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Column2011. 6. 1. 23:13
[살며 생각하며] 당신이 인터넷에서 찾을 수 없는 것



길고 지루한 대학 입학 신청 과정을 모두 마치고, 이제 하이스쿨 졸업을 앞두고 있는 둘째 아들에게 최근 멀티미디어 기기인 ‘아이포드’를 하나 장만해 주었다. 그 동안 노력한 것에 대한 작은 상이었다. 사실 여태까지 청소년들이라면 하나씩 갖고 있을 휴대용 음향기기가 우리 집에서는 소지 금지 품목이었다. 이어폰이나 헤드셋으로 음악을 장시간 듣다가 귀를 다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나의 고육지책이었다.

 아들이 이제 대학 입학을 앞두고 있으니, 자신의 건강은 스스로 알아서 챙길 것이라 믿고, 마침내 그 ‘아이포드’라는 ‘요물단지’를 장만해 준 것이다. 처음 아이포드를 갖게 된 아들은 온 세상을 손에 쥔 듯 기뻐하였다. 그리고는 그 것과 더불어 많은 시간을 보내는 듯 했다. 어딘가로 함께 갈 때에도 녀석은 나 대신 아이포드와 대화하고 노는 것처럼 보였다. 그대로 내버려 두었다. 그런데 어디로 갈 때면 아이포드부터 챙기던 녀석이 엊그제는 함께 포토맥 강변으로 장거리 산책을 나가면서 빈 손으로 나서는 것이었다.

 “어쩐 일로 네 분신을 안 챙기는 거냐? 오늘은 음악 안 듣니?” 내가 심드렁하게 묻자 아들은 진지하게 대꾸했다.

 “전에 아이포드가 없을 때는, 나 혼자 머릿속으로 음악을 상상하고, 어떤 악상이 떠오르면 그것을 머릿속으로 기억하려고 몇 번씩 혼자서 되감기를 했거든요. 상상 속에서 늘 음악을 듣고, 음악을 만들었어요. 집에서 직접 음악을 만들어내기도 했고요. 그런데, 아이포드가 생긴 이후로는 음악을 듣느라고 정작 음악을 상상하거나 직접 만드는 일을 전혀 못하고 있어요. 요즘 곡을 하나도 만들지 못했어요. 그래서, 아이포드와 거리를 유지하기로 결심했어요.”

 옳거니! 이 녀석이 ‘모자람’의 ‘미덕’에 드디어 눈을 떴구나! 음향기기가 없을 때는 걸어서 학교에 오가는 동안, 집의 개를 산책시키거나 심부름으로 어딘가를 다녀오는 시간에 머릿속으로 음악을 상상하고, 만들고, 기억하고 이런 매우 창조적인 작업을 진행했던 것인데, 만능 엔터테이너 기기가 생긴 후로 이 모든 창의로운 작업을 진행할 자투리 시간이나 여유를 빼앗기고 말았던 것이다.

 엊그제, 친지의 대학 졸업식을 축하하기 위해서 윌리엄 앤 메리 대학의 졸업식에 참석을 했었다. 이 학교 출신의 보험 사업가 Joe Plumeri가 열정적으로 무대 위를 이리저리 오가며 축하 연설을 했는데 그가 후배들에게 들려준 이야기, “정보 기술이 발달 된 오늘날, 구글에서 거의 모든 정보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당신의 열정이 어디에 있는지 구글은 알려 주지 못 할 것이다.” 첨단 정보, 기술, 지식도 중요하지만,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자신의 열정에 불을 지피라는 메시지였다.

 어린 시절, 나는 나가 놀 줄도 모르는 게으름뱅이에 책벌레였는데, 안타깝게도 가난했던 우리 집엔 읽을 책이 별로 없었다. 책벌레는 책이 없으면 굶어 죽는다. 나는 읽었던 책을 읽고, 읽고, 또 읽어 내용을 다 외우고 책이 나달나달해지도록 읽었다. 그것도 싫증이 나면 벽에 벽지 대신 발라져 있었던 신문지를 뜻도 모르면서 읽고, 읽고, 또 읽었다. 그러다 영양실조에 걸려 죽게 생긴 이 책벌레는 마침내 누런 종이를 묶어서 거기에다가 직접 이야기를 쓰고, 그림을 그려가지고, 책을 만들어서 그것을 읽었다. 책을 먹는 책벌레에서 책을 만드는 책벌레로 변신을 한 것이다. 그 당시 내게 수백 권의 동화책이 있었다면, 나는 직접 책을 만들 궁리 따위는 하지 않았으리라.

 멀티미디어 인포메이션의 시대라고 해도, 우리 삶의 양태는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스마트 폰, 컴퓨터 혹은 다른 통신기기로 인터넷을 아무리 뒤져도, 그 속에서 자아를 발견할 수는 없는 일. 첨단기기 아이포드에 열광하던 아들은 만능 엔터테이너 기기 대신에 텅 빈 하늘을 바라보고 물소리 바람소리를 들으며 사색하는 것의 소중함을 스스로 깨달았다. 그래서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다고 일찌감치 예수께서 설파하셨으리라. 그릇은 비워야 채울 수 있고, 우리의 결핍은 우리를 살찌운다.


May 25,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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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ee Eunm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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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절대로 동감입니다.. 컴퓨터나 다른 기계들 앞에 있는 시간과 책읽는 시간, 생각하는 시간은 반비례..
    아는 후배가 요즘 자기가 뭔가 궁금한게 생기면 버릇처럼 인터넷 검색하고 필요한 사실만 취하면 그만이고 .. 그러다보니 부박한 사람이 되어가는 것 같다고 하더라구요..

    2011.06.03 00:45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음...그러니까...제가 보기에 이미 책 읽는 습관이 형성된 사람들은 인터넷 자료에 크게 의지하지 않고 책으로 승부를 보는 편입니다. 그런데, 인터넷 시대에 성장한 젊은이들 (요즘 20대나 그 아래 세대)로 내려가면, 인터넷 의존도가 높아지는것 같습니다. 나와 내 아이들을 보면, 책에 대한 태도, 혹은 인터넷에 제공되는 정보를 바라보는 시각이 좀 달라요.

      인터넷에 공개되거나 공유되는 정보의 가치를 무시할수는 없겠지만, 책한권에 담기는 사고의 깊이만큼 깊어지기는 어려운 면이 있지요. 아직까지....진검승부는 '책'읽는 쪽에서 결판이 나는것 같습니다만, 세월이 흘러가면 양상에 변화가 올수도 있겠지요.

      2011.06.04 01:07 신고 [ ADDR : EDIT/ DEL ]
  2. ㅎ반성하게 되는 글이네요..

    공부 관련한 읽기를 아직 많이 해 보지는 않았지만, 제가 제일 '즐겁게' 읽는 경우도 '한 사람이 처음부터 끝까지 쓴 제 수준에 딱 맞는 학술서를 읽을 때' 입니다. 논문을 이것저것 찾아보거나, 여러 사람의 글을 편집해 놓은 책을 때는 즐겁기보다는, 일이니까, 이 사실을 알아내야 하니까 읽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그런데도 중독된 듯이 서핑 한 번 시작하면 계속 하게 되는 게 참 이상해요.;;; 중독과 행복은 서로 다른 시스템에서 맡는다고들 하던데 (도파민 / 오피오이드. 출처는 http://edu.minds.kr/579) 그래서인지도 모르겠네요.

    인터넷에서 찾는 논문만큼 새로운 정보가 책에 있을 수 없으니까 인터넷도 꼭 필요하긴 한데, 제 작업이라는 중심을 잘 잡고 있을 때 참고용으로만 써야 한다고, 거듭거듭 다짐을...;;

    2011.06.05 19:00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제가 '인터넷 공유 자료'라고 말할때의 자료는 소위 위키피디아 급의 일반 공개 자료를 일컫는 것입니다. 사실 웹 라이브러리에서 제공하는 학술자료의 가치야 놀랍지요. 그런데 대학에서 제공하는 이런 자료들을 일반인들이 볼수 있는것은 아닙니다. 일일이 돈을 주고 사야 하던가 그렇지요.

      제가 대학원 졸업하고 가장 괴로웠던것이 대학원 다닐때 누리던, 웹에 있는 방대한 학술자료에 대한 접근권이 사라졌다는 것이었지요. 지금 소속한 학교가 도서관(on/off)이 가난해서, 아주 괴로운 중입니다. 이웃 주립대 도서관 임시 사용권을 돈을 주고 사서 쓰고 있지요.

      웹을 통한 정통 학술자료는 일반 웹 정보와는 격이 다르지요... (이것도 편견일수 있으나.)

      제가 집의 아이들한테 '잔소리'하는 것은 대개, 뭐 일반 사이트에서 제공하는 근거도 알수 없는 정체불명의 자료들에 의지하기보다는 교양서라도 한권 처음부터 끝까지 제대로 읽으라는 것이지요.

      남한테는 이런 잔소리도 일체 안합니다. 각자 알아서 사는 인생이니까...내가 중뿔나게 잘난것도 없고...

      그런데, 사실 아무리 인터넷 시대라고 해도 SNS의 사회라고 해도, 우리는 정말 진지한 이야기는 이런데다 풀어놓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2011.06.06 01:04 신고 [ ADDR : EDIT/ DEL ]
    • 아, 질에 대해서라면 동감입니다. ^^ 저는 읽는 입장에서의 보람? 기쁨? 같은 것에 대해 얘기했던 거고요.

      그리고 인터넷 vs 대면/종이책에서 이야기의 진지함 차이는, 상당 부분 공개 범위의 차이일 수도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무료로 아무한테나 하는 이야기와, 유료로 혹은 하고픈 사람들에게만 하는 이야기의 차이..

      물론 대면/종이책의 경우, 감각적 경험도 많이 다르기는 하지만요. (앗, 이게 더 중요할까요? 모르겠네요.)

      2011.06.09 12:55 신고 [ ADDR : EDIT/ DEL ]
    • '정보'에 대해서 생각해보면, 저도 그렇고 남도 그렇고, 사람이 사람에게 정보를 전달할때, 굉장히 계산을 많이 해요..... 머릿속으로 여러가지를 상정하고 따져보고 그리고 정보를 조금씩 흘리면서 분위기를 살피고... 그렇게 이어지지요.

      게다가 말이건 글이건 수용자는 자기식대로 정보를 분석하고...

      어떤 면에서, 사람은 자신이 갖고 있는 진실에 대해서는 말하지도 글을 쓰지도 않는것처럼 보이지요. 흘러다니는 것은 부차적이고 안전해보이는 그런 것들이지요... (아 이것은 인간 언어의 한계일수 있지요.)

      2011.06.11 21:05 신고 [ ADDR : EDIT/ DE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