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merican Art History Sketch2010. 2. 10. 03:47

Mississippi Boatman 1850, oil on canvas

George Caleb Bingham (조지 케일럽 빙엄) 1811-1879

 

 

 

 

조지 케일럽 빙엄(1811-1879)는 버지니아주의 부농 집안에서 태어나지만 아버지의 투자 실패로 삶의 근거지를 중서부 미조리주로 옮기는데 성년이 되어 유럽을 여행한 것을 제외하고는 미주리주에서 평생을 지내게 됩니다.  빙엄은 뒤셀도르프에서 미술 수업을 한적도 있지만, 이는 그가 성년이 된 후에 후원을 입고 뒤늦게 수업을 들은 셈이고, 미술사가들은 빙엄을 '독학 (self-taught)'하여 입신한 화가로 평가하는 편입니다.  그러니까, 어릴때 정규 미술교육을 받지 않고 스스로 그림을 익혔는데, 그의 그림에 대한 평가가 좋아지고 그의 입지가 단단해질 무렵에 그에게 그림 수업을 받을 기회가 주어진 것이지요.

 

빙엄은 목공예 기술을 익힌적도 있는데 그러면서 회화에 눈을 떴으리라 짐작하게 됩니다. 그보다 한세대 먼저 펜실베니아에서 활동했던 '평화의 왕국'의 화가 Edward HIcks 가 마차 장식이나 표시판 기술자로 일하면서 스스로의 화풍을 익히면서 퀘이커 교도로서 설교를 하러 다니기도 했었는데요, 빙엄 역시 목공예를 하면서 미술 작업을 하는 틈틈이 법률가가 될것인지  목사가 될것인지 고민을 하기도 했고요, 설교를 하러 돌아다니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는 변호사도 목사도 되지 않았고 초상화 주문을 받아 그려주는 것으로 생계를 해결하게 되었는데요.  정작 그의 예술성이 인정을 받게 된 분야는 그가 미조리주, 미시시피강변의 사람들의 모습을 그린 풍속화에서였습니다.

 

 

빙엄이 즐겨 그린 '미시시피강변의 사람들' 소재가 위의 그림에서도 나타나는데요.  미시시피강은 북미에서 가장 긴 강이지요. 미국의 중앙 북단에서 흘러내려 뉴올리안즈까지 이어지는 대동맥과도 같은 강입니다. 저는 뉴올리언즈에서 본 미시시피강 하구의 증기선이 특히 기억에 남습니다. 허클베리핀의 모험을 쓴 소설가 마크 트웨인의 회고록 Life on the Mississippi (1883년 출판)을 대학 시절에 읽은 기억이 납니다. 마크 트웨인이 어린시절 증기선을 타고 미시시피강을 오르내리던 기억을 담은 이야기들인데요.  그의 '허클베리핀의 모험'에서도 뗏목을 타고 흑인노예 짐과 함께 강을 따라 이동하는 이야기가 나오지요. 저에게 미시시피강은 '마크 트웨인'의 책속에 흐르는 강이지요. 그래서 빙엄의 미시시피강 연안의 풍경을 볼때도, 허클베리핀의 모험 이야기 속에 나오는 아이들, 악당들, 우매한 군중들을 떠올리게 됩니다.

 

그림속의 미시시피 보트맨은 아마도 그가 배로 운반한 물건들을 강변에 부려놓고 짐을 지키고 앉아있는 것 같죠. 그의 등뒤로 강가에 대어놓은 그의 납작한 배가 보입니다.  풀기라고는 없는 그의 옷처럼, 이제 젊음이 지나가버린 이 늙수그레한 사나이는 곰방대를 빨면서 관객을 응시하고 있는데요. 이 사람이 앉아서 쳐다보는 방향은 강의 상류일까요, 하류 일까요? 

 

저는 이 그림속의 시각이 오후 네시쯤의 황혼이 다가오는 시각이라고 봅니다. 분위기상.  그런데 햇살이 이 사람의 오른쪽에서 비치지요. 해가 서쪽에 있고, 오른쪽이라면, 이 사람은 남쪽을 향하고 있는 것이지요. 미시시피강은 북쪽에서 남쪽으로 흐르니까, 이 사람은 상류에서 내려와서 짐을 내리고 남쪽을 향해 한가롭게 앉아있다고 봐야겠지요.   내일쯤, 이 사람은 그의 자그마한 배에 새로운 짐을 싣고 북쪽으로 올가가겠지요. 이 사람의 그림에서 저는 왜 황혼을 읽는 것일까요?  빛의 분위기가 어쩐지 황혼을 닮았지요. 이울어져가는 태양의 기운 잃은 노란색, 그 노란 색조가 화면 전체를 압도하지요.  곰방대를 물고 있는 사나이의 표정도 기우는 해처럼 무심하죠. '노스탈지아 nostalgia'의 색은 무슨 색일까요?  빙엄의 그림을 보면 노스탈지아의 색은 '노란색'인것 같습니다.

 

이 그림은 1850년에 그려졌는데요, 1850년 당시만해도 미시시피 강에 뗏목이나 자그마한 배들이 여전히 운행을 하긴 했지만, 강의 운송수단의 대세는 증기선이었다고 합니다. 사람이 노를 저어 운송하는 수단은 이제 사양의 길로 접어들었거나, 혹은 찾아보기가 드물어졌다고 하지요.  빙엄은 말하자면, 사라져가는 혹은 사라진, 풍경을 담았던 것이지요.  그리고 사라지고 이울어져가는 풍경을 담았던 빙엄은 미국 미술사에 '오래' 남게 된 것이지요.

 

빙엄은 풍속화, 초상화, 그리고 몇점의 역사화들을 남겼는데, 기록에 따르면 빙엄의 작품은 '모두' 미국에 있다고 합니다. 해외의 소장자가 없다고 해요.  해외에 안 알려진 화가라는 얘기죠.  워싱턴에서도 그의 작품의 수가 극히 미미하거니와 전시장에서 찾아보기도 힘듭니다.  그의 활동 기반이 미조리주였기 때문에 미조리주에 그의 작품들이 많이 남아있다고 합니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그의 걸작이 있다는데요, 가서 보고 와야지요.

 

 

 

 

아래의 그림은 버지니아 남단 해변도시에 있는 크라이슬러 미술관에서 발견한 빙엄의 역사화입니다.  델러웨어강을 건너는 조지워싱턴을 그린것입니다. 뒤셀도르프에서 함께 수학하기도 했던 미국화가 Emmanuel Leutze 가 1851년에 그렸던 동명의 작품과 매우 흡사한 구도인데요,

 

Washington Crossing the Delaware, 1856-1871

oil on canvas, 146 x 93 cm

George Caleb Bingham 1811-1879

2009년 11월 29일 크라이슬러 미술관에서 촬영

http://americanart.textcube.com/190

 

 

Emmanuel Leutze, Washington Corssing the Delaware 1851

 

 

이 그림의 제작년대가 1856-1871까지 표시가 되어있지요. 작품을 완성하는데 무려 15년이 걸렸다고요. 그 사연인즉, 빙엄이 이 그림의 초안을 잡아놓고 미조리주에서 이 그림을 사주기를 희망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주문을 받아서 돈을 받고 이 그림을 그리고 싶었던 것이지요.  그런데 사람들이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았대요.  그래서 완성을 하지 않고 주문자가 나타나기를 기다리다가 세월을 보낸 모양입니다. 결국 그는 주문도 받지 못하고 그림을 완성했다고 하는데요, 그가 죽을때까지 이 그림이 팔리지 않았대요. 나중에 빙엄의 유가족이 이 그림을 경매에 내놨을때 팔려나갔다고 합니다.  그런 사연이 있는 그림입니다.

 

 

 

 

 

Washington Crossing the Delaware 가 걸린 전시장 풍경,

(오른쪽 하단에 걸려있는 작품), 크라이슬러 미술관

http://americanart.textcube.com/190

바로위에 에드워드 힉스 http://americanart.textcube.com/193 의 조지 워싱턴 그림이 보입니다.

 

 

말씀 드렸다시피, 빙엄의 작품은  미국 바깥에는 한점도 없다고 합니다. 오직 '미국'에서만 만날수 있는 작가이지요.  미시시피 강변의 노란 노스탈지아의 풍속화가.  미국 미술관을 순례하시다가 노란 색조의 강풍경이나 배를 탄 사람들이 노를 젓거나 배위에서 춤을 추거나 하는 풍경이 보이시면 누가 그렸는지 화가 이름을 한번 살펴 보십시오.  그가 빙엄일지 모르니까요.

 

2010년 2월 9일 RedFox

Posted by Lee Eunmee

The Girl I Left behind Me, 1870-75, oil on canvas

Eastman Johnson 1824-1906

2009년 12월 29일 스미소니안 미국미술관에서 촬영

 

 

 

2008년 5월 스미소니안 미국미술관에서 촬영

 

 

제가 스미소니안 미국미술관에 처음 가본것은 2008년 5월의 일입니다.  스미소니안 미국미술관은 내셔널 몰 지역에서 조금 외떨어진 곳에 있지요.  메트로 스미소니안 역에서 내리면 양쪽에 줄줄이 서있는 스미소니안 박물관들과 국립 박물관, 그밖의 전시장들을 보는 것으로도 세월이 마냥 흘러가기 때문에, 신경써서 가지 않으면 스미소니안 미국미술관은 잊혀지기도 쉽습니다.  그래서, 이곳은 다른 미술관들에 비해서 한가한 편입니다. 출입구에서 안전검색도 하지 않고요.  저도 워싱턴으로 이사한지 거의 일년이 다 되어갈때 그곳에 처음 가본 셈이지요.  그날 처음 '미국미술관'에 가서 반했던 작품중에 하나가 바로 이스트만 존슨의 이 그림입니다. The Girl I Left Behind Me 내가 뒤에 남겨두고 온 여인 (소녀 혹은 처녀).  내가 뒤에 남겨두고 온 여인이라... 그림도 심상치가 않거니와, 거기다 제목까지.

 

이 그림을 보는 사람의 심상에 따라서 그림도 다르게 해석될수 있지만, 사람들은 대개 비슷한 것 같습니다.  우리는 누군가를 무엇인가를 기다리면서 살아가지 않나요?  아니 어쩌면 우리는 누군가를 무엇인가를 두고서 먼길을 떠나지 않나요?  나는, 떠나는 쪽이라기보다는 기다리는 쪽인것 같습니다.  내가 떠나기 보다는 내 주변의 사람들이 떠난것도 같고요 (혹은 이는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해서 그런것일지도 모릅니다.)

 

나는 늘 제자리에 있는데, 내 주변의 사람들이 내 곁을 떠났다는 이런 상실감을 갖고 사는 사람이 이 그림을 볼때는, 관객 자신이 언덕위에서 바람을 맞으며 한없이 서서 기다리는 저 여인의 입장이 될 겁니다.  누군가를 버리고 떠난 사람은 돌아서서 이 여자를 쳐다보는 입장이 되겠지요. 나는 이 그림을 볼때, 내가 언덕위에 서서 바람을 맞고 서있는 입장이었던것 같습니다. 

 

어쨌거나 이 그림이 참 인상적이었던지라, 그림 앞에서 사진도 찍고, 미술관 책방에서 이 그림을 표지로 한 미국미술사책도 한권 사고 그랬지요. 2008년 5월 어느날.  그날의 내 그림자는 아직도 저 그림앞을 서성일지도 모르지요.

 

이 그림은 미국 남북전쟁 (Civil War: 1861-1865)을 배경으로 한 것입니다. 전쟁이 일어나자 남자들은 전쟁터로 떠나고, 여인들은 남아서 사랑하는 남편이, 애인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게 되었지요.  남자들이 전쟁터로 가건, 영장을 받고 입대를 하건, 사랑하는 남자를 보내야 하는 여성들 (애인, 아내, 어머니등) 역시 떠나는 사람 만큼이나 애절해집니다. 바람은 심상치 않게 불고, 백척간두같은 언덕위에 서 있는 여인은 바람을 정면으로 맞이하고 있습니다. 가슴에 들고 있는것은 성경책이겠지요 아마도. 신념과 사랑에 의지하여 저 여인은 힘겨운 세월을 저렇게 고집스럽게 버틸것입니다.

 

이스트만 존슨은 실제로 1862년에 버지니아의 마나싸쓰 (Manassas)에서 전쟁을 치렀고, 당시의 전쟁의 경험과, 전쟁 당시 젊은이들이 부르던 아일랜드 민요에서 이 그림의 제목을 따왔다고 합니다:

My mind her full image retains

Whether asleep or awaken'd

I hope to see my jewel again

For her my heart is breaking

내 마음은 그녀의 모습으로 가득찼네

잠을 잘때나 깨어있을때나

보석과도 같은 내 사랑을 다시 볼수 있기를

그녀 생각에 가슴이 무너진다네

 

혹시나 싶어서 유튜브 뒤져보니 노래가 있군요...

 

 

 

 

이스트만 존슨 (1824-1906)은 우리가 이전 페이지들에서 살펴보았던 19세기의 대형 풍경화가들 Thomas Moran, Frederick Edwin Church, Albert Bierstadt 와 거의 비슷한 시기에 태어나고 활동했던 화가 입니다.  그런데 그는 장르가 달랐죠.  이스트만 존슨을 얘기할때는 그를 '장르 화가'로 칭하는 일이 많습니다. 장르 미술 (Genre Painting)은 한국어로 옮길때는 '풍속화'라는 것이 가장 적절해 보입니다. 서민, 민중의 삶의 풍경을 화폭에 담는 것을 말하지요.  인류의 역사에 '회화'가 등장한 이래로, 회화는 주로 귀족층들이 누리던 예술 분야였습니다. 특히 서양미술을 살펴보면 르네상스 이전이나 그 이후에나 그림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왕가의 인물들, 귀족들, 부유한 사람들 혹은 역사, 풍경등이었지요.  서민들의 삶을 화폭에 옮긴 화가들은 많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화가들은 대개 부유한 사람들의 '주문'을 받고 그림을 그리는 식으로 생활을 꾸려 나갔는데, 가난뱅이 서민이 화가에게 돈을 주고 그림을 주문을 할 일이 없었다고 봐야죠.  르네상스 이후에 서양 예술에서 서서히 민중의 삶에 눈을 돌린 화가들이 나타나는데  부르겔이나 베르미어등이 바로 그런 화가들이었습니다.  밀레의 저녁종이나 혹은 반 고흐의 '감자먹는 사람들' 같은 빈농의 삶의 풍경, 그러한 것들이 바로 이런 '풍속화'의 범주에 들어가지요.

 

미국에도 이렇게 '풍속화'를 즐겨 그린 화가들이 존재하는데, 이스트만 존슨도 그중 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 풍속화의 얄궂은 운명이 뭔고하면,  풍속화의 소재는 '가난한 서민들'이쟎아요. 그런데 이런 그림을 향유한 층은 여전히 부유층이었다는 것이죠.  사람이 고기만 먹다보면 김치도 먹고 싶어지쟎아요.  말하자면, 고급 가구로 잘 차린 집의 거실이나 서재에 이런 풍속화를 한점 걸고, '소박하고,' '목가적인,' 삶을 찬미하는 취미를 가진 미술 애호가들이 있었다는 것이지요. (뭐 일부러 해진 옷 같은거 - 빈티지 스타일이라고, 돈 많이 주고 다 떨어진 옷 사입고 폼 잡는 것도 비슷한 행동이긴 하죠. 그것도 멋이고 자랑이다 이거죠.)  아무튼, 이런 풍속화는 돈많은 사람들의 또다른 수집 취미의 대상이었다고도 합니다.

 

 

이스트만 존슨은 메인주의 유복한 정치인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16세가 되던 1840년에 보스톤의에서 리토그래프 판화를 배우고, 1849년에는 독일의 뒤셀도르프로 가서 본격적으로 미술 수업을 받습니다. 그후에 헤이그, 파리등지를 돌며 역시 유럽 미술을 배우게 됩니다.  1853년에는 그의 아버지가 워싱턴 디씨의 정부 고위 공무원으로 발령받아 워싱턴으로 이주하여 백악관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살게 됩니다. 1855년에 미국으로 돌아온 그는 1859년 뉴욕시에 작업실을 열고 활동을 하게 됩니다. 그는 사실주의적 기법으로 당시의 서민들의 삶을 그리는가하면 초상화를 그리기도 했습니다.  그는 1872년 2월 20일,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 개관할때 공동 설립자로 이름을 남기게 됩니다.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은 헬렌 켈러가  '만약 내가 단 하루 시력을 갖게 된다면  보고 싶은 것'들중에 포함되기도 하는 미국 최대의 미술관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이스트만 존슨이 이 미술관의 설립에 앞장을 섰던 인물이군요.

 

자 이제 그의 따뜻하고 정겨운 풍속화 작품들을 살펴볼까요.

 

이 수련따는 그림은, 밀레의 이삭줍는 여인들과 비슷한 모티브로 보이죠?

Gathering Lilies (수련따기) 1865, oil on board

Eastman Johnson 1824-1906

2009년 12월 13일 워싱턴 National Gallery of Art 에서 촬영

 

 

 

 

 

The Early Scholar, c1865, oil on academy board on canvas

Eastman Johnson 1824-1906

2009년 12월 13일 워싱턴 National Gallery of Art 에서 촬영

 

이 꼬마 학생에 대해서는 http://americanart.textcube.com/210  이전에 관련 페이지를 적은 적이 있습니다.

 

 

 

Fiddling His Way, 1866, oil on canvas

Eastman Johnson 1824-1906

2009년 11월 29일 크라이슬러 미술관에서 촬영

 

 

이 그림은 1866년에 그려진 것으로 보아, 노예해방 이후에 자유민이 된 흑인이 악기 연주를 하며 떠도는 풍경을 그린것으로 보입니다.  백인의 중산층 가족으로 보이는데요,  여인이 안고 있는 아기까지 포함하여 아이가 여섯이나 되는군요.  흑인이 악기를 연주하고, 음악소리에 귀를 기울이거나 턱을 받치고 있는 아이도 보입니다.  빗자루 막대기에 기댄채 잠시 음악에 귀를 기울이는 여인의 모습도 편안해 보이지요.  비록 그림이지만, 그림 한구석에서 미국의 깽깽이 소리가 경쾌하게 울리는 것 같습니다.

 

 

아래의 그림은, 필라델피아 미술관에서 발견하여 사진을 찍은 것인데, 조명이 하도 어두워서 사진 상태가 흐릿합니다. 이 그림이 참 마음에 들었어요, 그래서 여러장 찍었는데 쓸만한 사진이 한장도 없더라구요. 아쉽습니다. 참 사랑스러운 그림인데요. 시골 농가의 헛간에 아이들이 한가롭게 앉아 있어요. 설령 이 가로대에서 떨어진다해도 아래에는 건초더미가 쌓여 있으므로 다칠 일도 없습니다. 아이들은 가로대에 나란히 앉아 종알거리고 노래를 부르거나, 그러다가 말다툼이 벌어져서 하나가 울음을 터뜨릴지도 모릅니다.  아기를 무릎에 안고 있는 언니도 보이지요?  이 그림을 보고 있으면, 아이들이 제비새끼들처럼 지지배배 떠드는 소리가 들리는것 같습니다.  아마도 그래서 화가도 이 그림의 제목을  '헛간의 제비들'이라고 붙였을겁니다.

 

 

Barn Swallows, 1878, oil on canvas

헛간의 제비들

Eastman Johnson 1824-1906

2009년 9월 19일 필라델피아 미술관에서 촬영

 

 

간단히 Eastman Johnson (1824-1906)의 풍속화들을 몇 점 살펴보았는데요,  이스트만 존슨에 대해서 요점정리를 해보자면

 

 1. 그는 풍속화가로 알려져 있으며, 서민들의 일상의 삶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그렸다

 2. 그는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공동 설립자이다

 3. 그는 19세기 대형 풍경화가들이 활동하던 비슷한 시기에 풍속화를 그렸던 사람이다

 

정도가 될 것 같습니다.  여기서 잠깐 퀴즈. 그런데...풍속화 (genre painting)가 뭐죠?  :)

 

 

2010년 2월 8일 RedFox

 

 

 

 

 

 

Posted by Lee Eunm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