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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erican Art History Sketch2009. 12. 28. 04:53

토마스 윌머 듀잉

 

 

토마스 윌머 듀잉 (Thomas Wilmer Dewing 1851-1938) 은 매사추세츠주 보스톤 태생의 화가 입니다.  1876년부터 1879년까지 (그의 나이 25세부터 29세까지) 파리와 뮌헨에서 미술 수업을 받았으며 미국으로 돌아온 후에는 Society of American Painters 그룹에 속하여 잡지 편집인이었던 Richard Watson Gilder의 살롱을 중심으로한 뉴욕 문화계에 어울리게 됩니다.  길더는 당시의 유명한 미술가, 작가, 재벌들과 친교를 맺으면서 이들과 '황금시대 Gilded Age'를 펼쳐 나갑니다.  미국미술사에서 '황금시대'는 말하자면 '돈'과 '예술'의 만남이었다고 할 만 하지요.

 

이곳에서 듀잉은 건축가이며 디자이너이기도 했던 Stanford White 와 친교를 맺게되는데 이들간의 돈독한 우정은 스탠포드 화이트가 죽을때까지 (1905년) 이어집니다. 스탠포드 화이트는 살해되었지요. 듀잉의 상심이 컸다고 합니다.  제가 듀잉 관련 페이지에 소개해드렸던 그의 작품들, 그 작품들이 '액자' 디자인은 모두 스탠포드 화이트의 작품입니다.

 

Gilder 의 살롱에서 듀잉은 그의 평생 아내가 되는 Maria Oakey (1845-1927)도 만나게 됩니다.  그러고보니 듀잉보다 여섯살 연상이군요.  마리아 역시 화가였습니다. 마리아는 John La Farge 와 함께 미술 수업을 받았는데, 듀잉에게 화면을 전체적으로 부드럽게 조정해보라는 조언을 합니다.  듀잉이 Tonalist 로 나아간데는 아내의 역할이 지대했던 것이지요.

 

1890년부터 듀잉은 뉴 햄프셔의 스튜디오에 머무르며 초록색 계열의 이상화된 자연속의 여성들을 창조해냅니다. 1897년 그는 Society of American Painters 에서 탈퇴하여 Ten American Painters 모임에 합류하여 20여년간 이들과 함께 활동하게 됩니다.

 

The Ten (미국 인상주의 화가들) 뒤에 서있는 사람들중에서 오른쪽에서 두번째 콧수염 신사가 듀잉

Seated, left to right:

(1) Edward Simmons,  (2) Willard L. Metcalf, (3) Childe Hassam, (4) J. Alden Weir, (5) Robert Reid
Standing, left to right:

(6) William Merritt Chase, (7) Frank W. Benson, (8) Edmund C. Tarbell, (9) Thomas Wilmer Dewing, (10) Joseph Rodefer De Camp

 

그리고 1905년부터는 그간의 야외 풍경에서 벗어나 실내 중심의 작품 활동을 합니다. 그의 그림에서 실내는 부드럽게 채색되고, 색조(tone)가 통일되어 있습니다.  인물들은 하나 혹은 둘이 간결한, 대부분이 생략된 공간에 존재합니다.  남자를 찾아보기 힘든 그의 그림에서 여성 인물들은 손으로 다가가 잡을수 없는 거리에서, 이상적인 형태로 그리고 고요하게 존재합니다. 그의 그림에서 인물들의 숨소리나 체온을 느끼기는 힘듭니다. 마치 숨쉬는 풀잎들처럼 그들은 존재합니다.

 

듀잉은 미국의 인상주의 미술을 이끌었던 10인회의 회원이었으므로 미국 인상파 화가로 분류가 되기도 하지만,  좀더 국소적으로는 Tonalist (색조주의자) 군에 속합니다. Tonalism (색조주의)는 1880년경부터 1915년에 이르기까지 미국출신의 화가들이 풍경화를 그릴때 보였던 양상인데 George Inness 와 James McNeill Whister 가 그 대표적인 화가들입니다.  듀잉역시 화면의 전반적인 색조로서 화면의 분위기를 전달하는데 공을 들였지요.  이 색조주의는 미국에서 인상파 화풍이 우세해지면서 그 명맥을 잃게 됩니다.

 

듀잉은 미술가로서는 매우 행운아였습니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미술사에서 '당대'의 인정을 받고 영예를 누리다가 죽어서도 여전히 대가로 인정받은 화가들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오히려 비참하게 살다가 인정도 못받고 죽은후에 사후에 인정받아 그림값만 하늘 높을줄 모르고 뛰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네덜란드의 화가 빈센트 반 고흐가 그러하였고, 우리나라의 박수근 선생 역시 미군부대에서 양키들에게 초상화를 그려주는 '노동'으로 간신히 연명할수 있었으며...  그런데 듀잉은 일찌감치 뉴욕의 보험업자였던 John Galletly 그리고 디트로이트의 철도차량 사업가였던 Freer (워싱턴의 프리어 갤러리를 기증한 사람)의 열렬한 애정과 지원을 받는 행운을 누립니다.  결국 Galletly 가 수집했던 작품들은 스미소니안 미국 미술관에, 그리고 프리어가 수집한 작품들은 스미소니안 프리어 갤러리로 옮겨지게 됩니다.

 

 

초록 안개의 꿈

 

http://americanart.textcube.com/234 페이지에서 우리는 몇장의 그림을 보고 듀잉 작품세계의 어떤 특징을 꼽아본 적이 있습니다. 해당 페이지의 내용을 옮겨 보겠습니다.

 

(1) 그림속의 주인공들이 모두 '여성'들입니다.  남자 안보이지요?  :)  '여름'과 '낭송'에서는 각각의 화면에 두명의 주인공들이 들어있습니다.  세폭 병풍같이 생긴 작품 속에는 한폭마다 한명의 여자가 그려져 있지요.

 

(2) 모두 유화이군요.

 

(3) 배경이 모두 초록색 계열이지요.

 

(4) 그리고 배경이 모두 '자연'입니다.  인공적인 '건물' 같은것은 안보이지요?

 

(5) 안개가 낀듯 화면들이 대개 '아슴프레'하지요?  사진사가 사진 실력이 없긴 하지만, 원래 작품이 이래요. 촛점이 어긋난것처럼 아슴푸레한 것이 이 세작품의 공통점입니다.

 

(6) 여성들이 현실적으로 보이십니까? 아니지요? 팔은 가늘고 하체는 무척 길죠.  '이상화'된 여성의 체형인것처럼 보입니다.

 

우리는 단지 '몇 편'의 작품만으로도 듀잉의 이런 특징들을 발견해 낼수 있었는데요.  듀잉의 이야기들이 이어지면서 뭐가 새로 추가가 되었을까요?

 

(1) 그림하고는 상관이 없지만, 그가 남긴 작품들의 '액자'가 모두 통일되어 있지요. 그것이 워싱턴에 있건 피츠버그 카네기 미술관에 있건 액자는 동일한 사람의 작품입니다. 그와 막역한 친구이기도 했던 건축가, 디자이너 Stanford White 가 디자인 한 것입니다.

 

(2) 일정한 색조를 유지하면서 그 색감 자체가 그림의 '주제'였다는 점에서 듀잉 활동당시 서로 교류하며 영향을 주고 받았던 James McNeill Whistler (제임스 맥닐 휘슬러), George Inness (조지 이네스)의 Tonalism 을 그의 그림에서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3) 그가 후에 십인회에 가입하게 되는데, 십인회의 주요 멤버들이 미국미술사에서 '미국 인상파 화가들'로 자리매김 하게 됩니다.

 

(4) 1905년 이후에는 실내에서 여인들이 악기를 들고 있는, 실내 중심의 그림들이 많이 발견됩니다.  제가 소개드린 작품들을 찬찬히 보시면, 이 블로그에 소개된 작품들 만으로도 듀잉의 활동이 '야외'에서 '실내'로 옮겨가게 된 것을 파악할수 있습니다.

 

(5) 당시에 미국이나 유럽 화가들을 사로 잡았던 '일본화' '일본화풍'이 듀잉에게도 영향을 끼친것으로 알려져있습니다.

 

(6) 그는 당대에 '부자들의 후원'을 듬뿍 받은 운좋은 화가였지요. 그는 산업의 폭발적 발전으로 신흥대국이 된 미국의 재벌들의 '돈'과 유럽등지에서 예술 공부를 하고 돌아온 미국의 예술가들이 어울려 이뤄낸 '황금시대'의 아이였고, 수혜자였던 것이지요.  금박으로 떡칠을 하여 백악관에 기증한 스타인 피아노의 장식이나, 디트로이트 재벌 프리어의 실내 장식이나 장식용 그림을 제작해내면서, 그는 예술을 위해 배를 곯거나 화구를 사기위해 막노동을 할 필요가 없는 '아름다운' 세월을 보낼수 있었을 겁니다.

 

 

그리하여, 듀잉의 그림에서 우리는

'안개속을 걷는듯한 상쾌하고 촉촉한,'

'몽환적인,'

'어디선가 아름다운 멜로디가 들려오는 듯한,'

'사람의 숨소리나 땀냄새가 느껴지지 않는'

'선녀들같이 아름다운 여인들이 가볍게 춤을 추는'

'연두색 물감이 이러저리 스며들다 내 영혼에까지도 스며들듯한' 

이러한 느낌을 받게 됩니다.

 

그래서 실제로 프리어 갤러리의 듀잉 전시실에 가면 호흡도 고요해지고, 마음도 잠시 편안해집니다.

 

 

영혼의 부재

 

그렇다면, 이토록 아름다운 작품들이, 왜 미국 미술사 책에서, 미국 미술 비평 앤솔로지에서 크게 주목을 받지 못하는 것일까요? 왜 듀잉의 이름이 세계적인 화가 반열에 오르지 못하고 미국 미술의 언저리에서 희미하게 맴돌다 마는 것일까요?

 

이전페이지에서 저는 이를 간단히 '페이소스 (pathos)가 안보인다'로 정리한 바 있습니다. 듀잉의 색조는 우리 영혼에까지도 스며들것같이 부드럽고 습기가 있으며 정제되어 있지만, 그토록이나 아름답지만,  안타깝게도 듀잉의 여인들에게서 우리는 영혼을 느낄수 없습니다. 사람의 숨소리나 땀냄새가 나지 않으므로 관객인 우리가 끼어들 여지가 없습니다. 천상에만 존재하는 주인공들 곁에 우리는 다가갈수 없습니다.  다가갈수 없으므로 공감이 불가능해집니다.  저들은 관객인 나와 공감하지 않습니다. 나의 고통을 들어주지도 않고, 나의 신음소리를 듣지도 못합니다.  나는 그림으로부터 소외감을 느낍니다.

 

이런 재미있는 설이 있는데요. 백화점 판매직원이 '너무나도 아름다우면' 오히려 매출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수 있다고 하지요.  내가 물건 사는 사람이고 판매원은 내게 도움을 주는 사람인데, 그 사람이 너무 근사하고 잘생기면 오히려 손님인 내가 의기소침해진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너무 잘난 판매원은 오히려 물건을 잘 못 판대요. (믿거나 말거나). 

 

듀잉의 그림속에는 '관객 (비평가들이나 미술사가 모두 포함)'들이 동감하거나 공감할 삶의 고통이 보지지 않습니다. 부조리함이나 비뚤어짐, 망가짐 같은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극복해야할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오직...팔자 늘어진 어떤 사람들이 식후에 페퍼민트 한잔으로 느끼함을 지우려하듯, 딱 고만큼의 아름다움만이 존재 할 뿐입니다.  그러므로, 이 아름다운 그림들은 우리 눈앞에 나타났다가 안개처럼 사라지고 그리고 지워지게 됩니다.  여기까지가 화가 듀잉의 몫인것 같습니다.

 

듀잉이 만약에 물감을 사기위해 막노동을 해야 했거나,  캔바스를 새로 장만할수 없어 그림위에 또다시 그림을 그려야 했던 상황속에서 고민하고 고통을 겪었더라면, 이 아름다운 선녀들은 우리에게 좀더 아름다운 노래를 불러줬을지도 모릅니다.  (미술가는 배부르면 안돼? 꼭 고생하다 죽어야 미술이 완성돼? 이렇게 반문하고 싶으시죠?  영화 누리면서 떵떵거리다가 세상 하직한 대가들도 여럿 있죠.  듀잉의 예술은 거기까지도 미치지 못했겠지요.)

 

저는 듀잉의 그림들을 좋아합니다. 편안하고 좋아요...  그러니까 이렇게 페이지를 여섯개씩이나 만들면서 상세하게 그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는 것이지요.  그렇지만 동시에 안타까움도 느낀다는 것이지요...  안개처럼 희미하게 사라지고 만 그의 예술세계가 안타까운 것이지요.

 

인생은...고통스럽지만...고통을 견디면...나는 조금 더 사람 냄새를 풍기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고통을 견뎌야 하는 이유 같은것을 이렇게라도 찾게 되는군요.) 나를 불후의 명작으로 만들수 없다해도, 죽는 순간까지는 불후의 명작을 만들기 위해 노력을 해야겠지요 뭐...

 

2009년 12월 27 redfox.

 

 

 

 

 

 

 

 

 



 

Posted by Lee Eunm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