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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친구

Lee Eunmee 2023. 9. 18. 14:37

 

동료가 연구실 문앞에 클래식기타를 놓고 갔다.  일전에 그의 집을 방문했을때, 거실에 기타가 놓여있길래 먼지가 덮여있는 것을 태충 셔츠로 문질러서 먼지를 털어내고, 생각나는 멜로디를 몇가지 연주해보았는데 그것을 눈여겨보았던지 그가 내게 기타를 빌려주겠다고 제안했다.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 "아니. 어차피 내가 연주할 것 같지도 않아"하고 사양을 했다. 

 

 그런데 그 날 이후, 그 기타소리에 머리에서 맴돌았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클래식기타 소리는 뭐랄까 아기고양이가 양양거리는 것같이 감미롭고 은근하지 않던가? 그 감미로운 소리가 귓가에서 산들바람처럼 맴돌았던 것이다.  그래서 복도에서 만났을때 그 얘기를 했더니, 기타를 가져다 놓았다.  그는 몇해전 이혼을 하고, 아이들을 키우고 살고 있었는데, (가끔 그가 여행을 갈 일이 있으면 그의 이혼한 남편이 와서 아이들을 돌봤으므로, 나도 이따금 그가 개를 산책시키는 것을 본적이 있다)  얼마전에 그 애들 아버지가 애들을 데리고 미국으로 돌아가버리면서 내 동료는 개와 함께 남겨졌다.  물론 방학때는 아이들을 보러 가기도 하고, 그들을 보면 이혼은 하였으되 '가족'으로서 평화롭게 지내고 있는 것 같아 보인다. 그 클래식기타는 그이의 이혼한 전남편이나 아이들이 연주하던 것이리라. 그는 내가 기타 연주를 할 때, '이집에서 기타소리를 듣다니 참 좋네. 난 기타연주를 할 줄 몰라. 그건 그냥 폼으로 거기 서있는거야, 네가 원하면 가져가도 돼'라고 말했던 것이다.

 

지금 그 기타가 내 연구실에 서 있다.  들여다보니 스페인 톨레도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내 평생에 스페인산 기타를 공짜로 만져보게 될 줄이야.  아마도 이 기타는 내가 돌려주지 않으면 내것이 되리라.  아무래도 나는 동료에게 기타값이 상응하는 보답을 해야 할 것도 같다. 

 

온라인에 떠있는 카롤리의 기초 악보를 찾아서 떠듬떠듬 연주를 해본다. 기타 생기초가 클래식 기타 연습할때 최초로 배우는 카롤리의 안단티노.  여전히 감미롭다. 다 잊어버려서 떠듬떠듬 다시 익혀야 하지만, 여전히 감미로운 멜로디.  그래서, 카르카시 기타교본과 쉬운 기타 연주곡집을 주문했다.  가을에 참 잘 어울리는 악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