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32장으로 구성되어 있어, 하루에 한 챕터씩 천천히 읽어도 32일이면 읽을수 있다. 속독을 하는 편이지만, 이 책의 경우에는 '인내심'을 발휘해서, 하루에 딱 한챕터씩만 읽었다. 읽고, 생각 좀 해보고 일부러 천천히. (성질 급한 사람은 '천천히'가 잘 안된다).
어느날 불교방송에서 한 스님이 금강경 강의를 하는 것을 보았는데 내용이 놀라웠다. 그래서 '금강경'을 좀 읽어봐야지 생각했다. (나는 심심하면 불교방송-천주교방송-기독교방송 세 채널 사이를 오가며 설법이나 설교를 듣는다.)
법화경의 일부를 지금도 암송 할 수 있으므로, 불경을 읽는 것이 내게는 전혀 낯설지 않다. 뜻을 잘 몰라도 한문으로 씌어진 것을 대충은 읽을수도 있고, 대강 뜻을 해독할 수는 있다. 그래도 대강 떠듬거리며 간신히 해독하는 것과 '뜻을 이해하며 읽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이라서, 금강경을 잘 설명해 놓은 책이 뭐가 있을까 책방을 뒤져 찾아보았다.
우선은, 김용옥의 금강경 강해를 읽어볼까 생각했는데, 책을 들여다보니 만만치가 않았다. 뭐 원문만 늘어놓고 강의하는 식이다.
다른 불교계에서 나온 책들은 어딘가 설명이 구태의연하고, 잘 다가오지 않았다. 법륜승이 쓴 빨간 하드커버의 이 책이 내 맘에 꼭 들었다.
이유는
각 챕터 (장)별로 한문 원전을 적고, 바로 아래에 '한글표기'를 해 놓아서, 한문을 따라 읽다가 내가 모르는 글자가 나왔을때 한글로 어떤 소리가 나는지 바로 확인할 수 있다. 그것이 내게는 아주 편리하다.
바로 옆 페이지에는 이 한문원전을 '한국어'로 번역하여 실어 놓았다. 역시 고맙다.
그렇게 첫 두페이지가 지나가면 '내용'이 나오는데 법륜승이 쉬운 한국어로 몇가지 중요한 불교용어를 설명해 주었고, 개념도 그의 평이한 언어와 에피소드로 설명을 해 준다.
부록으로 금강경 전문과 바로 아래 '한글표기'도 함께 실어주었다. 만약에 금강경을 암송하고 싶다면 매일 한두차례 이 부록을 처음부터 끝까지 소리내어 읽으면 된다. 그러면 아마 한 백일쯤 소리내어 읽으면 경이 입에 붙을거다. (경험상).
역시 부록으로 금강경 전문을 한국어로 번역한 것도 실어 주었다.
이렇게 내 맘에 쏙 들게 편집을 해 주다니. 감사한 노릇이다. (책을 잘 만들었다).
금강경에서 가장 자주 나온 표현은? (틀릴지도 모르지만 내가 감지하기에는) 하이고何以故 이다. (내가 전문적으로 한문을 배운 사람이 아니라서 단언할수는 없지만) '그것은 어떤 연고인고 하니...' 이런 뜻일 것이다. 책의 번역 페이지에는 '왜냐하면'으로 해석했다. 이 '하이고'를 볼 때마다, '하이고 (아이고).....' 한숨섞인 홋잣말을 떠올리곤 했다. '그 하이고가 이 아이고가 된건가?' 이런 잡다한 상념.
금강경은 '가을'에 읽기에 참 좋은 경이다. 다른 경들도 아마 가을에 읽기에 좋을 것이다. 왜냐하면 한해가 이울어가는 계절이기 때문에, 만물이 유전하며, 사라지며, 뭐 그런 현상이 눈에 들어오기 때문에. 성서의 '전도서'가 불경과 참 닮았다. 전도서를 꺼내 읽듯이 금강경을 꺼내 읽어도 좋으리라. 이 아름다운 글을 외울수 있으면 더 좋으리라.
'너는 예수쟁이'라며 금강경을 외겠다고? 미쳤니? -- 라고 누군가 말한다면, 내 대답은 이렇다. 나는 예수쟁이가 되었고, 예수쟁이로 죽을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이 '우상 숭배를 하지 말라'고 하셨지 불경 읽지 말라고 말씀하신바 없다. 예수쟁이도 수학 공부하고, 과학 공부하고, 철학 공부하고, 컴퓨터 공부한다. 불경 공부를 해서 안될 이유나 근거가 없다. 하느님을 좀 제대로 알으려면 그가 주재하시는 모든 것을 통찰해야 한다.
최근에 내가 읽은 몇몇 뇌과학 책을 보면, 인간의 '뇌'는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고 상황에 따라서 속고, 속이며, 의견을 바꾸기도 하고, 변화무쌍하다고 한다. 만물은 말 할 것도 없거니와 '나' 조차도 '일념삼천대계'를 찰나에 오가는 것이니 나는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 불교 경전의 말씀과 일맥상통 하는 대목이다.
두타산에서 만난 스님
시월의 파란 하늘을 보며 '화엄경'에 대해서 적다보니 어느해 시월에 두타산에 갔던 일이 생각난다. 대학시절, 친구와 야간열차를 타고 동해시에서 내려서 이곳저곳 떠돌다 두타산에 가게 되었는데, (모르고 그냥 간거지) 절을 지나서 조그만 암자가 있다고 해서 일단 목적지를 거기까지 정하고 산길을 올라갔다. 웹에서 검색해보니 그 때 간곳이 '관음암'이라는 곳인것 같다. 암자 이름은 그 때도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아서 기억에 없다.
당시 동행했던 내 친구는 원래 '절'에 다니던 애였다. 그러니까 암자에 도착하자마자 자신이 아는 법도대로 어디 들어가서 절도 하고 그랬고, 나는 뻐정거리고 절 마당을 이리저리 기웃거리며 돌아다녔다. 부처님 모셔진 본당말고 그 옆에 작은 별채(?)에서는 스님이 여닫이 문을 열어 젖히고 문지방에 팔을 고이고 비스듬히 앉아서 한가롭게 밖을 내다보고 계셨다. 아주 한가롭고 평화로운 가을 낮이었다. 산 정상 부근이었으므로 밖을 내다보고 있는 그의 두 눈에 파란 하늘이 비쳐서, 지금도 그의 눈이 파란색으로 떠오른다. 그의 눈에 파란 하늘이 가득했다.
내 친구는 절집 안에서 절을 해 대고 있고, 나는 멀뚱멀뚱 (마당의 암탉처럼) 하고 있으니까, 그 눈이 파란 스님이 웃으시며 "거기 처자는 절집에 와서 절도 안하고 뭐 하고 있소?" 하고 말을 붙이셨다. 지금 생각해보니 새파란 젊은 스님이었는데 그 당시에는 내가 '남의집'에서 인사성도 없이 멀뚱거린거라, 게다가 낯도 가리고, 절에서 중한테는 어떻게 해야 하는게 매너인지도 모르겠고 해서, 꾸벅 "안녕하세요" 인사를 날린 것 같다.
스님이 문지방에 팔을 기대고 비스듬히 앉은채로 "서울서 오셨소?" 뭐 이렇게 내게 말을 걸었기 때문에, 나도 절만 해대는 친구 기다리기도 지루해서 엉거주춤 그의 곁으로 가서 그가 묻는 말에 이렇게 저렇게 대꾸를 했다. 결국 서울서 온 여대생. (아, 당시에는 그래도 여대생이 귀할 때였다. 하하).
결국 그 파란눈의 스님은 서울서 온 두 여대생을 그의 처소로 유인하는데 성공했고, 마침 그날 누군가의 제사가 있던 날이었다고, 누군가가 절에서 제사지낼때 차리는 나물이며 전, 그런 소박하면서도 아름다운 음식이 담긴 점심 상을 차려 내 왔다. 어떤 젊은 여자분이었는데, 그 분 어머님 제사를 그날 지냈다고. 그러니까 누군가가 산꼭대기 암자에서 쓸쓸하게 엄마의 제사를 지낸 것인데, 그날 우리가 제사의 손님으로 간거라. 그것은 또 무슨 인연인지. 그래서 아마 그 스님하고 내 친구하고 나하고 셋이서 겸상을 했던 것 같다. 까만 티셔츠와 역시 까만 바지를 입은 이십대 후반의 여성이 상을 차려다주고, 다 먹고 난 후에 우리가 상을 치우겠다고 해도 걱정 말라며 부엌에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 상을 물린 후에는 스님이 직접 차도 내려 주셨고, 그 당시에 무슨 얘기를 나눴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스님의 눈에 파란 하늘이 가득했던 것만 선명히 기억난다. 아마 뭘 공부하냐 물으셨을테고 '영문학' 공부 한다는 말에 그의 아름다운 눈이 더욱 빛났을것이다. (당시에는 영문학 공부하는 여대생이 뭐랄까 신비하고 매력적인 존재였지, 대체로...) 그래봤자. 그 스님, 나보다 서너살이나 많았을까? 두타산 관음암에 가면 그 스님을 볼 수 있으려나?
그 스님은 없다해도, 그 암자에서 바라보이는 하늘은 여전히 파랄 것이다. 그자리에 서면 내 눈도 파란 하늘로 가득 찰 것이다.
미륵산에서 만난 스님
통영 미륵산에 갔을 때에도 거기서 만난 스님에게서 극진한 대접을 받았다. 무슨 절인지 모르겠는데, 절이 아담했다. 그 당시 동행했던 친구는 대대손손 천주교 집안이었다. 그래서 이름도 천주교식 이름을 호적에 올릴 정도였다. 그 친구의 아버지는 돌아가시면서 집안의 땅을 모조리 천주교회에 기부하셨다. 그래서 거기 가면 그 아버지의 작은 흉상이 있다. 그 친구의 언니는 미스코리아에 나갈 정도였으므로 내 친구의 미모도 대단했다.
그 대단한 미모의 친구와 절간에 가니 괴괴하고 인적없던 절간에 서광이 비친듯 했으리라. 역시 혼자 앉아서 절집을 지키던 시퍼런 도둑놈같은 스님의 영접을 받았다. 경상도 사투리로 친절하게 이리저리 묻던 그는 두 처자를 그의 처소에 입장시키는데 성공했다. 그 절집에서 제일 큰, 회의장 같이 탁 트인 방이었다. 아마도 신도들에게 법문 들려주고 그러는 작은 강당 같았다.
그는 절에서 먹는 과자도 내 주고, 차도 내려주고 하면서 '서울에서 온 영문학 여대생'들에게 그의 무용담을 들려주었다. 그의 무용담이란, 그 당시 서울 '조계사'에서 내부갈등이 있어서 스님들이 막 몽둥이 들고 서로 '용호상쟁'하고 때려 엎고 --완전 중국 무협영화를 찍던 '낭만의 시절'을 보낸 직후였는데, 바로 그가 조계사 그 현장에서 각목부대 (말하자면 호국불교의 후예인건가?)의 미관말직에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그 때 우리가 승복을 차려 입은 '조폭' 오빠의 호랑이굴에 들어가 있었던거다. 그래도 우리는 철이 없어서 겁도 없었다. 우리는 깔깔대며 그의 무용담을 들었다. 이 때 마침 늙수그레한 보살님 두분이 오셔가지고 "하이고, 우리 시님 손님 오셨나베..." 하며서 자리에 끼어들었고, 영문과 여대생에게 살살 넘어가는 경상도 사투리로 이야기를 들려주던 스님이 '무뚝뚝하고 꺽뚝꺽뚝하게' 제 엄마뻘쯤 되는 나이 많은 보살님들을 야단치듯 막 대하는 현장을 목도하게 되었다. 너무 웃겼다. 경상도 남자는 꺽뚝꺽뚝도 잘 어울린다. 보살님들 오니까 대화의 내용은 '조폭'에서 궁합, 사주 뭐 그런것으로 자연스럽게 변질되었고, 내 친구와 나는 조폭영화가 끝났으므로 자리를 떴다. 올라갈땐 힘들었는데, 하산길은 가볍고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