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ry/Life

노년: 산토끼 토끼야

Lee Eunmee 2018. 11. 5. 13:29



팔순이 훌쩍 넘긴 유여사가 지난 번에 독감 예방 주사를 맞으러 내과에 다녀 오는 길에 길을 잃고 두어시간 가까이 고생을 했다고 한다.  노인학교라던가, 아파트 주변의 공원등 매일 왕래를 하는 곳은 아무 문제가 없지만, 건물들이 즐비한 전철역 근처 내과에라도 들를경우, 방향을 잘 못 잡을경우 엉뚱한 곳에 가서 길을 잃을 소지가 크다.  길을 잃고 당황을 하니 갑자기 아파트 이름도 생각이 안나고 주소도 생각이 안나서 누가 도와주려고 해도 방법이 없고.  그래서 고생을 하셨다고. 젊은 사람들도 이따금 방향을 잘 못 잡으면 헤메기 일쑤이니 큰 문제가 아니라고 스스로를 안심시킨다. 


그래도, 유여사의 기억력이나 인지 능력이 예전보다 많이 약해진 것도 사실이다. 산수 뺄셈을 시켜보거나 몇가지 점검을 해 보면 알 수 있다. 늘, '아직은 그래도 괜챦으셔...'하고 스스로 위안을 삼지만, 세월에 장사 있는가. 누구나 비슷한거지. 아직 정신이 말짱하신 것이 고마울 뿐이지.


유여사가 그 길 잃어버린 얘기를 자꾸만 하길래, 산토끼 노래에 주소를 넣어서 노래를 외우게 했다.  예를 들면, 종로구 혜화동 꿈에 그린 아파트, 901동 201호 나의집 이지요.  뭐 이런식으로 (여기 나오는 주소는 그냥 만든 것이다. 유여사하고는 상관이 없다).  "엄마, 이 노래가 골수에 박히게 외워.  그러면 길 잃어버려도 노래를 부르면 마음 착한 사람이 길을 찾아 줄거야." (물론 엄마 가방에는 커다란 이름표가 들어있다. 주소, 연락처, 가족 연락처가 적힌). 


이걸 산책하는 내내 연습시키고 따라부르게 하고, 그랬는데, 외우는것 자체를 힘들어 하셨다. 재미도 없고. 나는 짜증이 폭발할 지경이고. (머리 명석한 대학생들 상대하다가 뇌세포가 노화된 노인을 상대하는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짜증이 터지려고 할 때마다 내가 나에게 "Calm down, calm down...be a good girl..."


내가 결심한 것은 이것이다.  내가 엄마 얼굴을 보고 웃지 않을거면 엄마를 대하지 말라.  엄마에게 무조건 웃어주고 희망을 주고, 칭찬해주고, 함께 있는 짧은 시간이 '기쁨의 시간'이기만 할것.  잔소리하거나 가르치러 들지 말것. 


수십번을 함께 노래를 했는데도, 유여사가 어딘가에서 막히곤 한다.  밤이 되었다. 나의 집으로 돌아갈 시간.  내가 제안을 했다.


"엄마, 내가 산토끼 노래를 부를테니까, 엄마가 대답을 하는거야. 엄마가 토끼야. 내가 엄마에게 묻는거야. 산토끼 토끼야 어디를 가느냐 깡총깡총 뛰어서 어디를 가느냐? 내가 이렇게 물으면 엄마가 노래로 대답을 해. 응?"


내가 엄마에게 "엄마가 깡충깡충 토끼야"라고 말을하자, 유여사의 눈이 반짝 빛났다.  내가 어디로 가느냐고 노래를 부르자, 유여사는 기다렸다는 듯이 노래로 자신의 주소를 읊는다. 그리고 하는 말, "재밌다! 재밌다!"


유여사에게 공책을 갖다 주고 주소 가사를 적어보라고 했다. 물론 아직 글 쓰기는 잘 하신다. 또박또박 잘 적으신다.  그 옆에다가 내가 달려가는 토끼 한마리를 그려주고, "이게 엄마야. 엄마가 토끼야"하니 아주 기뻐하신다. 자신이 토끼라는게 아주 맘에 드시는 모양이다. 


유여사가 내게 묻는다, "그런데, 내가 토끼쟎어. 그런데 어디로 가느냐고 묻는 너는 뭐니?"  토끼의 상대가 누구냐고 물으신다.  "응, 곰이야. 곰이 묻는거야" 나는 대답과 함께 공책에다가 곰 (테디베어)을 그려 넣었다. 엄마가 아주 기뻐하신다.


그러더니, 내가 '어디로 가느냐' 노래를 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아주 큰 목소리로 자신의 주소지로 화답을 한다. "재밌다. 재밌어!" 딱 서너살때 우리집 애들 같다. 뭔가 이야기를 지어내서 설명을 해주면 눈을 빛내던 내 자식들.  이제 유여사가 그 서너살짜리 아이들같은 동심을 드러낸다. 이것이 재미있다고 눈을 초롱초롱 빛내시다니... 



치매노인들에 대한 '음악치유'효과에 대한 넷플릭스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는데 (작고한 올리버 색스도 인터뷰에 응했고),  노인 요양센터에서 '식물'처럼 멀거니 앉아있는 노인들에게 그들에게 친숙하거나 친밀한 음악을 틀어주거나, 특히 그들이 즐겨 듣던 음악을 MP3에 담아서 헤드폰으로 들려주자, 이들중 다수가 눈을 빛내며 몸을 움직이기도 했고, 극히 정상적인 반응으로 돌아오는 장면을 연출했다.  친숙한 음악이 기억장치를 자극하여 활달히 뛰놀던 '자아'를 복구하는 것 같았다. 유여사도  친숙한 '동요'와 토끼, 곰과 같은 친밀한 동화적 장치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유여사의 서서히 약화되는 뇌세포를 활성화 시킬수 있는 장치들이 무엇이 있을지 연구를 해 보아야 한다. 


매주 내가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을 유여사.  나도 똑같이 늙을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연민.'  우리 모두 늙을것이라는 자명한 사실 앞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약한자들, 쉽게 부스러질 것들, 작고 초라한 것들, 그런 사람들에 대한 연민. 


어느 누구도 한 밤에 길거리에서 이유도 없이 괴한에게  두드려 맞아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져 죽어서는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