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etch

미래시제가 없는 언어

Lee Eunmee 2019. 5. 21. 12:24

 

Daniel Pink 의 'When' 이라는 책을 보면, 미래시제가 분명한 언어권 (예: 영어, 한국어)의 사람들과, 미래시제가 분명치 않아서 (예, 중국어) 현재 시제가 상황에 따라서 미래로도 해석이 가능한 언어권 사람들이 행동 패턴에 약간 차이가 보인다고 한다.  핑크는 '언어'가 행동 패턴에 영향을 끼친다기보다는 그들 문화권의 행동 패턴이 '언어'에도 반영된다는 식으로 그 상관 관계를 설명했다.  (언어가 행동을 결정하는가  환경이 언어에 영향을 끼치는가는 해묵은 언어학계의 주제라고 할 수 있는데. 어쨌거나.)

 

 

이 '미래시제'의 있고 없고가, 그 언어권 사람들이 '미래'를 준비하는 행동 패턴에 영향을 끼친다고 한다.  얼핏 생각하기에 '미래시제'가 있는 언어권에서 '미래'에 대한 준비를 체계적으로 준비 하는게 아닐까 그런 상상을 했었는데 (내가 책 읽을때 그런 상상을 했었다), 결과는 정 반대였다.  현재시제 안에 미래시제까지 뒤섞인 (미래 시제가 분명치 않은) 언어권의 사람들이 그들의 '노후대책'에 더 열심이라는 통계치가 있다고 한다. 

 

그러니까, 언어속에서 현재와 미래가 혼재되어 있는 문화권 사람들에게는 '미래'가 '먼 남의 일'이 아니라, 현재의 일이라는 것이다.  미래를 '미래'의 일로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언어권 사람들이 미래 계획에 방심 한다고나 할까. 왜냐하면 현재 닥친 일이 아니니까. 

(예수님은 내일 일은 염려하지 말아라. 오늘 하루의 근심으로 족하다 뭐 이렇게 말씀하셨는데... 고민에 빠진 나.)

 

흔히 '비단이 장수 왕서방'은 '돈을 밝히는 사람'으로서의 중국인을 칭하고, '중국인들은 현실적이다'라는 통념도 있는 편인데, 아마 이들의 '현실적인 사고방식'이 '재물을 축적하는 것에 열심인' 태도에 영향을 끼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들에게 '미래'는 먼 훗날 당신이 찾으시면 그 때에 내말이 잊었노라 노래 할 수 있는 먼 훗날이 아니고, 현재의 일이므로, 미래의 현재를 위해서는 지금 당장 돈을 아끼고 돈을 모아 놓아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또다시, 사고를 확장시켜 생각을 해본다.

 

 

죽음을 미래의 별개의 사건으로 상정하고 오늘 하루를 사는 사람과, 오늘 하루 '죽음'을 함께 사는 사람의 삶의 패턴도 다를 것이다.  늘 죽음을 염두에 두고 사는 사람과, 죽음이 영원히 오지 않을 것 같이 사는 사람은 분명 다른 삶을 살 것이다.  나는 어떤가?  나는 미래에 대한 준비도 별로 안하고 오늘 하루 살고 마는데, 왜냐하면 내일 아침에 내가 깨어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상상을 하기 때문이다.  내일 아침에 이 세상에 없을 수도 있는데 왜 내일 걱정을 해야 하는가?  이런 사고 방식은 뭐지?  내 하루에는 죽음이 깃들어 있는것 같기도 하고, 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