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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과 버찌

Lee Eunmee 2023. 9. 15. 11:29

 

시민들과 함께 하는 영어회화 활동 중에, '내가 꽃밭에 뭔가 한가지를 심을수 있다면 무엇을 심고 싶은가?' 질문을 던졌다. 그냥 영어가 능통하지 않은 사람도 쉽게 대답할 만한 질문을 던진 것 뿐이다. 주제가 씨앗을 심는 것과 관련이 있었고.  게다가 한국말로 알지만 영어로 이름을 모르는 식물은 '인간 영어사전'인 내가 가르쳐주면 되는 거였다. 사람들을 머릿속에 어떤 꽃밭을 상상하는지 행복한 표정으로 차례차례 이야기를 했다. 

 

대답한 사람들은 두 파로 나뉠수 있었는데, 콩이라던가 뭔가 '작물'을 키우는 '농사'짓는 파와,  순전히 꽃을 보려는 '정원관리'파로 분류될수 있었다. 그런데 어떤 분이 '벚꽃나무'를 심고싶다고 했다. "I would like to plant cherry blossom trees." 그래서 내가, "Ah ha! Now you want to enjoy both flowers and fruits!  After the cherry blossoms come the cherries!" 라고 맞장구를 쳐 주었는데, 그자리에 있던 대학 졸업 혹은 그 이상의 학력을 가지고, 영어도 좀 하시는 시민들의 표정이 애매해졌다.  Cherry blossom 하고 cherry 하고 무슨 상관이 있는지 알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벚꽃이 진 자리에 버찌 열매가 맺힌다고 내가 설명을 하자 -- '너 지금 우리한테 농담하는거지? 뻥치는거지?' 이런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런데, 이때, 이웃 강의실에서 다른 수업을 진행하던 미국인 교수가, 문이 열려있으니까 잠깐 들어왔다.  그래서 내가, "마침 잘왔어!  벚꽃이 핀 자리에 벚꽃 열매 버찌가 열린다는데 이 분들이 내 말을 안믿네" 했더니, 나하고 동갑내기인 그 미국인 교수가 나를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 "Are you kidding? There cherry blossoms are blossoms. Cherries are from cherry trees!"  (넌 또 뭐냐? 너 지금 농담해? )

 

서로가 서로에게 '너 지금 농담해?'하면서 옥신각신 하던 사이에 어느 지혜로운 분이 '구글'에게 물어봤던 모양이다. 그는 여전히 아련한, 안개속을 걷는다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어..정말 벚꽃 자리에 열매가 맺힌대! 그걸 먹는대!" 

 

구글이 없었으면 내가 아주 미친X이 될 뻔했다. 

 

그래서 나는 문득 깨닫게 되었다. 이 잘 교육받은 젊은 분들 (30대 -40대)이 해마다 벚꽃을 보면서도, 그 벚나무에 맺힌 까맣게 익어가는 과일을 한번도 제대로 본 적이 없었구나.  눈앞에 보여도 아마 인지하지 못하고 지나쳤겠구나.  관심도 없었고, 알지도 못했고, 그래서, 그냥 모르는채로 그 무수하게 떨어져 땅을 까맣게 물들이는 버찌의 존재를 지나쳤겠구나. 평.생.동.안.

농부는 꽃이 피면 그 열매를 생각한다.  열매맺지 못하는 것은 무심히 지나친다.  산업시대의 사람들은 꽃을 즐기되, 꽃 진 자리에 열매가 맺힌다는것을 모른다. 몰라서 한번도 제대보 본적이 없고, 열매가 어디서 오는지도 모른다. 그런것같다. 

 

 

나는 정말 나 스스로가 이 세상에 아주 오래 살았고, 나는 벌써 옛날 사람이 되어가고 있나보다 생각했다. 나는 꽃을 보면 열매를 상상하는 시대의 사람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