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etch2019. 5. 19. 06:06

내가 세례받은 미국 감리교 예수쟁이이긴 한데, 다닐곳이 마땅치 않아서 고민고민하다가 괴상한 한국 감리교에 다니고 있기는 한데, 결국 내가 늘 갸우뚱하며 회의적으로 쳐다보던 그 교회에서 일이 터졌다. 

 

내가 소속한 교회를 '괴상한 한국 감리교회'라고 말하는 나도 내가 한심하다.  왜 그런델 다니냐고 묻는다면, 내 대답은 한국 교회 거기서 거기이고, 눈 씻고 찾아봐도 다 거기서 거기라서, 에라 모르겠다 나는 기도하고 예배 드릴 '장소'가 필요하니 '기도'하고 '예배'드리러 간다는 차원에서 다니고 있다는 변명을 늘어 놓을 수 밖에 없다.

 

지난해 연말에는 나보고 착실하고 성실하게 다닌다고 (매일 새벽예배 나가고, 일요일 예배에 빠짐없이 나가고 헌금도 착실히 하니까) '집사' 안수를 준다나 뭐라나 하는데, 내가 "I am fine, thank you." 이러고 '고사'하고 말았다.  심리적으로 나는 그 교회와 거리를 유지하고 있었으므로 그런 것은 내게 어울리지 않았기 때문인데, 내가 그 교회와 거리를 유지할 수 밖에 없는 구체적인 이유는 - 그 교회를 세운 목사님이 떠억하니 자기 사진을 교회 앞 입간판에 걸어놓고 무슨 가겟집 주인아저씨 같이 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촌스러운 교회를 다닐수 밖에 없는 이 불쌍한 성도를 예수님 굽어 살피소서).  나는 그 가겟집 주인아저씨 같은 목사님이 보기 싫어서, 그분이 설교하지 않는 일요일 이른 아침 시간에 (젊고 정직한 부목사님이 설교하는 시간에) 예배드린다. 그게 내 생존 전략이다. 

 

내가 그래도 그 교회를 다니는 이유는, 조만간 가겟집 주인아저씨같은 초대 목사님이 은퇴한대서, 그러면 물갈이가 되려나, 나도 좀 제대로 예배드릴수 있게 될까 (목사를 피해다니는 것도 피곤한 일이니까) 뭐 그런 희망을 가지고 참을성 있게 기다려 온 것이지. 그래서, 아무튼 얼마전에 그 가겟집 주인아저씨같은 목사님이 명목상 은퇴라는걸 교회법에 따라서 하긴 했는데, 뭐 곳간 열쇠를 여태 틀어쥐고 내 놓지를 않는다고 한다. (내가 너 그럴줄 알았다. 아 처음부터 맘에 안들더라...뭐 이러고 만다.) 

 

뭐 최근에는 민주적 직선제 시스템으로 교회 신도들이 '국민투표' 형식으로 차기 담임목사님 선출을 위한 선거를 했는데, 70퍼센트 이상 득표한 부목사님에 대한 목사 승인 절차가 교회 인사위원회에서 부결이 되었다고 교회가 난리가 났다. 당회 한다고 나오라고 해서 가봤더니 싸움이 벌어졌다. 간단히 원로목사파와 원로목사가 사라지기를 희망하는 계파간에 전쟁이 난 모양이다. 나야 처음부터 심리적 거리를 유지하며 예수님께 기도드리러 교회를 드나들던 사람이라 그냥 건성으로 구경을 하는 편인데, 전체적인 구도를 보면 - 그 가겟방 주인아저씨 품격의 초대 목사님이 아무래도 '이걸 내가 어떻게 세운 교회인데!!!' 뭐 이런 미련을 가지고 몽니를 부리고 자빠져 있는 형상이다. 

 

그래도 상황이 좀 딱해서, 70퍼센트 이상의 득표를 하고도 구석에 얌전히 찌그러져 있는 부목사님에게 내가 위로의 메시지를 보내드렸다. 대략,

 

"목사님 기뻐하십시오. 항상 기뻐하시라고 하셨으니 기뻐하십시오. 일단 70퍼센트 이상 득표하신것을 기뻐하십시오. 결국 한때 빛나던 목회자였을 저 노인께서 온갖 치졸한 방법으로 스스로의 명예를 땅바닥에 내팽개치고 스스로 제 무덤을 파고 있으니, 성난 신도들이 그동안 참고 봐주고 넘겼던 그의 비행을 하나하나 백일하에 드러내놓기 시작하지 않았습니까? 결국 빤쓰까지 다 털리고 쫒겨나게 되는 형국인데, 저분만 그걸 모르니 딱한 지경입니다.  저 가련한 영혼을 위해 기도해야 할 시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계획대로 정의를 세우시게 되겠지요. 관전평." 

 

교회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거나 말거나, 나는 새벽예배를 드리러 가는데, 매일 갈때마다 감사헌금 봉투에 헌금을 담아 가는데 (얼마나 착한가. 하느님 사탕이라도 잡수시라고 매일 사탕값이라도 갖고 가는 것이다. 착한 손녀딸처럼), 며칠전부터 나는 텅빈 헌금 봉투에 이러한 메시지를 적어서 낸다. 

 

"저 타락한 원로목사님이 내가 낸 감사헌금과 십일조 이런거 다 털어서 퇴직금이니 위로금이니 온갖 명목으로 다 뜯어가고, 게다가 월 350만원씩 꼬박꼬박 원로목사님 월급으로 챙겨간다니, 그 돈 다 회수할때까지 --하느님 저는 한푼도 헌금 못합니다. 하느님 드시라고 사탕값 드렸더니 하느님께서 엉뚱한 놈한테 주시다니요. 저 삐졌습니다."

 

 

우리 하느님, 나한테 암말도 못하신다. 하느님, 그러니까 교회를 바로 세워 놓으십시오. 제가 안심하고 하느님 사탕값 갖다 드릴수 있도록.  나는 여전히 새벽기도에 나가고 예배에 나간다. 이건 우리 하느님과 나 사이의 '약속'이니까. 목사놈이 무슨 지랄을 하건 말건 개의치 않는다. 처음부터 '목사'는 내 신앙체계에 중요한 요소가 아니다. 오직 하느님/예수님과 나의 관계에만 치중할 뿐이다.  나머지는 다 악세사리. 없어도 그만이다. (착한 교회에서 착한 목회자의 인도를 받는것은 좋은일이지만, 없어도 할 수 없는거지 뭐. 개의치 않는다.)  그래도, 지금은 어떤 책임 의식도 있는데, 내가 착한 목사님들을 좀 돕고, 고민하는 이웃을 위하여  대범하고 쿨하게 행동하는 것도 좋을 것 이다. 그러나 그것또한 부수적인 장치이다.  예수님과 손잡고 가면 된다. 다정한 연인들처럼. 예수님하고 나하고. 

 

 

 

Posted by Lee Eunm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