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내용 자전거타기 기구에서 '지루함 방지용'으로 읽은 책. 하루 한시간씩 자전거 운동기구를 타면서 사흘에 읽었으므로 세시간이면 가볍게 읽을만한 책이다. (증정본인데, 이거는...운동용으로 좋겠네 생각하고 운동가방에 넣은것이 주효했다.)
내용은, 노예같은 샐러리맨 삶에서 탈출하여 각자 자신의 삶을 살아가면서 생계수단으로 아무 일이나 하는 편이 좋다는 설교와 그럭저럭 크게 도움은 안되겠지만 참고는 될만한 '방법론'으로 채워진, 읽으면 좋고 안 읽어도 별 상관 없지만 딱 세시간, 그저 그런 영화나 한편 본다는 정도의 기대에 부응해 줄만한 책이다.
그래도 읽으면서 생각해보면, 내가 매일 꼬박꼬박 출근해야 하는 회사원 생활을 86년 3월부터 88년 5월까지 하고, 그 이후로 회사원의 삶을 살아본 적이 없다. 86년 9월부터 88년 6월까지 그 시절엔 '선망의 직장'이던 '주 5일제' 외국계 회사에 정시출근 정시퇴근하는 월급생활자로 살면서 잘 차려진 사무실의 통유리 밖의 파란 하늘을 매일 내다보면서 생각한 것은 --"죽을때까지 이렇게 매일 출퇴근하면서 살아야 하는걸까? 인생 자체가 지옥같다"는 것이었다. 9시출근 5시 퇴근에 주 5일제 근무를 하는 (당시 기준으로) 팔자가 늘어진 나는 (게다가 영어를 잘 한다는 이유로 한가로운 자리에 앉아서 가끔 영문서류를 만들거나 영어 몇마디 하는 것 외에는 시간이 남아 돌아서 근무시간에 공부도 실컷 할수 있었지...) 그곳이 '행복한 지옥'처럼 여겨졌다. 나는 아마 평생 그 직장을 떠나지 않을것 같았다. 버리기엔 너무 아까운 직장이었고, 버리고 다른 일을 찾아본대도 그만큼 편하고 대우좋은 직장을 구하기가 어려운것이 자명했으므로. 87년 6월 넥타이부대원들이 점심시간에 명동으로 모여들때, 바로 나는 그 넥타이부대 소속이었다. 나는 역사의 현장에 있었지. 동료들과 함께. 그 뜨거운 6월이 아마 내 샐러리맨 시절의 가장 화려한 시간이 아니었을까? 어쨌거나 88년 6월 회사를 그만둔 이후로 나는 영원히 '회사'로 돌아가지 않게 되었다.
그 이후로는 '자유 계약직'이라거나 '파트타임'이라거나 뭐 어떻게 불러도 좋았다. 방구석에서 번역을 하여 용돈 벌이도 했고, 하다못해 너무 심심해서 라디오 여성 프로에 '재미난 이야기'를 적어보내어 이런저런 상품도 받아내고, 뭐 그때그때 내게 주어지는 여러가지 일들을 재밌게 했다. 그런식으로 내가 경험한 직업이 몇가지일까? 손가락, 발가락 다 합한 숫자보다 많을것이다. 정말 굉장히 다채로운 일들을 했다. 나는 가끔 나의 이력서를 정리할때 막 짜증이 날 때가 있다. 내가 어떤 심사를 받거나 뭐 내 전문분야에 이력서를 제출할때는 주로 현재의 나의 전문분야와 관련된 이력만 적어내야 한다. 뭐 주로 어느 학교에서 뭘 가르쳤는지 어떤 연구를 했는지 어떤 연구발표를 했는지, 그런 학문적인 이력만 써야 한다. 저들이 '그 이외의' 나의 다채로운 이력을 알게 된다면 내가 훨씬 잠재력있고 유쾌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될텐데. 그게 좀 아쉽다는 것이다. 나는 스탠드업 코메디를 하면 어떨까 가끔 생각한다. 왜냐하면, 내가 별 뜻없는 농담을 할 때 학생들이 책상을 치며 웃어대기 때문에, 어딘가 내가 되게 웃기게 생겼거나 혹은 내가 의외로 아주 코믹한 존재일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자주 한다. 나는 맘만 먹으면 사람들을 웃길수 있다. (하지만 무대에서 웃기는 일은 아직 안해봤단 말이지.) 말이 좋아 스탠드업 코미디안이지, 뭐 한국말로 하자면 '만담가'에 가까울거다. 그래, 그게 원래 나의 천직이었는지도 모른다.
뭐 어쨌거나 그러다가 결국 여기까지 왔다. 월급을 받지만 샐러리맨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출퇴근을 하지만 내 출퇴근을 감시감독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심지어 내가 출퇴근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나는 내 일만 잘 해내면 된다. 내가 남들 다 노는 휴일에 내 오피스에 와서 일을 해도 그것은 내가 자발적으로 선택한 나의 일이다. 그러므로 그것이 괴로운 일이라해도 내게는 유희일 뿐이다.
이 책의 저자는, 평범한 대다수의 회사원 월급쟁이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탈출하라'고 말한다. 그의 요지는 이러하다.
미래를 위해 오늘을 희생하고 꾸역꾸역 일만 하면서 살다보면 인생을 일로 채우고 끝낼 가능성이 크다.
그러니 '오늘'을 살아야 하는데, 그러기위해서 적당한 때에 '은퇴'나 '사직'을 결정할 수 있도록 준비하라.
은퇴/사직의 준비는 상상하는것보다 어렵지 않다.
집값이나 생활비가 적게 드는 곳에 가서 '최소한'으로 살기로 작정하면 사람에게 돈이 억수로 많이 필요한것도 아니다.
'최소한'으로 살되 삶의 품위와 여유와 아름다움을 누리면서 사는것이 '소비지향'의 '노예살이'보다 훨씬 유쾌한 것이다.
내가 이 책을 '읽어도 좋고' '안 읽어도 상관없는' 책으로 본 이유는 나 개인의 삶이 이미 여기에 닿아 있어서 그럴지도 모른다. 나는 이미 20대 중반에 '탈출'을 감행했고 내 식대로 내 삶을 살아왔으므로 딱히 더이상 탈출하고 버리고 갈 것이 없다. 그래도 이 책이 아주 쓸모없는 책이 아닌데, 그 이유는 (1) 내 지루한 운동을 지루하지 않게 도와줬고, 가끔 나 혼자 깔깔 웃게 만들어줬으며 (2) '미니멀리즘 (최소주의)'에 대해서 다시한번 진지하게 생각하고 쓸데없는 물건을 안사야겠다는 다짐을 새롭게 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떠돌이 삶에 익숙해져서 물건을 잘 안사는 편인데, 그래도 뭔가 사게되는 내 성향을 잘 관리해서, 정말로 아무때나 보따리 싸가지고 떠날 만큼만으로 내 삶을 유지해야지.
놀러나가기 힘든 시간. 체육관에 가서 운동하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풀고 있는데, 이런 '쉽게 읽히는 책'들이 지루한 운동에 도움이 많이 된다. 이렇게 사흘에 한권씩 읽으면 한달이면 실내자전거 운동틀에서 책 열권을 읽겠군.
난 사실, 이 자전거페달 돌리는 운동틀을 내내 지나치면서 '저게 무슨 운동이 되나...' 했다. 여기 앉아있는 학생들은 대개 여학생들로, 앉아서 아이패드나 들여다보고 잡담이나 하고 그랬다. 운동을 하러 와서 왜 저기 앉아서 노닥거리나 이런 입장이었다. 그런데 어느날 체육관에서 운동틀을 상대로 시비걸며 스트레스해소 하러 돌아다니다가 '쉴겸' 여기 앉아서 동네 깡패같이 비스듬히 앉아 아주 껄렁껄렁하게 페달을 돌려봤는데... "요것봐라!" 가만보니 이게 힘도 들 뿐더러, 앞의 계기판에 시시각각 운동거리와 칼로리소모 기록이 착착 올라가는데, 내가 벼락을 맞은 듯한 전율을 느꼈다. 아니, 이것이! 내가 무시하고 지나치던 그 여학생들이 그러니까 일 없이 여기 앉아 있던게 아니었어!!! 게다가! 책도 읽으면서 운동을 할 수 있다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