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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친구 기타

Lee Eunmee 2023. 9. 20. 11:25

 

기타를 들여다보다가, 클래식 기타와 통기타는 어떻게 다른지 검색도 해보고, 어쿠스틱은 또 뭔가? 조사를 해보니 통기타를 어쿠스틱이라고 하는것도 같고 - 기타를 분류하는 기준도 여러가지가 있는 듯 하다.  일단 클래식 기타가 무엇인지 대충 감을 잡았다.  기본적인 차이는 몇마디 (클래식 12마디, 어쿠스틱 14마디), 줄간격이 클래식기타가 조금 더 넓은 편이고, 줄의 재질에서 차이가 나고. (https://blog.naver.com/orangewood_/221186870656

 

예전에 기타 배울때 교본으로 사용하던 카르카시 기타교본 (미국집에 있는데) 을 다시 주문하였다. 연구실에 기타 자리를 잡아주고, 청소를 했다. 보면대를 사려다가 독서대를 책상위에서 보면대로 사용하기로 하고. 발 받침은 주문을 해야 할것 같다. 

 

옛날과 동일한 책으로, 옛날에 초보때 연습하던 생초보 연습곡들을 차례차례 훑어나간다. 신기하게도 일단 옛 책을 열어서 순서대로 연주해보니, 기억이 '확!' 되살아난다. (인간의 기억력은 참 신기하고 신통하다! 새삼 인간의 몸을 얻고 태어나서 악기를 연주한다는 것에 경이감과 감사함을 느끼게 된다.)

 

27년이 흘렀다. 내가 한창 기타에 입문하여 시도  때도 없이 기타에 매달려 있던 시간으로부터 27년이 흘렀다.  그 때, 나는 내가 세상을 많이 살았고 늙어갈 일만 남았다는 상상을 했지만 (최영미의 '서른 잔치는 끝났다'라는 시가 당시에 많이 회자되어서, 그 당시 서른을 넘긴 사람들은 모두 인생이 끝난것 같은 기분이었다), 돌아보면 서른에 '게임은 아직 시작도 안했다'가 아니었을까? 내 인생의 게임은 아직 시작도 안된 상태였고, 갈길이 참 멀었었다. 이 나이 먹도록 아직도 갈길은 멀다.  그 때 하룻강아지 시절 - 나는 인생이 대충 정리가 되고 기울어간다고 상상했고 - 막막한 가운데 그냥 기타를 시작했던 거다.  왜 기타였냐면 - 피아노에 한이 맺혀 있어서 둘째를 위해 예쁘장한 피아노를 사 준 후였지만 피아노를 시작할 생각이 털끝 만큼도 들지 않았고, 뭔가 부드럽고 다정하며, 휴대가 가능한 그런 악기가 좋겠다는 생각을 했고, 마침 근처 아파트에서 대학교수님이 피아노 개인교습을 해준다는 광고문이 붙었길래 - 무장적 그를 찾아가서 기타에 입문한 것이다. 특별히 기타일 필요도 없었고, 우연히 기타였다.

 

서른, 잔치가 끝났다구?  아직 게임은 시작도 안된 그런나이다.  서른이여 희망을 가지시라.  (그때 나는 두아이의 엄마였고, 이미 학부형이 되어 있었고, 신도시에 중형 아파트도 자력으로 마련하여 입주한 상태였고, 뭐랄까 폭풍같은 인생의 가시밭길을 다 헤쳐나온 그런 기분이 들었고, 잔치가 끝났다고 회자되는 나이였기때문에 그냥 인생이 이제 황혼으로 치닫는 줄 알았었다.)

 

그때 나는 막연했다. 공부를 하고 싶지만 애들을 키워야 했고, 번듯한 직장에 나가고 싶었지만 애들을 키워야 했다. 돈이 풍족한것도 아니었고, 뭐랄까 모든 것이 자리를 잡았으며 동시에 애매했다. 그러다가 꽤 조건이 좋은 파트타임 강사 자리를 통해서 제법 흡족한 용돈 벌이를 시작했는데 - 몇시간 일하고 남의 월급 만큼 흡족한 용돈 벌이를 하는 여유가 생기자 - 객기 부리듯 대학교수에게서 기타 개인교습을 받기 시작한거다.  그리고 하루에 몇시간씩 기타를 안고 살았다. 부엌에서 밥을 짓다 말고 기타에게 달려갔고, 잠에서 깨자마다 기타를 안았으며, 식구들이 모두 잠이 든 밤에 혼자 기타를 부둥켜 안고 사랑을 나눴다. 그랬다. 기타와의 열정적인 외도. 그러나 모든 외도가 그러하듯 불타오르던 외도의 즐거움은 금세 사그라졌고 그 후에 우리 가족은 플로리다로 향했다. 기타는 내 삶에서 싹 사라졌다. 

 

그리고, 지금 이 친구가 다시 내 삶으로 저벅저벅 들어왔다. 

 

기타와 나는 오랫만에 만난 친구처럼, 혹은 한때 사랑했으나 헤어졌다가 다시 만난 옛 연인들처럼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눈다.

 

기타: 오랫만이네.

나: 그렇군. 너는 그대로인데, 내가 좀 늙고 바랬지...

기타: 늙고 바래는게 꼭 나쁜것은 아니겠지. 너의 손길은 여전한데. 여전히 서툴고, 여전히 엉성하고, 여전히 내 소리를 좋아하는구나. 

나: 그래. 나는 연주자는 아니야. 잘 할 자신도 없어. 하지만 네 소리는 언제나 달콤해. 너는 아주 달콤한 연인이지. 

기타: 내게 돌아오는데 시간이 걸렸구나. 돌아와서 기뻐.

나: 반겨주니 고마워. 너는 언제나 다정하지. 

기타: 네 시간은 어땠니?

나: 나쁘지 않았어. 그냥 지금 좀 지치고, 보시다시피 늙었고, 그대신 조금 더 성숙해지고, 아이들이 자 자라서 어른이 되었지. 나는 공부를 했고, 전문직도 갖게 되었고, 꿈꾸던 삶을 사는것 같기도 해. 예전에 너를 처음 만났을 때 나는 인생이 막막했는데, 지금은 그런대로 성취감도 있고, 편안해.  나쁘지 않아. 

 

기타: 이제 다시 나하고 시간을 보내려고 하니?

 

나: 아마 그럴것 같아. 네 소리는 여전히 달콤하고, 너는 항상 내게 상냥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