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ry/Life2018. 11. 3. 05:34


프레디 머큐리 오빠가 돌아왔다!


영화 보는 내내 현실을 잊었다. 의자 등받이에 기대 앉아 있을수도 없었다. 목을 길게 빼고 앞으로 앞으로 스크린 안으로 들어가고 싶었지.  



못살아, 못살아, 내가 못살아...이 장면을 그대로 재현해 내다니. 어쩔려구 아이고 아이고... 난닝구 오빠. 오랫만에 성감대 자극받다. 다 필요없어. 퀸만 있으면 그뿐. 


이 세상에는 두종류의 인간이 있을 뿐이다.  프레디를 아는 인간과 그를 모르는 인간. 그를 알면서 그를 사랑하지 않을순 없다.  그러므로  그를 아는 인간과 그를 모르는 인간 사이의 소통은 거의 불가능하다. ㅋㅋ



카셋트테이프 두개에 담긴 퀸의 노래들을, 테이프가 늘어지도록 듣고 또 듣던 시절의 기억이 되돌아 와서 귓가에 맴돌았다. 옛날처럼, 퀸의 노래를 틀어놓고, 아리조나를 네바다 모하비 사막을 달려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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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ry/Life2018. 11. 3. 00:00

자현 스님의 조금 특별한 불교이야기



자현스님이 인도에서 태생한 불교가 더운나라 인도라는 지리적 사회 문화적 환경에서 어떠한 영향을 받았는지, 고타마 싯타르타가 어떻게 당시의 상업문화와 연결되는지, 책의 부제에서 보여주듯 '자본'과 종교 혹은 '권력과 종교'는 어떤 관계가 있는지 그 관계를 중심으로 불교사를 대충 정리해 주었다.  이 책에는 인도에서 서방으로 그리고 중국으로 불교가 전승되고 중국에서 불교가 어떤 양상으로 전파되었는지까지 대충 설명해준다. 한국이나 일본으로 건너간 불교 부분에 대한 설명이 없어서 아쉬웠다. 쓰다가 만 책 같기도 하고....용두사미 같기도 하다. (처음에는 재미있게 읽기 시작했는데, 뒤로 가면서 뭔가 저자가 쓰기가 귀챦아졌는지 허둥지둥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나의 무식의 소치일수도 있다.) 게다가 결론 부분에 가서는 -- 아니 왜 이러시나? 고개를 갸우뚱하며 의아한 느낌이 들고마는 성급하고도 거친 맺음이었다.  뭔가, 글로 써서 정리하고 설명하기보다는 강의를 더 잘하시는 분인지도 모르지. (강의는 잘 하신다.)




우선 불교와 상업자본이 당대의 한 흐름이었음을 설명하신 부분은 내게는 새로운 배움이었다.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했다. 상업-교류의 가치나 효과에 대해서 내가 그동안 눈을 감고 있었음을 자각하게 되었다. 






과문한 탓인지, 새로 배운것 또 한가지.  브라만교의 카스트제도. 그것을 단순히 브라만-크샤트리아-바이샤-수드라 의 4계급 정도로 상식적인 수준에서 대충 알고 있었는데, 이 표를 보면 지배층과 피지배층이 인종적으로 다른 사람들이었다.  농경민-원주민-흑인등이 그들이 말하는 '불가촉 천민' 들이었다.


돌아보면 한국, 조선 땅에서도 '농자천하지대본야'라고 띄워주긴 했으나 정말로 농경민이 제대로 사람대접 받고, 사회의 지배계층이던 시기가 있었는가?  권력은 항상 '골품'에 기반한 귀족층과 무력을 가진자들, 그리고 돈을 가진자들이 나눠먹고 있었고 농민들은 늘 그들이 수탈해도 되는 만만한 개살구아니었던가.  나는 이런 것을 이제야 깨닫는다.  고타마 싯타르타도 그것을 꿰뚫어보았다. 놀라운 혜안이다. 그가 신분제를 척결하기 위해서 무엇을 했는지, 이 신분제도 자체를 타파하기 위해서 어떤 행동을 했는지는 구체적으로 잘 알수 없다.  그는 일단 브라만교의 신분제도 자체를 좋아하지는 않은것 같은데, 그렇다고 구체적으로 그것을 타파하려고 하지도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 당시인으로서의 한계였을지도 모르지. 역시 잘 모르겠다. 




이 자명한 이치를, 나는 이제서야 깨달았다.  나는 도대체 세상을 어떻게 살아온건가? 어리둥절해진다. 


현대사회에 와서 '불교'만이 살아갈 해법이고, '순종'이나 '예속'을 표방하는 다른 종교 (기독교)는 인간의 행복에 도움이 안된다고 그는 책을 마치며 설파한다. 그 부분이 어딘가 책쓰다가 피곤해서 대충 쓰고 지나간 부분처럼 보인다. 


현대인인 나는 불교를 제법 많이 공부하고 그 쪽길을 가다가 기독교도로 전향을 했는데, 나는 기독교에서 그가 말하는 '해탈' '열반'의 실체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는 '빗방울'의 비유를 들어서 -- 하나의 빗방울이 대해에 들어가 '대해'가 되는가, 아니면 하나의 빗방울이 대해에 들어가 빗방울 가운데에 대해를 품는가하는 문제로 불교의 종파를 이렇게 저렇게 구분지었는데, 어쨌거나 빗방울이 대해에 스며들건 아니면 대해를 빗방울에 품건, 그러한 길로 가기위해 내가 선택한 것이 기독교라는 것이지. 


자현스님과 내가 생각을 달리 하는 부분은 근본적으로, 종교는 도구인가 목적인가 하는 점이다. 자현스님은 이 책에서 '종교'를 '행복하기 위한 도구'라고 정의했다. 내가 불교의 테두리 안에서 살때는 나도 비슷한 생각을 가진 것 같다. 그런데 기독교인이 되었을때 종교는그것이 궁극적으로 내 삶의 목적인지 아닌지는 아직 잘 모르겠으나 내 삶의 도구는 아니더라는 것이다.  한가지 추측해 볼 수 있는것은 '말로 설명하기 힘든 것을' 말로 전하는 과정에서 그는 '도구'라는 용어를 취했을지 모른다. 


또 한가지, 자현스님의 관점에서 보면 불교도는 '자아가 독립'적으로 열반을 향해 수행해 나가는데, 유일신교(예, 기독교)에서는 유일신에 '예속'되는 것이므로 자아가 독립적이지 못하다는 구분을 한다. 이 때 나는 빙긋 웃었다.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아주 모르지 않는다. 기독교도 입장에서 설명을 하자면, 내가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부를때, 나는 나의 아버지에게 예속된 것인가? 자식은 부모에게 예속된 것인가?  자식이 부모에게 예속 隷屬되었다면 그것이 노예 奴隸와 다를것이 무엇인가?  내가 일부러 한자표기도 했는데, 그 '예'자가 동일하다. 기독교에서 하느님과 나의 관계는 주인과 노예의 관계가 아니라, 부모와 자식의 관계이다.하하하. 어쨌거나 책의 서두에 기독교의 역사적 발전 양상을 구약시대의 폭군적이고 무서운 하느님에서 -- 신약시대의 사랑의 하느님으로의 변모에 대한 설명은 놀라운 통찰이었다. 나도 여태 모르고 있었다. 


자현스님이 조금 더 정교하게 불교이야기를 마저 해주신다면 좋겠다. 중국불교까지 훑으셨으니 이제 한국과 일본에 어떻게 흘러갔는지 설명도 해주셔야.  아주 재미있는, (내게 새로운) 관점들을 많이 소개해주셨으므로 즐거운 책읽기였다.  그렇지, 불교에도 이야기꾼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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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ry/Life2018. 10. 29. 09:44

https://www.bartleby.com/145/ww331.html

          


What though the radiance which was once so bright

          Be now for ever taken from my sight,

              Though nothing can bring back the hour

          Of splendour in the grass, of glory in the flower;

              We will grieve not, rather find

              Strength in what remains behind;

              In the primal sympathy

              Which having been must ever be;

              In the soothing thoughts that spring

              Out of human suffering;

              In the faith that looks through death,

          In years that bring the philosophic mind.



한때 밝았던 광휘가 이제 영원히 내 시야에서 사라져 버린다해도

초원의 빛이여, 꽃의 영광이여, 다시는 그 시간을 돌아킬수 없다해도

슬퍼하지 않으리. 남아있는 것에서 힘을 찾으리니 

태초부터 영원까지 이어질 본래의 동정심으로부터,

인간의 고통으로부터 샘솟는 위안의 상념으로부터

세월속에 무르익는 철학적 이성이 가져오는, 죽음을 통찰하는 믿음으로부터 

 

...


       The Clouds that gather round the setting sun

          Do take a sober colouring from an eye

          That hath kept watch o'er man's mortality;

          Another race hath been, and other palms are won.

          Thanks to the human heart by which we live,

          Thanks to its tenderness, its joys, and fears,

          To me the meanest flower that blows can give

          Thoughts that do often lie too deep for tears.

                                                         

지는 해 주위로 모여드는 구름은

인간의 유한함을 지켜봐 온 눈(태양의 은유)으로부터 음울한 빛으로 물들어간다. 

또 하나의 경주가 끝났고 (죽음을 의미), 종려관(승리의 상징)을 얻었도다.

우리가 의지해 살아가는 이 마음 덕분에

그 부드러움, 흥겨움, 두려움등으로 해서 

흩날리는 하챦은 꽃이라 할지라도, 

너무나 깊은 상념들을 내게 보내노니, 눈물조차 흘릴 수 없어라. 



워즈워드의 시는, 나이를 먹을 수록 그 맛이 깊어진다. 이런 뜻을 내가 스무살에 이해할 수 있었겠는가. 나이를 먹는다는 것도 괜챦은 일이다. 우리에게 워즈워드가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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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ee Eunm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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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ry/Life2018. 10. 27. 12:01




개화(開花)

  이 호우 



꽃이 피네, 한 잎 두 잎.

한 하늘이 열리고 있네.


마침내 남은 한 잎이

마지막 떨고 있는 고비.


바람도 햇볕도 숨을 죽이네.

나도 가만 눈을 감네.


Posted by Lee Eunm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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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ry/Life2018. 10. 26. 10:30


도대체가 꽃봉오리 맺히고 한달이 넘도록 필 기미를 보이지 않는 이름도 모르는 이 친구가 요즘은 조금씩 조금씩, 고추가 익어가듯 붉은 물이 들기 시작하더니, 오늘 아침에는 꽃받침에 해당하는 부분이 꽃에서 살짝 떨어진 것이 보인다. 곧 꽃이 피려나보다.  내가 오피스를 비운 사이에 피면 내가 섭섭할텐데. 그렇다고 가는 곳 마다 강아지처럼 안고 다닐수도 없고. 


이름을 찾아 낼 때까지, 너의 이름은 '기다리' 

기다리게 만들어서

기다려야 하니까.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succulent 이미지를 검색하니 이 친구의 조상이나 친구들이 곧바로 등장.  음, 너의 이름은 Cotyledon Pendens 다.  





톰 티트토트 네 이름은 톰 티트토트

계몽사 영국동화집에서, 게으른 아가씨가 거짓부렁으로 왕비가 되는데, 매일 한필의 비단을 짜야 했는데, 도깨비가 나타나서, 하루에 세개씩 이름을 말해서 한달안에 그 도깨비 이름을 알아 맞히면 한달간 비단을 짜 줄것이고, 만약에 한달이 끝나도록 이름을 못 맞추면 도깨비의 색시가 되어야 한다는 '거래'를 하게 되었다.  아가씨는 설마 한달안에 그걸 못 맞힐소냐...했지만, 마지막 날이 다가오고, 마지막 날 왕이 밥먹다 깔깔대고 웃으며 하는말 -- 낮에 사냥을 갔다가 숲속에서 노랫소리가 들려 그리 가보니 나무 동굴 속에서 도깨비가 비단을 짜면서 '내 이름은 톰 티트토트 내 이름은 톰 티트토트' 우스꽝스러운 노래를 부르더라고. 너무 웃겼다고. 결국 마지막 날 밤에 게으른 아가씨는 '네 이름은 톰티트토트~  약오르지롱~' 하고 왕과 행복하게 살았다는 기묘한 결말. 어린이 동화이지만 권선징악도 아니고, 운좋은 자가 승리한다는.  그거 읽을때마다 뭔가 부당하다, 도깨비가 불쌍하다 생각했는데 -- 아아, 영국 어린이들은 이미 어릴때부터 인생은 부당할수도 있다는 것을 배우는구나.  


http://www.sacred-texts.com/neu/eng/eft/eft02.htm

참 멋진 세상이다. 문득 생각이 나서 tom tit tot로 구글 검색을 해보니 곧바로 원문이 떠 준다. 






Posted by Lee Eunm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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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ry/Life2018. 10. 23. 14:16

속임수의 심리학: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 김영헌 지음


지은이는 현직 검찰청 수사과장님이라고 한다. 어릴때부터 '수사반장'을 즐겨봤고, 범죄 관련 다큐, 드라마, 시사프로 이런것을 심심파적으로 보는 처지인데, 증정본으로 들어왔길래 집어 들었다가 킬킬 웃어가면서 휘리릭 읽었다. 저자는 기업형 큰 사기 사건이건 개인적 작은 사기사건이건 간에 사기치기를 가능하게 하는 요인은 개인의 '욕망' '아는 사람에 대한 신뢰'  그리고 '불안'이라고 규정한다. 사건 뉴스에 많이 나오는 크고 작은 '사기사건'을 유형별로 사례별로 소개하는데 대개 낯익은 예들이다. 그러므로 누구에게나 닥칠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이를 방지하는 길은 우선 이러저러한 사기행각이나 사기 사건의 유형을 미리 인지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려면 뉴스를 보고 주변의 사기사건에 관심을 가지는 것도 좋겠다. 



내가 운 좋게도 크게 사기를 당하지 않고 사는 이유는 일단 내가 사기꾼의 '타겟'이 된 적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운이 좋았다는 얘기다. 형사님이나 이런 전문가들 말씀으로는, 사기꾼이 작정하고 사기치려고 덤벼들면 베테랑 형사도 넘어간다고 한다. 사기꾼을 체포하여 넘긴 형사님도 나중에 그 사기꾼에게 전재산 다 털린적도 있다고 한다. 그러니 사기꾼을 안 마주치는 것이 우선일것이다. 



그 외에 성격적으로 사기꾼과 거리를 유지하는 밑천은, 우리 할머니 슬하에서 살면서 '사람이 제가 노동하지 않고 거저 먹으려고 들면 안된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씨 뿌리고 거두는것만 진짜다' 뭐 이런 '농사꾼'의 철학을 뼛속깊이 배웠기 때문일 것이다.  흙은 믿어도 남의말은 절대 믿어서는 안되고, 남이 가진것 넘보지 않고, 그냥 맨땅에라도 헤딩하는 정신으로 살면 - 사기꾼이 가까이 오기 힘들다. 재미가 없으니까.  보시다시피 내게 사기쳐서 얻어갈게 없으니까. 난 흙도, 재산도 없으니깐. (그들이 원하는게 돈 아닌가? 하하하) 난 차도 없어. 집도 없어. 그냥 다 빌려서 사는 인생이다. 하하하. 피싱사기를 칠려고 덤벼도 내가 전화를 안받아. ㅋㅋㅋ. 



가볍게 휙 읽기에 좋은 책이다. 저자께서 아주 성실하게 글을 쓰셨다. 




아래 내용은, 내가 하는 연구와 관련된 내용이라 참고문헌을 찾아보려고 한다. 





https://www.dgupress.com/news/articleView.html?idxno=22716



Posted by Lee Eunm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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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ry/엄마2018. 10. 22. 13:25


유여사가 창고 정리좀 해 달라고 하셔서 잠시 '머슴놀이'를 하다가 발견한 유여사의 작품.  액자까지 만들어 놓았는데, 아무도 이 그림의 존재를 기억하지 못한다. 개인전 할때도 전시하지 않았던 그림이다.  유여사 왈, "하도 많아서 다 걸지도 못했어..."



몇해전 전시회 할때, 내가 작품 골라냈었는데, 그 때 내 눈에 띄었다면 이 작품을 꼭 눈에 띄는 곳에 전시 했으련만. 아무튼 창고에 처박혀 있던 그림이다. 



이곳은 수원 아주대 앞, '원천호수'이다.  지금은 아파트로 둘러싸여 있어서 그 흔적을 찾기도 힘들지만, 내가 어릴때는 그냥 탁트이고 고요한 저수지 호수였다. 가운데 머리 긴 소녀는 우리 언니다. 왼쪽의 노란 모자 꼬마는 내 오래비 동생이고, 오른쪽에 서 있는 선머슴이 나다. 빨간 빵모자는 엄마가 짜 준 것이다. 실제 모습이다. 사진이 있었던 것은 아니고, 엄마가 그냥 내 글을 읽고 그 장면을 그린 것이다. 




창고에 처박혀 잊혀져 있던 것을 발굴해 냈으니, 일단 내가 '찜'을 했다.  "내가 그림 값 갖고 와서 그림 가져갑니다" 했더니 통 큰 유여사, 돈은 필요 없다며 그냥 가져가란다.  물론 대개 그냥 가져간다. 하지만 이 작품은 특히 맘에 들어서 작품값을 지불하겠다는 것이지. 은행에 가서 빠닥빠닥한 만원짜리 혹은 오만원짜리 돈을 많이 달라고 해가지고 빠닥빠닥한 신권으로 가져다가 '그림값'이라고 드리면 -- 엄마는 스스로 무척 자랑스러운 기분이 드시겠지.  상고머리에 빵모자, 아무렇게나 허름한 옷. 그림의 구석자리.  그것이 엄마 가슴속의 나의 위치이다.  아름다운 장면이다. 주변인으로 존재하는 내 모습이 꽤 맘에 든다. 옛날에 나는 '주목받지 못하고' 늘 변두리 인생같은 내 위치가 서럽기도 하고, 인생이 시들했다.  그런데, 지금은, 구석자리 안보이는 곳, 주목받지 않는 변두리 삶이 더 좋다. 구석 어딘가에 내 자리 하나 있으면 만족한다. 









Posted by Lee Eunm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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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ry/Life2018. 10. 22. 13:11


강원도 지방의 설화 몇가지를 소설가 오정희씨가 그녀의 언어로 다시 엮은 이야기 책이다.  김소월의 시 '접동새'의 모티브가 된 아홉 오라비와 누이동생 이야기를 포함한 몇가지 이야기가 들어 있다.


책방에서 읽어도 금세 읽을만한 작은 이야기 책이다. 증정본으로 읽었다.  


소설가 오정희씨는, 내가 만약 소설을 쓴다면 이 사람처럼 쓰고 싶다고 생각하는 작가이다. 그녀의 '중국인 거리' 스케치 '새의 선물'은 너무나 매혹적이었다. 인천의 차이나타운에 가서 골목 골목을 걸을 때에도 나는 소설가 오정희씨의 발자취를 상상했었다.  최근에 발간된 오정희 전집도 증정본으로 한질 갖고 있었는데, 오정희에 푹 빠진 형제에게 양도했다. 아무래도 내가 소설책을 들여다 볼 것 같지가 않아서.  나중에 다시 '나의 소설의 시대 (소설책에 미쳐 지내는 시대)'가 온다면 그 때 다시 달라고 하면 돌려 줄 것이다. 



여러개의 이야기중에서 내게 가장 인상적인 이야기는 첫 작품.  누이(구렁이)와 인간 오래비의 이야기.  본디 구렁이였던 누이는 쌍둥이같은 인간 오래비를 극진히 돌보고, 온 힘을 다하여 죽은 오래비까지 살려내는데, 오래비 녀석은 제 삶에 취해서 누이와의 약속을 간단히 잊어버리고 만다. 뒤늦게 기다리는 누이를 생각해내고 딱 하루 늦게 집으로 돌아가니....(마지막 장면이 너무나 인상적이었다)...누이는 여기저기 풀이 듬성 듬성 난, 인적 없는, 방 가운데 앉아서 명주 한필로 오래비 녀석의 옷을 한벌 짓고는, 다시 뜯어서, 다시 바느질하고, 그걸 반복하며 늦게 당도한 오래비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더란다.  이 부분이 꽤 매혹적이었다.  음, 이 작품 하나 때문이라도 이 책을 소장할 이유가 있을 것도 같다. 책을 사도 좋으리라. 



두번째 작품도 구렁이아들 (아들을 낳았는데 구렁이) 얘기인데 -- 이 이야기는 어딘가 전세계의 설화가 갖는 보편적인 요소들을 갖고 있다.  막내딸이 '괴물'에게 시집가서 잘 사는 것을 보고 언니들이 시기심에 막내의 행복을 망가뜨리고, 막내는 자신의 실수로 인해 사랑을 잃고, 문제에 빠지고, 결국 고생고생 끝에 사랑을 되 찾는 그런 얘기. 



뭐니뭐니해도 '구렁이 누이'얘기가 나의 상상력을 찌르르하게 자극했다.  구렁이의 헌신은 인간이 되지 못하고 구렁이로 태어나 사내녀석을 사랑한 구렁이가 어차피 사랑을 이루지 못하니 헌신적으로 그를 돌보고 그에게 어여쁜 아내까지 만들어다 주는 것으로 그러니까 에로스적 사랑을 아가페적 사랑으로 치환한 것인데,  그렇지만 ....  사랑은 어쩔수가 없는것이지...  명주 한필로 사내녀석의 옷을 짓고, 뜯고, 다시 짓고 하면서 단 한번만이라도 그의 사랑을 확인할수 있는 시간이 오기를 기다리고 또 기다렸으리라. 오정희씨도 이제 할머니가 되셨구나... 





Posted by Lee Eunm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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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ry/Life2018. 10. 18. 20:09



2013년 번역 초판 발행



1883년 발간된 Social Problems 의 한국어 번역판.



145년전에 미국에서 출판된 책인데, 밑 줄 친 부분을 읽어보면, '방금 어제 나온 책' 같다는 인상을 주지 않는가?


나는 요즘 배신감을 느낀다. 그 겨울에 촛불 들고 나가서 천식환자처럼 기침을 해 대면서도 뭔가 역사 발전에 필요한 '숙제'를 한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대통령도 바뀌었는데 그 대통령 역시 이재*님을 모시고 북한에도 가고, 도대체 뭐가 바뀐것인지 알수가 없다.  바뀐것은 그냥 '대통령 얼굴'이라는 생각만 든다.  그리고 노회찬씨가 이 세상에 없다. 뭔가 세상이 이상해. 


"대중은 개혁을 시스템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단지 사람이나 정당을 바꾸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고 헨리 조지는 말한다.  헨리 오빠, 그게 아니구요. 대중은 시스템 변화를 위해서 노력했는데요, 번번히 바뀌는 것은 '가오마담'일 뿐이더라구요.  마담 얼굴 바뀐다고 시스템이 바뀌는게 아니더라구요.





문재인 대통령, 섭섭하게 들리실지 모르겠는데요. 저도 섭섭해요. 도대체 이 사진들에 무슨 차이가 있는거죠?



제가 볼땐 똑같아요. 공주님은 철창안에 갇혀 지내시는데 무도회에서 함께 춤춘 젊은 왕자님은 남북한을 활보하며 여전히 파티중이시지요. 이 사진들을 보면 '진짜 권력'이 어디있는지 가늠을 해보게 되지요.  가오마담 뒤에는 진짜 물주가 있는거거등요. 그런건 학교 많이 안 다닌 사람들도 대충 다 알아요. 그죠 오빠. (참고로 가오마담의 파트너로는 '바지사장'도 있어요. 물주는 따로 있다는 말이지요. 헤헤헤.) 오빠, 저 사람 근처에 계시면 위험해요. 공주님을 보면 알 수 있죠.  





나는 조국의 덕을 톡톡히 누리고 사는 사람이니 불만이 있을것이 없다. 그러나, 나만 잘 살면 남이 고통 받는 것은 상관없는 문제가 아니다. 



'미국 전역에 걸쳐 국민에 의한 정부는 강자와 악당에 의한 정부로 변질되어 왔으며 지금도 변질되고 있는 중이다' 라는 145년전 미국에 대한 평가가 왜 그것을 '현재 미국'으로 바꿔도, '현재 한국'으로 바꿔도 그럴듯 하게 여겨지는가?  이것이 이 책의 놀라운 점이다.  


예를들어서 윌리엄 워즈워드의 시는 수백년이 지나도 유효할 것이다. 우리의 보편적 감성을 만져주니까. 하지만 150년전의 과학기술은 어딘가 '사이비 과학'처럼 여겨질수 있다. 그 사이에 엄청난 발전과 변화가 따랐으니까. 150년전의 사회학책도 어딘가 '구태의연한' 냄새가 나는것이 당연할 것 같은데, 헨지 조지의 사회학책은 방금 어제 시사프로에 나온 얘기 같다. 그가 '현상'을 꿰뚫어보는 통찰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투표를 통해서 시스템을 바꿀수 있다는 환상을 이제 폐기해야 하는건가?  그럼 뭐지?


오랫동안 기다려왔다. 착하게 투표하고, 착하게 행동하면 세상이 개선될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그런데 어딘가가 '상한 생선'같은 냄새가 난다. 


***

pp68

기차가 출발해서 천천히 움직일 때는, 한 발짝만 내디뎌도 올라탈 수 있다. 하지만 몇 분이 지나면 그 때 발을 내딛지 않은 사람들은 숨 가쁘게 달려도 그 기차를 따라잡을 수가 없다.  기차가 출발할 때는 탑승한 사람들이 쉽게 탔다고 해서 최고 속도로 달리고 있는 기차에 올라 타는 것도 수월한 것으로 생각한다면 그건 정말 터무니없다. 


pp76

사람들이 불평등한 상태에 처하게 되는 것은 타고난 불평등, 즉 사람들이 원래부터 갖고 있던 힘과 역량의 차이에서 기인한다. 


pp 84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은 너무나 적게 벌고 거의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사람은 그리도 많이 버는 이유는 대개 전자가 만드는 것이 어떤 방식으로든 후자에게 흘러가서 그들의 소득을 부풀리기 때문이다.

요즘 대학생들이 우스개소리로 '장래희망은 건물주'라고 한다.  그들의 일부는 이미 건물주이기도 하다. 그들이 노력해서  건물주가 된 것이 아니라 조상을 잘 만나서 그리 되었다. 그들은 비슷한 또래의 친구들이 열심히 일해서 수입의 일부를 '월세'로 갖다 바칠때 그것을 받아서 쓰고, 남은돈으로 다시 건물을 살 것이다. 그리고 세상은 그렇게 사는 것이 현명하다고 가르친다.  자기계발서에서 부유롭게 사는 법에 대한 설명을 대개들 이렇게 한다, '네가 일해서 돈을 벌려고 하지 말고 네 돈이 네가 자고 있을때도 스스로 알아서 돈을 벌어들이게 하라. 진짜 부자들은 그들이 해외여행을 즐기는 순간에도 여전히 재산이 쌓여가고 있음을 명심하라.'  내가 아직 철이 안들었을땐 그것이 맞는 말인줄 알았다. 알고 보니 이들이 젊은이들을 죄다 '도둑놈'으로 키우고 있는자들이었다. 


pp 85

만일 각 사람이 자신이 만든 것을 모두 자기 집으로 가져갈수 있다ㅕㄴ, 사람들은 더 근면하고 도덕적인 존재, 더 좋은 노동자, 더 좋은 시민이 될 것이다. 


pp89-90

정치란 누가 정권을 잡느냐의 문제일 뿐이고, 실제로 나라를 지배하는 건 기업들이며 이는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그러니까 기업편에 서지 않는 사람은 바보라는 것이다. "국민들? 그들이 뭘 알고, 뭘 신경쓰겠습니까? 언론이 국민을 지배하고, 자본이 언론을 지배합니다. 토끼 편에 서서 사냥감이 되기보다는 개 편에 서서 사냥하는 게 낫습니다." 그의 말이다. 


pp 99.

이 모든 일의 배후에는 사회적 질병이 있다. 범죄자, 빈민, 창녀, 자기 자식을 버리는 여자,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워서 목숨을 끊는 사람, 거지와 도둑이 넘쳐나는 것은 아무리 일해도 정직하고 여유있게 살기가 힘든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다는 것을 입증해준다. 



pp102

우리모두가 부자가 될 수는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 인간 사회에서 가난한 사람은 항상 존재할수밖에 없다고 선언하는 사람들과 논쟁을 시작하려고 한다. (----헨리 조지는 이러한 것이 잘못된 신화라고 설파한다)


pp103-105

우리는 일찍부터 1등은 잘 대우해서 고통을 겪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을 배운다.  또 가난하면 안된다는 것도 일찍부터 배운다. 빈곤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우리는 부자가 되기를 갈망한다.

...

그러나 빈곤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진다면, 정신없이 벌이는 생존 경쟁은 끝날 것이다. 

....

누구든지 자기 주위를 돌아보기만 하면, 빈곤은 자연의 인색함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고역을 해도 간신히 살 수밖에 없는 처지에 빠지는 것을 창조주의 탓으로 돌리는 것은  무지의 소산이 아니면 신성모독이다.


일부 사람들이 가진것이 충분치 않아서 품위있게 살 수 없는 것은 다른 누군가가 필요이상으로 많이 갖기 때문이 아닐까?



pp 121

내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는 정의가 도덕의 발달 단계에서 최고의 가치가 아니라 첫번째 가치라는 사실이다. 정의보다 높은 가치는 정의에 기초해야 하고, 정의를 포함해야하며, 정의를 통해 실현되어야 한다. 


pp124-125

억압당하는자, 몰락하는자, 짓밟히는 자들이 해방되고 지위가 높아지는 것은 언제나 자신들의 힘이 아니라 그들보다 형편이 좋았던 다른 사람들의 노력과 희생 때문이었다. 자연적 권리를 빼앗기면 빼앗길수록 그것을 되찾을 수 있는 힘은 더 약해지기 때문이다. 도움이 많이 필요한 사람일수록 스스로 돕기는 어렵다.

어떤 사회 정의 실현이나 개혁의 이면에는 그것의 이해당사자들뿐 아니라 주변의 선량한 사람들의 노력과 헌신이 있음을 그는 지적하고 있다. 가령 미국의 노예해방도 노예들의 주도로 이루어졌다기 보다는 노예를 가질수도 있었던 사람들 (더 부유하고 더 많은 것을 누리고 더 많은 교육을 받은 사람들)에 의해 주도적으로 이루어졌다.  이는 당시의 노예들이 그들의 삶을 순순히 받아들여서가 아니다. 헨리 조지는, 억압당하는 자들은 저항의 '힘'마저 서서히 잃기 때문에, 억압당하지 않는 다른 사람들이 협조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성경에서 봐도, 이집트에서 종살이를 하던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고 나갔던 사람이 '모세'였는데, 모세는 비록 이스라엘 족속이었지만 이집트의 왕자로 성장하였던 사람이다. 종살이로 큰 것이 아니라 왕자로 성장했으므로 그가 비록 이스라엘 족속이었으나 그의 비전이 다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에 대해서도 나는 비슷한 해석을 하는 편이다. 오바마는 흑인 아버지와 백인 어머니 (둘다 학력이 높은 사람들이었다)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그의 아버지는 아프리카 출신의 흑인이었다. 노예출신의 미국 흑인이 아니었다. 오바마의 유전자에는 '노예'의 기억조차 없다. 석가모니가 샤카족의 왕자 출신이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가 민중의 스승이 될 수 있는 원동력 역시 '더 많이 가진자가  약자들을 돌아보는' 것와 상통한다. 나의 예수님 역시, 하나님의 독생자로서 인류를 구원하러 오시지 않았던가.  약자들이 손 놓고 앉아 있으라는 것이 아니다. 요지는, 억압받는 사람들이 그들의 현실에 짓눌려 꿈도 꾸지 못할때는, 형편이 나은 사람들이 그들을 돌보고 응원하고 개혁을 주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살면서 선택할 수 있는 일 가운데, 아무리 사소할지라도 사회 상태를 개선하고 다른 사람들의 삶을 좀더 완전하고 고상하게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것과 비교할만한 일이 어디에 있겠는가?



pp 200

노예제도의 본질은 노동을 강탈하는데 있다. 즉, 사람들에게 일을 강요하고는 노동생산물 중에서 간신히 생계를 유지하는데 필요한 만큼을 뺀 나머지를 모조리 빠앗는것이 노예제도의 본질이다. '자유롭고 평등한 미국 시민들' 중에서 이미 많은 사람이 노예로 전락했다. 앞으로 그렇게 될 사람도 많다. 

내가 보기에,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노예인데도 스스로는 '중산층'이라고 착각을 하고 다른 노예들을 멸시하거나, 혹은 다른 사람들이 '노예'로 사는 것에 대하여 그것을 당연시하거나 현대 사회에 노예는 없다고 굳게 믿는다. 그래서 헨리 조지는 얘기한다. 미국 노예해방 이후에 노예출신 사람들의 삶은 더 고통스러워졌는데 - 주인들이 노예가 늙어 죽을때까지 먹여주던 책임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다. 주인들은 이전에는 노예들의 여생을 먹여살렸는데, 해방 이후에 인부들을 돈주고 부리면서 오히려 경비가 절감된 측면이 있는 것이다.  현대판 노예들에게 아무도 '노예'라고 부르지 않으니까, 세상은 더 좋아진 것 같은데  현대판 노예들의 삶은 더욱 고단해진 것이다. 


pp248

우리의 근본 실수는 토지를 사유재산으로 취급한데 있다.


pp 263

...불평등을 용인해야 하는걸까? 소수가 모든 사람에게 주어진 공동유산을 독점하는 것을 인정해야 하는걸까? 결고 그렇게 해서는 안된다. 


pp 303-306

사회개혁은 고함과 아우성으로, 불평과 비난으로 달성되는 것이 아니다. 정당을 결성하고 혁명을 도모한다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생각의 각성과 사상의 진보를 통해 달성된다.  올바른 생각이 없으면 올바른 행동이 나올수 없고, 올바른 생각이 있으면 반드시 올바른 행동이 나온다. 힘은 항상 대중의 손에 있다. 대중을 억압하는 것은 그 자신의 무지와 근시안적 이기심이다. 

...

누구든 자신이 영향력이 없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생각하는 사람은 그가 누구든 어떤 처지에 있든 빛이 되고 힘이 될 수 있다. 

...

인간이 타인의 행복을 추구하지 않고서는 행복해질 수 없는 존재로 만들어진 것처럼, 개인이나 각 계급은 타인이나 다른 계급의 권리를 위해 투쟁하지 않고서는 자신의 정당한 권리를 누릴수 없다는 것이 사물의 이치인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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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책을 마무리한 마지막 말:

노동자에게 투표권을 부여하고 사회정의를 실현하려고 할 때 가장 먼저 배려해야 할 사람들, 투쟁을 통해 도와줘야만 할 사람들이 있다. 스스로를 돕고 스스로를 위해 투쟁할 힘이 가장 약한 사람들, 재산도 숙련도 지성도 전혀 갖지 못한 사람들, 사회의 계급 구조에서 제일 밑바닥에 있는 사람들이 그들이다. 이들에게 평등한 권리를 보장할 때 비로소 모든 사람에게 평등한 권리를 보장할 수 있다. 


마치니가 말 한 것처럼 사람들은 인권을 쟁취하려고 할 때 이기심의 깃발이 꽂혀 있는 곳이 아니라 의무감 (원본을 찾아봐야겠다. 의무감이 아니라 책임감 혹은 소명의시이 아니었을까?)의 깃발이 꽂혀 있는 곳으로 모여든다. 우리는 이 사실에서 이웃을 자기 몸처럼 사랑하라고 명하실 때 하나님이 품고 있었던 깊은 뜻을 발견한다. 사회문제를 해결하고 문명을 전진시킬 힘은 바로 그와 같은 정신에서 나온다. 




놀라운 책이었다. 우연히 만나서 읽게 되었는데, 내 삶은 어쩌면 이 책을 읽기 전과 후로 나뉘는게 아닐까? 그러니까, 내가 주위의 사람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분배의 문제 정의의 문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의 문제등 술자리 안주같은 얘기를 할때 "넌 왜 늘 그따위 식으로 생각을 하느냐, 너나 잘 살면 되지 왜 다른 사람들 삶까지 들여다보느냐" 이런 지적에 대해서 내가 명쾌하게 설명하지 못한 것들의 대답을 헨리 조지의 글에서 다 찾아 냈다.  사람이 왜 그렇게 살아서는 안되는지, 사람이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 정확한 방향을 제시했다.  막연하게 내가 '그것은 옳지않다, 온당치 않다'고 생각하던 사안들에 대하여 그것이 왜 온당치 않은 것인지 그가 설명해줬다. 그러므로 내 오래된 쳇증이 싹 내려간 기분이 든다.



내 주위에는 평생 나름대로 '사회정의'를 구현하기 위해 살아온 신사가 있다. 그의 삶은 저항과 투쟁으로 점철되었으며 한 때 정치인을 꿈꾸기도 해서 선거운동으로 알량한 재산마저 날리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그는 투사였고 나는 그의 삶이 어딘가 멋있어보였다. 나같은 버러지 같은 (딱 책벌레) 삶에 비해서 그의 삶은 혁혁해보였다. 그가 가난해도 그는 풍족해보였고, 그가 돈한푼 없는 개털이어도 그는 멋있었다.  그런데 최근에 그는 어마어마한 갑부가 되어 나타났다. 머리를 써서 한채남은 경기도 변두리 집을 잡혀서 '투자'를 한 것이 그야말로 대박이 났다. 물론 수년간 그가 기업동향을 분석하고 연구하고 판단한 결과이다. 그는 절친한 친구들을 초대하여 해외여행을 함께 떠나기도 하고 '선량하고 인정많은 부자' 놀이를 하며 유유자적 세월을 보내고 있다. 그가 부자가 되었으니 우리는 이제 그의 생계에 대해서 염려하거나 한숨 짓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나는 '디오게네스'씨에게 말했다, "그 사람하고 너무 자주 어울리지 마시오. 어딘가 개운치가 않소. 나는 잘 설명할 수 없지만 그것이 과연 그에게 좋은 것인지 아닌지 그것도 헷갈리고, 전체적으로 헷갈리는 시추에이숑이라고 할 만하오."

이제 나는 내가 메우 헷갈려한 문제의 핵심을 알게 되었다. 그가 정의롭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사회적 상황이 정의롭지 않다는 것이다. 




조현*이라는, 제 기분내키는대로 아무한테나 물벼락을 날리는 재벌집 따님이 최근에 '무죄'선고를 받았다. 왜 무죄선고를 받았냐하면, 피해당사자들이 입을 다물고 그런 일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기억이 안난다거나 혹은 별로 피해를 입은적이 없다는 애매하고도 '가해자'를 기꺼이 사랑으로 감싸는 증언을 했기 때문이다.  나는 생각해보았다. 이름있는 광고회사에서 일하며 대기업 임원들과 회의를 진행하는 사람들이라면 이 사회에서도 엘리트에 속하고, 지금 일하는 회사가 아니라 다른데라도 얼마든지 가서 일할수 있을텐데... 꼭 그 직장이 아니어도 밥 굶지 않을텐데... 하지만 그들은 '직장'을 유지하기 위해 모욕을 감수했다.  이것은 스스로 선택한 '노예의 길'이다. '노예의 길.'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그래서 너도나도 스스로 '노예의 길'을 선택하고, 재벌들의 왕국은 더욱 공공해진다. 내가 노예의 길을 선택하면 나로 끝나는게 아니다. 내 옆사람도 나를 따른다.  내가 노예의 길에서 벗어나면, 내 옆사람도 노예의 길을 벗어난다. 길은 만들어가는 것이다. 



이제 선명하게 알게 되었다.  돈, 명예, 직위, 이런 '세상의 우상'을 숭배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 (진리, 자유, 정의)을 경배하면 나는 자유로워진다. 그것이 헨리 조지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Posted by Lee Eunm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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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ry/Life2018. 10. 17. 13:24





하느님께서, 내가 겉으로 태연하나 속으로 옹졸하게 삐질것을 미리 예견하시고, 휘하의 천사들을 보내어 위로해 주시다.  금강경도 보내주시고.  (이참에 김용옥 버전도 구하고, 온갖 금강경 해설집을 싸그리 읽어볼수도 있겠지...) 


고구마나 먹으라고 고구마도 한상자 (동그란 조선호박과 고추나물은 써비스로 ㅋㅋㅋ) 보내주시고.  원래 대학시절부터 필체가 왕휘지 안진경 구양순이 울고갈 필체더니 여전히 일필휘지다. ( 이친구는 글씨 자체가 시였다). 시는 안쓰고, 어르신께서 힘들여 농사지은 고구마나 빼돌리고 있는게 아닌지 의심스러운 눈길을 보내고 있다. 배달해준 우체국 직원이 훤칠한 미남 청년이어서 더욱 고구마가 멋있게 느껴졌다. 






하느님, 천사들을 보내주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지금도 약간 삐진 상태이니 다른 천사들도 보내소서. ㅋㅋ. 


내려다보고 계시던 하느님의 혼잣말: 내가 쟤 때문에 살수가 없어, 살수가....(아이고 허리야...)





Posted by Lee Eunm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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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ry/Life2018. 10. 11. 11:02



전체 32장으로 구성되어 있어, 하루에 한 챕터씩 천천히 읽어도 32일이면 읽을수 있다.  속독을 하는 편이지만, 이 책의 경우에는 '인내심'을 발휘해서, 하루에 딱 한챕터씩만 읽었다.  읽고, 생각 좀 해보고 일부러 천천히. (성질 급한 사람은 '천천히'가 잘 안된다).


어느날 불교방송에서 한 스님이 금강경 강의를 하는 것을 보았는데 내용이 놀라웠다. 그래서 '금강경'을 좀 읽어봐야지 생각했다. (나는 심심하면 불교방송-천주교방송-기독교방송 세 채널 사이를 오가며 설법이나 설교를 듣는다.) 


법화경의 일부를 지금도 암송 할 수 있으므로, 불경을 읽는 것이 내게는 전혀 낯설지 않다.  뜻을 잘 몰라도 한문으로 씌어진 것을 대충은 읽을수도 있고, 대강 뜻을 해독할 수는 있다.  그래도 대강 떠듬거리며 간신히 해독하는 것과 '뜻을 이해하며 읽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이라서, 금강경을 잘 설명해 놓은 책이 뭐가 있을까 책방을 뒤져 찾아보았다.  


우선은, 김용옥의 금강경 강해를 읽어볼까 생각했는데, 책을 들여다보니 만만치가 않았다. 뭐 원문만 늘어놓고 강의하는 식이다. 


다른 불교계에서 나온 책들은 어딘가 설명이 구태의연하고, 잘 다가오지 않았다. 법륜승이 쓴 빨간 하드커버의 이 책이 내 맘에 꼭 들었다. 



이유는

    1.  각 챕터 (장)별로 한문 원전을 적고, 바로 아래에 '한글표기'를 해 놓아서, 한문을 따라 읽다가 내가 모르는 글자가 나왔을때 한글로 어떤 소리가 나는지 바로 확인할 수 있다. 그것이 내게는 아주 편리하다.
    2.  바로 옆 페이지에는 이 한문원전을 '한국어'로 번역하여 실어 놓았다. 역시 고맙다.
    3.  그렇게 첫 두페이지가 지나가면 '내용'이 나오는데 법륜승이 쉬운 한국어로 몇가지 중요한 불교용어를 설명해 주었고, 개념도 그의 평이한 언어와 에피소드로 설명을 해 준다.  
    4.  부록으로 금강경 전문과 바로 아래 '한글표기'도 함께 실어주었다.  만약에 금강경을 암송하고 싶다면 매일 한두차례 이 부록을 처음부터 끝까지 소리내어 읽으면 된다. 그러면 아마 한 백일쯤 소리내어 읽으면 경이 입에 붙을거다. (경험상). 
    5.  역시 부록으로 금강경 전문을 한국어로 번역한 것도 실어 주었다. 

이렇게 내 맘에 쏙 들게 편집을 해 주다니. 감사한 노릇이다. (책을 잘 만들었다).



금강경에서 가장 자주 나온 표현은? (틀릴지도 모르지만 내가 감지하기에는) 하이고何以故 이다.  (내가 전문적으로 한문을 배운 사람이 아니라서 단언할수는 없지만) '그것은 어떤 연고인고 하니...' 이런 뜻일 것이다. 책의 번역 페이지에는 '왜냐하면'으로 해석했다.  이 '하이고'를 볼 때마다, '하이고 (아이고).....' 한숨섞인 홋잣말을 떠올리곤 했다.  '그 하이고가 이 아이고가 된건가?' 이런 잡다한 상념.





금강경은 '가을'에 읽기에 참 좋은 경이다.  다른 경들도 아마 가을에 읽기에 좋을 것이다. 왜냐하면 한해가 이울어가는 계절이기 때문에, 만물이 유전하며, 사라지며, 뭐 그런 현상이 눈에 들어오기 때문에. 성서의 '전도서'가 불경과 참 닮았다. 전도서를 꺼내 읽듯이 금강경을 꺼내 읽어도 좋으리라.  이 아름다운 글을 외울수 있으면 더 좋으리라.


'너는 예수쟁이'라며 금강경을 외겠다고? 미쳤니? -- 라고 누군가 말한다면, 내 대답은 이렇다. 나는 예수쟁이가 되었고, 예수쟁이로 죽을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이 '우상 숭배를 하지 말라'고 하셨지 불경 읽지 말라고 말씀하신바 없다.  예수쟁이도 수학 공부하고, 과학 공부하고, 철학 공부하고, 컴퓨터 공부한다. 불경 공부를 해서 안될 이유나 근거가 없다.  하느님을 좀 제대로 알으려면 그가 주재하시는 모든 것을 통찰해야 한다.  


최근에 내가 읽은 몇몇 뇌과학 책을 보면, 인간의 '뇌'는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고 상황에 따라서 속고, 속이며, 의견을 바꾸기도 하고, 변화무쌍하다고 한다. 만물은 말 할 것도 없거니와 '나' 조차도 '일념삼천대계'를 찰나에 오가는 것이니 나는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 불교 경전의 말씀과 일맥상통 하는 대목이다.  






Posted by Lee Eunm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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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ry/Life2018. 10. 9. 16:26


Pain and Prejudice

보이지 않는 고통

What science can learn about people who do it

캐런 메싱 지음, 김인아 김규연 김세은 이현석 최민 번역


원제 Pain and Prejudice 는 얼핏 Jane Austin 의 소설 'Pride and Prejudice'를 연상시킨다.  '오만과 편견'에 대비해서 '고통과 편견'으로.  번역서 제목 '보이지 않는 고통' 도 탁월해보인다.


'보이지 않는 고통' 제목은 어딘가 중의적이다. 

(1) 내가 보이지 않아서 내가 보이지 않는 고통 -- 예컨대 내가 매일 마주치는 누군가를 사랑하는데 그 사람은 매일 마주치면서도 나를 알아보지 못하고 그저 지나가는 행인으로 간주한다. 그에게 나는 보이지도 않고 존재하지도 않는 그림자 같은 존재이다. 그러면 나는 내가 그 사람에게 보이지 않아 고통스럽다.


(2) 말 그대로 invisible pain 눈에는 보이지 않는 고통. 타인들이 겪는 고통이 눈앞에 있어도 내 눈에 띄지 않는다. 


작가가 의도했건 안했건, 번역서의 타이틀을 지은 사람이 의도했건 안했건, 이 책은 위 두가지 '고통'에 대해서 현상의 목소리를 토대로 기술하고 있다. 


이 책을 꿰뚫는  key word 는 'empathy gap (공감 격차)'이다. 


어떤 정책 결정자들이 정책을 결정할 때 정말로 그 정책의 영향권아래에 있는 사람들의 실생활에 대해서 상세히 알고 있을까? 정말로 그 정책이 그들의 삶을 개선해줄만한 정책일까?  선거철만 되면 시장으로 달려가서 시장상인들과 악수하고, 어묵을 먹는 사진을 찍는 그들이 정말로 서민의 삶을 알까?  우리는 의심한다.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스마트폰, 그 아름다운 기계를 만드는 공정에 대해서 우리가 알 필요는 없다.  그런데 누군가가 그 기계에 필요한 작업을 하다가 원인불명의 질환에 시달리다 죽는다면, 그 사건은 우리와도 관련이 된 것이 아닐까?  그것은 그의 책임이고 우리는 이미 돈을 지불했기 때문에 아무 상관이 없는걸까?


갓 군대를 제대한 청년이 물류창고 컨베어벨트 아래에서 감전사 당했을때, 그것이 나하고는 상관이 없는 문제인걸까? 오늘도 내 문앞에 택배기사가 상자 하나를 던져놓고 종종 걸음쳐 급히 다음 행선지로 이동하는데. 


책에서 저자가 말한 '공감격차'는 단지 책속에 소개되는 '노동현장'에만 적용되는 내용은 아니다. 사회의 곳곳에서 우리는 타인의 고통을 안보고, 몰라서 못보고, 외면하고, 기피하고, 못들은척, 안 본척 하면서 산다.  


사실 나는 직장에서 마주치는 청소하시는 분에게 꼬박꼬박 예절바르게 인사를 한다. 하지만 한번도 그의 얼굴을 똑바로 본 적이 없다. 매일 마주치고 매일 인사하지만 나는 그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한다. 단지 예절바르게 인사만 할 뿐이다. 나는 그에게 정말 예의 바른가?


책의 저자는 평생 교수로 일했고, 평생 학술지에 올려서 이름을 드러낼 글만 열심히 써대다가 마침내 삶의 황혼기를 맞이하여 '진짜' 글을 쓰기로 작정했다. '학술지'에서 실어주지 않지만, '모두'에게 하고 싶은 얘기가 있었던 것이다. 그의 세세한 에피소드와 문제의식 앞에서 내가 자꾸만 작아진다.  그렇지 않아도 자의식이 밑바닥인데 이런 분들 만나면 어딘가 안보이는데로 숨고 싶어진다.  그래도 한 편 다행이다. 이 세상에는 나의 '스승'이 아주 많은 것이다. 


http://americanart.tistory.com/2828   <아픔이 길이 되려면>의 김승섭교수가 추천사를 썼다. 




Posted by Lee Eunm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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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ry/Life2018. 10. 8. 09:05




My brain has its own head

Mein hirn hat seigen eigenen kopf

나의 뇌에는 다른 '머리'가 있다 (내 뇌를 움직이는 또다른 뇌가 있다).



Stumbling on Happiness 의 Daniel Gilbert,  Phantom in the Brain의 Ramachandran 이 내게는 아주 유쾌한 책읽기였는데 장동선 박사의 책을 읽으며 줄곧 길버트나 라마찬드란의 유머러스한 설명이 떠올랐다. 꽤 이야기를 잘 풀어나가는 인지과학자가 나타난듯 하다. 2017년 한국 발행.  


장동선 박사의 개인적 삶이 꽤 특이한데, 우선 부모님이 남한출신/북한출신의 조합이신듯 하고 (설마 책에서 농담한것은 아니었겠지), 그러니까 남북한계 한국인부모 슬하에서 독일에서 출생했으며 한국에서 고교시절을 보냈고... 뭐 이런 저간의 사정으로 그의 책이 독일어로 출간되고 한국어로 번역되게 된 모양이다. 


책에서 특히나 바이링구얼(2중 언어)로 성장하는 어린이들의 언어 발달에 관한 사항을 눈여겨 봤고, 2중언어자들의 '문화에 대한' 열린 태도에 대해서 역시 공감했다. 


커피광고 관련 에피소드는 -- 어딘가 작위적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어가기 위해서 뭔가 조미료를 친것 같다는 애매한 느낌. 


특히 기억에 남는것

1. 보톡스 시술을 받으면 그것이 근육마비제라서 근육이 제대로 기능을 못하기때문에 얼굴 표정이 둔해진다고 한다. 그런데 문제는, 내 얼굴 근육이 마비되어서 내가 미세한 표정을 제대로 만들어내지 못하면 -- 다른 사람의 미세한 표정에 대한 공감 능력도 떨어진다는 것이다.  내가 슬픈표정을 짓지 못하면 다른 사람의 슬픈표정에도 제대로 공감하지 못할수 있다는 것이다. (미러세포 관련 책에서 본것도 같은데, 그래도 놀라웠다.)


2. 보톡스 관련, 정반대의 상황.  나이들면 미간 (눈썹과 눈썹 사이)에 주름이 생기는데 그 주름이 사람을 '우울하게' 보이게 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고민이 있거나 우울할때 자신도 모르게 미간사이에 주름이 생기는 표정 (인상을 찌푸리는)을 연출하기 때문에, 일부러 인상을 찌푸리지 않아도 미간에 주름잡힌것 자체가 어느정도 우울감을 불러 올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미간에 주름이 많이 잡힌 사람이 보톡스 시술을 해가지고 미간주름을 어느정도 제거를 하면, 그 사람의 기분이 좋아질수 있다고 한다. 사라진 미간 주름과 함께 우울감도 사라지는 것이다. (어느정도). 


3. 뇌를 속이는 문제는 라마찬드란 박사가 가장 전문가가 아닐까? 이 책에도 내가 내 뇌를 속일수 있는 몇가지 트릭이 제시된다. 재미있는 내용이었다. 


4. 유아기에 (언어발달 실험용으로 비디오를 틀어줬을때) 혼자 비디오를 시청할때와, 단체로 비디오를 시청할 때 그 효과에 큰 차이가 난다는 것을 예로 들어서 사람은 '사회적'으로 행동할 때 행동이 더욱 효과적이라는 설명이 있었다. 이 부분에 대하여 좀더 공부를 해봐야겠다.  (역시 나의 연구 프레임인 비고츠키가 소개되기도 했다.) 


4. 평생 자기 마을을 떠나지 않은 사람 (평생 한직장에 다닌 사람)과 이리저리 떠돌며 사는 사람이 세상을 대하는 태도에는 많은 차이가 있다. 


독일어로 저술하고 한국어로 번역한 책인데, 책 내용중에 전문용어는 '영어'로 표기해놓았다. 덕분에 내가 읽기에는 수월하고 고맙기까지 했는데, 원본에도 괄호 쳐 놓고 영어로 표기를 했는지도 모르겠다.  며칠전 읽은 '탈출하라' 책에서는 캐나다에 사는 영국인이 '비용'에 대해서 설명하면서 영국파운드와 캐나다달러로 표시를 했을때, 미국달러에 익숙한 나로서는 약간 짜증이 났었다. 이게 얼마쯤 되는지 가늠이 안 되어 검색해봐야 하니까.  (한국어 번역에서 한국어 단위로 괄호쳐서 설명을 하던지, 그런 친절함도 없었는데).  소장가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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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고나서 문득 떠오른 생각인데,

토마셀로도 그렇고 장동선박사도 그렇고 독일의 막스 플랑크 연구소에서 연구하는 학자들과, 미국의 학자들 사이에 어떤 '철학적' '다름' 혹은 '접근방법'의 '다름'이 감지된다.



장동선박사의 글이 내게 인상적이었던 이유는 -- 그가 '뇌'를 얘기하면서도 인간의 '사회성'에 주목했다는 것이다. '뇌'과학자들이 '뇌'와 관련된 '현상'을 풀이하는 방식이 '다니엘 대닛'을 위시한 미국 학자들은 어딘가 '개인성'에 주목을 하는것처럼 여겨지고, 토마셀로나 장동선 같은 사람들은 '사회성'에 주목한다.  미국의 철학을 짧게 정리하자면 Self-reliance에 기반한 Pragmatism이라고 나는 파악하는 편인데, 그 Self-reliance 정신이 미국의 학자들에게도 그대로 반영되는게 아닐까?  뇌를 보면 그냥 뇌만 본다.(미국학자들은). 그런데 독일학자들은 '사회적인 동물'인 '인간의 뇌'는 인간의 사회성에 기반하여 어떻게 작용하는가 하는 점을 본다. 



미국은, 미국 교육은 '팀 워크 (Team Work)'를 강조하고, 그들의 '미식축구 American Football'에 열광하기도 하고 얼핏 '사회성'에 기반한 사회처럼 보일수도 있지만, 미세한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 이들은 '개인이 성공하기 위해서' 팀워크를 하는 것일뿐이다. 팀워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각자 단세포들이 된다. (말하자면 그렇다).  그런데 유럽은 미국과는 조금 다른 것 같다. 가서 생활해보지 못했으므로 알수 없으나, 유럽의 학자들은 그들이 과학자건 철학자건 간에 인간이 다른 인간과 유기적으로 작용하는 것에 집중하는것처럼 보인다.  그런면에서 보면 미국은 대체로 아직도 '유아기'를 벗어나지 못한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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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ry/Life2018. 10. 6. 19:09


언제 할 것인가

When

다니엘 핑크 지음/이경남 옮김


우리집에는 '증정본'이 와서 쌓이고, 내가 책방에서 사오지 않아도 새 책들이 들락거린다. 이 책은 어느 봄날 슬그머니 우리집 거실에 나타났는데, 내가 눈여겨 보지 않고 몇달을 묵힌 친구이다. 이 책이 얼마전 내 눈길을 끌어서, 화장실에서 몇장 읽다가, 그냥 집어 던지기에는 제법 싹싹하고 흥미로워서 후딱 끝까지 읽은 책인데. 책을 다 읽은 후에도 가끔 학교에 갖고 와서 들여다보고, 집에 가서 들여다보고 그런다.  맘에 드는 책이다. 



대단히 학구적인 책은 아니다. 하지만 간단한 책도 아니다. 전문적인 케이스를 쉬운 말로 설명해주면서 우리가 모르는 우리의 행동에 대하여 설명을 해 준다. 이 책이 쉽게 읽힌 이유는 저자가 소개하는 사례들을 이미 내가 다른 책에서 읽거나 이미 알고 있는 경우가 많아서 그러하다.  어쨌거나 굉장히 힘있는 책이다.  이 책을 읽고 매일 아침 운동을 하겠다고 결심하고 몇주째 아침에 체육관에 가서 운동을 하게 되었다. 단지, 이 책에서 발견한 '체중조절을 위해 운동을 한다면 공복상태의 아침 식전이 좋다'는 내용이 내게 매우 설득력있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식의 설명은 이전에도 여기저기서 봤지만 이 책을 읽을때 내가 문득, 그래!  그렇게 해야겠어! 하고 행동으로 옮기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 외에도, 내가 미뤄왔던 일들을 더이상 미루지 않고 행동으로 옮기게 되었다. 내가 머뭇거리고 있던 것을 결단하게 해 주었다. 여러모로 나를 동기화 시키는데 성공했다고 할만한다.  


이 책에는 30분마다 자신의 각성의 상태를 체크할수 있는 표까지 들어있는데, 물론 게으른 내가 그런것까지 체크하고 앉아있지는 않는다. 하지만, 내가 내 삶을 좀더 효율적으로 잘 관리하려는 노력을 하게 되었다고 할까? 불필요한 것들을 치우고, 제거하고, 마음을 온전히 한곳에 집중하여 일을 성취하려는 방향으로 움직일수 있도록, 이 책이 충분히 자극을 줬다고 할 만하다. 


내게 의미있다고 다른 사람에게도 똑같이 효과가 있을거라고는 상상하지 않는다. 내게 딱 필요한 시간에 이 책이 눈에 들어왔을것이다.  나는 이 책에서 '언제' 무엇을 하면 효과적인가를 배운게 아니다. 부동산 투기나 증권 투자나 창업을 위해서는 타이밍을 고민해야겠지.   하지만...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스스로 내게 말하는 것은, '지금 당장 시작하는게 가장 좋은거야'  만물에 다 때가 있지. 사랑할때가 있고 헤어질때가 있고,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지.  언제냐구?  언제란 없어. 그냥 지금 하느냐 안하느냐의 문제야.  '기다림'도 지금 하는 '무엇'이지.  아무것도 안할때조차 그것이 '막연한 지연인지 아니면 죽을힘을 다하여 기다리는 것인지가 다른거지. 아홉시면 잠이 들고 네시면 잠에서 깨고 새벽예배에 가고 아침 운동을 하고 일을 하고 글을 쓰고 그걸 매일 하는거야. 글이 씌어지건 안씌어지건 나는 매일 글을 쓸거야.  살아있는동안 그것이 진정한 When에 대한 나의 답이지.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을때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으면 후회할거야.  그러니까 지금 살아서 숨쉴때 해야 하는 것들을 하는거지. 가끔 쉬는 시간에 책 아무데나 들춰서 보기에도 좋다. 좋은 실용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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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ry/Life2018. 10. 6. 14:39


로버트 링엄 지음/이주만 번역, 카시오페아 출판사



실내용 자전거타기 기구에서 '지루함 방지용'으로 읽은 책. 하루 한시간씩 자전거 운동기구를 타면서 사흘에 읽었으므로 세시간이면 가볍게 읽을만한 책이다. (증정본인데, 이거는...운동용으로 좋겠네 생각하고 운동가방에 넣은것이 주효했다.)





이 책의 저자는, 평범한 대다수의 회사원 월급쟁이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탈출하라'고 말한다. 그의 요지는 이러하다.

    1. 미래를 위해 오늘을 희생하고 꾸역꾸역 일만 하면서 살다보면 인생을 일로 채우고 끝낼 가능성이 크다.

    2. 그러니 '오늘'을 살아야 하는데, 그러기위해서 적당한 때에 '은퇴'나 '사직'을 결정할 수 있도록 준비하라.

    3. 은퇴/사직의 준비는 상상하는것보다 어렵지 않다. 

    4. 집값이나 생활비가 적게 드는 곳에 가서 '최소한'으로 살기로 작정하면 사람에게 돈이 억수로 많이 필요한것도 아니다.

    5. '최소한'으로 살되 삶의 품위와 여유와 아름다움을 누리면서 사는것이 '소비지향'의 '노예살이'보다 훨씬 유쾌한 것이다. 



내가 이 책을 '읽어도 좋고' '안 읽어도 상관없는' 책으로 본 이유는 나 개인의 삶이 이미 여기에 닿아 있어서 그럴지도 모른다. 나는 이미 20대 중반에 '탈출'을 감행했고 내 식대로 내 삶을 살아왔으므로 딱히 더이상 탈출하고 버리고 갈 것이 없다.  그래도 이 책이 아주 쓸모없는 책이 아닌데, 그 이유는 (1) 내 지루한 운동을 지루하지 않게 도와줬고, 가끔 나 혼자 깔깔 웃게 만들어줬으며 (2) '미니멀리즘 (최소주의)'에 대해서 다시한번 진지하게 생각하고 쓸데없는 물건을 안사야겠다는 다짐을 새롭게 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떠돌이 삶에 익숙해져서 물건을 잘 안사는 편인데, 그래도 뭔가 사게되는 내 성향을 잘 관리해서, 정말로 아무때나 보따리 싸가지고 떠날 만큼만으로 내 삶을 유지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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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ry/Life2018. 10. 5.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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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ry/Life2018. 10. 5. 15:01



but sooner or later, the man who wins is the one who thinks he can. 


비도 오고, 기념주를 한 잔 해야 하는데 (갸우뚱...)



Posted by Lee Eunm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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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ry/Life2018. 10. 5. 11:42


영화, 라디오스타 마지막 장면



아주 짧은 거리이지만, 비 오는 아침 노란 우산을 펼쳐들고 일부러 먼길로 돌아서 빗물을 자박자박 밟으며 출근하는 길은 즐겁다.  조금 멀어도 좋으리라 비가 오는 날엔.


휴대전화를 '이메일 확인'용으로 주로 사용하는 나는 '전화 씹는X'으로 이미 찍혀 있다. 내 휴대전화는 항상 '무음' 처리 되어 있어 절대 벨소리가 나지 않는다. 나는 극장에 가도 공연장에 가도 교회에 가도 '교양인' 행세를 할 수 있다. 내 전화기는 절대 소리를 내지 않으니까.  이것은 어떤 면에서 '전화기' 용도만 제외하면 제법 활발하게 사용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니 그냥 '스마트 통신기'정도로 불리워야 하는건지도.


그래도, 이것이 전화기인 이유는 -- 내가 절대, 절대 씹지 않고 24시간 아무때나 벨이 울림과 동시에 전화를 받는 존재가 이 세상에 딱 한명 있기 때문이다.  내가 아무리 깊은 잠에 빠져 있을지라도 소리가 들리지 않아도 나는 그의 전화라면 곧바로 받는다. 내 손목에 차고 있는 시계가 전화기와 연동되어 있어서 전화기 소리가 나지 않아도 손목에 진동이 오고 있으므로 꽤 효과적이다. 


일단 녀석의 전화라는 것이 확인이 됨과 동시에 내 심장 박동이 갑자기 커지고 빨라지고 호흡이 가빠지며 아드레날린 그것의 수치가 휙 올라가는 것을 직감할 수 있다.  그렇지만 목소리만은 '강같은 평화'를 가장하여 '그레고리안 챈트'를 읊조리는 수사들같이 고요하게 전화를 받는다. "잘 지냈니?"


그의 전화는 대체로 Emergency Call 이라고 할만하다.  나는 그의 인생의 911.  그는 숨이 막혀 죽기 직전이라는 태도로 내게 급박한 사정을 풀어 놓는다. 숨 넘어가게 생긴 그의 사연을,  꽁치를 굽듯 여기저기 꾹꾹 눌러주고, 꼬리쪽을 슬쩍 들춰보고, 뒤집어보고, 살이 익었나 찔러보기도 하고, 일부를 젓가락 끝으로 잘라내어 간은 잘 뱄는지 맛을 보기도 하고 그렇게 입체적으로 들어주고 피드백을 해준다. 


대체로 꽁치를 굽듯 그와 전화상담을 해주는 나의 행로는

    1. 그으래? 어쩌다가?
    2. 너 힘들겠구나...
    3. 아, 저쪽도 그것때문에 화가 날만하구나.
    4. 그래도 네가 되게 신경질 나겠다.
    5. 그런데, 아무래도 너도 실수를 했으니 일단 사과는 해야 하는게 아닐까?
    6. 벌써 사과 했다고? 그런데도 지랄이라구? 저런 저런. 왜 지랄일까?
    7. 아 그에게도 그런 사정이 있다구?  그래도 그놈 미친 놈아닐까?
    8. 네가 너무 딱하다. 언제까지 견뎌야 하는걸까?
    9. 나쁜새끼는 아니라구? 내가 보기엔 그 인간이 미친놈에 나쁜새끼 같구나
    10. 절대 아니라구?
    11. 아 흥분하지 말라구? 내가 흥분하지 않게 생겼니? 내가 그냥 당장 달려가서 아주 박살을 내버려야겠다. 
    12. 뭐? 네가 어떻게 잘 해보겠다구?  잘 해볼것 없다. 당장 끝장을 내자!!!!!!! 너도 다 때려쳐!!!!!
    13. 뭐? 진정하라구?  알았어. 이번엔 그냥 내가 참고 넘어가지.
    14. 그래 사실 그 사람도 지금쯤 되게 챙피하고 미안해서 어떻게 말을 할까 고민하고 있을지도 몰라.
    15. 그래, 그 사람이 본래 좋은 사람이야. 아마 무슨 개인적인 문제가 있어서 그러는가보지. 그건 그 사람의 문제야. 너는 크게 신경쓸것 없어. 
    16. 그렇지. 너도 그런 작은 일에 구애받지 말고, 체육관에 가서 수영이라도 좀 해보지 그래. 그러면 좋은 생각이 날거야. 틀림없어. 이럴땐 물에 첨벙 들어가서 노는게 좋아. 기분이 좋아질거야. 
    17. 너를 위해서 내가 매일 기도하고 있어. 너는 하느님의 자식이란다. 그걸 잊지마.

이런식의 대화가 어쩌다 한번일수도 있고, 하루걸러 한차례 일수도 있다. 그는 이런 과정을 거쳐 마음의 평화를 얻는지 모르겠는데, 나는 에너지가 빠져나가서 맥이 빠진다.  물론 그도, '내가 당장 달려가서 박살을 내버리겠다고'말할때, 그렇다고해서 당장 비행기를 타고 태평양 건너로 내가 쳐들어갈수 있는 입장이 아니란 것을 잘 알것이다.  하지만 그는 늘 이런 나의 '분기탱천'의 대사에서 위안을 받는듯한 분위기이다.  내가 슈퍼맨이라도 된다면 가능할 일이다. 


나는 가끔 이 녀석 때문에 '상담심리학' 공부라도 해야 하나 골똘히 고민을 하기도 한다.  나를 '상담가'로 써먹고 있으니 내가 프로페셔널이 되어줘야 하는게 아닐까?  선무당이 사람 잡을수 있으니까 말이지.  내가 돌아보면, 내 인생에서 내게  무슨 (별것도 아닌것이 자명한, 결국 죽고 사는 문제도 아닌 것인데) 문제가 생겼을때 나는 달려가서 하소연 할 존재가 없었다. 나는 그냥 정신을 바짝 차리고 문제들을 직면하고 해결하고 살아왔다.  지금은 하느님이 계시니까 걱정이 없는데, 그 전에는 모든 문제를 나혼자 직면하고 살아왔었다.  그런데 그는 나라는 '조커' 혹은 '찬스'를 아주 유효적절하게 사용해먹고 있는듯 하다.  녀석에게 나는 위 사진 속의 영원한 안성기다. 나에게도 안성기가 필요하지만 없으면 할 수 없는거지.  누군가의 안성기라도 되어주면 그만이지. 나에게도 안성기가 필요하다구!!!


내가 살아있는 동안 그는 꾸준히 나라는 '챤스패' 혹은 '조커'를 잘 써먹을것이다.  내가 죽고나면 그는 어떤 패를 쓰게 될까?  하느님을 찾아보지 그러셔?


앗! 이것은 2008년 8월 29일 워싱턴디씨 Freer Gallery에 안성기오빠가 오셔가지구!

성기오빠도 이제는 많이 늙으셨겠지. 나도 그만큼 늙었으니 쌤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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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ee Eunm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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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ry/Life2018. 9. 28. 11:42



여름에 장만한 내 맥북을, 한 번 샀으니 향후 5년 이상 사용할 것인데, 그냥 들고 다니다 보니 벌써 미세한 스크래치가 보인다.  전에 사용하던 것은 내가 직접 바느질하여 퀼트 슬리브를 만들어 입혀주고 위해주었는데 (그래서 아직도 멀쩡하다), 이번 것은 벌써 몇달 째 방치. 지금은 바느질 할 여유가 없지. 왜냐하면 왕눈이가 없으니까.   찾고 있던 가죽 슬리브는 가격이 너무 비싸서 못샀지. 



며칠전에 내가 찾던 가죽 슬리브가 굉장히 싼 값에 나왔다.  기다리던 때가 왔노라. 조금전에 택배기사님이 전해주고 가셨다. 통가죽이라 생각보다 좀 더 두툼한데 (나는 슬림하면서 튼튼한 가죽을 기대하긴 했지) 그래도 이것을 입혀 주니 이제 안심이 된다. 



사실, 열받는 것을 막기위해 전용 거치대도 주문을 했는데, 아직도 안 오고 있다. 그래서 전용거치대가 올때까지는 '법륜스님의 금강경 강의'책이 나의 맥북 프로 전용 거치대이다.  나는 이 금강경을 하루에 딱 한 챕터씩만 본다. 금강경은 한꺼번에 후루룩 보는 경이 아니라, 하루에 한가지 가르침을 읽고, 사색하고 삶에 적용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거치대가 올때까지만.  



이 맥북커버는 쓸수록 더욱 맘에 든다. 

http://item.gmarket.co.kr/Item?goodscode=1458663742

탄탄하고 슬림하다. 게다가 맥북을 꺼내서 사용할때는 이것 자체가 '마우스패드'가 되어준다.  이것만 들고 다닐때에도, 가방에 넣어도 탄탄하고 슬림한 느낌이 아주 매력적이다.  가죽슬리브 참 많이 검색했는데, 값이 ㅣ터무니 없이 비싸거나, 디자인이 너저분하다거나.  이것이 내 맘에 드는 이유는 (1) 가죽슬리브로서 가격이 과하지 않고, (2) 디자인이 딱, 정확하게,  내 취향에 일치한다는 것이다.  군더더기 다 빼고 꼭 필요한 기능만.  


참으로 마음에 들어서 미국에 있는 챨리님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사다 줘야지 생각하고 있다. 미국에서 맥북용 가죽 슬리브 사려면, 여기서 산것보다 비싸지... (그래서 내가 안사고 그냥 갖고 왔는데...)




Posted by Lee Eunm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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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ry/Life2018. 9. 26. 14:52

눈먼 고양이 폴 : 2015년 4월 사진




내가 '사도 바울(Paul)'이라고 이름 붙이고 '폴'이라고 부르는 눈 먼 고양이.  이 고양이는 어느 가을날 내가 덤불에서 녀석을 발견했을때, 아기 고양이였는데, 눈을 반쯤 감고 앉아 있었는데, 반쯤 뜬 눈이 빨갛게 충혈되어 있었고 눈에서 진물과 피고름이 흐르고 있었다.  아마도 멀쩡하게 태어났는데 뭔가 감염이 되어서 눈을 멀게 된 것 같았다. (잘 모르겠다.)  어쨌거나 이 야생고양이 가족에게 내가 해 준 것은 그냥 밥을 챙겨 주는 것 뿐이었다.  앞에 눈 감고 있는 고양이가 '폴', 그리고 저만치 뒷모습만 보이는 고양이가 '피터 (베드로)' 말하자면 기독교를 일으킨 양대산맥 '베드로'와 '사도바울' 두 성자를 기념하는 이름들이다. 


이 눈먼 고양이가  저기 보이는 덤불에서 태어나 5년을 살도록, 가끔 다른 거친 고양이의 공격 대상이 되어 고통도 겪지만 '사람들'중 어느 누구하나 이 고양이에게 장난으로라도 위험한 행동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도 나는 버지니아의 내 이웃들을  아주 '좋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이웃들중 아무도 아무도 이 고양이를 괴롭히지 않는다.  그래서 이 눈먼 고양이는 사람이 다니는 길을 사람처럼 다니기도 한다.


고양이 피터는 지난해에 어디론가 자신의 영토를 찾아 떠나버렸고, 폴은 아무래도 시각장애가 있다보니 집 근처를 떠나지 않고 여일하게 살고 있다.  폴은 어미고양이가 계절이 바뀔때마다 새끼들을 낳으면, 새로 생긴 '동생들'을 극진히 위했다.  어미 고양이는 새끼를 두배 더 낳고 중성화가 되었는데, 어미가 새끼를 낳으면 돌보는 것은 폴이었다.  동생들도 폴을 무척 따랐다. 그리고나서 그들이 성묘가 되면 그들은 폴의 곁을 떠나갔고 폴은 혼자가 되었다. 요즘 폴은 거의 혼자 시간을 보낸다. 가끔 어미고양이와 만나기도 하지만, 대체로 혼자 나타나서 밥을 먹고 혼자 자신의 처소로 간다. 


그런데, 큰애가 폴의 새로운 소식을 전해준다.


http://americanart.tistory.com/2778  


링크된 페이지에 소개한 '푸틴'녀석 (러시아산 하얗고 체격 큰 고양이), 이 녀석이 말하자면 동네 깡패이고, 우리 폴을 무척 괴롭히는 녀석인데 요즘 폴이 하얀 아기고양이들을 여러마리 이끌고 밥을 먹으러 온다고 한다.  물론 숫놈인데다 중성화된 폴이 새끼를 낳았을리는 없고, 어디선가에서 아기고양이를 발견하고 스스로 이들의 '보모'를 자처한 모양이다.  폴이 마치 어미고양이처럼 새끼고양이들에게 '밥 배급소'인 우리집 뒷마당으로 이끌고 오는 교육을 하고 있고, 새끼 고양이들은 배가 고프면 덤불근처에서 우리집만을 주시하고 있으면서도 좀체로 다가오지 않다가, 어디론가 가서 '폴'언니를 앞장세워가지고 우리집에 와서 밥을 먹는다고 한다.  (사진에서 수국화분 옆의 투명한 물그릇, 그것이 고양이와 새를 위한 물그릇이다).  아기고양이들이 이 물그릇 근처에 놓여진 먹이를 맛있게 먹고는 '폴'언니 근처에서 놀다가 덤불로 돌아간다고 한다.  어미는 누구인지 모르나 애비 녀석은 필시 그 '푸틴'녀석이라고 큰애가 전한다.


마음씨가 비단결인 우리 사도바울이 요즘 아기들의 보모가 되어 아주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니 나도 기분이 좋아진다.  아무것도 보이지도 않고, 더듬 더듬 기억에 의지하여 우리집에 밥을 먹으러 오는것이 전부인 이 고양이의 가슴에 '사랑'이란 것이 있어서, 보이지도 않는 남의 새끼들을 돌보다니, 생명이란 참 신기하다. 



너는 사랑을 표현할 수 있어서 기쁜거겠지? 그 아이들이 다 자라면 너를 떠나거나 혹은 너를 왕따시키며 괴롭힐지라도, 그래도 지금 당장 너는 사랑을 할 수 있어서 지금 기쁜거지? 






Posted by Lee Eunm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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