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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탄을 쌓다: 연탄은행

Lee Eunmee 2021. 11. 14. 12:59

 

'연탄은행'이라는 기관과 연계하여 '연탄 배달' 봉사활동을 하고 왔다. 우리 학교 학생, 교직원, 학장님까지 20여명이 1,600장의 연탄을 여덟 가구에 200장씩 배달하는 행사였다. 

 

연탄은행에서 활동하시는 봉사자들이 우리 일행에게 팀을 짜서 일거리를 분담을 시켜주셨는데, 나는 연탄의 최종 배달지 창고에서 연탄을 받아 쌓는 일을 하게 되었다.  

 

 

그러니까, 쌓여있는 연탄더미에서 연탄을 '지게'에 실어주는 팀 - 지게로 운반하는 팀 - 운반된 연탄을 창고 입구에서 받아서 쌓는 팀 - 대략 이런 식으로 역할 분담을 시키는 것 같았다.  나는 또다른 팀과 함께 창고 구석에서 연탄을 죽어라 쌓는 일을 한 것인데 그러니까 내 손으로 쌓은 연탄만 정확히 800장이다. (네 가구의 연탄광을 내가 채웠고, 다른 팀이 나머지 네가구를 채웠고.)  이 일을 딱 두시간에 끝내고 오후 한시쯤에는 학교로 돌아왔는데, 그 이후로 하루 반나절을 끙끙 앓았다. 하하하.  연탄 쌓는 일은- 그게 아무나 하는 일이 아니다. 연탄을 사용해 본 나같은 사람이 연탄을 사용하기 편리하게, 쓰러지지 않게, 좁은 연탄광을 최대한 활용하여 쌓을수 있는 것이다.  우리팀은 내가 쌓았고, 다른 팀은 '하필 연탄을 생전 구경도 못해본 우리 미국인 학장님'이 쌓아야 했는데 - 처음에는 이 사람이 '영문'도 모르고 '말귀'도 알아들을수가 없어서 내가 가서 설명을 해주고 와야했다. 우리 학장님이 나이가 내또래인데, 몸도 펼수 없는 낮고 좁은 공간에 쭈그려 앉아 연탄을 쌓아야 했으니 나보다도 고생이 많았을 것이다.

 

그렇다. 연탄창고는 임시로 이리저리 막아놓은 뚜껑있는 상자 모양이어서 - 사람이 허리를 펼수도 없는 공간이었고, 연탄을 받아서 몸을 오그리고 그것을 바닥부터 차곡차곡 쌓아 올리는 일은 그냥 체육관에서 웨이트트레이닝 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힘쓰기'와 '근육'을 요하는 일이었다.  지금 목부터 온 몸이 쑤시고 있다. 그래도 몸살이 나지않고 허리 어디가 삐끗하지 않은 것을 다행스럽게 감사하게 생각한다.  여기저기 쑤시는 부위에는 새로운 '근육'이 붙고 있을 것이니.

 

 

처음 연탄을 배달하러 간 집에서는 노신사가 살고 계셨는데, 우리가 열심히 연탄을 쌓는 동안 미닫이 문을 열고 나와 햇살 가득한 산기슭 그의 한뼘만한 마당에서 우리에게 말을 걸어오셨다. "저기 저 학생은 아주 먼데서 온 모양이야" 할아버지가 가리킨 학생은 미국에서 온 학생이었다. 그 학생은 한국어를 배우는 중이므로 노신사께 자기 이름도 말하고 인사도 하고 하였다. 노 신사는 우리가 작업을 다 마치고 다른 집으로 이동할 때까지 한뼘짜리 마당가에 서서 우리들과 대화를 나누셨다.  "여기가 그린벨트야. 그래서 개발이 안돼.  기름보일라가 따뜻하지가 않아. 기름만 잡아먹지. 그래서 연탄으로 바꿨어. 아껴써서 하루에 여섯장이 들어가. 아주 아껴써서. 고맙지 이렇게 학생들하고 교수님하고 연탄을 쌓아주니." 

 

 

아주 아껴써서 하루 여섯장이 든다면 연탄 이백장은 기껏 한달 쓸 분량이다. 난방을 해야 하는 기간은 12-1-2-3 이렇게 네달은 잡아야 하는데 그러면 720장은 필요하다. 한 사람이 아주 작은 연탄보일러에 연탄을 최소한으로 아껴서 쓸때 이런 계산이 나오는 것이다.  우리가 쌓은 것은 딱 200장이었는데.  그것도  - "마침 연탄이 똑 떨어졌는데 오늘 쌓아주니 참 고마워" 뭐 이렇다.  맞다. 그의 연탄창고는 텅텅 비어있었다. 

 

 

두번째 집은 젊은 신사분이 사시는 집이었다. 집 입구에 장애인용 전동의자차가 있었다. 내가 그 전동의자차를 발견하고 든 생각은 - '이 비좁고 울퉁불퉁하고, 꼬불꼬불한 골목길을 이 전동의자차가 제대로 오르내릴수 있을까? 이 의자의 주인은 정말로 이걸 타고 이 골목길을 내려갈수 있을까?'   우리가 창고에 연탄을 쌓는 동안 딱 한번, 미닫이 문이 열리고, 젊은 신사분이 얼굴만 내밀고 우리에게 인사를 보내셨고 - 학생들도 씩씩하게 '안녕하세요!'하고 인사를 보냈다. 

 

 

아무도 없었던 세번째 집의 아주 작은 꽃밭에는 붉은 맨드라미가 있었다. 화분만한 아주 작은 꽃밭이었지만 '루비'처럼 아름다운 정원이었다. 네번째 집의 창고에는 자전거도 한대 세워져있었다. 

 

 

집에 와서 - 도대체 내가 나른 연탄은 요새 한장에 얼마나 하는건가? 궁금한 생각이 들어 검색해보았다. 대략 650원 정도 하는 것 같다.  그런데, 차가 닿지 않는, 리어카(손수레)도 다닐수가 없이 비좁고 꼬불꼬불한 언덕길 위에 연탄을 배달할때도 그가격일까? 배달료를 더 받는게 아닐까? 

 

 

모르겠다. 일단 계산좀 해보자. 650x180=117,000x4=468000  한 사람의 최소한의 겨울 난방비가 이쯤 되려나보다. 

 

 

옛날 생각이 난다. 옛날에, 내가 신혼일때 우리 시아버지도 연탄을 때셨는데, 연탄을 무지무지 아끼셨다. '불구멍을 막아 놓는다'고 - '죽은 놈 콧김 만큼도 못하다'는 말이 있는데, 그렇게 온기 없이 지내시다가, 내가 나타나면 불문을 열어 놓으셨다. 그러면 정말로 그 손바닥만한 방이 금세 따끈따끈해졌다.  내가 어쩌다 '시댁에서 자는 날'에는 냉골로 놓아두던 작은 방에 급히 연탄을 옮기고 불을 붙이셨다.  나는 그걸 보면서 '안때던 방에 연탄 불 때면 가스가 나올텐데, 내가 오늘밤에 연탄 가스로 저승으로 가는게 아닐까?' 그런 문제의식을 갖기도 했었다.  나는 그래도 신혼 생활을 기름보일러집에서 시작했는데, 나도 돈 아끼느라 그 기름보일러를 안쓰고 그냥 셋집 마루에 연탄난로를 들이고 연탄을 때면서 그 온기로 삼동을 보냈다.  그 이후로 연탄은 내 일상에서 사라진듯 하다. 그래도 겨울이면 한 트럭씩 연탄을 주문하여 연탄광을 꽉꽉 채우고 살던 어린시절, 겨울에 골목에서 놀다가 '연탄 왔다!' 엄마가 부르시면 모두들 달려가 연탄을 연탄광까지 옮기던 시절을 보냈으므로 연탄을 나르고 쌓는 일이 내게는 친근한 과거로의 회귀 같은 것이었다.  아직도 연탄을 때시는 우리 이웃의 아주 작은 꽃밭에도 햇살은 가득했고, 맨드라미는 빛났으며, 문을 열고 내다보는 젊은 신사도, 마당에서 우리에게 말을 걸어주신 노신사도 모두 반짝반짝 빛나셨다. 

 

***   ***

 

<봉사 활동에 대하여>

봉사활동은 내돈 내고 하는게 맞다. 

 

 

대학 다닐때, 내 가까운 친구들이 여름이면 '대학생 농촌봉사활동'을 갈 때, 나는 그들을 부러워하기만 하였다. 내게는 '농촌봉사활동'의 명분이 없었다. 왜냐하면, 여름이면 시골집에 가서 할아버지 할머니의 농사일을 거드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제집 식구나 돕지 무슨 봉사냐' 뭐 이런 분위기를 거역하기 힘들었다. 집 안팎에 널린게 일거리인데 그것 놔두고 무슨 중뿔나게 남 돕는다고 돌아다니냐 이거다.  내가 대학생이던 당시에, 우리 외사촌오빠도 대학생이었는데, 어느해 여름에 물난리가 나서 경기도 일대의 논밭이 떠내려가고 쌀이 썩고 아주 난리가 났었다. 우리 외삼촌댁도 그 경기도 일원에서 농사를 짓고 있었다.  그래서 집이 난리가 났는데 - 우리 사촌오빠는 글쎄 학교에서 주최하는 '대학생 수재복구 봉사'를 하러 어디로 갔다는 것이다.  지네집에 난리가 났는데 무슨 남을 구제하러 갔다는 것이다. 그 때 우리는 킬킬거리며 그 오빠 흉을 봤다. 

 

 

지금도 - 예컨대 어느 주부가 어디로 봉사활동 간다고 하면 - '제 집 꼴도 엉망인게 무슨 봉사라고 나돌아다니냐, 네 앞가림이나 똑바로 하라'는 냉소를 보내는 사람도 있다.  뭔가 '봉사'라면 팔자 좋은 사람들이 '취미' 정도로 해야 타당하다는 분위기이다. 혹은 위선적으로 살면서 무슨 봉사냐며 한 사람의 전인생을 평가하고 '봉사'를 할만한 사람과 봉사는 택도 안되는 사람으로 분류를 하기도 한다.  어쨌거나, '봉사'에 대해서 마냥 따뜻한 시선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나는 '봉사'라는 것을 별로 해 본 적이 없다. 평생 살면서 '봉사'는 다섯손가락도 채우기 힘들 정도로 봉사를 안하고 살았다. 나는 '봉사'는 성인군자들이나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고, 남의집 봉사 다니느니 내집부터 돕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했고, 돈 안되는 봉사보다는 돈 버는 일에 열중했다.  돈을 벌어야지 무슨 봉사냐구. 

 

그런데 가물에 콩나듯, 어쩌다 봉사활동이라는 것을 한 번 하면 - 깨달아지는 것이 많다. 봉사의 장점을 말하자면 -- (1) 내 평소 생활권이 아닌 다른 곳, 낯선 곳에 가서 내가 평소에 만나지 않는 새로운, 낯선 사람들과 만나게 된다. 마치 여행을 하는 것과 같다.  (2) 여행과 같은데 경비는 별로 많이 안 든다. (3) 몸이 고단해지는데 마음은 가벼워지고 머리는 맑아진다. (4) 무조건 주어진 것에 감사하게 된다, (5) 내가 나에게 조금 너그러워진다, (6) 잠을 푹 잔다. '내 애플워치의 기록에 의하면 간밤에 나는 잠에서 깨지않고 8시간을 잤는데 올해들어서 그렇게 잠을 잔것이 처음 있는 일이라고 한다. 

 

자 봉사를 통해서 이렇게 많은 혜택을 얻게 된다. 그러니 봉사는 내 돈을 내고서라도 하는 것이 맞다. 봉사는 누군가 남을 도우려고 하는게 아니다. 자기 자신을 도우려고 하는거다. 그 과정에서 어떤 이웃이 약간의 도움을 받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