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2020. 4. 4. 10:00

내가 관리하는 팀에서 평소에 나를 많이 도와주는 젊은 미국인 교수가 창가에서 화분을 다듬고 있는 내게 다가왔다. 요즘 사회적 거리두기 때문에 넓직한 학교 복도에서도 우리들은 서로 없는 사람처럼 멀찍이서만 손을 흔들어 인사를 하는 편인데 그가 내게 다가왔다. 

 

 

"나 내일 뉴욕으로 돌아가기로 해서 인사하러 왔어." 

 

 

학교측에서는 봄학기말까지 온라인 수업이므로 미국집으로 가서 수업을 진행할 사람들은 '수업에 차질이 없는한' 자유롭게 돌아가도 좋다는 안내를 이미 한 바 있다. (그렇지만 실제로 돌아가겠다고 짐을 싼 미국인 교수들은 많지 않다.  한국이 미국보다 더 안전하니까. 하하하).  

 

 

그 친구에게는 연로하신 부모님이 계시는데, 두 분 다 병약하시다. 평소에도 아버지, 어머니가 응급실에 가셨다는 이야기를 종종했다.  그런데 하필 뉴욕이 코로나의 지뢰밭처럼 되어버린 상황이 되니 '효녀심청'같은 이 친구가 부모님을 돌봐드리러 가야만 한다는 것이다.  미국행 비행기 델타는 텅텅비어 운항하는데 값은 전과 마찬가지라고 한다. 그나마 다행이다. 가자마자 2주간 격리도 해야 한단다. 그래야하겠지. 

 

 

"너 마스크는 좀 챙겼어?"  내가 묻자, 애매한 표정으로 몇개 정도는 있다고 한다. (미국 사람들은 왜 마스크를 안할까? 우리학교 학장님은 나를 '마스크 귀신 할멈'으로 생각을 하는 눈치다. 사사건건 마스크 안하고 막 남의 연구실 드나들고 그러는거 못하게 공지해달라고 그러고, 늘 마스크를 하고 돌아다니며 신경질적으로 구니까 -- 내가 뭔가 상의하기 위해서 저만치서 다가오는 것을 발견하면 부랴부랴 자기  책상에서 마스크부터 꺼내 쓴다. 심지어 농담으로 이메일 끝에 인사 대신에 I will wear the facemask!  이런 말을 붙이기도 한다. 그렇지만 복도에서 서로 발견했을 때 나는 마스크를 쓰고 있고, 그는 안쓰고 있다. 습관이 무섭지.)  

 

 

그래서 일하다 말고 학교 앞 상가로 뛰어가서 빨아 쓸수 있는 헝겊 마스크 네장 (한군데서 두장씩만 판다고 해서 두군데 들러서 네장 사고), 열장 들어있는 일회용 종이마스크 한봉지, 손 소독제, 소독용 물티슈 뭘 골고루 '구호물자'를 한보따리 사서 크리스마스 선물처럼 가져다 주었다.  "미국가면 손세정제 구하기도 힘들고, 마스크는 아예 찾아보기도 힘들다고 하니까, 가능한 헝겊 마스크를 매일 빨아쓰도록 하고..."  내가 주섬주섬 '안전수칙'을 설명해주는데, 그 젊은 교수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너무 고맙단다. 그래서 말해줬다, "내가 너하고 같은 상황이 되었다면 - 너도 나에게 이렇게 했을거쟎아.  가을학기에 무사히 돌아오기만 해라. 혹시 뭔가 급히 필요하면 연락해, 여기서 구할수 있는것은 바로 부쳐줄게." 

 

 

 

내가 어릴때는 '미국' 사람은 천국에서 온 사람들인줄 알았다. '미국'은 이세상 어딘가에 있는 '천국'같은 나라인줄 알았다. 동화책 속의 궁궐같은 나라가 미국인줄 알았다.  나는 그래서 영어를 열심히 익혔다. 영어를 하면 천국에서 온 미국 사람과 대화를 할 수도 있고, 그런 나라에 가 볼수도 있을것 같았다.  영어 속에는 그런 요소들이 다 들어있는 것 같았다. 달콤한 상상이었다. 내 또래 사람들은 대체로 이런 비슷한 상상을 했을 것이다.  미국은 그대로 거기 있는데, 한국이 부쩍부쩍 자란 것이다. 한국 사람들, 정말 잘 살아낸것 같다.  나는 여전히 미국을 좋아한다. 아름다운 땅이고 좋은 사람들도 많이 살고. 미국이 아프니 나도 마음이 아프다.  여름방학때 미국 입국이 가능할까 모르겠다.  (그런데 트럼프 아저씨가 풀어주는 긴급 생활지원비 뭐 그런거, 그거 내 계좌에도 들어올거라고 찰리가 알려주었다. ㅋㅋㅋ) 

 

Posted by Lee Eunm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