔널 몰에 있는 국립 미술관 (National Gallery of Art)에 들렀다가 내가 평생에 꼭 한번은 보고 싶었던 작품을 만나는 '행운'을 누렸다.   요즈음 국립미술관에서 잭슨 폴락 벽화 특별전시 중이다.  국립 미술관이 잭슨 폴락의 대작들을 많이 소장하고 있기는 한데, 이번에 특별 전시하는  '1943년 벽화'는 이곳에서 볼수 없었던 작품이다.  왜냐하면 아이오와 주립대 (University of Iowa) 미술관에 소장되어 왔기 때문이다.


대강의 사연은 이렇다.  뉴욕 맨해턴에 있는 구겐하임 미술관, 그 미술관 주인이었던 페기 구게하임이 간신히 입에 풀칠이나 하며 연명하던 잭슨 폴락을 미술관 직원으로 채용한 후에 그의 작품성에 눈을 뜨게 된다 (아직 잭슨 폴락의 '물감 뿌리기' 이전의 일이다.  페기는 폴락에게 그녀의 저택의 현관 벽을 장식할 작품을 의뢰하고, 그렇게 해서 탄생한 작품이 바로 이 '벽화 1943'이다.   후에 어떤 인연인지 이 작품이 아이오와 주립대에 기증이 되고 대학 미술관의 소장품으로 남게 되었다. https://uima.uiowa.edu/collections/american-art-1900-1980/jackson-pollock/mural/  해당 대학의 작품 소개 페이지를 링크한다.



그런데 지난 2008년, 엊그제 같은데 벌써 10년 전이구나.  미국 중서부에 크게 물난리가 난 적이 있는데 당시에 아이오와 대학교 미술관이 물에 잠기는 사태가 벌어지고 이 작품 역시 치명적이지는 않지만 손상을 입은바 있다.  그래서 후에 캘리포니아로 옮겨저서 수년에 걸쳐 복원 되었고,  오늘날 국립 미술관에 걸리게 된 것이다. 

2009년에 내가 한창 미국미술사 연구하고 잭슨 폴락의 작품들을 직접 만나보기 위해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과정에서 그의 대작이 아이오와에 있다는 사실과 수재를 당해서 전시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한꺼번에 알게 되었다.  폴락이 남긴 작품 중에서도 대작이라는데, 그걸 못 보다니... 당시에는 참 안타까왔다. 2011년 가을에 드모인의 주립대에 발표하러 갈 일이 있어서 스케줄을 짤때도, 혹시나 그것이 복구 되었나 보러갈까 궁리까지 했었는데, 당시에 악천후로 비행기도 취소되고 난리가 나서 모든 일정이 취소 된 적도 있었다. 


그런데, 그런 일들을 겪고나서도, 이제는 새카맣게 잊고 있었던 것인데, 미술관에 아무 생각 없이 갔을때, 내 눈앞에 '신기루'처럼 그 작품이 나타난 것이다. 복관 당첨 된 듯한 기분.  뒷통수를 한대 탁 맞았는데 기분 좋은 그런 기분.  뭐, 잠시 황홀했었다.  이 작품을 보러 한국 가기 전에 또 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몽글몽글 솟는다.  


아래 사진 설명:  알렉산더 칼더의 대형 모빌이 돌아가고,  중간층 (약간 어두워 보이는 층) 오른쪽에 잭슨 폴락 벽화 전시장이 보인다.  그 아랫층 대형 통유리벽 앞쪽에 관람객이 쉴수 있는 편안한 의자.  전시 구경하다 다리쉼 하러 그 소파에 가 앉아서 내가 뭘 했냐면...




수도쿠 풀었다. 하하하. 박물관 소파에 앉아서 수도쿠 풀었다.


몇해전에 내가 한참 전시장과 미술, 박물관에 미쳐 돌아다니고 있을때는, 시도때도 없이 거길 드나들면서도 늘 '도망자'처럼 헉헉대고 다녔다.  전쟁을 하듯이. 이걸 다 보고 읽고 알아야 한다는 강박증을 보이고 있었다. 사진을 찍고, 섦명을 읽고, 책을 사서 들여다보고, 공책에 정리도 하고...미친듯이 열정을 쏟았다. 


세월이 흘러, 그것이 까마득한 과거처럼 느껴지는 오늘날, 나는 전시장 소파에 앉아서 수도쿠나 채우며 논다.  물론 전시장을 돌아보기는 한다. 그러나 내가 꼭 보고 싶은것 몇가지 보면 더이상 볼 생각을 안한다.  마치 부페식당을 처음 알게 되었을때, 조금 먹으면 손해라는 피해의식에 휩싸여서 맛이 있건 없건 무조건 많이 많이 담아다가 배가 터지게 먹고 가슴이 답답해지고 골치까지 아프게 먹어야 돈 값을 한다고 상상하는 시기가 있다.  처음엔 미친듯이 먹는다. 하지만 몇차례 겪다보면 초특급 부페라도 심드렁해지고, 맛있는것이 아니면 잘 안먹으러 든다. 나는 나의 태도의 변화를 대강 이런 식으로 이해하는 편이다 (그냥 오늘 앉아서 그런 생각을 했다. 내가 왜 이러는가 혼자 사색해보다가...)


폴락의 '벽화'를 보면서 나는 문득 피카소의 '아비뇽의 처녀들'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는데, 내가 왜 그런 느낌이 들었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그냥 데자뷰라고 해야 하나?  분명 두개는 다른 작품인데, 나는 벽화 앞에 서서 '아비뇽의 처녀들'을 생각하고 있었다.  이건 나도 설명을 잘 못하겠다.  다음에 가서 다시 보고, 자료도 좀 찾아보고 -- 내가 왜 이런 느낌이 들었는지 분석을 좀 해봐야겠다. 



음. 수도쿠는 내가 생각이 복잡하고 심드렁해질때 '타이레놀' 처럼 찾아서 풀어보는 나의 게임이다.  요즘 드는 생각은, 이것 다 마치고나면 집에 아이들이 공부하고 남아있는 '수학의 정석' 책을 처음부터 차근차근 풀어볼까 한다.   시험걱정 없이 심심풀이로 하는 수학이 더 재미있을지도 모른다.


2018, 1, 26, 금. 맑음. 

Posted by Lee Eunmee
Diary/Life2018. 1. 26. 12:12

위 사진은 웹에서 '자료'로 가져온 것이다. 


우리집 뒷마당에 출몰하는 희고 덩치 큰 고양이가 한마리 있다.  한 1년 전 쯤부터 본 것 같다.  처음에 나는 전신이 새하얀 털로 덮인 이 고양이에게 '스노우'라는 이름을 지어서 불렀다.  목에 가느다란 목줄도 있어서 그가 야생 고양이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는데, 그는 우리집 거실 밖에 자주 등장했다.   그런데 지난 여름에 왔을때, 우리집 아이들이 모두 이 녀석에게 화가 나 있었다.  


우리 뒷마당에 사는 눈먼 장님 고양이 --폴 (사도 바울)을 괴롭힌다는 것이다.  눈먼 고양이 폴은 크고 힘센 고양이가 새로 나타날때마다 늘 그들의 공격의 대상이 된다.  눈 먼 고양이라 만만해서 그런건가? 나의 폴은 새로운 고양이가 나타날때마다 고통스런 시간을 견뎌야 한다. 이 흰고양이가 덤불을 들 쑤시고 다니면서 눈먼 고양이를 괴롭히는 것이 종종 목도 되었고,  그래서 우리집 아이들이 이를 발견할 때마다 쫒아가서 야단도 치고, 막대기도 던지고 하면서 으르렁댔다.  지난 여름에는 나도 이 녀석에게 몇차례나 막대기를 던졌다.  그래서 나는 밉상 녀석을 '푸틴'이라고 이름을 붙여 주었다. 깡패 푸틴녀석. 아, 왜 하필 푸틴인가하면, 이 고양이의 주인이 근저 저택에 사는 미국 남자인데, 러시아에서 살때 이 고양이를 입양해서 러시아에서 함께 살다가 미국에 올때 데려왔다는 것이다. 그러니, 러시아에서 온 깡패녀석이라서 '푸틴'이라고 이름을 붙인 것이다. 


이번 겨울에  집에 돌아 와서도 한차례 막대기를 던져 녀석을 폴에게서 떼어 놓아야 했다.  얼마전에 폴의 거동이 수상쩍어서 살펴보니 엉덩이쪽의 살점이 보였다.  사납게 물어 뜯어서 털도 벗겨지고 생살이 그냥 드러나 있었던 것이다.  (내 가슴이 무너졌다).  아이들은 그 흰고양이 녀석이 그랬을거라고 믿고 있다.  내가 집을 비운 2년 동안 바깥 고양이들을 지극 정성으로 살펴오고 있는 젊은 미국인 부부들도 그 흰고양이가 그랬을거라고 믿고 있다. 그 부부는 고양이 주인 아저씨에게 고양이를 중성화 시키던가, 아니면 우리 동네에서 깡패짓 못하게 집에서만 키우던가 하라고 시시때때로 전화질을 해대고 있다는데, 녀석은 요즘 매일 우리집 밖에 출몰하고 있다. 


오늘 오전에도 덤불에서 폴이 비명을 지르길래 내다보니 폴이 해바라기 하는 덤불 입구에 이 녀석이 폴과 마주 앉아 있었다.  내가 잡아 죽일듯이, 잠옷바지만 입은채로 달려가보니 녀석이 폴 앞에 물끄러미 앉아있는데, 폴은 죽을듯이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일단 죽을듯이 소리지르는 폴을 안정시켜야 했다. 내가 간신배와 같이 간사스러운 목소리로 "나비야, 나비야, 걱정마, 내가 왔어, 나비야, 나비야" 이렇게 말해주자 폴은 비명을 멈췄고, 흰 고양이는 내 눈치를 보다가 쓱 사라졌다.  장님인 폴은 내 목소리를 듣고 안심했고, 깡패 푸틴 녀석은 내가 노려보니까 도망을 간 것이다.


그렇게 상황을 정리하고 집에 돌아와 생각해보니, 오늘 본 장면은 좀 의외였다.  장님 폴이 비명만 지르지 않았다면, 그들의 풍경은 아무런 문제도 없어 보였다. 덩치큰 푸틴 녀석은 장님 폴앞에 평화롭게 앉아 있었고, 장님 폴 역시 그를 마주 향해 앉은채로 비명을 지르고 있었던 것이니, 그들의 마주한 자세는 '평화' 그 자체였다.  폴이 평소에 당한게 있으니까 , 오늘 푸틴은 아무런 해코지를 할 의사가 없었는데도,  폴이 그냥 지레 놀라서 비명을 질렀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 혼자 중얼거렸다. "푸틴 녀석, 그 녀석은 친구를 사귈줄 모르는가보다.  깡패짓 하면 친구 사귀기 힘들다는 것을 모르고 깡패짓 해 놓고 친구 하자고 찾아 다니나보다. 멍청한 녀석." 


책방에서 시간보내다가 해가 저문후에 집에 오니, 어둠 속에서, 바깥 포치에 놓인 캣타워 꼭대기에 흰고양이 푸틴 녀석이 태평하게 앉아있다.  내가 "나비야, 나비야" 부르니 멀끄러미 쳐다보고 있다. 내가 그를 지나쳐 집안으로 들어서자, 그는 캣 타워에서 내려와 우리집 거실 유리문에 얼굴을 갖다 대고 양양거린다.  이상한 녀석이다. 내가 소리지르고, 째려보고, 신발짝이나 막대기를 던진 적도 있는데, 오늘 아침에도 구박을 해 보냈는데, 내 유리문에 코를 대고 양양거린다.   먹이를 한 그릇 주니 그걸 달게 먹는다. 뭐냐 너, 러시아에서 살다 왔다는 네 주인아저씨는 뭐 하는거냐? 밥도 안줘? 너 왜 밤까지 집에 안들어가고 여기와서 밥을 달래 응? 녀석은 배불이 밥을 먹더니 인사도 없이 가버린다.  조금 후에 장님 폴과 어미 메리가 왔다. 나는 또 밥을 준다.  


푸틴아, 배 부르게 밥 줄테니까,  눈먼 고양이 폴을 괴롭히지 말아라. 폴이 심성이 착해서 눈이 안보이는데도 제 동생들을 얼마나 잘 돌봤는데. 너에게도 좋은 친구가 되어줄테니, 제발 괴롭히지 말아라.  




Posted by Lee Eunmee
Diary/Life2018. 1. 26. 11:30



타이슨스 쇼핑몰에 갔다가, 반즈앤노블에서 When to Rob a Bank 와 수도쿠 책을 심심파적으로 사가지고 왔다.  마침 바겐세일 가격이라서 아마존에서 하드카피나 킨들을 사는것보다 저렴했기 때문에 기분전환용으로.  작가의 전작들을 읽어왔기 때문에, 이 책도 나를 크게 실망시키지는 않을 것이다. 


노마드처럼 이리저리 떠도는 삶이라서, 종이책을 여간해서는 안산다. 대개 킨들 버전으로 사는데,  책방에서 발견한 맘에 드는 책들을 사진으로 찍어와서 집에서 아마존 검색을 해보니,  놀랍게도 어떤 경우에는 페이퍼보다 킨들 버전이 더 가격이 높은 것도 있었다.  (결국 우리는 이런식으로 전자책의 마수에 빠지는건가?  초기에는 전자책이 종이책에 비해서 가격이 월등 쌌지만 -- 전자책의 확산으로 점자 전자책 수요가 높아지고 종이책이 밀려나면서 아마존은 슬금슬금 전자책 가격을 높이고 있는것이 아닌가?  이런 의구심이 들었다.) 


한국에 있는 동안에는 어쩔수 없이 손쉽게 아마존 킨들북을 사 볼수밖에 없지만, 미국에 있는 동안에는 책방 조사도 좀 해보고, 책 시장의 동태를 살펴야겠다. 이바닥이 어쩐지 수상쩍게 돌아간다는 괴괴한 느낌. 


그래도, 떠돌이 생활에서 종이책은 '사치'처럼 여겨지기까지 한다.  내 삶의 양태가 그러하다.  여전히 종이책에 파묻혀 지내긴 하지만, 전자책이 소리없이 부피도 없이 이미 내 삶에 깊이 파고 들었다. 


음, 집에 와서 검색하니 내가 찜 해 놓은 신간들이 전자책이 더 비싸거나 종이책과 비슷한 형상이라, (약이 올라서) 오랫만에 종이책들을 대거 주문하긴 했는데, 그것들 비행기타고 다니면서 옮기는 것도 부담스럽고, 쌓아 둘데도 마땅치 않고... 나는 내 거처나 연구실이나 임시로 머무는 여관처럼 보는 편이다. 책을 위한 내 집을 갖고 싶다. 어쨌거나, 수상쩍은 전자책 가격.


Posted by Lee Eunmee
Diary/Life2018. 1. 13. 10:27



I know just how to whisper, 
and I know just how to cry; 
I know just where to find the answers; 
and I know just how to lie. 


I know just how to fake it, 
and I know just how to scheme; 
I know just when to face the truth, 
and then I know just when to dream. 

And I know just where to touch you, 
and I know just what to prove; 
I know when to pull you closer, 
and I know when to let you loose. 

And I know the night is fading, 
and I know that time's gonna fly; 
and I'm never gonna tell you everything
I've got to tell you, 
but I know I've got to give it a try. 

And I know the roads to riches, 
and I know the ways to fame; 
I know all the rules
and then I know how to break 'em 
and I always know the name of the game. 

But I don't know how to leave you, 
and I'll never let you fall; 
and I don't know how you do it, 
making love out of nothing at all


(Making love) 
out of nothing at all, 
(making love) 
out of nothing at all, 
(making love) 
out of nothing at all, 
(making love) 
out of nothing at all, 
(making love) 
out of nothing at all
(making love) 
out of nothing at all. 


Every time I see you all the rays of the sun 
are streaming through the waves in your hair; 
and every star in the sky is taking aim 
at your eyes like a spotlight, 


The beating of my heart is a drum, and it's lost 
and it's looking for a rhythm like you. 
You can take the darkness from the pit of the night
and turn into a beacon burning endlessly bright. 
I've got to follow it, 'cause everything I know, well it's nothing till I give it to you. 


I can make the run or stumble, 
I can make the final block; 
And I can make every tackle, at the sound of the whistle, 
I can make all the stadiums rock. 



I can make tonight forever, 
Or I can make it disappear by the dawn; 
And I can make you every promise that has ever been made, 
And I can make all your demons be gone. 


But I'm never gonna make it without you, 
Do you really want to see me crawl? 
And I'm never gonna make it like you do, 
Making love out of nothing at all. 


(Making love) 
out of nothing at all
(making love) 
out of nothing at all
(making love) 
out of nothing at all
(making love) 
out of nothing at all
(making love) 
out of nothing at all
(making love) 
out of nothing at all
(making love)

I think I am gonna learn this song by heart and sing it at the festival in May. I will give it a try.



Posted by Lee Eunmee
Diary/Walking2018. 1. 4. 10:42





2018년 들어서 처음으로 '나의 숲'으로 산책을 나갔다.  날씨가 추워서 개울이 꽝꽝 얼었지만, 바람이 불지 않아 그다지 춥지 않게 느껴졌다.  겨울에도 칼바람만 불지 않으면 추위는 심각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칼바람'이 무서울 뿐이다. 


짧은 겨울해라서, 오후 세시에 숲으로 들어가서 걷다가 돌아올 무렵에는 사방이 어두워졌다.  저만치 어슬렁거리는 동물이 여우인지 코요테인지 근처 인가에 사는 개인지 식별이 되지 않을 정도였다.  


어둠속을 걷다가 생각해보니, 이 나이 먹도록, 인기척도 없는 겨울 숲속길을 해 진 후에 걷기는 처음이었다.  바람이 불지 않아서 춥지 않았고, 무섭지도 않았다.  그냥 터벅터벅 길을 따라 걷다보면 내 차를 세워 놓은 주차장이 나타나리라는 믿음 한가지로, 길섶에 쌓인 눈을 등불삼아서 걸었다.


꽝꽝 언 개울 얼음판에서 혼자 미끄럼을 타고 놀면서 -- 어릴적 할아버지가 만들어주신 썰매가 있다면 지금 참 신나겠다는 생각을 했고,  숲길을 따라 걷는 그 길이 고향집으로 가는 길처럼 여겨졌다.  미국의 숲길에서 오히려 고향길을 발견한다.  (한국은 낯설도록 너무 많이 달라졌다.)  겨울 숲길은 아름답다.  겨울 밤의 눈쌓인 숲길은 흰 눈이 길을 밝혀줘서 정겹다.  


얼음판위의 내 사진은, 개울가 바위위에 전화기 세워놓고 타이머로 맞춰 놓고 찍은 것이다.  매일 매일 겨울 숲으로 들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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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ee Eunm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