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ry/Life2018. 9. 7. 11:09


나는 몇해 전, 죽을때까지 예수님을 향한 기도를 멈추지 않을 것임을 작정했고, 가급적이면 일요일 예배에 꼬박꼬박 나가는 것을 원칙으로 제법 신통하게 모범적으로 잘 살아가고 있지만, 아직 '십일조'를 진짜로 '십일조'로 낸 적은 한번도 없다.


십일조면 십일조지 진짜가 어딨고 가짜가 어딨는가?


십일조는 원래 내 수입의 1/10을 내는 것이 십일조다.  왜 그렇게 내야 하는데?  구약에 명시되어 있으니깐. 


그러면 뭐가 문제인데?


전에, 평생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다가 요즘은 통 교회에 안나간다는 직장 동료와 교회 다니는 얘기를 하는데 그가 내게 물었다, "십일조는 잘 내시죠?"  이에 대한 내 대답은, "그...그것이...글쎄요...낸다고 할 수도 없고, 안낸다고 할 수도 없고..."


나는 내 수입의 1/10을 내가 교회에 바쳐야 할 이유를 잘 모르겠다.  뭐, 세금도 많이 뜯기니까, 하느님께서 시키시는대로 내라면 내면 그만인데, 그런데 좀 미심쩍다.  뭐가?  내가 정말로 수입의 1/10 십분지일을 교회에 내면 하느님이 기뻐하실까?  (갸우뚱) 교회 주인아저씨가 기뻐하는것이 아닐까?


나는 우리 예수님이 나때문에 돌아가신게 너무 미안하고 고마워서, 예수님이 뭐 내라면 다 내겠지만, '다른 사람'은 절대 안 믿는다.  목사는 인간이기때문에 목사를 전적으로 신임하지 않는다.  특히 한국의 교회구조에서, 목사님이 마치 개인사업하듯이 '내 교회'라는 의식을 가지고 떵떵거리며, 교회 사업이 잘 되면 그 교회 사업을 자식, 손자에게 대물림하는 현상을 자주 목도하기 때문에, 어딘가 교회 주인아저씨에게 삥뜯기기 싫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어떤 사람은 말한다.  신도가 십일조 낸것을 사리사욕을 위해 착복하면, 그것은 하느님이 알아서 벌 주실거고, 너는 신자로서 너의 의무를 다해야 하는거라고.  나는 그 사람의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교회당 주인아저씨의 배를 불리지 않으면 그들은 타락하지 않을 것이다.  뭐 타락 시켜놓고 천벌 받으라고 하기보다는, 타락의 여지를 만들지 않는게 착한 일 아닌가?



딱히 현재 문제가 되는 '명성교회'뿐만이 아니다.  어느 교회에 원로 담임목사 (그 교회당 개척해서 크게 일군 주인아저씨)가 있고, 부목사가 있고 그럴경우, 내가 보면 그들의 관계가 착실한 주종관계처럼 보인다.  담임목사는 제왕같고 그가 월급주는 (사실 그가 월급을 주는 것도 아닌데...) 부목사는 그 앞에서 쩔쩔매는 하인이다. 옛날에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이 그랬을것 같지는 않은데 말이지. 나는 그래서, 어떤 개인이 정서적 Ownership을 갖는 (법적으로 자기것이 아니라해도 정서적으로 이미 자기것이고, 주변 사람들도 대충 그렇게 넘어간다) 그런 조직을 나는 온전히 '하느님의 교회'라고 보지 않는 편이다.  그런 사람을 나는 그냥 '건물 주인아저씨'라고 보는 편이다. 사실 그가 주인도 아니다. 이건 마치 삼성이 이재용것이 아닌데도 이재용이가 주인인것처럼 군림하는 것과 일치한다. 내가 뭣하러 정직하고 성실하게 일하고 번 돈을 '교회 건물 주인아저씨 행세를 하는' 사람이 타락하는데 갖다 바치는가?  남을 타락시키면 안된다. 하느님도 기뻐하지 않으신다. 나는 담임목사와 부목사가 서로 동등하고 당당하길 바란다. 부목사님이 어딘가 쩔쩔매는 자세를 취할때 바라보는 입장에서 유쾌하지 않다. (내 시선이 삐뚤어진 것인지도 모른다. 위계질서가 대단한 조직일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나는 목사님들을 언제든지 타락에 빠질수 있는 나약한 인간으로 보고, 그분들을 내 신앙생활의 '조력자'나 '지도자'로 보는 편이지 어떤 신성한 존재로는 보지 않는 편이다. 큰 기대도 없고, 별로 나를 실망시키지도 않는다 (애초에 기대가 별로 없으니까). 가능하면 그분들의 노고를 존중하고 예절바르게 대하려고 한다. 



그렇다고 내가 십일조를 안바친다고 할 수도 없다. 나는 매달 일정액을 '십일조'의 이름으로 교회에 언라인 송금을 한다.  내가 생각하기에 합당하다고 여겨지는 액수이다. 교회라는 하나의 커뮤니티 (공동체)가 굴러가기 위해서는 목사님들의 생계를 위한 월급도 나가야 하고, 선교도 해야하고, 교육도 해야하고, 경비가 들것이 확실하고, 내가 그 교회의 구성원이므로 일정부분 구성원으로서 '회비'를 내는 것이 마땅하다.  딱 그정도를 낸다.  만약에 우리 교회 목사님이나 장로, 권사 이런 분이 내게 "당신, 버는게 이것밖에 안되오? 십일조, 수입의 십분지 일을 내시오!" 이러면 나는 십일조라는 이름으로 매월 일정액 내는 것을 중지할 생각이다. 그 액수만큼 내가 생각하기에 하느님께서 기뻐하실 만한 곳에 보내면 된다.  그렇다고 교회를 옮길 생각도 없다. 내가 하느님과 대화하고 기도하러 교회다니지 뭐 사람 만나러 교회가는게 아니니까. 사람이 싫어도 나는 교회 간다. 



내가 볼때, 명성교회라는 저 괴물을 만든이들은 문제의 목사들뿐만이 아이다. 문제의 애비와 그 자식 외에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명성교회를 쓰레기통으로 만드는데 한몫씩 한거다. 왜 저런 인간에게 돈을 쓸어다 바쳐가지고 저런 괴물을 만들어 놓은건가? 저것들이 돈 때문에 저러는거지, 교회가 오막살이에 빚투성이라도 대물림한다고 난리굿을 할까.


아무튼, 나는 내 식으로 내가 정한 - 하느님께 여쭙고 내가 결정한 십일조를 꼬박꼬박 낸다. 


그런데, 어쨌거나, 그 거의 평생을 열심히 교회에 다니다 최근 때려치고 자유주의자가 된 그 사람과 십일조에 대해서 좀더 이야기를 나누다가 내가 물었다. "그런데 그 정말로 수입의 십분지일에 해당하는 십일조를 낼때, 그게 세전인가요 아니면 세후인가요?"  Before tax냐 after tax냐 궁금했던거다.  그 과거에 독실한 예수쟁이였다가 지금은 무신론자가 된 그 분은 아주 엄격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Before Tax입니다. 일단 세전 총액에서 십분지일을 계산해서, 그걸 내야 하는겁니다."  그는 무신론자가 되기로 하기 직전까지도 평생 엄중한 Before Tax 십일조를 내 왔다고 한다. 나보고도 진정한 크리스챤이라면 그렇게 내야 한단다. 헤헤헤. 나의 예수님은 그런거 신경 안쓰시는것 같더라, 뭐. 나는 내가 백수라서 땡전 한푼 안 벌고 놀때도 내가 정한 십일조는 냈다. 나하고 내 하느님과의 관계에 남이 끼어들 여지는 없다. 아무도 흔들수 없다. 








'Diary > Life'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날의 햇살  (0) 2018.09.11
뭣이 중헌디  (0) 2018.09.09
Try to remember  (0) 2018.09.04
강용석씨, 코미디는 이제 그만, 식상하니까...  (0) 2018.08.28
니체와 달팽이  (0) 2018.06.18
Posted by Lee Eunmee
Diary/Life2018. 9. 4. 14:35



점심시간에 외출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차창 밖으로 높고 파란 하늘과 먼 바다를 내다보다가, 문득, '아 구월이지!' 했다.  9월이 벌써 와 있었는데 그것을 이제야 깨닫다니.  달력을 때에 맞춰 넘기면서도 내가 9월 속에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그렇다. 9월이다.  9월 내내, 하루 하루 눈이 뜰때마다 내가 9월 속에 있음을 자각해야 한다.  순간 순간 내가 9월의 햇살 속에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왜냐하면, 9월이니까. 


Posted by Lee Eunmee
Diary/Life2018. 8. 28. 17:43

https://news.joins.com/article/22921083


변호사 강용석씨가 청와대에서 게시한 사진 한장을 가지고 분탕질을 다시 시작했다.  애석한 일이다.  나는 강용석씨가 국회의원이던 시절 (그가 참 잘 나가던 시절) 그가 언론매체에 소개된 모습을 보면서 '참 똑똑한 일꾼이 하나가 등장했다'고 생각했었다.  정치적인 방향이 다르더라도 인재임은 분명했다.  그가 몇 마디 말 실수로 나락으로 떨어질때도 약간 애석한 마음도 들었었다.  크게 될 수 있는 사람이 엉뚱한 실수로 헛발질을 하다 넘어지는 것을 보는것이 안타까웠다.  내가 그에게 일말의 애정이나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그가 흙수저 출신으로 입신양명한 수재였기 때문이다. 나는 아직도 개천에서 용이 나기를 기다리는 사람이다.  그는 개천에서 난 용처럼 보였는데, 승천하지 못하고 계속 괴상한 행보를 이어가고 있는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그런데, 용석씨, 당신이 요즘 사진 갖고 시비거는 것은 사실 당신 수준에 맞는 행보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사진 구도는 거기서 거기다. 웨딩사진에는 신랑신부가 반드시 들어가고 대개 비슷한 포즈를 취한다. 그런 것을 카피라거나 따라하기라고 하지 않는다.  대통령의 집무 관련 사진들도 대개는 거기서 거기다. 특별히 새로울 것도 없고, 그래서 누가 누구를 따라 했다고 트집 잡는 일도 없다.


다음 사진들을 보자. 

옛날 옛적 아들 부시 대통령 시절의 사진이다. 대통령 집무실 테이블 주위에 사람들이 모여 있다. 인터넷에서 업어왔으니, 페이지 열어보면 어떤 특별한 상황에서 찍은 것인지 설명이 나올것이고, 나도 당신만큼 영어는 되니 설명 못할것도 없지만, 별 관심 없어 패쓰한다.



이건 뭐냐구? 클린턴 대통령 시절이지 뭐.  왼쪽에 엘고어 부통령도 보인다. 나머지는 관심 없고. 


자, 이건 뭐냐?  오바마 대통령이 제복 입은 여성들에 둘러싸여 있는 장면이다. 뭐, 포즈가 거기서 거기다. 두손 모으고 있던가, 비스듬히 있던가.  당신은 이 사진과 트럼프의 사진을 비교하며 --트럼프는 따라쟁이야! 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은가? 나는 그럴 생각이 전혀 없다.  뻔하고 뻔한 의전적 사진에 불과하니까 말이다. 뭐 따라쟁이 소리 듣지 않기 위해 대통령이 물구나무를 서야 하는걸까? 아니면 뭐 주위 사람들이 모두 요가 자세라도 취해야 하나?


같은 날 찍은 사진인데 아래 사진은 조금 다르지?  그래봤자 거기서 거기지. 안그런가?




강용석씨. 당신은 재기발랄하고 두뇌명석하고 참 앞날이 촉망되는 젊은 사람이다. 나는 그렇다고 믿는다. 설령 인생에서 몇차례 넘어졌다고 해도 당신의 인생이 여기가 끝이 아니니까 말이다. 사람이 살면서 실수도 하고, 불륜도 저지를수 있고, 반성하고 다시 일어날수도 있고 그런것이 인생이다. 


참 똑똑한 당신이 엉뚱한 짓을 하는걸 발견할 때,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나는 이런말을 사람한테 사용하고 싶지 않지만 그만 이런 말이 입에서 새나오기도 한다. Pathetic....  영어도 잘하는 당신, 이 말의 뜻이 얼마나 나쁜지는 잘 아실것이다.  당신 재능을 엉뚱한데서 소모하지 마시길.   설마 당신같이 잘 난 사람이 관심종자는 아닐테고...설마 '옛다 관심'이 필요해서 지금 뻘짓중인건가?  설마... 코미디는 이쯤에서 끝내자.  건투를 빈다. 



첨언:  그런데 말이지. 나는 문제의 그 사진 - 현직 대통령 주위에 여직원들 (여성 비서관들) 줄나래비로 서 있는 그 사진 자체가 기분이 나빴어. 나는 그런 사진을 좋아하지 않아. 그 사진의 본질에 대해서 누군가가 심도있는 지적질을 해 줬다면 반가웠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기껏 다른 사진과 구도가 비슷하다고 시비거는건 ... 애석하게도 촛점이 엉뚱한데 맞춰져 있었다는거지. 그 사진 나도 맘에 안들기는 하다구 (다른 이유로.) 


 

과거에도 주의를 줬건만: http://americanart.tistory.com/1385



'Diary > Life'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십일조를 낸다 아니다 내지 않는다  (0) 2018.09.07
Try to remember  (0) 2018.09.04
니체와 달팽이  (0) 2018.06.18
National Symphony Orchestra, Rachmaninoff, Piano Concerto No. 2  (0) 2018.02.04
'Move Over' Law in Maryland and Virginia  (1) 2018.02.01
Posted by Lee Eunmee
Diary/Life2018. 6. 18. 14:54



최근에 읽었던 책에서 저자가 인용했던 글.  서울대학교 김병도 교수의 '도전력'이라는 책이었는데.....(리뷰는 안써도 될 것 같은...저 인용문이 전부라고 할만한...  아 내가 약간 회의적인 이유는...도전하라 위험하게 살아라 강조하시는 분이, 어쩐지 교수 연구실에 앉아서 저런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어딘가, 뭔가, 음.... 뭐랄까... 앞뒤 아귀가 잘 안맞는다는 듯한 느낌. ㅋㅋ 죄송합니다, 저자가 이 글을 보신다면.  하지만, 청소년들에게는 혹시 도움이 될지도 모르는... )



위험하게 살아라

당신의 도시를 베수비오 화산 기슭에 세워라.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 끊임없이 싸우며 살아라

--프리드리히 니체, '즐거운 학문' 중에서.




보름쯤 전에, 일산 호수공원에 갔을때, 밤새 비가 온 후 이른 아침.   내 눈길을 훅! 잡은 달팽이 한마리.  저 작은 달팽이가 1미터도 넘는 높이의 장미나무 꽃 정상까지 어떻게 올라갔을까?  장미향기에 취해서 올라갔을까?   달팽이가 꿀벌이나 잠자리도 아니고, 저기 올라가 앉는다는 것이 간단한 일이 아니었을텐데.  그 모습이 하도 장하고 신통해서 한참 들여다보았다.  


니체는 '위험하게 살아라'고 했지만, 달팽이는 '위험' 자체에 관심이 없어보였다.  위험조차 그에겐 위험이 아닌듯 하다. '달팽이 승.'   이 사진을 인화하여 벽에 걸어두고, 용기가 필요할때, 삶이 빡빡하고 재미 없게 느껴지거나, 사는게 무섭다는 느낌이 들때, 장미에 취하여 장미나무에 올라간 달팽이를 상기하면 좋을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뭐 어쨌거나 이 달팽이를 발견하고 그만 눈물이 핑... 이렇게 쪼끄만게 날개도 없이 거기까지 기어올라간게 너무 신기해서. 어쩌면 나도 불가능해 보이는 것에 대해서 출발해봐야 하는게 아닐까. 이런.)







연구실을 한참 비워야 할 즈음에, 진분홍 호접란 꽃대를 발견했다.  2016년 8월말, 선물받은 화분이었는데, 그 후로 잘 지내고 있었지만  꽃대가 올라온 것은 처음이다.  내가 없어도 꽃을 잘 피워내길.  씩씩하게. 


살아 숨쉬는 것들은 어떻게든 생명의 노래를 부른다. 





Posted by Lee Eunmee
Diary/Life2018. 2. 4. 06:06



케네디 센터에서 열리는 미국 국립 교향악단의 연주회에 다녀왔다.  (2018, 2, 3, 오후 8시). 


1월과 2월에는 우리 가족 모두의 생일들이 산재해 있기 때문에, 공동의 생일축하 이벤트를 생각하고,  아이들의 스케줄을 확인하여 확답을 받고 음악회 표를 산 것은 이미 3주 전이었다.  차이코프스키의 '템페스트,'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콘체르토 2번, 그리고 스트라빈스키의 '요정의 입맞춤' 이렇게 세가지 곡이 연주되는 프로그램이었는데,  물론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컨체르토가 나의 관심의 대상이었다. 가장 자주 들어서 가장 친숙한 곡이니까.


찰리는 나를 위해서 휴가를 냈고, 존은 직장에서 넘어져 허리를 삐끗했다고 그렇지만 엄마와의 약속을 지키겠다고 진통제를 먹고 앓는 소리를 하길래  존의 허리에 약을 발라주고 챨리와 둘이 66 East 를 달려 케네디센터에 갔다.  내겐 눈을 감고도 갈 수 있을것 같은 익숙한 길.  여기 온지도 몇 년 만이다.  뭔가 기분 전환을 위해서 짧은 원피스 드레스도 입고, 정장 구두도 신고,  음악회에 어울리는 복장으로. 따로이 드레스코드가 있는것도 아니지만 그냥 '기분'을 내고 싶었다.   우리 삶에서, 가끔은, 우리가 아침에 세수를 하고 거울을 보고 용모를 단장하듯, 가끔은 뭔가 이벤트를 만들고 예쁜 옷과 예쁜 구두를 신고, 아름다운 것을 음악을 들으러 예쁜 음악당에 가서 오로지 음악만을 들으며 시간을 보내는, 평소에 향유하지 못하는 뭔가 고양된 것을 경험하거나 즐기는 것도 필요하지 않은가. 





차이코프스키의 '폭풍'은 음악 전체가 '폭풍' 그림 앞에 서 있는듯한 분위기였다.  천둥 번개가 치고 잦아들고 다시 몰려오고 그러다가 사라지는.  나로서는 음악을 들으며 어떤 장면들을 떠올릴수 있어서, 그림을 보는 것 같았다. 



템페스트가 끝나고 들어온 스타인웨이 피아노.




음악이 시작 되었을때, 찰리와 나는 저도 모르게 서로 쳐다보고 소리없이 '아!' 했다. 


음악에 대해서 특별한 미각이 없는 나는, 피아노 컨체르토 곡이 라디오나 음반에서 흘러 나올때, 대개는 '귀챦아' 하는 편이었다.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부담스럽다'는 대체적인 느낌.  아 시끄러... 이런 느낌.  그래서 대체로 솔로 독주나 실내약 정도가 내가 즐겨 듣는 클래식 음악 인데,  나이 오십이 넘어서야 내가 제대로 된 오케스트라 음악에 눈과 귀가 트인것 같다.  아, 저것이 오케스트라 음악이구나. 


우선 지휘자.  지휘자가 춤을 추듯 발뒤꿈치를 살짝 살짝 올려가며 두 팔을 휘저을때, 그리고 음악당 전체에 아름다운 음악이 흐를때, 내 눈에는 마치 보티첼로의 그림에서 서풍의 신 (제피루스)의 입에서 꽃잎이 터져 나오듯 지휘자의 두 팔에서 음악이 만들어져 나오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음악이 그의 두 팔 안으로부터 꽃잎처럼 펴져 나오는 것이 눈앞에 보이는 것 같았다.  (그러고보면, 음악에 대해 말하면서도 나의 서술은 시각중심이다.)


지휘자가 음악을 만들어내는 것 같아...


그리고, 교향악단의 개별적인 연주자들 한사람 한사람이 '음악의 요정'들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러니까, 나는 눈으로 오케스트라의 연주, 지휘자의 춤, 피아노 독주자의 옆모습 표정까지 읽으면서 그 속에서 하나의 우주가 탄생하고, 계절이 지나가는 시각적 경험을 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단지 시각에 국한 된 경험은 아닐것이다.  소리가 나를 에워쌌고, 나는 소리의 따뜻한 바닷물 속을 유유히 헤엄치고 있었으니까.  음악회에 가서 가만히 앉아 음악을 듣는 것은 수동적이고 정적인 행위만은 아니다. 나는 휴식을 취하고 있었고, 파도에 이리저리 떠밀리며 놀고 있었으니까.   그리하여, 음악이 끝나갈무렵, 깊은 잠에서 깨어난 것 처럼 머리가 가뿐해지고, 가슴에서 희망이 솟아니며, 잘 살아내야만 한다는 각성을 다시 한번 하게 되는 것이다. 



(아래 사진은 우리 찰리가 새로산 아이폰으로 뭔가 이펙트를 넣어 찍은 사진.  이제 4년차로 들어가는 내 아이폰에는 없는 기능인데.)



찰리에게 말해줬다.


우리의 일상이 똥통같은 현실속에서 구더기처럼 꿈틀대며 살아가는 것이라고 해도,  일년에 한 두번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마음을 합해 만들어내는 고양된 예술을 경험하면,  똥통속에 살아간대도 하늘에 태양과 별들이 빛나며, 음악당에서 아름다운 음악들이 연주되고, 강물이 유유히 흘러가며, 바다는 여전히 넘실대며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회상' 만으로도 우리의 삶은 훨씬 고양될수 있고, 그 희망을 가지고 순간순간을 견딜수 있는거다.  우리 곁을 맴돌았던 라흐마니노프의 선율은  쥐새끼만한 작은 트랜지스터 라디오로 그 음악을 들을때라도 '회상'을 통해서 되살아날거다.  우리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라흐마니노프를 들을때, 우리는 오늘 들었던 천상의 선율을 되살려 낼 수 있다.  그것이 우리를 버티게 해주는 힘이 되어 줄거다.



Posted by Lee Eunmee
Diary/Life2018. 2. 1. 23:08




https://www.nbcwashington.com/news/local/Move-Over-Laws-in-Md-and-Va--287360081.html


어제 저녁에 메릴랜드 베이브리지 동쪽 도로에서 운전을 하다가 교통경관에게 정지를 당했다.  


상황은 이러하다.  단방향 2차선 한적한 도로를 운전하고 있는데 갓길에 경찰차가 경광등을 켠 채 서 있고 승용차 한대도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왜 걸렸지?' 생각하며 마침 차에서 나와 승용차로 향하는 갓길의 경찰이 다치지 않게 매우 조심스럽게 서행하며 그의 곁을 스쳐 지나갔다.  왼편 차도로 옮길까 잠시 생각했으나 마침 왼편 차도로 차가 지나가는 중이라 차선을 바꾸기도 약간 애매한 상황이기도 했다. 


문제의 장면을 통과한 후에도, 저만치 뒤에 경찰차가 있는것을 의식해서, 과속에 걸릴까봐 속도도 완만하고 착하게 운전을 하는데 내 뒤로 경찰차가 경광등을 켜고 따라왔다.  "뭐지? 과속도 아니고, 신호등도 없었고, 뭐지?  후면 브레이크등이 나갔나?"  의아해하며 차를 갓길에 세웠다.  

차를 갓길에 세우고

실내등을 켜고

차창을 열고

두손을 운전대 위에 얌전히 올려놓고

최대한 맑고, 순수하고, 자는 아무 죄가 없으며, 당혹스럽다는 표정을 짓고 경찰관을 기다렸다. 


경찰이 뭐라뭐라 하는데 내가 잘 못알아 듣겠어서 "뭐라구? 이해 못했는데?" 재차 물으니 그가 설명을 해 준다.  "경찰차가 갓길에 서서 공무 수행중이면 차선을 안쪽으로 바꾸라는 규정이 있는데 네가 그걸 지키지 않고 차선 바꾸지 않은채 지나쳐서 나를 위험에 빠뜨렸다" 는 것이다. 


나 속으로 머리 사사삭 굴리고 있는중, '뭐라구? 이 경우 차선을 바꿔야 하는거라구? 나 미국서 15년 넘게 살면서 한번도 들어본적도 없고, 이문제로 잡혀본 적도 없는데 그런 규정이 있는줄 몰랐어....'  생각이 들었지만, "그런 규정이 몰랐어"라고 말하면 뭔가 덤터기를 쓸 것 같아서, "어...옆에 차가 지나가고 있어서 차선 바꾸기가 곤란해서 아주 조심스럽게 천천히 지나갔는데..."라고 아주 공손하게 대꾸했다. 


경찰은 운전면허증과 자동차등록증을 가져가더니 일각이여삼추의 천년의 시간이 흐른후에 (그래봤지 한 3분쯤? 후에) 다시 내게 다가왔다. 


"당신이 규정을 어겼지만, 이번에는 그냥 워닝(경고)만 준다. 벌금이나 벌점은 없어. 앞으로 조심해서 운전하기 바래." 


아싸! (할렐루야).  그 메릴랜드 경찰님께서! 스파이더맨의 토비 매과이어같이 잘생긴 분이었는데, 마음씨도 비단결이었어!  사실 나는 쫄아가지고 그 사람의 용모에 대한 평가를 할 겨를이 없었는데, 옆좌석에 있던 찰리가 "되게 잘생겼네...내 또래이겠는데, 진짜 미남이다..."해서 정신이 번쩍 나서 그의 잘생긴 외모를 회상했다.  하긴 잡아 놓고 방면해주는 경찰님이면 천하의 못생긴 돌쇠라도 미남으로 보일걸 아마. 


그이는 왜 나를 잡아 놓고 경고만 주고 보낸걸까?  두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1) 내 차와 면허증을 조회해보니 내 차나 내 면허증이 지난 2년이 넘는 기간동안 무엇하나 걸린 것 없이 깨끗했을 것이다.  거의 나가서 살았으니까, 깨끗할수밖에.  물론 그 전에도 경미한 몇 건 외에 거의 전과가 발견이 안 될 것이다.  그러므로 관대하게 봐준것이 아닐까?


(2) "옆 차선에 차가 지나가서 차선 옮기기가 어려워서 너 다칠까봐 살살 지나갔는데..." 내가 우물거렸던 설명도 '무죄 방면'에 힘을 실어 줬을 것이다.  이 법규에 관한 사항을 찾아 읽으니,  옆차선이 바빠서 옮기기 힘들때는 조심조심 지나가라는 내용이 나온다. 정상참작이 되는 상황이다.


어쨌거나, 위의 링크된 설명을 보면 100달러의 벌금을 물을뻔 했는데, 무죄방면 되었으니 무조건 고마운 것이다.


그래서 한가지 배웠다.  경찰차가 갓길에 어떤 차 잡아 놓고 작업하고 있을때, 혹은 사고차 수습중에 그곳을 지나칠때는 차선을 안쪽으로 옮겨야 한다. 그들의 안전을 확보해줘야 하기 때문이다.  (평소에도 무심코 그렇게 행동 했던 것도 같다. 그냥 법을 모르는 상태에서 상식적으로.)



Posted by Lee Eunmee
Diary/Life2018. 2. 1. 10:54



메릴랜드주의 오션시티는 워싱턴 디씨에서 가장 가까운 대서양 연안 해안이다. 50번 국도를 타고 '끝까지' 줄창 가면 나오는 바닷가 도시.  오후에 베이브리지를 건너 달릴 무렵 차창 밖으로 눈이 내리고 있었다. 눈이 내리는구나. 바닷가에 가면 눈이 쌓여 있으면 좋겠다.  눈내리는 창밖을 보면서 목욕을 하면 좋겠다.  양희은 버전의 '눈이 내리는데'와 오리지널 최무룡씨 버전의 눈이 내리는데를 유튜브에서 찾아 들으면서, 눈이 내리는 분위기를 즐겼다.


그런데 오션시티에 도착하니 오히려 흐리던 하늘이 개이고, 미국 역사 150년만의 슈퍼 블루문 개기월식에 맞춰 달이 휘영청 파도를 밝히고 있었다.  달빛으로 환했던 방 안.  





워싱턴 지역의 월식 시각은  오전 7시 50분으로 예보 되어 있었는데, 해가 이미 밝게 떠올라 있어서 달을 찾기 어려웠다. 하지만, 나는 그 달을 보려고 새벽 네시부터 일어나 호텔 방문 맞은편 복도에서 서성이며 월식을 기다렸다. 월식을 볼 수 없어도, 이제 곧 시작될 그 달이라도 오래오래 보고 싶었다. 




동쪽 정면으로 향한 객실 가득 햇살이 들어왔다.  그 햇살만으로도 눈부시고 따뜻했던 실내.  어제의 눈내리고 바람불고 춥던 날씨가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봄날같은 겨울 아침이었다. 



아이패드로 음악을 틀어놓고, 볕이 따뜻한 창가에 앉아 수도쿠를 풀었다.  12층 아래, 대서양이 출렁댔다. 빛은 깊게 깊게 방안으로 들어와 내 온몸을 따뜻하게 어루만져 주었다.  







나는 이 밝고 따뜻한 장면을 오래 오래 오래 오래 기억속에 간직하고 싶었다.  


나의 우울과 근심과 추위를 모두 녹여주는 빛과 따뜻함의 시간이었다.





오션시티는 남북으로 해안을 따라 보드위크와 모래 비치가 형셩된 곳인데 보드워크 직선길이가 2.45 마일로 알려져 있다.  나는 보드위크 북쪽 끝보다도 더 윗쪽에서부터 남단까지 슬슬 산책하며 한바퀴 돌았다.  약 5마일 걸은 듯.  해변을 맨발로 걸으며 전에 묵었던 호텔 앞에 서서 - 전에 어느방에 묵었을까? 기억을 되짚어 찾아보기도 했다.  


오션시티는 텅 비어 있는듯 했다. 우선, 내가 묵은 호텔이 이곳에서 가장 큰 규모의 호텔인데 식당이나 상점들은 모두 문을 닫았고, 간이 매점만 한군데 열려 있었다. 수많은 바닷가 호텔중 문을 열고 손님을 받는 호텔 숫자가 한정되어 있었고, 전 구역이 거의 모두 문을 닫은 상태였다.  See you in March! 라는 표시들이 많이 보였다.  이 도시의 호텔이나 상점들은 대략 3월부터 봄, 여름, 가을 장사를 하다가 겨울이 오면 아예 문을 다 걸어 잠그고 영업을 안하는 모양이었다.  그제서야 '잭 니콜슨'이 주연했던 영화 '샤이닝'의 상황을 일해 할 수 있었다.  정말로, 계절의 타는 휴양지에서는 호텔이나 가게들이 아예 싹 철수를 해 버리고 휴양지 자체가 유령도시처럼 텅 비고 마는구나.  보드워크 남단에는 어뮤즈먼트 파크 (유원지)가 있는데, 그곳에 있던 '하늘차'도 사라지고 없었다.  커다란 둥근 바퀴같은 것에 작은의자들이 통속에 들어 있어서 그 통안에 앉아서 하늘높이 한바퀴 도는 그 '유원지의 상징'같은 하늘차가 보이지 않았다. 겨울동안 분해해서 치우는 모양이다.  오션시티에 가서 하늘차가 보이면, 그것을 타리라고 생각했는데 하는수 없었다.


그러니까, 텅 빈 바닷가 휴양지에 나 혼자만 있는것 같았다. 햇살은 투명하고, 따스하고, 갈매기들이 와서 말을 걸고, 대서양의 파도는 힘차게 일렁이며 흰 거품을 뿌리고 깔깔대고. 파랑. 파랑. 파랑. 파랑. 파랑. 




음, 나는 아래 사진을 5/7 사이즈로 인화하여 액자에 담아 연구실에 걸겠다고 생각했다.  이 장면을 보면 힘이 날 것이다.





Posted by Lee Eunmee
Diary/Life2018. 1. 28. 06:11


내가 여기 있다가 한국으로 가게 되면 가장 아쉬운 것은 나의 친구 '에코'와 헤어지게 된다는 것일게다.  나의 귀염둥이 아들 챨리는 '스피커' 매니아라고 할 수 있다. 녀석은 온갖 종류의 스피커를 모으는 일에 '혈안'이 되어 있고, 크지도 않은 집의 창고에는 귀신딱지 같은 스피커들이 쌓여있다.  나는 내가 한국 가기 전에 저 귀신딱지들을 다 내다버려야지 하고 벼르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이런 스피커 매니아 덕분에 그 시스템의 혜택을 가장 많이 누리고 있는 이는 바로 나 자신이기도 하다. 



찰리는 '에코'라는 그 스마트 기기를 집안의 세군데에 장치를 해 놓았다 (하나면 충분한데 왜 세개씩이나? 이 대목에서 나는 이해가 안간다.) 그리고는 각각의 에코에 별도의 스피커들을 이리 저리 연결해 놓았다.  세개의 에코는 각자 세마리 강아지처럼 개별적인 기능을 한다 (나는 그렇게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이 에코들을 총동원해서 한가지 일을 시킬수도 있다. (이것은 최근에 알게 된 것이다). 



그러니까 각각의 위치에서 각자에게 주어진 일 (예컨대, 베드룸 불을 켜라 꺼라 뭐 이런)을 하는 에코들이지만 만약에 내가 "Echo, play music everywhere!" 이렇게 말하면 온집안 구석구석에 설치된 스피커가 한꺼번에 음악 소리를 낸다는 것이다.  (그걸 왜 이제서야 알려준거야? 진작에 알려주지! 내가 한탄을 하자 찰리가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내가 몇번이나 말했는데 엄마가 귀담아 듣지 않았쟎아요."  음...그랬을거야...)



그래서, "Echo, play Renaissance music Everywhere" 주문을 외워서 흘러나오는 아름다운 음악속에 나는 앉아있다. 온집안에 숨어있는 열개 가까이 되는 스피커들에서 음악들이 흘러나오자, 내 주변의 공깃방울들이 마치 보슬비 방울처럼 내 온 몸을 감싸고 내 머리를 쓰다듬고 나를 위로해주는 듯한 기분이 든다. 내가 음악의 바닷물 속에서 물고기처럼 유영을 하는데 산들바람이 불고, 물결에 이리저리 일렁이는 산호초 사이로 작은 물고기가 되어 떠도는 그런 기분.  이럴때 음악은 천상의 관능미를 전한다. 


관능적이며 

성스럽고 

상쾌한... 


내가 생각하기에 어떤 '기쁨'에서 '관능미'를 제거하면 그것은 본연의 기쁨에서 뭔가 결여된 미완의 기쁨일것이다.  사람이 '몸'을 갖고 있는 '신체적'이며 '물리적인' 존재로 살아가는 한 '관능미'는 선을 완성시키는 요소일것이다.  





Posted by Lee Eunmee
Diary/Life2018. 1. 28. 05:50



큰 아들 존의 고양이인 우리 나비는 약 9개월 정도 된 암코양이이다.  존의 직장 근처의 길거리 고양이에게서 지난 3월쯤 태어나서 존의 직장 사람들이 먹이도 주며 키웠는데,  어미가 근처 도로에서 교통사고로 죽은것이 발견 되었고 새끼가 혼자 남아서 꿋꿋하게 지내는 것을 존이 데리고 온 것이 지난 여름. 여름 방학 기간에 내가 집에 와 있는 동안 입양을 해서 내가 돌보다 떠났고 나비는 존의 무한한 애정을 받으며 지내왔다.  


짐승들이 대개 그러하듯,  나비도 내가 저를 극진히 위한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고 내가 집에 있는 동안에는 늘 내 곁을 맴돌고 있다.  특히 나비가 내게 와서 스킨십을 해 댈때는 두가지 경우인데 (1) 밥달라고 조를때, (2) 내가 책상이나 테이블에 앉아서 책을 보거나 컴퓨터를 들여다볼때.  배고플때 아양떠는 것은  당연히 생존을 위한 행동으로 보이는데, 내가 책상에 앉아 있을때 살갑게 와서 부비대고 근처를 안떠나는 이유는 뭔지 잘 모르겠다.  내가 뭔가에 집중하거나 몰두할때 그것에 대해서 '질투'를 하는걸까?  나는 대체로 이런 풀이를 하는 편이다.  옛날에 우리 개 왕눈이도 내가 공부를 하고 있으면 내 책상위에 올라 앉아 내 책을 엉덩이로 깔고 앉거나 하는 식으로 나의 공부를 방해하다가 지치면 그냥 책 모퉁이에서 배를 깔고 자고 그랬었다.  그래서 나는 그 당시에 '바실라르'의 초의 불꽃에 나온 '드방빌의 고양이'를 생각해냈었다.  밤새 'burn the midnight oil' (밤새 책상 앞에서 공부를 하는) 주인의 곁에서 촛불처럼 지키는 고양이에 대한 사색의 대목이었다.  내 개가 그 고양이 흉내를 낸다고 생각했었는데, 요즘 우리 나비가, 내가 책상에만 앉으면 따라와 책상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을 본다.  책속의 사색이 빈말이 아니었어...



우리 나비에게는 존이 모르는 여러가지 행동 양식이 있다.  나는 '관찰자'라서 물끄러니 뭔가를 볼때가 많으니까, 어느날 우리 나비의 어떤 습성이 눈에 들어왔다.  나비는 생후 약 3개월까지는 어미를 따라서 길고양이로 살았고, 야생고양이로서의 유년시절을 보낸 셈이다.  그래서 우리 나비는 밥을 먹다가 밥그릇에 밥이 남으면 뭔가로 덮어서 은폐하려고 한다. 


먹다 남은 음식을 은폐하는 것은 많은 야생동물들의 본능적 행동이라고 알고 있다.  전에 나의 야생고양이 피터 (장님 폴의 형제)를 먹이기 위해서 덤불 굴 입구에 먹이를 갖다 주었을때 피터는 배불리 밥을 먹고나서 밥그릇 위에다가 낙엽을 긁어서 덮었다.  그 행동이 신기해서 조사를 해보니 그것이 야생동물들의 자기보호용 행동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피터는 거실밖 포치에 밥을 줬을때도 주변에 나뭇잎 하나 없을때에도 밥을 먹고 나면 밥그릇 주변을 박박 긁어서 뭔가로 덮는 '시늉'을 했다.  고양이들이 용변을 본 후에 흙으로 덮듯, 남은 음식도 동일한 양식으로 덮으려고 한 것이다. 


아래의 사진 두장은, 고양이가 먹다 남긴 밥이고, 그 밥그릇을 나비가 키친타올로 덮어 놓은 모습이다.




고양이의 습성을 잘 모르는 사람이라면 이것이 조작된 것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심지어 우리 나비의 주인이라고 할만한 존 역시 내 말을 믿지 못하겠다는 반응이었다.  나비가 키친타올로 음식 그릇을 덮어 놓았다고?  하지만 이것은 사실이다. 


얼마전에 내가 곱게 수놓은 손수건이 고양이 밥그릇위에 살포시 놓여있는것을 발견한 나는 '아니 내가 수놓은 보자기를 누가 여기다 덮어놓은거지?'하고 치워놓았다.  그런데 이튿날도 그 손수건이 고양이 밥그릇에 덮여있는거라.   그때 나는 고양이의 습성을 생각해냈다.  나비 네가 한 짓이냐?  마침 그 수놓은 손수건은 테이블 아래의 바구니에 놓여 있었는데, 나비가 발끝으로 긁어다가 덮었을것이다.  나는 손수건을 접어서 높이 올려놓고, 그 대신에 키친타올을 한장 뜯어다 밥그릇 주위에 놓아 주었다.  역시나 예상대로 나비는 키친타올을 긁어다가 정확히 밥그릇위에 덮어 놓았다.


뭐 그렇다고 사람 손으로 하듯 살포시 그렇게 덮는 것은 아니다. 내가 관찰해보니, 다른 고양이들이 하듯이 밥그릇 주면을 그냥 앞발로 박박 긁는다. 그러다가 주변에 뭔가 잡히면 앞발 손톱으로 그걸 끌어온다. 그냥 지속적으로 박박 긁으면서 그런 행동을 하는데, 그러다보면 자연스럽게 그 종이(손수건)가 밥그릇 위까지 올라간다는 것이지. 우리집 아이들은 아직 한번도 그 광경을 목도한 적이 없으므로, 원래 이야기를 잘 지어내는 엄마가 뻥을 치는거라고 상상하는 눈치이다. 이젠 자기네들도 어른이기 때문에 어릴적처럼 쉽게 넘어가지는 않겠다는 단호한 태도이다.  (내가 상상의 이야기로 아이들을 많이 곯려 먹었기 때문에, 이번 일도 나의 뻥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어쨌거나 나비는 이렇게 얌전하게 제 밥 남은것을 덮어 놓았다. 나중 간식 생각나면 다시 와서 먹고 또 덮어 놓을것이다.  이 장면을 비디오로 녹화하면 좋겠지만...내게 그런 열정은 남아있지 않다.  믿거나 말거나, 고양이들은 제 밥을 잘 덮어놓을줄 안다. 아마 교육시키면 설겆이도 할수 있을거다.  나비는 나보다도 훨씬 깔끔하게 제 살림을 잘 해내며 살고 있는것이다. 




Posted by Lee Eunmee
Diary/Life2018. 1. 26. 12:12

위 사진은 웹에서 '자료'로 가져온 것이다. 


우리집 뒷마당에 출몰하는 희고 덩치 큰 고양이가 한마리 있다.  한 1년 전 쯤부터 본 것 같다.  처음에 나는 전신이 새하얀 털로 덮인 이 고양이에게 '스노우'라는 이름을 지어서 불렀다.  목에 가느다란 목줄도 있어서 그가 야생 고양이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는데, 그는 우리집 거실 밖에 자주 등장했다.   그런데 지난 여름에 왔을때, 우리집 아이들이 모두 이 녀석에게 화가 나 있었다.  


우리 뒷마당에 사는 눈먼 장님 고양이 --폴 (사도 바울)을 괴롭힌다는 것이다.  눈먼 고양이 폴은 크고 힘센 고양이가 새로 나타날때마다 늘 그들의 공격의 대상이 된다.  눈 먼 고양이라 만만해서 그런건가? 나의 폴은 새로운 고양이가 나타날때마다 고통스런 시간을 견뎌야 한다. 이 흰고양이가 덤불을 들 쑤시고 다니면서 눈먼 고양이를 괴롭히는 것이 종종 목도 되었고,  그래서 우리집 아이들이 이를 발견할 때마다 쫒아가서 야단도 치고, 막대기도 던지고 하면서 으르렁댔다.  지난 여름에는 나도 이 녀석에게 몇차례나 막대기를 던졌다.  그래서 나는 밉상 녀석을 '푸틴'이라고 이름을 붙여 주었다. 깡패 푸틴녀석. 아, 왜 하필 푸틴인가하면, 이 고양이의 주인이 근저 저택에 사는 미국 남자인데, 러시아에서 살때 이 고양이를 입양해서 러시아에서 함께 살다가 미국에 올때 데려왔다는 것이다. 그러니, 러시아에서 온 깡패녀석이라서 '푸틴'이라고 이름을 붙인 것이다. 


이번 겨울에  집에 돌아 와서도 한차례 막대기를 던져 녀석을 폴에게서 떼어 놓아야 했다.  얼마전에 폴의 거동이 수상쩍어서 살펴보니 엉덩이쪽의 살점이 보였다.  사납게 물어 뜯어서 털도 벗겨지고 생살이 그냥 드러나 있었던 것이다.  (내 가슴이 무너졌다).  아이들은 그 흰고양이 녀석이 그랬을거라고 믿고 있다.  내가 집을 비운 2년 동안 바깥 고양이들을 지극 정성으로 살펴오고 있는 젊은 미국인 부부들도 그 흰고양이가 그랬을거라고 믿고 있다. 그 부부는 고양이 주인 아저씨에게 고양이를 중성화 시키던가, 아니면 우리 동네에서 깡패짓 못하게 집에서만 키우던가 하라고 시시때때로 전화질을 해대고 있다는데, 녀석은 요즘 매일 우리집 밖에 출몰하고 있다. 


오늘 오전에도 덤불에서 폴이 비명을 지르길래 내다보니 폴이 해바라기 하는 덤불 입구에 이 녀석이 폴과 마주 앉아 있었다.  내가 잡아 죽일듯이, 잠옷바지만 입은채로 달려가보니 녀석이 폴 앞에 물끄러미 앉아있는데, 폴은 죽을듯이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일단 죽을듯이 소리지르는 폴을 안정시켜야 했다. 내가 간신배와 같이 간사스러운 목소리로 "나비야, 나비야, 걱정마, 내가 왔어, 나비야, 나비야" 이렇게 말해주자 폴은 비명을 멈췄고, 흰 고양이는 내 눈치를 보다가 쓱 사라졌다.  장님인 폴은 내 목소리를 듣고 안심했고, 깡패 푸틴 녀석은 내가 노려보니까 도망을 간 것이다.


그렇게 상황을 정리하고 집에 돌아와 생각해보니, 오늘 본 장면은 좀 의외였다.  장님 폴이 비명만 지르지 않았다면, 그들의 풍경은 아무런 문제도 없어 보였다. 덩치큰 푸틴 녀석은 장님 폴앞에 평화롭게 앉아 있었고, 장님 폴 역시 그를 마주 향해 앉은채로 비명을 지르고 있었던 것이니, 그들의 마주한 자세는 '평화' 그 자체였다.  폴이 평소에 당한게 있으니까 , 오늘 푸틴은 아무런 해코지를 할 의사가 없었는데도,  폴이 그냥 지레 놀라서 비명을 질렀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 혼자 중얼거렸다. "푸틴 녀석, 그 녀석은 친구를 사귈줄 모르는가보다.  깡패짓 하면 친구 사귀기 힘들다는 것을 모르고 깡패짓 해 놓고 친구 하자고 찾아 다니나보다. 멍청한 녀석." 


책방에서 시간보내다가 해가 저문후에 집에 오니, 어둠 속에서, 바깥 포치에 놓인 캣타워 꼭대기에 흰고양이 푸틴 녀석이 태평하게 앉아있다.  내가 "나비야, 나비야" 부르니 멀끄러미 쳐다보고 있다. 내가 그를 지나쳐 집안으로 들어서자, 그는 캣 타워에서 내려와 우리집 거실 유리문에 얼굴을 갖다 대고 양양거린다.  이상한 녀석이다. 내가 소리지르고, 째려보고, 신발짝이나 막대기를 던진 적도 있는데, 오늘 아침에도 구박을 해 보냈는데, 내 유리문에 코를 대고 양양거린다.   먹이를 한 그릇 주니 그걸 달게 먹는다. 뭐냐 너, 러시아에서 살다 왔다는 네 주인아저씨는 뭐 하는거냐? 밥도 안줘? 너 왜 밤까지 집에 안들어가고 여기와서 밥을 달래 응? 녀석은 배불이 밥을 먹더니 인사도 없이 가버린다.  조금 후에 장님 폴과 어미 메리가 왔다. 나는 또 밥을 준다.  


푸틴아, 배 부르게 밥 줄테니까,  눈먼 고양이 폴을 괴롭히지 말아라. 폴이 심성이 착해서 눈이 안보이는데도 제 동생들을 얼마나 잘 돌봤는데. 너에게도 좋은 친구가 되어줄테니, 제발 괴롭히지 말아라.  




Posted by Lee Eunmee
Diary/Life2018. 1. 26. 11:30



타이슨스 쇼핑몰에 갔다가, 반즈앤노블에서 When to Rob a Bank 와 수도쿠 책을 심심파적으로 사가지고 왔다.  마침 바겐세일 가격이라서 아마존에서 하드카피나 킨들을 사는것보다 저렴했기 때문에 기분전환용으로.  작가의 전작들을 읽어왔기 때문에, 이 책도 나를 크게 실망시키지는 않을 것이다. 


노마드처럼 이리저리 떠도는 삶이라서, 종이책을 여간해서는 안산다. 대개 킨들 버전으로 사는데,  책방에서 발견한 맘에 드는 책들을 사진으로 찍어와서 집에서 아마존 검색을 해보니,  놀랍게도 어떤 경우에는 페이퍼보다 킨들 버전이 더 가격이 높은 것도 있었다.  (결국 우리는 이런식으로 전자책의 마수에 빠지는건가?  초기에는 전자책이 종이책에 비해서 가격이 월등 쌌지만 -- 전자책의 확산으로 점자 전자책 수요가 높아지고 종이책이 밀려나면서 아마존은 슬금슬금 전자책 가격을 높이고 있는것이 아닌가?  이런 의구심이 들었다.) 


한국에 있는 동안에는 어쩔수 없이 손쉽게 아마존 킨들북을 사 볼수밖에 없지만, 미국에 있는 동안에는 책방 조사도 좀 해보고, 책 시장의 동태를 살펴야겠다. 이바닥이 어쩐지 수상쩍게 돌아간다는 괴괴한 느낌. 


그래도, 떠돌이 생활에서 종이책은 '사치'처럼 여겨지기까지 한다.  내 삶의 양태가 그러하다.  여전히 종이책에 파묻혀 지내긴 하지만, 전자책이 소리없이 부피도 없이 이미 내 삶에 깊이 파고 들었다. 


음, 집에 와서 검색하니 내가 찜 해 놓은 신간들이 전자책이 더 비싸거나 종이책과 비슷한 형상이라, (약이 올라서) 오랫만에 종이책들을 대거 주문하긴 했는데, 그것들 비행기타고 다니면서 옮기는 것도 부담스럽고, 쌓아 둘데도 마땅치 않고... 나는 내 거처나 연구실이나 임시로 머무는 여관처럼 보는 편이다. 책을 위한 내 집을 갖고 싶다. 어쨌거나, 수상쩍은 전자책 가격.


Posted by Lee Eunmee
Diary/Life2018. 1. 13. 10:27



I know just how to whisper, 
and I know just how to cry; 
I know just where to find the answers; 
and I know just how to lie. 


I know just how to fake it, 
and I know just how to scheme; 
I know just when to face the truth, 
and then I know just when to dream. 

And I know just where to touch you, 
and I know just what to prove; 
I know when to pull you closer, 
and I know when to let you loose. 

And I know the night is fading, 
and I know that time's gonna fly; 
and I'm never gonna tell you everything
I've got to tell you, 
but I know I've got to give it a try. 

And I know the roads to riches, 
and I know the ways to fame; 
I know all the rules
and then I know how to break 'em 
and I always know the name of the game. 

But I don't know how to leave you, 
and I'll never let you fall; 
and I don't know how you do it, 
making love out of nothing at all


(Making love) 
out of nothing at all, 
(making love) 
out of nothing at all, 
(making love) 
out of nothing at all, 
(making love) 
out of nothing at all, 
(making love) 
out of nothing at all
(making love) 
out of nothing at all. 


Every time I see you all the rays of the sun 
are streaming through the waves in your hair; 
and every star in the sky is taking aim 
at your eyes like a spotlight, 


The beating of my heart is a drum, and it's lost 
and it's looking for a rhythm like you. 
You can take the darkness from the pit of the night
and turn into a beacon burning endlessly bright. 
I've got to follow it, 'cause everything I know, well it's nothing till I give it to you. 


I can make the run or stumble, 
I can make the final block; 
And I can make every tackle, at the sound of the whistle, 
I can make all the stadiums rock. 



I can make tonight forever, 
Or I can make it disappear by the dawn; 
And I can make you every promise that has ever been made, 
And I can make all your demons be gone. 


But I'm never gonna make it without you, 
Do you really want to see me crawl? 
And I'm never gonna make it like you do, 
Making love out of nothing at all. 


(Making love) 
out of nothing at all
(making love) 
out of nothing at all
(making love) 
out of nothing at all
(making love) 
out of nothing at all
(making love) 
out of nothing at all
(making love) 
out of nothing at all
(making love)

I think I am gonna learn this song by heart and sing it at the festival in May. I will give it a try.



Posted by Lee Eunmee
Diary/Walking2018. 1. 4. 10:42





2018년 들어서 처음으로 '나의 숲'으로 산책을 나갔다.  날씨가 추워서 개울이 꽝꽝 얼었지만, 바람이 불지 않아 그다지 춥지 않게 느껴졌다.  겨울에도 칼바람만 불지 않으면 추위는 심각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칼바람'이 무서울 뿐이다. 


짧은 겨울해라서, 오후 세시에 숲으로 들어가서 걷다가 돌아올 무렵에는 사방이 어두워졌다.  저만치 어슬렁거리는 동물이 여우인지 코요테인지 근처 인가에 사는 개인지 식별이 되지 않을 정도였다.  


어둠속을 걷다가 생각해보니, 이 나이 먹도록, 인기척도 없는 겨울 숲속길을 해 진 후에 걷기는 처음이었다.  바람이 불지 않아서 춥지 않았고, 무섭지도 않았다.  그냥 터벅터벅 길을 따라 걷다보면 내 차를 세워 놓은 주차장이 나타나리라는 믿음 한가지로, 길섶에 쌓인 눈을 등불삼아서 걸었다.


꽝꽝 언 개울 얼음판에서 혼자 미끄럼을 타고 놀면서 -- 어릴적 할아버지가 만들어주신 썰매가 있다면 지금 참 신나겠다는 생각을 했고,  숲길을 따라 걷는 그 길이 고향집으로 가는 길처럼 여겨졌다.  미국의 숲길에서 오히려 고향길을 발견한다.  (한국은 낯설도록 너무 많이 달라졌다.)  겨울 숲길은 아름답다.  겨울 밤의 눈쌓인 숲길은 흰 눈이 길을 밝혀줘서 정겹다.  


얼음판위의 내 사진은, 개울가 바위위에 전화기 세워놓고 타이머로 맞춰 놓고 찍은 것이다.  매일 매일 겨울 숲으로 들어갈 것이다. 



'Diary > Walking'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맨발로  (0) 2020.09.22
걷기 기록: 섬 한바퀴  (0) 2020.09.16
하느님의 미술관  (0) 2017.02.06
Fall 2016  (2) 2016.08.12
When it rains it pours in Virginia, August 2016  (0) 2016.08.08
Posted by Lee Eunmee
Diary2017. 12. 3. 12:36


하얀 눈 위에 구두발자국


바둑이와 같이 간 구두발자국


누가누가 새벽길 떠나갔나


외로운 산길에 구두발자국



바둑이 발자국 소복소복


도련님 따라서 새벽길 갔나


길손드문 산길에 구두발자국


겨울해 다가도록 혼자남았네.

'Diary' 카테고리의 다른 글

Igloo in my backyard  (0) 2010.02.09
Posted by Lee Eunmee
Diary/Life2017. 2. 7. 02:04


Let me tell you a story of a blind cat whose name is Paul.  He was born on an autumn day in 2014 along with his brother Peter. His mom was one of the ordinary north American grey feral cats in your neighborhood bushes.   So, now, Paul is two years and some months old. 


I first saw the Mom cat in the summer of 2013 when I moved to this place from Maryland.  Yeah, the previous year I lost my dog, King. I saw a couple of young cats (like teen-age cats) playing in the bush near my place. They were young and active. One was the typical gray striped cat and the other was kind of Siamese cat.  They were like ghosts -- seen now but gone right away. I didn't care much about them. But the following year, in 2014, I sometimes noticed that a number of cats, about 3 or 4, are passing by my window at night and sometimes one of them peeks into my window 'without' curiosity. I mean 'without' curiosity. They simply looked like saying, "me...no...interested in anything about you guys..." I sometimes put some food out in the porch to see if anyone is coming to eat it.  Little by little, I noticed that they come and eat when I am away. It was like playing hide-and-seek. They come to eat but I never saw them eating. 


Little by little, very slowly, the two of them came to have their free daily meal at my porch. And one autumn night, I saw the grey cat eating at my porch along with two kittens. One was very ugly and the other was a little bit small but cute.  Oh, they were so cute....


I sometimes saw the three of them playing in my backyard under the autumn moon.  The kittens were also the ordinary gray striped ones, and I assume the white Siamese cat was not their biological father, although he was very gentle and caring for the two kittens. I spent more and more time observing the bush area in my backyard to find this cat family in those days.  And one day, looking into the cave under the sun light, I found the cute little one's eyes had been infected and he had lost his sight.  He was sitting silently in the cave waiting for his family. He was there. Silent.  (Feb. 7, 2017)



Dear Paul...


Yeah, his name is 'Paul.' Is it she? Not sure. Some say it's 'he' and I find no 'ball' so I assume it is 'she.'  But anyway, I named him 'Paul' that fall which was two and some more months ago from now.  You know the apostle Paul in the bible, the guy who used to be 'Saul' but was named 'Paul' ever since he encountered the Lord.  He got blind and then saw the real light ever since.  I named this blind cat after the apostle 'Paul' hoping that his days be filled with blinding inner lights.  Dear Paul, have you met your Jesus? I am away from Paul now, about 15 hours flight away across the planet earth. It is day time so it will be deep in the night in your place. My days here is passing so quickly.  Do not imagine that I think of you very often...no...  I think of you sometimes...  I come back to this page sometimes to find your photo here and imagine what you are doing now.  Does Charlie and John provide you with milk regularly? Does anyone annoy you?  Is the white cat still bothersome to you? Do you .... do you remember me? Do you...do you remember my voice?  Do you know that sometimes I think of you? (Maybe, are you asking the same questions to me?) (March 21, 2017)



(to be continued....)

Posted by Lee Eunmee
Diary/Walking2017. 2. 6. 12:41


나는 이 세상에 와서 만 53년을 살았다.  


그 세월동안 병치례 하느라 입원을 한 적도 없고, 무탈하게, 그럭저럭 건강하게 잘 지내왔으니 그간의 은혜만으로도 넘치는 복이다. 


요즘 명리학 공부중이라는 내 친구가 전하는 말로는, 자기하고 나하고 생일이 같은데, 자기하고 나하고 그래서 사주가 비슷한데, 우리는 둘 다 '여름 사람'들이라고 한다. 여름이면 살아나고, 겨울이면 기운이 떨어지고. 나무들처럼 말이다. 우리는 둘다 그럭저럭 크게 이루는 것도 없이 크게 잃는 것도 없이 평범한 삶을 산다고 한다.  그것 참 정말로 그렇다면 복도 많은 운명이다. 어차피 내가 뭘 크게 이룰것 같지도 않은데, 크게 잃는 것도 없다하니 그것만 해도 어딘가. 내 친구는 공주처럼 태어나서 귀부인으로 산다. 나는 공주처럼 태어나지도 않았고, 귀부인으로 살지도 못한다.  그래도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그게 그건가부다. 대동소이 할 것이다. 그러니 크게 자랑할 것도 크게 억울할 것도 없다.  아마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다 고만고만하겠지.  내가 개미떼를 내려다보면서 그게 그것처럼 여기듯이. 



1년후에 만 54년을 살았을 때, 내가 여전히 튼튼한 두다리로 걷고, 웃고, 그랬으면 좋겠다.  10년후에도. 20년 후에도, 30년 후에도. 



나이 오십을 넘기니 전에 목마르게 찾아가 보던 예술품들도 시들하고, 시간이 있을 때마다 하느님이 지으신 작품들을 보고 싶어진다. 나무, 풀, 하늘, 고양이, 그런것.  그게...나이가 주는 선물인걸까?  미술관과 숲길  둘중에 어딜갈래? 물으면 나는 주저없이 '숲길'을 선택할 것이다.  사람이 지어낸것 중 아름다운 것이 참 많다.  하지만 그 무엇도 하느님이 지으신 풀 한포기보다 더 아름다울수는 없다.  내 검은머리 속에 늘어나는 흰머리들이 내게 그런 얘기들을 해 준다. 



마음이 가는 곳으로 나는 갈 것이다.  



'Diary > Walking' 카테고리의 다른 글

걷기 기록: 섬 한바퀴  (0) 2020.09.16
Beautiful  (0) 2018.01.04
Fall 2016  (2) 2016.08.12
When it rains it pours in Virginia, August 2016  (0) 2016.08.08
Keen Whisper Sandal  (0) 2016.07.27
Posted by Lee Eunmee
Diary/Walking2016. 8. 12. 08:07



안녕 

나의 여름.  안녕 나의 칠월. 

안녕, 온종일 뒹굴거리며 내다보던 초록세상. 

안녕, 잠시 안녕 나의 버지니아. 

안녕, 잠시 안녕 나의 고양이들. 








가을을 향하여. 다시 인천. 



'Diary > Walking' 카테고리의 다른 글

Beautiful  (0) 2018.01.04
하느님의 미술관  (0) 2017.02.06
When it rains it pours in Virginia, August 2016  (0) 2016.08.08
Keen Whisper Sandal  (0) 2016.07.27
Give us this day our daily bread (빵의 기적, 얼음의 기적)  (1) 2016.07.26
Posted by Lee Eunmee
Diary/Walking2016. 8. 8. 23:40



8월 4일, 버크 호수를 한바퀴 돌고나서 집으로 향하는데,  오래 참았다는 듯이 쏟아붓던 기습적인 폭우.  비가 하도 좋아 갓길에 차를 세우다. 


차체가 파도에 빠진듯한. 온세상이 물보라에 일렁이던 짧은 순간.  이런 순간이 격하게 좋다.  아무 목적도 없이 그저 그 순간안에 그대로 머물고 싶은 것이다. 



차창을 때리는 빗방울은 풀잎같구나. 칼날 같구나.  

'Diary > Walking'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하느님의 미술관  (0) 2017.02.06
Fall 2016  (2) 2016.08.12
Keen Whisper Sandal  (0) 2016.07.27
Give us this day our daily bread (빵의 기적, 얼음의 기적)  (1) 2016.07.26
Burke Lake: My One Day Hike 2016 (50 Kilometers)  (0) 2016.07.26
Posted by Lee Eunmee
Diary/Walking2016. 7. 27. 01:17


내가 하루 50킬로 장거리에 걷기에 신고 나간 신발은 KEEN Whisper Sandal 이다. 5년 가까이 이 샌들을 봄 여름에 가볍게 걸으러 나갈때 신은것 같다.  그러니까 10마일 (16킬로미터) 정도는 이 샌들을 신고,  장거리 15-20마일 갈때는 여름에도 발목까지 감싸는 하이킹화를 신었다. 이것이 두켤레째인데 작년 겨울에 아마존에서 싸게 사서 (겨울에 여름제품 산거니까 그냥 떨이값에) 잘 보관하다가 올 여름에 꺼내 신었다.


처음에 집 근처 대략 10마일 안팎 걸을때는  맨발로 신었는데 (샌들이니까), 그래도 자질구레하게 발에 상처가 났다. 뒷꿈치에 물집이 생긴다거나 이러한.  내가 가볍게 걷는다해도 10킬로미터 정도를 걷는거니까.  그렇다고 더운 여름에 발목 하이킹화를 신기도 덥고, 그래서 내가 생각해 낸 것이, 발등만 가리는 양말을 신고 그 위에 샌들을 신는 것이다.  양말을 신으니 발 피부는 보호를 받고, 샌들의 통기성은 그대로 유지를 하고.  이렇게 걸으니 자질구레한 발 피부 상처 문제가 사라졌다.  발도 시원하고. 


일년에 한번만 해도 영광인 50킬로 대장정을 할까 말까 어쩔까, 그냥 별 준비도 없이 걸으러 나가면서 역시나 양말신고-샌들신고를 선택했다. 걷다가 발 아프면 그냥 오지 뭐, 이런 심산으로. 


그런데 이러한 방법이 내겐 매우 효과적이었다. 걷는 내내 발이 아주 편했다. 마지막 5마일 걸을때는, 아무래도 발이 붓고 피곤하니까, 양말도 벗어버리고 그냥 샌들만 가볍게 신고 걸었다.  킨-샌들. 합격 (two thumbs up!) 


하여, 장거리 워킹을 '조금'하는 경험자 입장에서 내가 추천하는 '발' 관리 및 신발 선택 방향은,

(1) 평소에 내 발을 잘 관찰하면 오른발, 왼발 따로따로 취약점이 있음을 알게된다. 가령 내 발은 왼발 네번째 발가락의 살이 유난히 통통해서인지 옆발가락과 마찰이 일어나면서 물집이 생기곤 한다. 장거리 걸으면 영락없다. 그래서 걸으러 나가기 전에 그 부분에 부드러운 밴드를 붙여준다. 그러면 아무런 문제도 생기지 않는다.  이렇듯 자신의 발의 섬세하고 연약한 어떤 부위가 있어서 습관적으로 그 부위에 물집이 생긴다 싶으면, 걷기 전에 문제의 부분에 부드러운 밴드를 겹쳐 붙여서 사전에 조치를 취해준다. 


(2) 신발은 전쟁터에 나가는 병사의 무기와 같다. 좋은걸 사 신는다. 내 발에 편안하고, 발이 부어도 발가락이 자유롭게 움직일수 있는 넉넉한 사이즈로. 끈을 조일수 있는 구조로 (좀 넉넉한 사이즈로 사서 끈으로 적당히 조여주면 된다).  여름 장거리 평지 워킹에 (등산이 아닌 평탄한 트레일 수준) 킨-샌들 같은 아웃도어 샌들이 제법 믿을만 하다. 그래도 섬세한 발 피부 보호를 위해서는 양말을 신어주고 그 위에 샌들을 신어도 아주 좋다.  샌들은 다른 사람들이 사용해보고 추천하는 것이 안전할 것이다.  가벼운 하이킹이나 장거리 워킹에 적합한.  내가 사용한 것으로는 킨 샌들이 듬직하다. 그러나 반드시 킨 샌들만 좋은것은 아니다. 7년 전에는 끈 가느다란 (시내 돌아다니는 용도의 날렵한) 나이키 샌들을 신고 바위가 뒤섞인 트레일을 아무 생각없이 다녀온 적도 있다. 그래도 발은 무사했다. 그냥 뭐 튼튼한 것을 추천한다 (걷는데 샌들 끈이 끊어진다거나 이런 불행한 사태가 나면 안되니까.)


(3) 나는 걸으러 나갔다 오면 '자동'으로 플라스틱 통에 물 받아다가 족욕을 한다. 그게 너무 즐거워서 -- 마치, 족욕을 하기 위해 땀 뻘뻘 흘리며 걸으러 나간것도 같다.  족욕은 즐겁다. 지상 낙원은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있다. 플라스틱 물통에 발 담그고 앉아서 비누칠하고 비누칠하고 비누칠하고 발 여기저기 닦아주고 또 비누칠하고...참...즐거운 인생이다. (뭐 수천만원 들여서 창녀를 불러다가 짧게 재미보고 길게 사회적 망신을 산단 말인가. 그냥 물통에 물 받아다가 비누칠 놀이만 해도 파라다이스인데. 참, 이 재미를 모르다니. 안타까운 일이다.)





Posted by Lee Eunmee
Diary/Walking2016. 7. 26. 20:59



어제 2016년 7월 25일, 하루에 50킬로미터 걷기를 시행하여 결과적으로 53 킬로미터를 약 13시간에 걸쳐 마무리를 하게 된 쾌거!를 기념하는 사진 몇장.


새벽 5시 10분 버크 호수.  아직 해가 뜨기 전이라 컴컴했다(무보정).  하늘이 보이는 호숫가도 이렇게 어두우니 여기서 나무 울창한 숲길로 들어서면 눈앞이 잘 안보인다.  그래도 조심조심 걷다보면 눈이 어둠에 익숙해지고, 작은 돌멩이가 덮인 길이 '희게' 빛난다.   그래서 노래 '이루어질수 없는 사랑'에서 '밤새워 하얀 길을 나 홀로 걸었었다....' 이 가사가 경험자에 의해 씌어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군. 달이 없는 밤이라도 대체로 길은 하얗게 보인다 (모래알갱이나 돌멩이들이 덮여 있을때). 희게 빛나는 길에 의지해서 더듬 더듬 걷다보면 날이 밝아온다.  참 신비로운 경험이다.  어둠속에 혼자 있을 때, 하느님과 가까워진다. 무서우니까 하느님 손을 꼭 잡게 되는 것이다. 







버크 호수 걷기 노선중에서 내가 '호수 요정이 숨겨 놓은 길'로 부르는 좁다란 오솔길.  바로 옆에서 호수가 찰랑거리고, 어릴적 논둑길, 밭둑길 같은 그런 아주 좁다란 길이 잠깐 이어지는 곳이 있다.  총 여섯바퀴를 도는 동안 노선을 이리저리, 방향도 이방향 저방향 바꾸면서 걸었는데 이 요정의 길은 다섯번 지나쳤다.  지나칠때마다 행복하다.  요정의 길이니까. 








이 빵 사진에 대한 정확한 기술을 위해서, 어제 아이폰 메모장에 썼던 기록을 가져와 보았다.  (최종 편집이 오늘 아침 시각으로 되어 있는 이유는 마지막 떠난 기록까지만 되어 있고, 마친 시각을 기록을 안해놔서 그걸 마저 적고 총 시간을 적었기 때문이다. ) 이 기록이 한뼘안에 들어가는 짧은 것이지만, 난 이걸 적기 위해 13시간 가까이 거북이 놀이를 해야 했다. 


기록을 보면 1-2-3 까지는 시간이 점점 단축된다.  그러니까 한바퀴에 오마일여 (오마일 조금 넘음)를 걷는것인데 90분 -- 85분 --80분으로 줄어든다. 그 전날 밤에 열대야 때문인지 두시간만에 잠에서 깨어 뜬눈으로 보내고, 잠도 안오니까 홧김에 새벽에 길을 나섰기때문에 처음에는 길도 어둡고, 몸도 무겁고, 그냥 터벅터벅. 두번째 돌때는 꾸벅꾸벅 졸기까지 했다.  두번째 돌고나서, 차에서 쉬다가 잠깐 잠이 들었다. 아주 잠깐, 한 20분쯤 푹 잠을 잔것 같다.  그런데 그 잠이 꿀잠이었던 것 같다. 세바퀴 돌때는 내 발에 날개가 달린듯 가볍고, 몸도 가벼웠다. 


세바퀴 돌았으니 목적한 거리의 절반을 수행해 낸 것이다. 그 때부터 반환점에 들어선 셈인데 몸도 슬슬 지치기 시작한다. 벌써 25킬로를 걸은거라구, 당연히 지치지.  그래서 속도가 떨어지기 시작한다.  네번째 돌때는, 배가 고팠다.  배가 쓰린듯 고팠다. 고통스럽게 여겨졌다. 나는 먹을것을 챙겨오지 않은것이다.  새벽에 가게에 들를수도 없고, 그냥 나온건데 이렇게 걸을줄 몰랐지.  네바퀴 돌고나서 나는 이렇게 적었다.  '배고프고 지친다. 먹을게 아무것도 없다.'  


별 생각없이 나왔으니 그냥 이쯤에서 집으로 가야 된다.  그런데, 내 내부에서 더 가고자 하는 의지가 어떤 의지 같은것이 솟아올랐다.  나 지금 잘 걷고 있어.  오늘 50킬로 걸을수 있을것 같아. 벌써 2/3를 마쳤다구. 이제 10마일만 더 가면 돼.  



빵의 기적 



나는 주차장의 내 차 주위를 살폈다.  하이틴으로 보이는 남녀 학생들 몇명이 차 트렁크 쪽을 열어 놓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열린 트렁크로 아이스박스가 보였다.  소풍 나왔을것이다. 소풍 나왔으니 먹을것을 챙겨 왔을 것이다.  가서 뭔가 먹을것을 구해 와야지.  내가 다가가서 (지친, 노브라, 노화장, 시커먼 오십대 아시안계 남루한 아줌마의 형상), "Excuse me, you guys have anything to eat? I'm on my walking project now.  I have enough water but I am out of food. I need something to fill my stomach. Bread or muffin or anything."  여학생들은 영문을 알 수 없다는 뚜---한 표정으로 서 있는데, 키가 장대같이 크고 빼빼마른 전형적인 미국 남자 고등학생 녀석이 "Hey, I have bread in my car..." 하더니 바로 옆 차문을 열고 가방에서 '사라 리' 식빵 봉지를 꺼낸다.   그러더니 맨 위에서부터 식빵 네장을 꺼낸다. "It it enough?" 그는 나의 의향을 묻는다. 더 필요한지 이거면 되는지. "Oh, thank you, that's good.  I can pay you. I'm just out of food, nowhere to buy here."  내가 빵값을 내겠다고 하자 소년은 손사래를 치며 됐단다.  소녀들은 여전히 뚜--한 표정으로 빵을 구걸하는 나를 쳐다보고 서있고.  


그렇게 해서 얻은 빵이 저 사진속의 빵이다. 나는 나무그늘, 차에 앉아서 이 빵 네장을 세상에서 가장 귀하고 맛있는 음식으로 먹어치웠다.  이 빵을 먹으면서 나는 알았다. 주기도문에 'Give us this day our daily bread'의 실체를. 내가 고통스러운정도로 배가 고플때, 무상으로 주어지는 딱 알맞은 만큼의 지상의 양식. 다른 무엇, 다른 어떤 가치도 이 빵을 이길수는 없는거지.  나는 '하느님'이 내게 보내신 빵을 먹으면서, 오늘 나의 프로젝트가 성공할 것임을 직감했다. 나는 결국 중도포기 하지 않고 이걸 해 낼거야.  (빵이 하늘에서 떨어져야만, 혹은 마법사의 모자에서 나오는 비둘기처럼 튀어나와야만 기적이라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평생 한번도 기적을 경험하지 못할것이다. 엉뚱한 곳에서 엉뚱한 것을 찾고 있으므로. 기적은, 그것이 거기에 있는 것이다.  내가 배가 고플때 먹을 음식이 있다면 그것이 기적이다.  구걸을 해서라도 음식을 마련한다면 은혜와 기적이 어우러진 것이다.  내가 배가 고픈데, 누군가  낯선이가 새로산 빵봉지에서 새 빵을 꺼내 몇장 준다면 은혜가 넘쳐 흐르는 일이다.  그게 하느님이 일부러 나를 위해 마련한 것이라고 믿어버리는 것은 나의 믿음의 방식이며 생존의 방식이다. 내가 용기를 내어 50킬로미터를 지옥같은 염천에 해 치우는게 가능했던 것은 -- 하느님의 빵을 먹었다는 확고한 믿음 때문이었을 것이다. ) 








얼음의 기적 






빵을 먹고, 배고픈 것을 해결하고, 쉬고 다시 걷기에 도전하는데 숲길 입구쪽에 버려진 얼음덩이들.  아마도 피크닉 나왔던 사람이 아이스박스를 정리하면서 얼음덩이를 내버린 모양.  그래서 화끈거리는 발을 그 얼음덩이위에 얹고 냉찜질을 한참 하였다.  발이 훨씬 가벼워졌다.  나는 이것을 '얼음의 기적'이라고 부른다.  주님께서 염천에 내가 걷는 것을 염려하시어 길위에 얼음덩이를 뿌려 놓으시다.  얼음 버린 사람이야 자기가 뭘 하는지도 몰랐겠지만, 그건 글쎄 우리 하느님이 내 발 찜질해주시려고 그렇게 하신거라구.  



고난의 길 


이 길은, 약 200미터 이어진 호수의 뚝방 길이다. 호수의 물높이를 조절하기 위해 만든 뚝길 일 것이다. 볕 좋은 가을날 이 길을 산책하면 참 좋다.  탁 트이고 호수 전체를 내다 볼 수도 있고.  하지만 화씨 100도를 넘는 뜨끈뜨끈하고 쨍쨍한 날씨에 이 길은 한마디로 '튀김솥'이다. 장작이 이글거리는 아궁이 속에 던져진 것 같은 미치게 뜨거운,  사진은 더위가 한풀 꺾이 오후 4시반에 찍은 것이라 그나마 내가 '이제 살겠네' 하면서 여유가 생겨서 찍은 것이다. 한낮에는 이 길을 통과하는게 너무 무서워서 사진이고 뭐고... 그냥 통과하기에 바빴으니까.  여섯번 이 길을 통과한 중에서 한낮 세번 통과는 고통 그 자체였다. 땅에서, 하늘에서, 사방에서 불길이 훅훅 내게 오는것 같았으니까.  게다가 한낮에는 숲길 산책로에도 사람이 없었다.  날이 하도 뜨거우니까, 사람들이 호수 기슭에서 뱃놀이를 즐기거나 하는 정도였고, 산책로에, 낚시터에 사람이 안보였다.  그 큰 호숫간 숲길이 그냥 '무인천지'였다.   그런 뜨겁고 찌는 날을 택해서 나는 50킬로 장정을 나간 것이다. (낸들 알았나. 알았으면 안했겠지... 하지만 난 해냈다는 것이지.)


집에 와서 지삐한테, "지삐야, 엄마 오늘 50킬로 걷고 왔다. 너도 50킬로 걸어봤나?" 했더니, 지삐 왈, "군대에서 완전무장하고 70킬로 행군 해봤는데요..."  


50킬로미터를 걸었다.


내 영혼은 좀 가벼워졌는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열두시간도 넘는 그 행군하는 동안 하느님이 내 손을 꼭 잡고 계셨다는것을 시시각각 느꼈다.  서늘한 나무 그늘, 푸른 잎사귀들, 잔잔한 물결, 새소리, 내 주위를 에워싸는 모든 것 속에서 하느님이 웃고 계셨다. 



Posted by Lee Eunm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