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lliam Glackens (1870-1938) 는 The Eight 의 멤버인 John French Sloan 과 고등학교 동창이고, 펜실베니아 미술학교에서도 함께 미술을 공부했으며, 슬로언의 소개로 로버트 헨라이와 만나게 되어 절친한 관계를 유지하게 됩니다. 글랙슨 역시 슬로언과 마찬가지로 여러가지 매체에 '삽화'를 그리는 것으로 생계를 해결했습니다. 아무래도 대중적인 신문이나 잡지에 필요한 삽화를 그리는 작업이 이들을 사실주의적 화법으로, 대중의 삶에 다가가게 하는 요소가 되었을 것입니다.
La Villette (c. 1895)
2009년 11월 7일 카네기 미술관에서 촬영
1895년에는 헨라이, 슬로언을 위시한 미술가들과 함께 유럽 여행을 하기도 했고요, 헨라이와 함께 파리에서 일년간 머무르며 파리의 예술을 익히기도 합니다. 시골에서 서울로 유학을 가듯, 당시 미국의 미술가들은 파리나 다른 유럽의 도시로 미술을 공부하러 가는 것이 대세였습니다. 글랙슨 역시 헨라이의 영향으로 일상의 대중의 모습을 그려나가기도 했고 2008년 The Eight 전시회에 참가하기도 했지만, 그는 헨라이의 영향권 아래에 오래 머무르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르누아르와 같은 프랑스 인상파 화가의 화풍을 추구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La Villette 는 프랑스 파리의 풍경입니다. 강변에 사람들이 있고, 높은 구름다리도 보입니다. 1895년, 프랑스 파리에 처음 간 25세 청년의 작품입니다. 도시인의 풍경을 관찰자의 입장에서 그리고 있지요.
Boys Sliding (미끄럼 타는 소년들) c. 1900
Oil on Canvas
2010년 1월 9일 델라웨어 미술관에서 촬영
색조는 대체적으로 '어두운' 편인데요, 이게 뭘까? 궁금해서 들여다보면 아슴프레한 가운데, 언덕에서 미끄럼을 타는 아이들과, 언덕 아래에서 줄넘기를 하고 노는 소녀들이 보입니다. 언덕위에서 신사 혼자서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군요. 같은 시기에 그려진 저 위의 풍경화와 분위기가 비슷하지요?
1904년 결혼한 글랙슨스는 파리로 신혼여행을 갔고, 그 이후로도 프랑스와 유럽의 도시들을 자주 드나들었는데, 파리의 룩상브르그 정원을 그림에 담았습니다. 프랑스의 중상류층 사람들이 한가롭게 공원에서 시간을 보내는 장면입니다.
Luxembourg Garden (1906)
2009년 10월 3일 코코란 미술관에서 촬영
Beach Umbrellas at Blue Point (1915)
2009년 10월 3일 스미소니언 렌윅 갤러리 (미국 공예 박물관)에서 촬영
Bath Houses, (욕실들), c. 1915
Oil on Canvas
2010년 1월 9일 델라웨어 미술관에서 촬영
저 위의 스미소니언 소장 작품과 이 'Bath Houses'그림의 '장소'나 색감이 비슷하죠. 제작 시기도 비슷하고요. 극히 개인적인 소견입니다만, 위의 바닷가풍경은 함께 활동했던 프랜더개스트의 그림을 연상시키고, 이 욕실들 그림은 타히티 여인들을 즐겨 그렸던, 폴 고갱의 아름다운 색감을 연상시킵니다.
그의 1927년작 Promenade (산책)는 얼핏 루누아르의 화사함을 연상시키지요?
The Promenade (1927)
Oil on Canvas
2009년 10월 30일 디트로이트 미술관에서 촬영
글랙슨스는 The Eight 전시회의 회원이었고, 애시캔 그룹으로 활동을 하기도 했으며 평생 이들과 교분을 유지하였지만, The Eight 전시회 이후 헨라이의 영향권에서 벗어나 루누아르 풍에 가까운 자신만의 세계를 창조해 나갔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제가 전시장에서 눈으로 직접 봤던 그의 작품들은 '미국화'같지가 않아 보였고, 얼핏 보기에 '유럽 인상파 화가 그림같다'는 느낌을 줍니다. 어찌보면 '이도 저도 아닌' 작품들 같기도 한데요. 그래서 미술사적으로 크게 주목받지는 못하지요. 화가의 '정체성'이 그래서 중요하지요. 미국인은 미국적인 그림을 그릴때 정체성이 뚜렷하고, 한국인은 한국적인 무엇을 다룰때 정통적으로 보이지요.
며칠전에 아들놈이 학교에서 프레젠테이션을 했습니다. 각자 주제를 선택하여 전문가적으로 발표를 해야 하는 프로젝트였는데, 처음에 아들놈이 담당교수한테 '럭비'에 대해서 발표를 하겠다고 했답니다. 럭비선수를 한적이 있거든요. 담당교수가 '뜨아'한 표정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아들놈이 마음을 바꿔서, 태권도에 대한 발표를 하겠다고 했습니다. (태권도장에서 태권도 지도를 하는 유단자거든요). 그러자 담당교수가 '그것을 발표하라'고 흔쾌히 대꾸를 했다고 합니다. 아들놈에게는 '럭비'나 '태권도'나 모두 자신이 잘 설명할수 있는 분야였는데 교수가 볼때, 명백하게 '코리안'인 학생이 '럭비'에 대해서 설명하는 것 보다는 '태권도'에 대해서 설명하는 것이 훨씬 '전문가'처럼 보였을 것이지요. 아들녀석은 태권도복까지 갖춰 입고 프레젠테이션을 했고, 좋은 점수를 받았다고 합니다.
교수를 '인종주의자'라고 탓 할 생각은 없습니다. 가령 '일본인'이 유도복을 입고 설명을 하면 어쩐지 그 사람이 유도의 전문가처럼 보이겠지만, 아프리칸이 유도복을 입고 설명하면 어쩐지...아닐것 같다는 느낌이 들테니까요. 그냥 '눈으로 보기에' 얼핏 그런 인상을 갖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고정관념이라던가 '스테레오 타이핑' '인종주의'라고 비난만 할수는 없지요.
사람이 갖고 있는 인지구조는 본인 스스로도 통제가 잘 안되는 것이지요. 그리고 사람들은 대개 이런 설명 불가능한 요소들의 영향을 많이 받습니다.
미국인 글랙슨스가 아무리 근사한 그림을 그려도, 그것이 어쩐지 이도 저도 아닌, 유럽화가의 작품같은 애매한 분위기를 갖기 때문에, 저와 같은 '미국화란 무엇인가' 들여다보는 이방인의 눈에는 그저 애매할 뿐이지요. 음...저의 글도 참 애매해지고 있군요...
2009년 12월 7일 redfox
The Purple Dress (보라색 드레스) 1908-10
Oil on Canvas
2009년 12월 29일 스미소니안 미국 미술관에서 촬영
스미소니안 미국미술관에서 글랙슨스의 보라색 드레스 그림을 발견했을때, 얼핏, '저 그림 내가 어디서 봤는데...' 이런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림 파일들을 뒤져봤지요. 그리고, 제 느낌에 매우 유사해 보이는 그림을 발견했습니다. 저한테만 이런 느낌이 들지도 모르지만요.
Pierre Bonnard (1867년생-1947년 사망).
Misia on a Divan ca. 1907-1914
William Glackens 는 1870년생 (1938사망). Pierre Bonnard 는 1867 년 출생 (1947년 사망.) 두 화가 모두 비슷한 시기에 태어나 비슷한 시기를 살던 사람들이지요. 보나르는 프랑스 태생이고, 글랙슨스는 미국 태생이지만, 두 사람 모두 파리에서 미술작업을 하면서 조우했습니다. 글랙슨스의 자료를 보면, 그가 프랑스에서 인상파 화가들 나비파 화가들의 영향을 받았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나비파화가로 우리에게 친숙한 사람들이 뷔야르와 보나르 이지요. 이 두 사람은 미국의 큼직한 미술관에 가보면 늘 함께 붙어다닙니다. 보나르 그림 곁에 뷔야르 그림이 있습니다. 늘 함께 있습니다. 마치 오스트리아의 화가 클림트와 에곤 쉴레 두 사람의 그림이 짝짝꿍이 되어 붙어 다니는 것처럼. (클림트와 에곤 쉴레 역시 서로 불가분의 관계이지요. 클림트가 에곤 쉴레의 후견인, 스승이 되어주긴 했으나 이들의 관계가 일방적이었다고 보기는 힘듭니다. 서로 영향을 주고 받았지요... 유럽 미술은 이쯤에서 ....) Nabis 는 '예언자'라는 뜻의 히브리 말이라고 합니다. 신비하고 독특한 붓의 터치와 색감을 유지 했는데요. 글랙슨스 역시 이들의 작품 세계를 인지하고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보입니다. 두 작품의 제작 연대도 거의 일치하지요.
뭐 두 여자 주인공들의 표정보다는, 그림 전체에 흐르는 붓의 터치와 전체적인 색감이 제게 매력적으로 보입니다.
(제가 보나르의 '광팬'쯤 되는데... 제가 보나르를 좋아한다는 것을 ...우리 식구들은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특히 제 남편은, '하고 많은 화가중에 왜 하필 그런 그림이 좋은가' 의아해 하지요. 제 남편은 보나르의 그림이 정신병적이라고 싫대요. 내 눈엔 이쁘고 아름답고 신비로운데... 보나르가 좀 정신병적인 면이 있지요. 정신병자같은 여자를 수십년간 지성껏 돌보며 외톨이처럼 살다 간 화가거든요. 보나르의 그림에는 목욕하는 여자가 등장하고, 욕조 주변의 여자의 풍경이 다수인데 그 여자는 평생 욕조에서 살다 갔대요. 무슨 질환 때문에 그랬다는데, 보나르는 그 여자를 평생 돌봤고요. 저는 클림트의 그림을 보면 -- 차멀미같은 멀미를 느낍니다. 느끼해서 빙빙 도는것 같아요. 현기증이 날정도로 아름다우면서도 느끼하죠. 제가 클림트의 그림을 보면서 기분나빠하듯, 제 남편은 보나르의 그림이 기분 나쁜가봅니다. 아... 사람이 다 제각각이고, 각자 자기상처를 핥고 사는 짐승이라, 뭐 그렇다는거죠.)
화면 오른쪽에서 두번째 그림. 그것이 보라색드레스 그림입니다. (2009년 12월 29일 스미소니안 미국미술관 2층에서 촬영). 오른쪽의 발레 그림은 Everett Shinn, 왼쪽 풍경화는 Robert Henri, 왼쪽 설경 그림은 Rockwell Kent, 그 곁에 잘 안보이는 그림은 George Luks. 모두 미국 사실주의 화가들입니다.
글랙슨즈 그림을 연대순으로 정리했는데요, 위에서부터 차례차례 내려오다 보면, 그의 그림이 초기에는 어두컴컴하다가 점차 밝고 화사해져 간 것으로 보입니다. 저는, 밝은 색감을 좋아하는 편입니다. 어두운건...싫더라구요. (나의 어둠만으로도 나는 지쳐있으므로...어둠에서 밝음을 지향하는거죠, 하하, 옛날에 우리나라 정보기관의 슬로건 아니었나요? 우덜은 어두운곳에서 밝음을 지향한다라던가 뭐라던가...저는 정보기관은 무조건 무서워요. 무서워요. 무서워요.~~ )
2010년 1월 4일 내용 보충 redfox.
2010년 1월 18일 내용 보충 redfo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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