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2024. 1. 6. 13:10

2024년 1월 5일 (금)

 

나는 이제 '과일 폭식' 습관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나로서는 놀라운 일이 아니지만, 떨어져 지내던 미국의 가족들은 놀라워한다. 하루 온종일 과일을 먹어대던 엄마가 과일을 안먹고 있는 것이다.

물론 밥+국 대용으로 요즘 사람들이 하듯 '샐러드'로 한끼니를 때울때, 여러가지 채소와 과일(주로 사과)을 섞은 샐러드를 만들어 먹을때, 나는 거리낌없이 그 속에 들어간 과일 조각들을 맛있게 먹는다.  혹은 식후에 사과 한조각을 먹기도 한다.  그러나 사과나 오렌지를 이유도 없이 통째로 간식으로 먹지는 않는다. 

 

이런 과일 폭식에서 벗어난 후의 나의 상태는 -- 머리가 가뿐하다. (너무 지나치게 많은 과당이 내 몸에 좋지 않았을지 모른다.).  이전보다 피로감도 덜하다.  그럭저럭 과일 끊은 이후에 타이레놀을 먹는 일도 없고, 감기 몸살도 없이 잘 지내고 있다. 휴가와 휴식의 시간을 보내기 때문에 피로감이나 감기 몸살이 없는 것을수도 있다.

 

 

 

2023년 12월 8일 (금)

열흘쯤 전에 과일을 끊겠다는 작은 결단을 한 이래로, 나는 정말로 과일을 끊었다.  뭐 과격하게 뭘 끊겠다는 결의를 한것은 아니고, 그냥 과일 폭식을 절제하겠다는 정도였는데, 일단 과일을 안먹겠다고 생각하니 -- 정말로, 과일을 먹지 않게 되었다. 

 

매일 서너개씩 먹던 사과도, 근처 농산물도매시장에서 박스 박스 박스로 사 들여서 한나절에 없애곤 하던 단감, 샤인머스켓, 귤, 그외의 시시철철이 나와서 나를 불러대던 과일친구들을 거들떠도 보지 않게 되었다.  남편이 도시락 챙겨주면서 꼬박꼬박 챙겨주던 사과한알, 삶은계란 한개, 요거트 한개 중에서도 사과는 먹지 않고 남겨 가지고 돌아왔다.  그래서 이제 남편은 점심 아이템에서 사과를 빼준다. 

 

아침에 눈뜨자 마자 냉장고에서 과일을 꺼내 먹고, 학교에 가기전에 또 과일을 먹고, 학교에서도 과일을 우적우적 먹고, 집에 오자마자 냉장고를 열어 과일을 먹고, 식후에, 잠자기전에 먹어대던 그 과일잔치가 모두 중단되었다.  그런데, 금단 증상도 없다. 내가 이렇게 쉽게 과일을 끊을수 있는 것은 -- 내가 추측하기에 -- 내가 정한 체중감소에 성공하면 나는 다시 과일을 먹을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과일과 내가 영원히 헤어지는 것이 아니라 잠시 건강을 관리하기 위해 이별하고 있다는 것을 과일도 나도 알고 있다는 것이다. 남자친구가 군대가면 내가 태평하게 기다리듯, 과일은 군대를 간거고 나는 기다리는거다. 

 

예전에 위장 문제로 커피를 끊을때도 그냥 단박에 그걸 끊었다.  건강검진을 받았는데, 의사선생님이 '만성위염'인데 이거 그냥 놔두면 위암이 될수도 있고 주의하는게 좋겠다는 그냥 일상적인 조언을 해주셨는데 - 그러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술도 담배도 안하는데 뭘 개선할까? 내가 습관적으로 하루에 서너잔, 독하게 마시는, 내 피는 커피로 이루어졌다고 말하던 내 커피습관을 개선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날로 커피를 끊었다.  그때도 나는 그냥 '그럼 커피를 좀 줄여볼까?' 생각했고, 그걸로 커피를 끊었다. 물론 지금도 가끔 스테이크를 먹을때, 블랙커피를 주문해서 거기다 물을 타서 보리차같이 연하게 만들어서 조금 마시기도 한다. 필요하면 어쩌다 커피를 마시기도 한다.  습관적으로 커피마시는 것은 하지 않는다. 지금도 내 연구실에는 이러저러한 사람들이 갖다 준 여러가지 캔커피나 뭐 병에 들은 커피들이 즐비한데, 나는 그걸 혹시 비상약처럼 쓸일이 있을까 싶어서 그냥 놓아두고 있긴 하지만 손이 가지는 않는다. 너무 피곤하고 카페인이 필요하면 그걸 열어서 조금 먹겠지. 

 

과일을 쉽게 포기하는 나 자신을 보면서 나는 새삼 깨닫게 되었다.  '어? 나, 뭐 잘 끊네. 쉽게 끊네!'  그냥 마음이 스스로 동하면 그렇게 되는것 같다.  '단박에' 무언가 깨달을 때, 스스로 그 필요성을 자각할 때, 그때 행동이 쉬워지는듯 하다. 

 

....

 

나는 아주 재미있는 식성을 갖고 있는데, 나는 먹을줄 아는게 제한적이다. 내가 먹을수 있는건 - 과일, 채소, 생선, 쇠고기구이, 국수 정도이다. 나는 쇠고기 살코기 구이 이외의 거의 모든 육류를 입에 대지 않는다. 그건 내 선택이나 취향이 아니라 타고나기를 그렇게 타고났다. 그러니까 테레비에서 아무리 프라이드치킨 광고를 해도 그것은 내게는 스폰지 광고와 다를바가 없다. 삽겹살파티는 내게는 악취나는 연기투성이 현장일 뿐이다. 아무것도 내 미각을 자극하지 않는다. 마라탕이건 양꼬치건 족발이건 순대건 뭐건간에 그것들은 그냥 흙덩어리이다. 내 입에 들어갈 소재가 아니다.  그래서, 나는 제법 건강한 식생활이 가능한 편이다. 온갖 나물이나, 온갖 채소, 과일이 들어간 샐러드만 평생먹어도 나는 태평하게 잘 살수 있다.  가끔 어지럼증이 생기면 스테이크를 먹으러 가거나 생선구이를 먹는다. 그래서 대체로 나는 여태까지 건강하게 잘 지내왔다.  그런데 갱년기를 지나면서, 몸이 둔해지고, 쉽게 지치고, 결과적으로 운동부족으로 건강에 경고등이 들어오고 있다.  '여기서 더 진행되면 위험해. 운동해. 체중 감소해' -- 이것이 최근에 내가 받은 종합건강진단 내용이다.  지금 내가 먹는 것중에서 줄일것은 별로 없다. 운동만 조금 더 하면 되겠다.  과일을 끊고 열흘, 매일 장거리 산책 - 1킬로그램 감량했다. 

 

 

 

 

 

 

 

2023년 11월 28일 

 

애주가가 술을 끊는것이 어려운 일이듯,
애년가가 담배를 끊는 것이 어려운 일이듯,
내게는 과일을 끊는 것이 술담배 끊는 것 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나의 몸은 '과일'로 구성되었다고 말 할수 있을 정도로 나는 과일을 폭식하는 편이다.  과일을 못 먹으면 짜증이나고, 생각이 잘 안나고, 몸의 기능이 현저히 둔화된다. 그런데, 최근의 건강검진 결과를 보면 내가 성인병을 슬슬 걱정할 단계에 이르렀다. 체중을 줄여야하고 운동을 착실히 해야한다. 

 

 

 

체중을 줄일때, 먹는것에서 가장 많이 줄여야 할것이 '과일'이다. 

 

 


운동의 경우 - 몸이 노화되면서 한번 운동하면 일주일을 몸져 누워있어야 할 정도로 체력이 저하된 관계로 이 역시 쉽지 않다. 운동한번 하고 일주일 누워있을것인가, 운동 안하고 그냥 그럭저럭 지낼것인가 - 그것을 고민해야 할 정도이다. 아무래도 실내 체육관에서 운동하는 것이 방법일것 같다. 실외에서 하면 영락없이 기침 감기에 걸려서 종일 콜록거린다. 

 

 

어쨌든, 상황이 걱정스러우니, 건강을 회복하기 위해서 남들이 술, 담배, 커피를 끊듯 나는 과일을 끊어야 한다. 

 

 

내가 과일을 얼마나 먹냐하면 - 귤 한상자 사면 하루면 다 끝났다.  단감 만원어치 사고 그날 하루에 다 해결본다. 포도 한상자는 이틀이면 끝이다. 삼시세끼 밥챙겨먹으며 간식으로 먹는게 그 정도이다. 그것도 사생결단으로 먹는게 아니라 나름 '자제'하며 먹을때 그정도 이다. 아마도 '과일 먹방'을 하면 -나도 꽤 잘 할 것이다. 남들이 라면을 열개씩 먹을때 나는 라면 두개면 땡이지만, 과일 먹기라면 무한대다. 

 

 

그렇지만 이제부터 당분간 과일을 끊기로 한다. 체중을 한 5킬로그램 정리하면 그 때 과일을 조금 먹을수 있을 것이다. 나의 과일 끊기 전략은 의외로 단순하다.

 

 

1. 방울토마토를 무한대로 먹는다.
2. 사과는 하루에 한개 정도만 먹는다. 


 

방울토마토는 무한대로 먹는 대신에 - 사과는 하루에 한개나 반개 정도로 만족하고, 나머지 과일을 일체 입에 대지 않겠다는 것이다.  뭐 방울토마토가 있으니까 그래도 나는 외롭지 않다. 하하하.  (일단 오늘부터 12월 말까지만 실천해보고...)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3. 12. 10. 23:22

 

토요일에 친정에 들러서 엄마를 모시고 미장원에 들렀다. 파마한지 오래된 짧은 커트머리의 엄마가 초라해보여서 파마를 해드리기로 했기 때문이다. 엄마는 거동하기도 힘들고 하니까, 언제부턴가 파마를 안하셨다. 그냥 귀챦고 힘들어서이다.  그래서 내가 모시고 가서 머리를 라면처럼 보글보글 파마를 하기로 한거다. 노인들은 그렇게 파마를 하면 훨씬 씽씽해보이고 한결 젊어보이신다.  

 

나는 파마기 없는 짧은 커트머리의 백발의 노인 모습이 슬프다. 왜냐하면, 요양원에 계시는 할머니들 헤어스타일이 다 그러하기 때문이다.  짧게 깎은 커트머리.  위생에 가장 편리할 것이다. 단지 그러한 이유로 요양원에 계시는 분들 머리는 다 똑같다.  엄마는 자기 집에서 살고 있는데 벌써부터 요양원 헤어스타일이 될 필요는 없다. 나는 엄마가 요양원에 가시는 일이 없어 자기가 살던 집에서 이 세상을 하직하시기를 희망하고 있다. 사람의 일은 그러나 장담할수 없다. 단지 소망할 뿐이고 - 하나님께서 나의 소망을 알고 계시니...뭐 알아서 해주시겠지.

 

엄마를 모시고 미장원에 가니 수년간 그자리를 지카는 '노인 전문' 미장원 원장님 (그곳은 너무 작고 초라해서, 젊은이들은 찾지 않고 주로 파파 할머니들이 찾으신다. 그래서 나는 그곳을 노인전문 미장원이라고 부른다) 은 딸보다도 더 살갑게, 진심에서 우러나는, 본래 타고나기를 그렇게 타고난 사람처럼 노인을 공경하고 친절하다.  그 원장님이 나를 반기며 그러신다, "아이구, 늙어봐 아들 다 소용없어. 딸이 최고지. 따님이니까 이렇게 파마도 해드린다고 하는거지."  나 듣기 좋으라는 칭찬의 말씀이다.

 

내가 엄마를 모시고 어딜가나, 사람들은 듣기좋은 칭찬의 말처럼 "아들 다 소용없어. 엄마는 딸이 있어야 해. 저것 좀 봐. 딸이 있으니까 저렇게 엄마를 모시고 다니지..." 이런다.

 

그런데, 나는 문득 그 소리가 참 듣기가 싫어진다. 

 

 

늙으면 아들 다 소용없고 딸이 최고라는 그 말씀속에 들어있는 속뜻은 이런거다 -- 아들 높이 받쳐서 잘 키우고, 딸은 아무렇게나 대충 막 키워도 나중에 효도하는건 그 막키운 딸이다.  나는 나에 대해서 함부로 대했던, 나의 존엄성에 신경쓰지 않고 대충 키웠던 내 부모님에 대해서 마음속에 분노를 품고 성장한 사람이다.  돌아보면 비교적 유복하게, 평범하고 훌륭하신 부모님 슬하에서 큰 고생 안하고 잘 자랐으므로 불평의 여지가 있어서는 안되지만 - 그런 가운데에서도 아들과 딸 사이에 차별을 했던 것 역시 사실이어서 나는 그 차별에 분노하면서 성장했다.  그러니까 전체적으로 보면 나는 불평해서는 안되는 유복한 사람이지만, 남매들 사이에 경험한 '차별'에 대해서도 선명한 기억을 갖고 있는 것이다.  바로 그 '차별'의 기억이 이따금 나를 '배은망덕'한 인간으로 몰고간다. 

 

그래서 남들이 '딸이 좋지'라고 말을 할때, 나는 속으로 혼자서 말한다, 나를 식모 새끼처럼 키워놓고, 이제 나이 먹으니까 여전히 만만해서 나를 종년처럼 부려먹기가 좋지?  말 안해도 알아서 척척 챙겨주니까 부려먹기 참 만만하지?  -- 이렇게 속으로 분노하고나서 못난 나의 모습에 내가 실망한다. 도대체 나는 왜 이렇게 못되 처먹은 인간인 것인가? 

 

'딸이 좋다'라는 말 속에 들은 그 불쾌한 함의 -- 비록 미천하나 나중에 나에게 도움이 될 비천한 존재. 

 

나는 참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내게 딸이 없음을.  늘그막에 종년처럼 부려먹을 딸이 내게 없는것이 참 다행이다. 왜냐하면, 나는 딸을 종년처럼 부려먹고 싶지 않은데, 만약에 내게 딸이 있다면 결국 나는 늙어서 그에게 의지하게 될테니까. 그의 부담이 되고 말테니까. 그러니까 차라리 없어서 다행이다.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내 딸아. 나는 네가 이 세상에 - 내 곁으로 오지 않은 것을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왜냐하면 나는 너에게 부담이 되고 싶지 않으니까. 너를 슬프게 하고 싶지도 않고, 너를 화나게 하고 싶지도 않은데 내가 그걸 지킬 자신이 없으니까. 그러니까 나는 네가 내 곁에 오지 않은것을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딸아, 이것이 내가 너를 사랑하는 방식이다. -- 이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는 딸에게 나는 이렇게 말해준다.

 

내 두 아들은 내게 무심하다. 엄마가 너무나 씩씩하게 잘 살아내고 있으므로 그 자식들은 태평하다.  나는 내게 무심한 두 아들에 대하여 아무런 불만이 없다.  내 걱정 말고 너네나 잘 살아라.  내가 죽을때까지 그럴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것도 하나님께서 알아서 해주시겠지. 나는 하나님만 의지할거다. 그러고 싶다. 자식에게 부담을 주지 않고 살다가 천국으로 가야 할텐데 ...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3. 11. 13. 14:44

 

근처 메가박스에 가서 미야자키 하야오의 최근작 (은퇴후 리턴 작)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을 보았다. (2023, 11, 11)

 

 

이세상을 지나 - 바다세상(무덤의 세상)을 지나 - 저쪽 세상 이야기가 진행될때 꾸벅꾸벅 졸기도 했다. 뭐랄까 내가 기대하던 환상적인 뭔가가 빨리 나와줘야 하는데 안나오고 지리멸렬하게 이어지는 줄거리에 슬슬 졸음이 왔었다. 조금 졸다가 하일라이트 장면부터 다시 즐겁게 관람. 

 

 

졸았던 것은 내가 피곤해서 그랬던 것이고, 대체로 마음에 들어서 다시 한번 더 볼 생각이다. 미국에서는 12월에 개봉한다고 하는데, 미국에 가서 아이들과 함께 다시 봐야지 하고 벼르고 있다. 

 

 

왜 좋은가? 묻는다면, 뭔가 분석적으로 설명을 해야 할 것 같은데 - 그것은 내가 중간에 졸은 부분이 있어서 (그 부분에서 뭔가 놓쳤을지도 모르므로) 지금은 곤란하고, 전체적으로 보자면  여전히 환상적인 화면이 나의 가슴을 뛰게 하고, 그리고 내 앞에 주어진 삶에 대하여 나는 어떤 책임이 있는가 생각해보게 만드는 작품이라고 말하고 싶다.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3. 11. 13. 14:37

 

영어클럽 회원들과 함께 예술의 전당, 자유소극장에서 공연하고 있는 연극 '바닷마을 다이어리'를 봤다. (2023년 11월 9일 목요일).  어린이 일곱명을 포함한 남녀노소 17명이 관광버스까지 빌려서 길막히는 저녁시간 '서울구경, 연극구경.'

 

 

이 작품은 넷플릭스에서 일본영화로 몇해전에 보다가 졸려서 끝까지 안봤었다. 이 작품을 선정한 것도 내가 아니다. 여차저차해서 연극 관람을 할 기회가 생겼을때, 팀원이 제안했고 나는 아무 생각없이 승인을 했을 뿐이다.  사실 7시30분에 시작된 연극을 관람하면서도 나는 지루하고 졸립다는 생각을 떨쳐내지는 못했다. 피곤했기 때문일 것이다. 

 

 

오랫만에 정통연극무대를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의미있다고 생각하고 피곤한 눈을 비벼가며 연극을 다 봤는데 - 함께 갔던 시민들, 어린시민들 모두 아주 재미있었다는 평이었다. 나도 버스를 타고 심야를 달려 돌아오며 반추해보니 여러가지로 의미있던 연극 관람이었다. 

 

 

일단 1인 5역, 1인 3역을 해 낸 배우들의 연기를 보는 재미도 있었고 (아, 저렇게도 가능하구나!), 대단한 무대효과없이 평이하게 조명과 음향으로만 이끌어간 연극이 '무공해 식품'을 먹고 난 후의 신선함, 건강함, 편안함과 닿아있었다.  주제나 스토리는 시간이 갈수록 길고 고요한 여운을 준다. 며칠간 그 연극 생각을 골똘히 했다.  좋은 작품이었다.  다시 영화를 꺼내보면 뭔가 다른 맛을 느낄수도 있을것 같다. 

 

 

 

(영어클럽회원들과 연극공연을 보러 갔던 이유는 - 우리가 이번 주말에 영어 연극을 무대에 올리기 때문이다. 연습도 없이, 단 한번의 리허설을 하고 무대에 올린다. 나의 담대함이라니...)

 

Posted by Lee Eunmee
Scrap Book2023. 11. 1. 16:59

 

 

영종도에 있는 '성수미술관'이라는 미술 놀이 카페에 가보게 되었다. 일에 둘러싸여 사는 인생이라 이런 곳이 있다는 것도 몰랐는데, 마침 소속 기관 워크샵의 일부 프로그램으로 이곳에서 '그림놀이'하는 일정이 포함되어 있어서 좋은 경험을 하게 되었다.  '성수미술관'은 이런 형태의 프렌차이즈 카페 인 듯 하다.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면 이미 준비된 미술 재료들을 이용하여 그림 그리는 놀이를 하며 시간을 보내고, 자기가 그린 그림을 갖고 나오는. 

 

 

 

바다를 내다보며 마음 편히 그림을 그린다니. 한시간 반 정도 시간을 보냈는데, 그 시간이 세상에서 다시 없이 즐거운 시간처럼 여겨진다. 서툴지만 신나게 그림에 열중할수 있어서 였을 것이다.

 

 

 

 

우리가 '교육 기관'이라서 - 나의 컨셉은 - 지금 내가 하는 작업은 '등대'같이 어둠에 빛을 보내는 것이라는 메시지이다.  뭐, 서툴지만 한시간 반 만에 컨셉 잡고 대충 완성했다는 것에 만족한다. 이보다 더 잘 그릴 자신도 없고, 딱 내가 그림 그리는 실력 그대로이다. 

 

 

 

다음에 거기 또 가서, 시간 제약없이 다시 한번 그림을 그려보고 싶다. 재미있었다. 

 

 

 

이 이후에는 파라다이스시티라는 곳에 가서 뭐 쿠사마 야요이의 대형 '호박'도 보고, 커다란 의자도 보고, 눈이 호사를 누리고, 심각한 회의도 하고 그러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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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 미술관 (National Gallery of Art) 폴 고갱 전시회  (2) 2011.03.01
Posted by Lee Eunmee
Diary/Life2023. 10. 25. 15:17

 

코바늘뜨기로 스웨터를 짰다. 한 일주일 쯤 걸렸다. 비교적 쉬운 뜨개질 패턴이고, 디자인도 단순해서 TV 보면서 금세 뜰 수 있었다.  비슷한 형태로 하나 더 짜볼까 생각중. 

 

 

크로셰 잘하시는 분이 만든 패키지를 사서 짠것이라서 고민할 필요도 없었고, 도안도 상세히 잘 나와 있어서 내가 아무 생각없이 그냥 시키는대로 따라하기에 아주 좋았다.  평소에 머리를 쓰고, 내가 생각해서 판단하고 책임져야 할 일들이 많아서인지 - 아무 생각없이 남이 설명하는대로 따라서 뭔가 하는 일이 편안하고 즐겁다.  참 고마운 일이다. (참, 도안을 꼼꼼하게, 알아보기 쉽게 만드셨다.)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3. 10. 10. 17:36

나는 왼손잡이이다. 그래서 나는 왼손으로 현을 잡는 현악기를 사용하기에 유리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물론 음악이나 연주에 대하여 고등학교 수준의 교양을 갖고 있는 나의 매우 개인적인 생각이므로 이론적으로 전혀 뒷받침이 안될것이나...).  아무튼 나는 왼손잡이이니까 왼손으로 코드를 잡는것이 오른손으로 잡는 것보다 유리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그런데, 기타 연습을 하다가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느낌이 들게 만드는 연습곡이 있다. 새끼손가락을 집중적으로 사용하게 만드는 연습곡이다. 잘 진도가 나가다가 그 곡이 나오면 나는 혼자 '징징' 우는 소리를 낸다. 나는 새끼손가락이 현저하게 짧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남자손같이 두둑한 내 손을 살펴보다가 우연히 내 새끼손가락을 발견하면, "야, 너 새끼손가락 너무 귀엽다!"고 말하곤 한다. 다른 손가락에 비해서 새끼손가락이 앙증맞게 작고 가늘고 귀엽기 때문이다.  새끼손가락은 내 손을 제법 귀엽고, 예쁘게 만들어주는 것 같다.  문제는 이것이 앙증맞게 작고 가늘다는데 있다. 

 

저 아래 솔부터 시작해서 솔-라-시-도-레-미-파-솔-라-시-도-레-미-파-솔 까지 치려면 기타줄 맨 아랫줄(가장 높은 음줄)의 솔에 새끼손가락을 붙이고 기타줄 맨 윗줄(가장 낮은음 줄)의 솔까지 잡고서 오르락 내리락 해야 하는데 - 그 아래솔과 그 위의 솔을 한꺼번에 새끼손가락과 네번째 손가락으로 잡아야 하는 것이다. 넷째 손가락과 새끼 손가락이 가장 힘이 약한데 이 두 손가락이 가장 잡기 힘든 두개의 줄을 잡아야 한다. 너무나 괴롭다. 

 

아, 뭐 연습밖에 답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나에게 장애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손가락힘이 약하다는 것 뿐이다. 군소리 말고 연습을 해서 근력을 키워야 한다. 아, 괴롭다.

 

(장애가 없어도 괴로운 상황은 얼마든지 많은데, 불리한 신체적 장애를 가지고도 그것을 이겨내고 대가를 이루는 사람들은 정말 굉장한 사람들이다...)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3. 9. 20. 11:25

 

기타를 들여다보다가, 클래식 기타와 통기타는 어떻게 다른지 검색도 해보고, 어쿠스틱은 또 뭔가? 조사를 해보니 통기타를 어쿠스틱이라고 하는것도 같고 - 기타를 분류하는 기준도 여러가지가 있는 듯 하다.  일단 클래식 기타가 무엇인지 대충 감을 잡았다.  기본적인 차이는 몇마디 (클래식 12마디, 어쿠스틱 14마디), 줄간격이 클래식기타가 조금 더 넓은 편이고, 줄의 재질에서 차이가 나고. (https://blog.naver.com/orangewood_/221186870656

 

예전에 기타 배울때 교본으로 사용하던 카르카시 기타교본 (미국집에 있는데) 을 다시 주문하였다. 연구실에 기타 자리를 잡아주고, 청소를 했다. 보면대를 사려다가 독서대를 책상위에서 보면대로 사용하기로 하고. 발 받침은 주문을 해야 할것 같다. 

 

옛날과 동일한 책으로, 옛날에 초보때 연습하던 생초보 연습곡들을 차례차례 훑어나간다. 신기하게도 일단 옛 책을 열어서 순서대로 연주해보니, 기억이 '확!' 되살아난다. (인간의 기억력은 참 신기하고 신통하다! 새삼 인간의 몸을 얻고 태어나서 악기를 연주한다는 것에 경이감과 감사함을 느끼게 된다.)

 

27년이 흘렀다. 내가 한창 기타에 입문하여 시도  때도 없이 기타에 매달려 있던 시간으로부터 27년이 흘렀다.  그 때, 나는 내가 세상을 많이 살았고 늙어갈 일만 남았다는 상상을 했지만 (최영미의 '서른 잔치는 끝났다'라는 시가 당시에 많이 회자되어서, 그 당시 서른을 넘긴 사람들은 모두 인생이 끝난것 같은 기분이었다), 돌아보면 서른에 '게임은 아직 시작도 안했다'가 아니었을까? 내 인생의 게임은 아직 시작도 안된 상태였고, 갈길이 참 멀었었다. 이 나이 먹도록 아직도 갈길은 멀다.  그 때 하룻강아지 시절 - 나는 인생이 대충 정리가 되고 기울어간다고 상상했고 - 막막한 가운데 그냥 기타를 시작했던 거다.  왜 기타였냐면 - 피아노에 한이 맺혀 있어서 둘째를 위해 예쁘장한 피아노를 사 준 후였지만 피아노를 시작할 생각이 털끝 만큼도 들지 않았고, 뭔가 부드럽고 다정하며, 휴대가 가능한 그런 악기가 좋겠다는 생각을 했고, 마침 근처 아파트에서 대학교수님이 피아노 개인교습을 해준다는 광고문이 붙었길래 - 무장적 그를 찾아가서 기타에 입문한 것이다. 특별히 기타일 필요도 없었고, 우연히 기타였다.

 

서른, 잔치가 끝났다구?  아직 게임은 시작도 안된 그런나이다.  서른이여 희망을 가지시라.  (그때 나는 두아이의 엄마였고, 이미 학부형이 되어 있었고, 신도시에 중형 아파트도 자력으로 마련하여 입주한 상태였고, 뭐랄까 폭풍같은 인생의 가시밭길을 다 헤쳐나온 그런 기분이 들었고, 잔치가 끝났다고 회자되는 나이였기때문에 그냥 인생이 이제 황혼으로 치닫는 줄 알았었다.)

 

그때 나는 막연했다. 공부를 하고 싶지만 애들을 키워야 했고, 번듯한 직장에 나가고 싶었지만 애들을 키워야 했다. 돈이 풍족한것도 아니었고, 뭐랄까 모든 것이 자리를 잡았으며 동시에 애매했다. 그러다가 꽤 조건이 좋은 파트타임 강사 자리를 통해서 제법 흡족한 용돈 벌이를 시작했는데 - 몇시간 일하고 남의 월급 만큼 흡족한 용돈 벌이를 하는 여유가 생기자 - 객기 부리듯 대학교수에게서 기타 개인교습을 받기 시작한거다.  그리고 하루에 몇시간씩 기타를 안고 살았다. 부엌에서 밥을 짓다 말고 기타에게 달려갔고, 잠에서 깨자마다 기타를 안았으며, 식구들이 모두 잠이 든 밤에 혼자 기타를 부둥켜 안고 사랑을 나눴다. 그랬다. 기타와의 열정적인 외도. 그러나 모든 외도가 그러하듯 불타오르던 외도의 즐거움은 금세 사그라졌고 그 후에 우리 가족은 플로리다로 향했다. 기타는 내 삶에서 싹 사라졌다. 

 

그리고, 지금 이 친구가 다시 내 삶으로 저벅저벅 들어왔다. 

 

기타와 나는 오랫만에 만난 친구처럼, 혹은 한때 사랑했으나 헤어졌다가 다시 만난 옛 연인들처럼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눈다.

 

기타: 오랫만이네.

나: 그렇군. 너는 그대로인데, 내가 좀 늙고 바랬지...

기타: 늙고 바래는게 꼭 나쁜것은 아니겠지. 너의 손길은 여전한데. 여전히 서툴고, 여전히 엉성하고, 여전히 내 소리를 좋아하는구나. 

나: 그래. 나는 연주자는 아니야. 잘 할 자신도 없어. 하지만 네 소리는 언제나 달콤해. 너는 아주 달콤한 연인이지. 

기타: 내게 돌아오는데 시간이 걸렸구나. 돌아와서 기뻐.

나: 반겨주니 고마워. 너는 언제나 다정하지. 

기타: 네 시간은 어땠니?

나: 나쁘지 않았어. 그냥 지금 좀 지치고, 보시다시피 늙었고, 그대신 조금 더 성숙해지고, 아이들이 자 자라서 어른이 되었지. 나는 공부를 했고, 전문직도 갖게 되었고, 꿈꾸던 삶을 사는것 같기도 해. 예전에 너를 처음 만났을 때 나는 인생이 막막했는데, 지금은 그런대로 성취감도 있고, 편안해.  나쁘지 않아. 

 

기타: 이제 다시 나하고 시간을 보내려고 하니?

 

나: 아마 그럴것 같아. 네 소리는 여전히 달콤하고, 너는 항상 내게 상냥해.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3. 9. 18. 14:37

 

동료가 연구실 문앞에 클래식기타를 놓고 갔다.  일전에 그의 집을 방문했을때, 거실에 기타가 놓여있길래 먼지가 덮여있는 것을 태충 셔츠로 문질러서 먼지를 털어내고, 생각나는 멜로디를 몇가지 연주해보았는데 그것을 눈여겨보았던지 그가 내게 기타를 빌려주겠다고 제안했다.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 "아니. 어차피 내가 연주할 것 같지도 않아"하고 사양을 했다. 

 

 그런데 그 날 이후, 그 기타소리에 머리에서 맴돌았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클래식기타 소리는 뭐랄까 아기고양이가 양양거리는 것같이 감미롭고 은근하지 않던가? 그 감미로운 소리가 귓가에서 산들바람처럼 맴돌았던 것이다.  그래서 복도에서 만났을때 그 얘기를 했더니, 기타를 가져다 놓았다.  그는 몇해전 이혼을 하고, 아이들을 키우고 살고 있었는데, (가끔 그가 여행을 갈 일이 있으면 그의 이혼한 남편이 와서 아이들을 돌봤으므로, 나도 이따금 그가 개를 산책시키는 것을 본적이 있다)  얼마전에 그 애들 아버지가 애들을 데리고 미국으로 돌아가버리면서 내 동료는 개와 함께 남겨졌다.  물론 방학때는 아이들을 보러 가기도 하고, 그들을 보면 이혼은 하였으되 '가족'으로서 평화롭게 지내고 있는 것 같아 보인다. 그 클래식기타는 그이의 이혼한 전남편이나 아이들이 연주하던 것이리라. 그는 내가 기타 연주를 할 때, '이집에서 기타소리를 듣다니 참 좋네. 난 기타연주를 할 줄 몰라. 그건 그냥 폼으로 거기 서있는거야, 네가 원하면 가져가도 돼'라고 말했던 것이다.

 

지금 그 기타가 내 연구실에 서 있다.  들여다보니 스페인 톨레도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내 평생에 스페인산 기타를 공짜로 만져보게 될 줄이야.  아마도 이 기타는 내가 돌려주지 않으면 내것이 되리라.  아무래도 나는 동료에게 기타값이 상응하는 보답을 해야 할 것도 같다. 

 

온라인에 떠있는 카롤리의 기초 악보를 찾아서 떠듬떠듬 연주를 해본다. 기타 생기초가 클래식 기타 연습할때 최초로 배우는 카롤리의 안단티노.  여전히 감미롭다. 다 잊어버려서 떠듬떠듬 다시 익혀야 하지만, 여전히 감미로운 멜로디.  그래서, 카르카시 기타교본과 쉬운 기타 연주곡집을 주문했다.  가을에 참 잘 어울리는 악기이다.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3. 9. 15. 11:29

 

시민들과 함께 하는 영어회화 활동 중에, '내가 꽃밭에 뭔가 한가지를 심을수 있다면 무엇을 심고 싶은가?' 질문을 던졌다. 그냥 영어가 능통하지 않은 사람도 쉽게 대답할 만한 질문을 던진 것 뿐이다. 주제가 씨앗을 심는 것과 관련이 있었고.  게다가 한국말로 알지만 영어로 이름을 모르는 식물은 '인간 영어사전'인 내가 가르쳐주면 되는 거였다. 사람들을 머릿속에 어떤 꽃밭을 상상하는지 행복한 표정으로 차례차례 이야기를 했다. 

 

대답한 사람들은 두 파로 나뉠수 있었는데, 콩이라던가 뭔가 '작물'을 키우는 '농사'짓는 파와,  순전히 꽃을 보려는 '정원관리'파로 분류될수 있었다. 그런데 어떤 분이 '벚꽃나무'를 심고싶다고 했다. "I would like to plant cherry blossom trees." 그래서 내가, "Ah ha! Now you want to enjoy both flowers and fruits!  After the cherry blossoms come the cherries!" 라고 맞장구를 쳐 주었는데, 그자리에 있던 대학 졸업 혹은 그 이상의 학력을 가지고, 영어도 좀 하시는 시민들의 표정이 애매해졌다.  Cherry blossom 하고 cherry 하고 무슨 상관이 있는지 알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벚꽃이 진 자리에 버찌 열매가 맺힌다고 내가 설명을 하자 -- '너 지금 우리한테 농담하는거지? 뻥치는거지?' 이런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런데, 이때, 이웃 강의실에서 다른 수업을 진행하던 미국인 교수가, 문이 열려있으니까 잠깐 들어왔다.  그래서 내가, "마침 잘왔어!  벚꽃이 핀 자리에 벚꽃 열매 버찌가 열린다는데 이 분들이 내 말을 안믿네" 했더니, 나하고 동갑내기인 그 미국인 교수가 나를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 "Are you kidding? There cherry blossoms are blossoms. Cherries are from cherry trees!"  (넌 또 뭐냐? 너 지금 농담해? )

 

서로가 서로에게 '너 지금 농담해?'하면서 옥신각신 하던 사이에 어느 지혜로운 분이 '구글'에게 물어봤던 모양이다. 그는 여전히 아련한, 안개속을 걷는다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어..정말 벚꽃 자리에 열매가 맺힌대! 그걸 먹는대!" 

 

구글이 없었으면 내가 아주 미친X이 될 뻔했다. 

 

그래서 나는 문득 깨닫게 되었다. 이 잘 교육받은 젊은 분들 (30대 -40대)이 해마다 벚꽃을 보면서도, 그 벚나무에 맺힌 까맣게 익어가는 과일을 한번도 제대로 본 적이 없었구나.  눈앞에 보여도 아마 인지하지 못하고 지나쳤겠구나.  관심도 없었고, 알지도 못했고, 그래서, 그냥 모르는채로 그 무수하게 떨어져 땅을 까맣게 물들이는 버찌의 존재를 지나쳤겠구나. 평.생.동.안.

농부는 꽃이 피면 그 열매를 생각한다.  열매맺지 못하는 것은 무심히 지나친다.  산업시대의 사람들은 꽃을 즐기되, 꽃 진 자리에 열매가 맺힌다는것을 모른다. 몰라서 한번도 제대보 본적이 없고, 열매가 어디서 오는지도 모른다. 그런것같다. 

 

 

나는 정말 나 스스로가 이 세상에 아주 오래 살았고, 나는 벌써 옛날 사람이 되어가고 있나보다 생각했다. 나는 꽃을 보면 열매를 상상하는 시대의 사람이므로.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3. 9. 14. 13:35

 

도서관에 갔다가 이 책이 보이길래 - 궁금해서 빌려다가 읽었다.  사이코패스에 대한 Literature Review 같이 느껴지는 애매한 느낌이 읽는 내내 들었다. 뭔가 내가 궁금해 하던 것에대한 명쾌한 답이 보이지 않는, 동어반복적인. 

내가 궁금한 것은 '사이코패스'와 '소시오패스'를 어떻게 구별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우리학교 심리학과 교수에게 물어봐도 내가 분명히 기억하고 구분할 수 있는 설명을 듣지는 못하였는데 - 왜냐하면 두가지가 교차하거나 드러나는 양상이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아서 그런 것이리라. 내가 책을 읽으면서 스스로에게 되뇌인 것은 -- '사이코패스는 생물학적인 어떤 요인으로 인해서 발현되는 편이라면 소시오패스는 성장과정에서 사회적인 영향으로 생겨나는 것'이라는 것 같다. 잔인무도하고 흉악하다고 모두 사이코패스는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사이코패스를 가늠하는 여러가지가 맞아떨어져야 사이코패스다.  예를 들어서 피해자 인육으로 회를 떴다는 소문의 오원춘은 사이코패스는 아니라고 한다. 사이코패스를 가늠하는 점수가 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런데 책을 다 읽고나서 보니 제목 [우리 옆집에는 사이코패스가 산다]라는 원제 아래에 At nextdoor psychopath live in 이라는 영어가 적혀 있는데, 이것이 혹시 원제를 영문으로 번역한 영어제목이라면 - 영어제목이 뭐랄까 기묘하다. 일부러 이렇게 문법적으로 앞뒤가 안맞는 엉뚱한 조합을 해 놓은건가? 사이코패스가 세상을 보는 방식을 보여주려는 의도인가?  영문제목이 기이하고 스트레스를 조장한다. 잘못된 것이 버젓이 책 제목으로 붙어있으니까.   저자는 영문 책 제목을 일부러 저렇게 달아 놓으신건가? 한참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봤는데, 결국 '이상하다'로 끝나고 말았다. 

 

 

 

Psychopaths in your neighborhood

A psychopath next door

Next door, a psychopath lives 

 

 

 

이런 영문제목도 가능했을텐데. 문법적으로 하자가 없고 선명하고.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3. 9. 14. 13:17

얼굴에 먼지만큼 작은 뭔가가 생겨났는데 - 그것이 오랜기간 아주 미세하게 자라났다. 처음에는 뭐 여드름 같은것이라고 상상하고 짜내면 될거라고 생각했는데, 짜낼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손톱으로 긁어서 떼어내도 순간적으로 사라진것처럼 보였지만 얼마 지나면 다시 솟아오르는 식이었다.  그런데 너무나 미세하게 작아서 이따금 손톱으로 긁어내거나 - 이것을 향해 짜증을 내거나 스트레스를 풀곤 하면서 벌써 몇년째 이 작은 사마귀 같은 것이 내 얼굴에서 자라났다.  이마에 있는 것은 그중 가장 큰데, 헤어라인에 가까웠고 머리카락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으므로 사실 그냥 거기었어도 무방했다. 이따금 내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이 작은 사마귀가 수난을 당하곤 했다. 뺨에 있던 것이 수년간 방치되면서 이제 거울을 보면 마치 '점'처럼 그것이 눈에 띄게 되었다. 점은 아니고 그냥 뾰로지처럼 솟아오른 것이다. 이걸 뭐라고 하지? 나는 그냥 사마귀라 부른다. 

 

뺨에 두개, 이마에 한개. 뺨에 난 것은 하나는 수년이 지나서 눈에 띄게 되었고, 그 옆에서 작은 '새끼'가 자라나고 있었다. 아직 눈에 띄지는 않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것이 자라나는 것이 보인다.  벌써 몇년째 나는 이것들이 자라나는 것을 관찰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 도대체 이것들을 깨끗이 제거하기 위해서 어디 (어느 병원)으/로 가야할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이 목숨을 다투는 중대하거나 화급한 것도 아니었고.  이대로 그냥 죽을때까지 함께 살아도 별 큰 문제는 없을것이다.  손에도 하나가 있었다. 이것은 내가 웹으로 검색해보니 바이러스성이라서 만지면 다른 곳으로 퍼질수도 있다는 - 바로 그것인것 같았다.  그리고 나는 요즘 우울감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몸부림을 치는 중이다. 그래서, 마침내 웹으로 검색해서 집에서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피부관에 전화를 걸어서 상담을 하고 예약을 했다.  내가 며칠전 뉴스를 보니, 요즘 피부과가 조금 이상해서 -  피부과에서 사마귀나 뭐 그런 피부관련 시술을 받기가 하늘에 별따기만큼 어렵다고 한다.  뉴스의 요지는, 피부과들이 '피부관리' 사업에만 혈안이 되어 있어서 정작 피부 관련 질환은 제대로 치료하는 곳을 찾기가 어렵다는거다.  그래서, 이 사마귀를 떼어주는 것을 어디서 찾는가 고민하다가 그냥 전화를 걸어본건데, 내 설명을 듣더니 대수롭지 않은 간단한 작업이라고 했다. 

 

 

그래서 오늘 오전에 예약한대로 피부과에 가서 내 신경을 거슬리게 하던 얼굴의 사마귀 세개와, 손에난 바이러스성 사마귀 한개를 5분도 안되어 다 제거하였다.  레이저로 한다고 했는데 - 나는 시술하는 것을 보지는 못했지만 - 의사선생님이 레이저로 사마귀를 지지는 동안 고기 타는 냄새가 나서 혼자 킥킥 웃었다.  태우는구나 사마귀를...

 

 

그런데 이 얼굴의 사마귀들은 나이 먹으면서 생겨나는 것들이라서, 나중에 생기면 또 지지고, 생기면 또 와서 지지고 해야 한다고 한다. 한개 제거하는데 11,000원을 받았다.  이 간단한 것을 나는 몇년을 고민만 하고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던거다.  내가 하는 일이 늘 이런식이다. 아무것도 아닌 일을 제때 제때 처리하지 못하고 수년간 고민을 하고 있다. 

 

 

이제부터는 일을 경중과 완급을 가려서, 쓸데없는 문제로 스트레스 받는 일이 없이, 현명하게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3. 9. 12. 17:31

지금 갖고 있는 집 시세를 검색해보고, 내가 살고자 하는 곳의 집 시세를 검색해보고, 집을 내 놨다.  집이 팔리는대로 바다와 숲이 내다보이는 곳에 집을 장만해서 이사를 가야지.

 

나의 고민은 - 요즘 나오는 아파트들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베란다도 없이 그냥 벽에서 뚝 떨어지는 초고층  아파트들이 정이 안간다. 내가 몇군데 알아본 아파트중에는 베란다가 있는 구형 아파트도 있는데, 구형이라는 이유로 가격도 저렴하고 위치도 내가 희망하는 곳이다.  값도 저렴하고 내 희망을 모두 충족시키면 내게는 좋은 아파트이지만 - 나중에 몇년 살다가 매각할 생각을 하면 - 그 때 값을 제대로 못 받을것 같다. 지금도 저렴하니 그때도 저렴할것 아닌가?  그런데, 내 삶의 질만 본다면 내가 좋아하는 곳에서 편히 사는게 정답인것도 같다. 

 

그냥 전세사는셈 치고 가격 변동에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면 -- 삶만 생각하고 투자가치는 접어 둔다면 나쁘지는 않은것 같다.  그래도 장래를 생각하면 투자가치까지 염두에 둬야 하는걸까? (이게 고민이다.)

 

사람이 집을 '삶의 터'로 안보고 '투자가치'로 보기 시작한것이 언제부터인걸까? 뭐, 하나님께서 내 집을 이미 어딘가에 마련해 놓으셨을 것이다. 아름다운 이웃들이 살고, 편안한 집.  (뭐, 어떻게 되겠지.)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에, 하나님께서 정하신 집으로 나는 갈것이다.  바다가 내다 보이고, 숲이 보이고, 산책하는 사람들이 보이는.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3. 9. 11. 11:32

엄마 집에서 TV를 보는데 옛날 드라마 '맏이'라는 것을 재방송을 해주고 있었다.  거기 '내가 누군가를 사랑하면 그 사람이 다 죽어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은 모두 다 죽었어요. 그러니까 오빠도 내곁에 오지 마세요'하며 슬피 울던 소녀가 나왔다. 자기가 재수 없는 존재라서 자기가 사랑하면 그 사람은 죽으니 -- 그러니 오빠도 곁에 오지 말라는 말은 그 자체로 사랑의 고백이 아닌가? 참 슬프고 아름다운 장면이었다.

 

그런데 그 오빠가 동생을 시켜서 책갈피에 편지를 써서, 그 슬픈 소녀에게 전한다. 편지에는 대략 이런 내용이 적혀 있었다 (기억을 더듬어서 대충...) "서로 그리워 하는 사람들은 마음속에 작은 방 하나를 만들어 놓고, 거기서 함께 산다.  네가 그리워 하는 사람은 그 방안에서 너와 함께 사는거다. 그러니까 슬퍼하지 마라."  뭐 이런 내용이었을거다. 

 

그 장면을 보면서 - 내 마음에 정말로 그런 작은 방 하나를 만들면, 그 방안에 누가 살까? 그런 생각을 잠시 해봤다.  그런데 그 작은 방 안에 이미 참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일단 우리 왕눈이가 거기 산다. 왕눈이는 늘 항상 나하고 함께 산다. 나의 사랑하는 개 말이다. 플로리다에서 2004년 봄에 입양해서 2011년 가을 낙엽질때 품에 안고 임종을 지킨 나의 개.  할아버지, 할머니도 그 방에 산다.  참 미안하게도 나의 아버지는 그 방에 자주 안온다. 나하고 별로 친하지 않았다. 내가 참 좋아했던 나의 첫사랑은, 안타깝게도 이제 더이상 내게 아무것도 아닌것 같다. 별로 생각나지 않는다. 그 사람 기억속에서 내가 완전히 사라졌어도 나는 전혀 안타깝지 않다. 그러고 보면 사랑 그거 별거 아니다. 지금도 내 작은 방에 사는 그리운 사람은 있다. 가끔 그 사람을 생각한다. 어딘가에서 잘 살고 있겠지.  거리에서 우연히라도 스칠거라는 기대도 하지 않는다, 그런 우연이 가능할까? 그리고 내가 이렇게 늙었는데 스친들...내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도 않다.   그래도 그 '작은방'이 내게 위로가 된다.  내 마음속에 작은 방이 하나 있고, 그 방안에 그리운 사람들이 나하고 함께 살아간다는 발상 만으로도 제법 마음이 따뜻해진다.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3. 9. 11. 11:22

나의 무기력 모우드가 개선이 잘 안되고 있다. 

 

증상은, 일단 학교에 출근하면 에어컨 세게 돌아가는 실내에서 음악 틀어 놓고 앉아서 그나마 활기차게 밀린 일들을 소화해내고 있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언제나처럼 에너자이저처럼 학교를 누비고 돌아다니며 일을 해치우는 전사'처럼 비쳐질것이다.   사실 그전과 다르지 않게 행동하고 있다.  그러나, 학교까지 가는 길이 천리길이다. 그리고 일단 집으로 돌아가는 순간 소파에 쓰러져서 일어나지 않는다. 에어컨과 선풍기를 24시간 틀어놓고, 막 짜증을 내고 투덜댄다. 나의 배우자는 내게 무엇을 어떻게 해 줘도 무조건 화풀이를 당해야 한다. 내가 생각하기에도 내가 함께 사는 사람을 잡아 먹으려는 듯 짜증을 내고 투덜댄다. 내가 그 사실을 객관적으로 인지하면서도 순간순간 짜증 나는 것을 참을수가 없다. 내가 짜증내는 양상은, '도대체 덥고 찌고 살수가 없어 내가 살수가 없어...' (실내는 동거인이 느끼기에 썰렁하다 못해 춥게 느껴지는 수준이다. 내가 미친거다). 

 

거의 3개월만에 (미국에 두달 다녀오고, 이래저래 아프고 바빠서) 엄마에게 다녀왔다.  내가 주말에 다녀올때면 나는 대개 엄마를 휠체어에 모시고 최소한 동네 호수공원이라도 한바퀴 돌거나, 동네 마실 겸 뭔가 과일이라도 사러 가는 식으로 엄마가 바람을 쐬게 해드리거나 혹은 좀더 기운이 난다면 어디론가 한시간 거리의 드라이브를 해드리는 편이었다. 그래서 우리들 남매들중에서 내가 엄마에게 오는 날에는 엄마는 거동이 불편하신 가운데에도 외출 준비를 하시고 나를 기다리곤 하셨다. 콧바람을 쐬러 나갈거니까.  하지만, 이번에는 엄마에게 삼시 세끼 밥상을 차려 드리는 것 외에, 나는 엄마에게 말을 걸지도 않았고, 움직이지도 않았다. 그냥 소파에 모로 누워 테레비나 봤다. 모로 누워 자다가 테레비보다가 끼니 때가 되면 마지 못해 일어나 엄마의 밥상을 차렸다. 나는 말도 하기가 싫었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엄마는 엄마의 집 안에서도 나로부터 방치된 것 처럼 보였다.  엄마는 불평하지 않으셨다. 그냥 작아지고 약해지고 있을 뿐이다.  동료교수가 내 센터에 전시 해 놓은 엄마의 작품을 하도 좋아해서, 그것을 선물로 줬다는 얘기가 엄마를 기쁘시게 했다. 아마 그것이 가장 기쁜 선물이 되었을 것이다. 

 

예배에 가기 위하여 일요일 아침에 돌아왔지만, 나는 예배에도 가지 않았다. 하루종일 소파에 모로 누워서 티브이를 보다가 자다가 했다. 선풍기는 온종일, 밤새도록 내 발치를 지켰다. 남편이 내가 좋아할 만한 먹을거리로 세끼를 챙겨주었다.  집안은 TV소리외에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나는 말이 없었고, 내 입에서 나오는 말은 짜증섞인 '더워서 못살겠다. 살수가 없어.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아. 나를 그냥 가만히 내버려둬' 뭐 이런 것들이 변주될 뿐이었다.  남편은 혼자서 산책을 나간다. 전에 내가 신나게 다니던 산책로를 이제 남편이 혼자 돌아다니고, 나는 꼼짝도 하지 않는다. 내 몸이 내 몸 같지 않다. 뭔가 내가 남 같다. 이건 내가 아니야, 이런 느낌. 

 

오늘 학교에 와서 한 첫번째 일은, 기도 명상 음악을 틀어놓고 앉아서 '하나님, 제게 제발 힘을 주세요.제가 고장난 인형처럼 꼼짝도 안해요.제발 저를 일으켜주세요.' 이런 기도였다.

 

그리고 벌떡일어나 인근 지역의 '피부과'를  검색했다. 얼굴에 사마귀 같은게 자라나는게 계속 신경이 쓰이는데 이마에 한개, 뺨에 두개가 작은 여드름처럼 뾰로지처럼 솟아 올라와서 처음에는 여드림인줄 알고 짜내려고 했는데 짜지지 않았다. 사마귀 같은건가보다. 이 얼굴의 사마귀 같이 생긴 것은 일년 넘게 나의 신경을 긁고 있었다.  마침에 용단을 내렸다. 내가 자주 가는 건물에 피부과가 있다길래, 검색해서 나온 그 피부과에 전화를 걸었다. 드디어 이번 주 중에 그 사마귀들을 제거할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 (이 아무것도 아닌 일을 나는 일년넘게 질질 끌고 용단을 못내리고 있었다.) 상담원이 레이저로 사마귀같은거 제거하는데 한개당 11,000원이라고 별일 아니라는 식으로 내게 이야기를 해 줬다. 어쨌건 전문의가 검진하고 상담하고, 간단한 것이면 그자리에서 제거가 가능하다고.  기분이 제법 좋아진다. (나는 학교에 일단 오면 사람처럼 움직인다.).

 

나에게 한가지 '소망'이 생겼다. 조만간 이사를 하는 것이다. 내가 일년 넘게 미루고 있던 일이 있다. 집을 팔고 집을 사는 일이다. 나는 오랫동안 갖고 있던 집을 팔고, 그리고 인근에 집을 사려고 생각한다. 바다가 보이는 집을 살 것이다.  베란다에 화단을 만들어서 남편에게 선물할 것이다. 갖고 있는 집을 팔고 인근에 집을 사는 일은 실행에 옮기기에 어려워 보이지 않는다. 단지 내가 게을러서 안하고 있었을 뿐이다.  남편이 좋아하는 산책로 인근의 집을 살 것이다. 바다를 내다보고, 숲을 내려다보고, 사람들이 행복하게 산책하는 광경이 보이는 곳에.  그리고 아주 예쁘고 편안한 소파를 하나 사서 내 전용 소파로 사용할것이다. 남편에게도 전용 소파를 사 줄것이다.  큰 침실에서 남편이 편안히 휴식을 취하게 하겠다. 그리고 각자 방 하나씩을 갖고 내 방은 내 취향대로, 남편은 남편 취향대로 그 방을 사용하도록 할 것이다. 

 

 

부엌을 최신 설비로 채울것이다. 가능하면 부엌 중앙에 아일랜드와 개수대 등을 설치하여 부엌일이 즐거운 일이 되도록 할 것이다.  여름에 아들네 집에 살때, 그집 부엌이 참 좋았다. 넓은 부엌의 중앙 아일랜드에서 온가족이 모여서서 요리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웃고 그랬다. 그게 가능한 집이었다. 거기서는 부엌일이 전혀 힘들지 않았다. 즐거운 행사였다.  나도 우리 아들네 부엌같이 행복한 부엌을 갖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이런 생각을 하니 기분이 좋아지고 몸이 따뜻해진다. 덥지 않고 따뜻하다.  

 

사랑하는 하나님,  주님께서 주신 안락한 집에서 거의 8년 가까이 편안하게 지내오고 있습니다. 하나님, 이제 저희가 이 '기숙사'를 벗어나 '집'으로 가려는 소망을 품었습니다.  나그네처럼 떠도는 지상에서의 삶이오나, 너무 오랫동안 나그네처럼 살아온 삶에 몸과 마음이 많이 지쳤습니다.  20년 넘게 떠돌았으니, 이제 단 몇년이라도 내 집으로 머물러서 살 곳을 찾고 싶습니다.  사랑하는 하나님, 저에게 새로운 터를 주시고 그곳을 축복으로 채워주십시오.  매일 숲과 바다를 내다보며 기도하게 해 주십시오.  이것이 저의 소망이오나, 그보다 더 나은것을 계획하심이면 주님 뜻대로 하옵시고, 언제나 감사기도를 드리게 인도하소서. 

 

 

집에서 올때 커다란 타이레놀 한병을 갖고 왔다. 두통이 심할때 먹으려고. 오늘 아침에 한알 먹으려고 했지만, 지금은 타이레놀을 먹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즐거운 상상 때문일까?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3. 9. 2. 17:27

 

기운을 차리고, 텅빈 주말의 학교에 와서 라디오 틀어놓고 밀린 일들을 처리하다가, 나의 음악회 예매 내역을 확인해보고 근래에 업데이트 된 공연 한가지를 새로 추가하였다.  첼리스트 다니엘 뮐러 쇼트가 바흐의 무반주 모음곡을 가지고 송도에 온다.  내가 악기중에 제일 좋아하는 '첼로.'  만져본 적도 없고, 그냥 듣기를 좋아하는 악기이다. 가을에 잘 어울리겠다. 

 

 

내가 내 계정에 들어가서 예매 내역을 살펴보니, 모두 연초에 사 놓은 것들이다. 그 때, 예매를 하면서도 과연 내가 이 연주회들을 모두 가 볼 수 있을까? 안심할 수 없었다.  봄에는 그럭저럭 모두 가서 볼 수 있었다.  가을엔 어떨까? 불투명했는데, 최근에 담당 의사로부터 경과가 좋다는 말씀을 들었다. 6개월 후에 다시 검사를 받을 것이다. 그러니까, 가을 한철도 나는 음악회를 가 볼 수 있을 것이다. 안도가 되어서 - 다시 업데이트 된 각종 공연중에서 내 스케줄에 부합하고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다시 예매하기 시작한다. 음악회 예매를 해 놓고, 별 문제없이 그 음악회들을 섭렵할 수 있는 여건과 건강이 허락된다면 인생은 그 자체가 천국의 일상이다. 

 

 

다니엘 뮐러 쇼트라는 사람의 프로필 사진을 보면 아마도 미남축에 끼는것 같다. 옛날 같으면 나는 잘생긴 그의 용모도 마음에 들고 그래서 열심히 그의 배경을 검색해보고 여러가지 정보를 모았을 것이다. 지금 나는 그에게 별 관심이 없다. 그냥 저런 사람이 바흐를 연주하나보다 하고 생각한다.  바흐의 무반주 첼로 조곡은 주로 카잘스나 로스트로포비치가 연주한 씨디로 들었다. 미샤마이스키의 연주 음반도 있었는데, 일단 거장들이 내 귀에 들어온 후에는 미샤마이스키를 꺼내 듣지 않게 되었다. 내게 바흐의 무반주 첼로조곡은 파블로 카잘스 또든  로스트로포비치이다. 다니엘 뮐러 쇼트가 이 거장들의 소리에 익숙한 나를 기쁘게 해 줄수 있을까?  안될걸. 아무도 그 위대한 할아버지들을 능가할 수는 없을걸? 뭐 혼자 이런 저런 생각을 해보는 것이 즐겁다. 괜챦아, 거장들만큼 깊지 않아도 괜챦다. 진지하게 연주만 해달라. 그러면 된다. 

 

 

* 내가 노인이 되어간다는 것을 실감할 때: 전에는 미소년이나 미남이 눈에 들어왔는데, 지금은 잘생긴것에 관심이 없어진다. 모든 인간은 나름 아름답다. 특별히 잘생긴 사람은 없다. 모두 하나하나 매력적이고 아름답다 - 이러한 것을 최근에 알게 되었다.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3. 9. 1. 08:53

어제 저녁에는 아트센터송도에서 열린 [직장인을 위한 퇴근길 콘서트] 공연을 다녀왔다.  나는 이따금 공연 일정이 업데이트 되는 것을 확인하고, 앞서서 티켓을 사 놓곤 하는데, 지난 봄에 이미 이 표를 사 놓았던 모양이다. 공연 문자가 와서 '표 값을 냈으니 가보자'고 그냥 아무 생각없이 나섰다. 무슨 공연인지 확인도 안했던 것인데 - 주제가 '라틴 음악' 이었다. 라틴 재즈가 주를 이룰것으로 짐작했다.

 

나쁘지 않았다. 일단 팜플렛에 소개도 되 있지 않았던, 서울 음대 출신 바리톤 가수가 '닐리 맘보'를 불러줬는데 - '아 저것은 내가 기타로 연주하던 그 마리아 엘레나구나!' 하면서 25년전 내가 한창 클래식기타를 연주할때 악보를 보면서 연습했던 그 마리아 엘레나를 떠올렸고, 그 시절을 떠올렸고. 그리고 생각했다, "오늘 이 마리아 엘레나를 저 바리톤 가수가 불러준것 - 그것만으로도 표 값은 톡톡히 받아냈다. 나머지는 아무래도 좋다" 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이 문제였다. 나머지는 아무래도 좋다고 생각했던 그것. 

 

나머지도 좋았다. 그러나 나는 피곤했다. 지휘자가 작두를 탄 만신처럼 혼자 굿을 해 대는 통에, 출연가수들이나 연주자들을 모두 잡아먹는 무대였다. 지휘자 혼자 미쳐 날뛰는 통에, 주위에 있던 가수, 연주자들이 빛을 잃은 이상한 무대. 나중에 집에 돌아와 '도대체 그 사람 뭐지?' 싶어서 검색을 해보니 천재라고 알려진 사람이다. 마치 '내 생일 잔치에 와서 정말 고마워, 한 상 잘 차렸으니 잘 놀가가기 바래' 하고 학예회 하듯이 혼자 굿하고 노래부르고 춤추고 난리를 치던 그 지휘자. 내가 보아왔던 지휘자 중에 '최악'이다.  연주자들의 빛을 다 꺼버리는 사람. 혼자서만 빛나는 사람. 혼자서 빛나기 위해서 다른 사람들의 빛과 기운을 모두 빨아들이고 혼자 발산하는 사람. 다시 보고 싶지 않은 지휘자다.

 

그래도 인내심을 발휘하여 끝날때까지 기다렸다. 그들이 무대인사를 마치고, 내가 나오는데 문을 지키던 안내직원이 소근소근 물었다, "앙콜 공연 있는데 안보고 가세요?" 나는 슬픈 표정으로 대꾸했다, "앙콜을 꼭 봐야해요?" 직원은 말없이 문을 열어주었다.

 

....

공연 관람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공연자에 대학 악평만 남기는 것은 매우 무례하고 사악한 행동이라는 마음의 소리가 들려온다.  그래서, 화단의 식물들을 다듬다 말고 뭔가 개선 방향을 생각해보기로 한다.

 

그 지휘자는 천재로 알려져 있고, 한국의 공연 예술 발전을 위해서 열정적으로 일하는 예술가이다. 나는 사전에 그 사람에 대한 아무런 정보 없이, 편견 없이, 기대 없이 '무지한' 상태로 공연을 관람했으므로 - 나의 시각은 내 개인의 주관과 그리고 철저히 무관심한 제 3자의 객관성을 띄고 있다는 점을 명시하고, 내가 생각하는 그 공연자의 발전방향은

 

 

 

1. 그 사람은 지휘자로 무대위에 섰을때, 자신을 드러나 보이지 않게 하려는 노력을 해 보면 좋을것이다.  무슨 말씀인가하면 - 어차피 지휘자가 공연을 이끌어간다. 지휘자가 아무말도 안해도, 관객을 쳐다보지 않아도, 어치피 처음부터 끝까지 지휘자가 무대와 객석을 이끌어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스타에요, 제발 나를 봐줘요!'라고 외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러지좀 말라. 피곤하다. 유치원 학예회에 나온 어린애가 '제발 나만 쳐다보고 내게 박수쳐주세요' 하는듯한 행동을 멈추라. 당신은 가만히 있어도 빛난다. 미니멀리즘이나 선불교적 절제를 요구하는 것도 아니다. 그냥 중간만 하라. 나를 보이지 않게 하라. 그러면 나는 더욱 돋보일 것이다. 

 

 

2. 베싸메 무쵸를 출연 남자가수와 함께 불렀다. 거기 노래를 업으로 삼는 여자가수가 이미 둘이 서 있었는데도, 남자가수는 '지휘자님'과 함께 베싸메무쵸를 부르고 싶다고 했고, 지휘자는 가창력 돋보이는 음색과 그에 걸맞는 요란한 자태로 베싸메무쵸를 불렀다. 무대를 들었다 놨다 하는 공연이었다. 그런데 잠깐...여기서 생각을 해보자. 나는 그 공연이 해괴하게 여겨졌다. 세상에 '키쓰해줘! 키쓰해줘!' 하고 지랄 난동 발광을 하는 어떤 여자가 있다면 - 상대는 정말 그 여자에게 키쓰하고 싶어질까? 난 그 키스해달라고 지랄 난동을 부리는 그 여자로부터 혹은 남자로부터 멀리 멀리 저 멀리 도망을 가고 다시는 쳐다보지 않을것 같다.  당신들은 지금 베싸메무쵸 노래에 무슨 짓을 저지르고 있는건가?  이것이 과연 새로운 곡 해석인가?  키쓰의 재해석인가 노래의 재해석인가? 아무튼 당신들은 키스의 달콤함과 은밀함 그리고 농염함에 똥을 퍼 부어댔다.  참 해괴한 무대였다. 곽객모독이라는 연극이 옛날에 있었는데 - 나는 그 연극 제목이 생각났다.  지휘자가 노래도 천재적으로 잘하는 사람이면, 그러면 가수를 하시던가.  아니면 지휘만 하시던가. 혼자서도 다 잘해낼것 같지?  아니... 뭔가 엉망진창 잡탕밥을 막 집어 던지는것 같았다. 그냥 한가지만 하시라.  그러면 더 빛나실 것이다. 이게 뭐 술자리도 아니고, 노래부르고 춤추고 장단 맞추고, 그러지 않는 것이 오히려 좋을 것이다. 

 

3. 무대에서 객석을 향해 하는 말이 너무 잡다하고 무례했다. '지금 몇시죠? 우리 이거 시간 안채우면 기획자가 뭐라고 그래요. 우리 어떻게 시간을 끌어야 할텐데요.'  --- 지휘자가 이런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끌때, 나는 간절히 바랬다, "그냥 시간 끌지 말고 빨리 끝내줘. 예의상 끝나길 기다리는 것 뿐이야."  참 무례했다. 관객이 마치 자기네 서울대학교 동문회에서 만난 가까운 친구나 후배인것처럼 행동하던 그 사람. 안하무인 천진난만 재기발랄.  아마 이런것이 한국의 음악계에 유포된 미신적으로 알려진 어떤 천재성의 특징인지도 모르겠다.  아직 젊으신 분이므로, 전도양양한 인재이므로 약간만 개선하시면 앞으로 주욱 발전하실 것이다. 발전하시길 빈다. 

 

 

이 무대를 보면서 나 역시 자성을 많이 했다. 내가 공인으로 다른 사람들 앞에 섰을때, 나는 어떻게 행동하는가? 내가 수업을 이끌때 학생들 앞에서 나는 어떤 지휘자인가. 나는 좋은 지휘자인가?  이런 문제들을 생각했다. 

  1.  나는 나의 '언어'를 매우 주의하겠다. 말 실수를 안하려면, 말을 조금만, 꼭 필요한 말만 하는 것이 좋겠고, 내가 사용하는 모든 단어에 대하여 세심하게 주의를 해야 한다. 
  2. 몸가짐 (옷 매무새와 서있는 자세, 말하는 자세) 이런 것들을 거울을 보고 세심하게 주의해야 한다. 너무 튀지 말아야 하고, 안정적이어야 하고, 그리고 겸손하면서 당당한 자세가 좋다. (이게 어렵지).
  3. 말은  짧게, 행동은 눈에 띄지 않게, 절제해야 한다.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3. 9. 1. 08:41

내 삶에서 반복되던 그 기분 나쁜 꿈이 돌아왔다. 아무래도 내가 기도가 부족한가보다. 

 

아주 오랫동안 잊을만하면 내게 나타나는 기분 나쁜 꿈이 한가지 있다. 늘 상황은 똑같다. 어떤 이유에선지 나는 어떤 알수 없는 사람을 이미 살해했고, 그 시신을 집안에 꼭꼭 숨겼으며, 그 시신이 부패하여 사라지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저벅저벅 누군가가 다가오고 - 나는 이제 그들이 아직 사라지지 않은 그 시신을 찾아내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불안하다. 그리고 잠에서 깨어난다. 

 

'누구나 벽장속에 해골을 감추고 있다 (Everybody has a skeleton in the closet)'라는 속담처럼, 나도 집안 어딘가에 내가 살해한 시신을 감추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저런 속담이 있는 것을 보면 - 이런 나의 악몽은 인류의 원형질과 맥을 함께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누구에게나 감추고 싶은 비밀, 치부 뭐 그런것이 한두가지 쯤은 있겠지. 

 

이 악몽은 최근 수년간 나를 찾아오지 않았다. 아마도 내가 기도 생활을 성실하게 하고, 하루하루를 거룩하게 살기 위해 노력하는 동안 - 내 영혼이 평안하였던 모양이다. 새벽에 이 악몽이 다시 나를 찾아왔다. 내 기력이 약해져서 불안이 내 영혼을 다시 잠식하려는 모양이다.  해답은 - 깊이 깊이 기도하는 시간을 되찾아야 한다는 것이리라.  약해진 몸에 영양제를 주입하고, 몸에 좋은 음식들을 먹이듯 - 약해진 내 영혼에도 밥을 먹여야 한다. 기도가 답이다.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3. 8. 31. 09:48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지라도 해를 두려워 하지 않음은 주님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함이나이다...'

 

내 영혼의 불이 다 꺼지고 내가 깊은 우물속으로 깊이 깊이 빠져들어갈때 - 나는 깨우는 장치들이 있다는 것을 나는 최근 발견하게 되었다.  그것은 예고없이 갑자기 울리는 다급한 전화벨소리, 혹은 예고없이 들이닥치는 업무회의.

 

며칠전에도 나는 죽어가고 있었다. 내 영혼이 깊이 깊이 나락으로 빠져들어 나는 숨을 쉴 수도 없었다. 물론 숨을 쉬고 있었지만 내 영혼이 숨을 쉬지 못하고 있는것 같았다. 나는 꼼짝을 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집요하게 전화가 울려댔다.  나는 대체로 전화를 받지 않고, 내게 전화를 거는 이들은 그것이 로봇이 거는 피싱전화이거나 광고전화이거나 혹은 가까운 사람들의 전화이거나 간에 내가 대여섯차례 벨이 울려도 받지 않으면 더이상 나를 괴롭히지 않는 편인데, 그날은 집요하게 계속해서 전화가 울려댔다. 끊었다 다시 걸고 끊었다 다시 걸고를 반복했다.  그렇게 한참동안 내 전화를 울려대던 그이는 마침내 내게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님, 저 *** 인데요. 전화 통화 가능하실까요?"   그는 아마도 내가 '모르는 전화'라서 수신을 안한다고 상상했던 듯 하다.  물론 내 전화에 그의 번호가 등록되어 있어서 나는 그가 전화를 걸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다. 단지 대답하기 싫어서 응대하지 않았던 것인데 - 그는 지속적인 전화와 문자메시지로 나를 불러대고 있었다. 엔간히 급한 일인가보다.  나는 마지못해 진땀을 닦으며 그에게 전화를 걸어준다.  내용은, 예상했던 것보다 별것이 아니었다. 어쩌면 내게는 별것도 아닌 것이지만 그에게는 매우 중대한 일일 수도 있으리라. 아마도 그러했을 것이다. 

 

그의 소원수리를 해주기 위해서 나는 컴퓨터를 켜고 들어가서 간단한 작업을 해야 했는데 - 그러다가 문득 내 영혼에 불이 켜졌다. 어둠속에서 성냥불 하나가 켜지면 그게 꽤 밝아진다. 어둠속에서 순간 성냥불하나가 켜진것처럼, 문득 내 영혼에 불이 들어왔다. '모두들 지금 생존하기 위해서 열심히 움직이고 있다구!  너는 지금 누워서 뭘 하고 있는거야 사지가 멀쩡해가지고는. 어서 일어나지 그래!'  -- 누군가 내 엉덩이를 걷어차며 나를 흔들어 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그날 나는 벌떡 일어나서 진땀을 내며 책상앞에 앉아 밀린 일들을 해 치웠다. 오랫만에 수직으로 일어나서 (주로 수평으로 누워있었으니까) 작업을 하니 그동안 누워있던 것이 효과가 있었던 듯 짧은 시간안에 매우 효과적으로 일들을 해치웠다.  물론 그러고나서 다시 시체처럼 누워 지내야 했지만 말이다.

 

어제도 오후 한시에 책상앞에 앉아서 노닥거리고 있을때, 내 프로젝트를 관리해주는 스태프님이 예고도 없이 내 연구실에 들이닥쳤다. 대개는 방문 직전에 "지금 시간 되세요? 미팅 하시죠"라는 문자라도 주곤 했는데 어제 그는 이런 짧은 메시지도 없이 그냥 들이닥쳤다. 예전에 그런 적이 한번도 없었는데 말이다. "뭔가 일이 생기신것 같아서 그냥 와 봤어요"가 그의 설명이었다.  그냥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것 같았다고.  그와 앉아서 미루고 있었던 일들에 대한 논의를 했다. 내가 해야 하지만 하기 싫어서 결정을 미루고 미적거리고 있었던 일들. 그 안건들을 가지고 그가 들이닥쳤다. "힘드시면 취소하셔도 될것 같은데요..."그의 배려심 가득한 한마디가 내게 용기를 줬다. "그래도 하겠다고 약속한 일이니까, 해야지요. 지금 스케줄 잡읍시다."  우리는 아주 짧은 시간에 큼직큼직한 것들을 결정하고 스케줄을 세웠다. 그와 사업 얘기를 하다보니 - 내가 정신이 제자리로 돌아온다. 누군가 깊은 우물속에 '오필리어처럼 누워있던' 내 영혼을 끄집어 내는것 같았다. 

 

그와의 미팅을 마치니, 지금 내가 서둘러서 일을 해야 한다는 각성이 일면서 뿌옇던 머릿속 안개가 조금씩 걷히는 듯 했다.

 

어제 오후에 아주 짧은 시간에 나는 또 많은 중대한 일들을 해치우고, 밀렸던 메시지들을 소화해 냈다.  그리고 모처럼, 저녁을 근처 한정식집에가서 외식으로 했다. 오랫만에 이런저런 반찬과 뜨거운 돌솥밥을 맛있게 해치웠다. 숭늉까지도 아주 달게 먹었다. 식사를 마친 후에는 홈플러스에 들러서 계란과 식료품들을 사고, 나오는 길에 - 바카스를 한 상자 샀다. 나는 평소에 박카스나 그런 드링크를 안먹는다. 바카스는 어쩐지 공무원들이나 시골 할머니 할아버지 그리고 건설 노동자들이 먹는 것이라는 해괴한 상상을 품고 살아왔기 때문에 그것은 어딘가 내게는 금단의 영역이었었다. (내가 위의 직업군에 어떤 편견이 있는 것은 아니다. 옛날에 우리 엄마가 동사무소에 뭔가 서류 떼러 갈때면, '와이로'로 바카스 그런거 한상자 사들고 갔던 것이 머리에 박혀 있어서 그럴뿐이다. 하하하)  그런데 진열대에서 바카스를 발견한 나는 손을 뻗어 그것 한상자를 카트에 담았다. "여기 구론산도 있고, 여기 이것은 1+1 행사인데, 이건 어때?" 남편이 옆에서 나를 약간 비웃으며 거들었다. 남편도 바카스나 그런 미신적인 음료수는 입에도 대지 않는 사람이다. 우리는 그런 것들이 모두 카페인 덩어리라는 미신적 편견을 갖고 있다. 

 

나는 나를 비웃듯, 조롱하듯, 구론산이니 뭐니를 가리키는 남편에게 정색을 하고 - 노려보며 - 신경질적으로 - 진지하게 말했다. "내가 지금 농담할 기분인 줄 알어? 난 지금 이거라도 먹고 이 무거운 우울증에서 벗어나고 싶은거라구! 내가 술을 해? 담배를 해? 커피도 안마시쟎아. 이 우울증에서 벗어날 뭔가 조력장치가 필요하단 말야. 난 이 바카스의 도움이라도 받고 싶다구!" 

 

사람들이 아마도 그래서 술이나, 프로포폴이나 환각제 뭐 그런 것에 빠져드는 거겠지? 하지만, 나는 거기까지는 가지 않을거야. 왜냐하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가 그것을 내게 허락하지 않으실거니까. 그 전에 나를 치유해주실거니까. 내게는 아버지가 계시다구... 나보다 더 많이 한숨지으실 내 아버지가. 

 

오늘 아침은 어제보다 낫다. 기적적으로 아침 여덟시부터 학교에 나와 앉아있다. 집에서 나올때 바카스 몇병을 챙겨 나왔다. 학교에 오자마자 청소를 하고 바카스 한병을 마셨다.  뭔가 기분이 좋아지는것도 같고. 하하하. 

 

어둠속에 벨이 울릴때 - 누군가가 우울의 늪에서 나를 건져내기 위해 전화를 하거나 예고 없이 들이닥칠때, 나는 우리 하나님께서 나를 살리시려고 고민고민하시다가 저 사람을 내게 보내셨구나 하고 알아차린다. 나는 우리 하나님이 나를 항상 돌보시고 계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누군가 지금도 나를 위해서 기도를 하고 있을 것이다. 

 

 

Posted by Lee Eunmee
카테고리 없음2023. 8. 30. 14:13

평소대로 잠이 깨었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일어날 기운도 없다. 멀거니 누워있다가 - 차려주는 아침을 먹고, 평소같으면 부지런히 단장을 하고 일찌감치 학교로 향하겠으나, 너무 피곤하므로 조금 쉬었다 가자고 생각하고 티브이를 켜고 소파에 누워서 선풍기 바람을 쐬다가 티브이를 켜 놓은채로 다시 잠이 든다.  점심을 먹으라는 소리에 깨어서 맛도 없는 점심을 먹는둥마는둥한다. (아침 먹고 누워잤으니 점심을 먹을 필요도 식욕도 없음이 당연하다).  그나마 포도나 사과와 같은 제철과일은 나를 기쁘게한다. 그것들을 갖다 주는대로 먹는다.  티브이를 켜니 섬에가서 뭔가 만들어 먹는 오락프로그램이 나오는데 그들의 삶이 평화로워보여서 그것을 물끄러미 보다가, 그들이 주고 받는 실없는 농담과 맛있어보이는 음식들 그런것들 덕분에 기분이 조금 좋아진다. 그래서 기분이 좋아진 김에 일어나서 씻고, 대충 입고, 집을 나서서, 부슬부슬 비가 내리는 가운데 가까운 카페에 가서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잔을 사 들고 연구실에 와서 앉는다. 오후 한시.   

 

지금부터 해야 할 일을 하도록 하자.  그래도 연구실에 나오면 나는 사람처럼 작동을 한다. 마치 어느 구역에서만 작동하는 기계처럼 말이다. 그러니까, 집에서 연구실까지의 그 짧은 거리가 천리같이 먼것이 문제다. 여기만 오면 나는 그래도 작동을 시작한다. 

 

 

내가 해야 할일

 

 * 내 직무상 해야 할 일들은 다행히 밀리지 않고 해 내고 있다. 

 * 내가 개인적으로 해야 할 일들 - 예컨대 미장원에 가서 머리를 좀 잘라야 한다던가, 얼굴에 난 사마귀 같은 것을 제거하기 위해서 피부과 예약을 하고 가봐야 한다던가 그런 사소한 것들을 마냥 미루고 있다. 그런것들을 미뤄도 사회적으로 문제가 발생하지는 않으니까. 

 

사회생활

 

 * 여전히 여기저기서 초대가 오고 주변은 뭔가 활발하게 돌아가고 있다. 나는 내가 반드시 꼭 해야만 할 최소한의 응대만 하면서 버티고 있다. 아직 주변에서는 눈치를 채지 못했을 것이다. 그냥 단지, '요즘 그이가 잘 안보이네' 정도로 알듯 모를듯 느끼고 지나칠것이다. 하지만 나는 나의 사회생활 영역의 여기저기에서 조금씩 지우개로 지우듯 지워지고 있다. 초대를 받고 거절하는것이 참 힘들다. 그래서 거절을 잘 못한다. 하지만, 거절하는 표현을 연습해서 - 거절을 할것이다. 

 

이런것을 '가면을 쓴 우울증'이라고 하는건가? 사람들은 모른다, 내가 고통을 겪고 있다는 것을. 사람들은 내가 여전히 활기차고 언제나 웃고, 그리고 언제든 자신들이 힘들때 찾아와 위로 받을수 있는, 에너자이저라고 상상하고 있을것이다. 

Posted by Lee Eunm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