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BEST friend: 부엌을 평정하다!
나의 부엌 경력 36년만에 나 스스로 - 이것 한가지 만큼은 여느 부엌 전문가를 뺨치는 고수의 경지라고 자랑할 만한 작품이 최근에 탄생했다. 그것은 바로! 각종 양념이며 잡동사니 부엌 도구들 (잡동사니이지만 하루에도 몇 번씩 꺼내야하는데 - 늘 그것을 찾아 헤메야 하는)을 일거에 평정하는 친구를 하나 창조해 냈다는 것이다.
아래의 파랑색 트롤리는 쿠팡에서 29,000원쯤 준 것이고, 그 안의 흰 수납상자들은 무엇이든 다 있는 상점에서 한개에 천원씩하는걸로 사온 것이다. 그리고 나의 부엌 고민의 약 90퍼센트가 해결되었다.
나는 결혼 할 때까지 내 손으로 밥을 지어본 적이 없다. 물론 라면을 끓인다거나 엄마가 부엌일 시키면 심부름으로 이것저것하면서 어깨너머로 대충 배우기는 했지만 - 내가 밥을 짓기 시작한 것은 결혼하여 내가 밥을 지어야만 했을때부터였다. 그 이후로 나는 부엌에 큰 관심을 기울인적이 없었다. 부엌 집기를 사는 것에도 관심이 없었고, 여하튼 부엌은 내가 굶어죽을수 없으므로 들어가서 뭔가 음식을 해 먹고 치워야 하는 '의무적 장소'였다. 지금도 나는 부엌일을 즐기는 편은 아니다. 평생 담쌓고 살아왔는데 - 늙은 개가 변하겠는가?
오빠가 새로 수리하여 단장하여 넘겨주신 나의 옛집으로 돌아와 부엌에 들어섰을 때, 내가 당면한 문제는 -- 부엌이 크고, 수납 공간이 하도 많아서, 뭔가를 아무 생각없이 어딘가에 집어 넣으면 - 그것을 나중에 찾기 위해서 온갖 문을 하나 하나 하나 다 열어봐야 한다는 것이었고, 기가막히게도 내가 찾는 것은 항상 맨 마지막 문에서 발견되곤 했다. 부엌에서 음식을 만드는데 가장 필수적인 것은 음식의 맛을 내는 각종 양념들이다. 간장, 소금, 식용유, 생강가루 뭐 이런 크고 작고 잡다하고 그런 것들. 또 무슨 도구들 - 국자, 주걱, 큰 포크, 작은 포크, 과도, 식도. 차를 마시기 위한 이런 저런 차 종류들. 손님에게 접대할 믹스커피스틱들. 오만 잡동사니가 수납장 여기저기 흩어져 있으니 뭔가 국한가지를 끓이려고 해도 나는 '간장을 어디다 뒀더라? 위? 아래? 여기저기 문을 열고 뒤지고, 뒤지고, 뒤지고. (내가 이렇게 두서가 없고 정리가 안된다. 부엌에 관한한 그렇다.) 그렇다고 그것들을 모두 싱크대위에 늘어놓고 쓰고 싶지도 않다. 나는 벽에 뭐 주렁주렁 거는것도 싫다. 다 보여야 하지만 - 아무것도 노출시키고 싶지도 않다. 다 보여야 하지만 - 아무것도 노출시키지 않는것은 해결하기 힘든 문제다. 그래서 내가 골치가 아팠다.
그래서, 고민고민 하다가, 뭔가 웹으로 집안 도구들을 검색하다가 이 트롤리를 발견하고 - 생각이 몽글몽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트롤리는 밤사이에 도착했고, 조립하는데 10분쯤 걸렸고, 제법 튼튼했고, 바퀴가 달려 강아지처럼 내가 끄는대로 잘 따라 다녔다. 집근처 다있는상점에 가서 천원짜리 수납함들을 몇개 사왔고, 한시간도 안되어 내 스트레스의 주범 - 온갖 필수불가결한 잡동사니들을 제법 계통세워서 정리하는데 성공했다. 나는 잡동사니들을 어디에 뒀는지 기억하기 싫다. 그냥 내 눈앞에 있으면 된다. 문을 열지 않아도, 찾아 헤메지 않아도 - 그냥 내 눈앞에 있으면 된다. 바로 이 트롤리 안에 내가 부엌에서 필요한 작은 친구들이 다 들어있다. 작업이 끝나면, 부엌 구석에 세워 놓으면 사람들 눈에도 띄지 않고, 부엌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단정하다.
그래서 이제 나는 이 파랑 트롤리를 향해 -- "나의 베스트 프렌드! 잘잤니?"하고 살갑게 인사까지 보내게 된다. 부엌일이 참 단순하고 쉬워졌다. 나의 베스트 프렌드 '파랑이.'
부엌의 한 쪽 구석에 엄마의 조각보를 전시해 놓았다. 모두들 이 작품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는다. 엄마도 와서 보시고 아주 좋아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