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6'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22.06.23 신촌 살이: 절망과 희망 사이
  2. 2022.06.17 공부를 하는 이유/목적?
  3. 2022.06.09 사모님, 여사님, 아무개씨
카테고리 없음2022. 6. 23. 07:31

신촌살이가 이어지고 있다.  새벽에 문득, 신촌 오거리 간이 매대에서 판매하는 '길거리 토스트'가 먹고 싶어져서, 새벽길을 슬슬 걸어나갔다. 창천동 감리교회 앞을 지나, 늙수구레한 아주머니가 졸고 앉아있는 '길거리 토스트' 매대를 지나서 신촌오거리로 간다. 졸고 앉아있는 아주머니가 만들어주는 토스트는 어딘가 유통기한이 지난 것으로 기름냄새 절은 것 같은 그런 맛이 나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하게 된다.  새벽에 뭔가 신선하고 따끈한 것을 먹고 싶어지는 것이다.  (나도 장사를 하려면 혹은 뭔가 세상에서 일을 하려면 늙수구레한 아주머니로 졸다가는 안되겠구나 라는 각성과 함께. 늙는것도 서럽고, 기운이 없어 졸리는 것도 서럽고, 우리는 그렇게 이울어가는 것이리라.  내일은 저 아주머니의 토스트를 하나 사리라. 맛이 없으면 버릴 각오를 하고.)

 

일반 계란 토스트는 2500원. 치즈 토스트는 3000원. 인스턴트커피 500원.  치즈 토스트와 커피를 주문하고 사천원을 냈는데 거스름돈 오백원을 줄 생각을 안한다.  '뭐지?' 의아해하다가 그냥 따끈한 토스트와 커피를 받아가지고 길거리 계단에 앉는다.  오백원 받으나 안받으나 내 인생이 달라져? 신경쓰지 말자. 

 

 

토스트는 신선하고 따끈하고 맛있고, 커피도 맛있다. 토스트를 사가지고 가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는다.  길거리에 앉아 따끈한 토스트를 먹으며 - 주위를 둘러보며 내가 여행자 같다는 느낌이 든다.  뉴욕 거리에서 닭고기 꼬치를 우물거리며 돌아보는 세상이나 신촌 오거리에서 입에 맞는 토스트를 달게 먹으며 내다보는 세상이나 크게 차이 나지 않는다.  맨해턴이나 신촌이나, 참 비슷하다. 나는 여행을 하는 중이다.

 

편의점에서 아메리카노 한잔을 주문하고, 요구르트 한개, 사과 한개를 사가지고 돌아왔다. 따뜻한 아메리카노에 공용 정수기에서 나오는 얼음을 띄우면 아이스아메리카노가 된다. 기분이 좋아진다. 연세대 뒷산이 푸르다.

 

인간은 (혹은 나는) 어떤 상황에서도 완전히 절망하거나 완전히 기뻐하거나 하기는 힘든 존재인듯 하다.  암담한 상황속에서도 나는 평안하다. 그리고 여행자처럼 내가 처해진 상황이나 주변 상황들을 관찰한다.  그러면 재미있고 유쾌한 구석들이 보인다. 새벽 신촌 오거리에서 나는 맨해턴을 걷는다. 내가 직접 만들어먹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편의점에서 판매하는 씻은 사과 (씻지 않고 바로 먹을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기분 좋은 일인가) 이런 것들이 나의 삶을 충분히 유쾌하게 만들어준다.  돌아보면 암담한 상황이 오기 전, 돌아보면 걱정 근심거리가 전혀 없던 시절에도 나는 인생이 재미없었고, 불만이 많았고 그랬다. 그때도 나는 충분히 행복하지 않았다. 지금 나는 소용돌이 속에 있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그리 암담하게 여겨지지는 않는다.  나는 지금 여행중이다. 낯선 시간, 낯선 공간, 낯선 상황 이런 것들이 조금씩 익숙해지고, 친밀해지고. 아마도 이런 식으로 나의 여행은 계속 되겠지. 내가 어디로 흐르건 나는 흘러갈 것이다.

 

 

 

 

Posted by Lee Eunm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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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없음2022. 6. 17. 16:12

시민을 위한 평생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해달라는 요청을 받아서, 봄학기부터 시범적으로 운영을 해보고 있다.  정해진 학점을 이수하면 명예학위증까지 나오는 프로그램이다.  1년간 진행되는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세부 강의 일정을 짜는 가운데, 나도 그 중에서 한과목을 현재 진행하고 있다. 역시 프로그램 기획자가 직접 수업을 진행해봐야, 시민들의 희망사항이나 수업에 대한 기대, 태도, 문제점 등을 세밀하게 파악하게 된다. 10대 후반부터 6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시민들이 모여서 듣는 대학 수업. 실제로 내가 수업중에 가르치는 동일한 자료를 가지고 수업을 한다. 실제 대학과 차이가 있다면 가르치는 내용은 동일하지만, 시험이나 과제의 비중에서 차이가 난다. 

 

어느날 내 또래의 '가장'이신 중년 학생이 내게 질문을 했다 -"그런데, 이거 수료하면 수료증 나오는데 그 수료증을 어디다 써먹을수 있죠?" 좋은 질문이다. 내가 가르치는 과정을 수료했을때 무엇을 얻을수 있는가? 그 수료증이 어딘가에 내밀만한 실용성이 있는가를 묻는 것이다. 나는 이런 질문을 좋아한다. 구체적으로 어디다 써먹을지를 묻는 질문을 나는 좋아한다. (내 개인 취향이다.)

 

그래서 나는 답해줬다: 

 

"제가요, 버지니아에 있을때, 어느 조그만 대학에서 교수로 일을 할 때 인데요. 월급도 신통치 않고, 전망도 흐릿하고, 한마디로 앞날이 막막하던 때가 있었거든요. 그 때 제가 그냥 지역에서 제공하는 '간병사' 교육을 받았어요. 그 교육을 이수하고 간단한 시험을 통과하면 '버지니아주'에서 제공하는 '간병사 자격증'이 나오거든요. 그냥 파트타임으로 간병사 일을 하면서 돈도 벌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도움도 주고 그러면 내 삶이 조금 더 의미가 있겠다는 '막연한' 생각을 한거죠.  한편으로는 그 조그만 대학에서 벗어나 큰 대학에서 제대로 대우받고 교수를 하겠다는 희망으로 끊임없이 미국 전역의 대학에 이력서를 보내고 있었지요.  한편으로는 대학에 자리를 알아보면서 한편으로는 파트타임으로 뭔가 할만한 새로운 영역을 탐구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제가 그 간병사 자격증으로 뭘 했을까요? 저는 간병사로 일을 해 본 적은 없습니다. 하지만 그 간병사 자격증이 제게 큼직한 대학의 교수자리를 열어 주었습니다. 

 

그게 어떻게 된거냐구요?  제가 미국 전역의 주립대에 뿌린 이력서의 말미에, '특기사항'에 '버지니아주 간병사 자격증'이 적혀 있었는데 - 하필 바로 그것을 눈여겨 본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그 프로그램에서는 '영어교육을 전공한 박사급 후보들 중에서 특히 간호사와 의사들에게 영어를 교육 할 수 있는 후보자가 필요했던 것인데, 제가 간병사 자격증이 있다니까 인터뷰를 하면서 "그러면 너는 기초적인 메디컬 영어를 잘 알고, 그것을 가르칠수 있겠니?" 하고 묻는 것입니다.  나는 무조건 'Of course!'하고 확답을 했습니다.  최소한 나는 four vital signs 라는둥 뭐, 극히 기초적인 '병원 용어'를 설명할 수 있으며, 필요하면 관련 자료를 찾아서 공부하고 가르칠 역량이 된다는 것이지요. 왜냐하면, 나는  아무튼 전문직 간호사들에게서 바로 그 교육을 받았으므로. 그리하여, 저의 아주 특별한 (별것도 아니지만, 그 영역에서는 독보적이라 할수 있는) 자격증 한가지로 인해, 다른 영어교육전공 박사들과 차이를 보였고, 그 덕분에 꿈에 그리던 주립대에 말뚝을 박게 되었지요. 

 

자 그러니, 아무나 그냥 대충 60시간 정도 수업 들으면 딸 수 있는 '간병사 자격증' 그 별것도 아닌 것이 - 저의 꿈을 이루게 해주리라고는 저 자신도 상상도 못했다는 것이지요. 저도 그게 그렇게 될 줄을 몰랐어요. 그냥 막연히 뭔가를 배우고 싶었을 뿐. 

 

이것이 저의 대답입니다. 제가 제공하는 과정은 '자격증' 과정도 아니고, 딱히 내세울 것이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어떤 학생에게 이 과정은 디딤돌이 되거나 도약대가 될 지도 모르지요. 자, 이걸 어떻게 요리 할지는 선생님께서 직접 고민을 하셔야 하겠습니다."

 

 

사실 나는 이런 이야기를 하고 그냥 지나쳤는데 - 나중에 회의 하는 자리에서 이 프로그램 얘기를 하다가 - 회의 참석자 누군가가 비슷한 질문을 하길래 -- 내가 수업시간에 그런 질문을 받고 이렇게 답했다고 이야기를 하니 회의 참석하고 나가시던 어떤 분이 "그 간병사 이야기 말이에요. 놀라운 얘기네요. 늘 뵐때마다 저를 깜짝깜짝 놀래키시네요. 많이 배우고 갑니다" 하시는거다.  그래서..그게 어떤 사람을 놀래킬만한 에피소드였던가?  그럴수도 있으려나? 생각하며 몇자 끄적. 

 

 

 

 

Posted by Lee Eunm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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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없음2022. 6. 9. 04:10

요즘 유명한 사람의 부인 혹은 이름이 알려진 기혼여성에 대하여 '아무개씨'라는 호칭을 사용하는 것이 적절한가 아닌가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다. '아무개 여사님'과 '아무개 씨'라는 호칭 중에서 '아무개씨'라고 부르면 인권에 저해 된다는 주장을 하는 시민 단체마저 등장했다. 내가 살다가 이런 논란은 생전 처음 겪어서 흥미를 가지고 상황을 관조하고 있는 가운데, 내가 문제의 당사자라면 나는 '아무개씨'쪽을 환연하겠다.  

 

우선 나는 그 문제의 '여사'라는 어휘가 어디서 유래한 것인지 궁금하다.  중국이나 일본에서 온것이 아닐까 추측만 한다. (어딘가에서 왔겠지, 순수 한국어는 아닐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이 '여사'라는 호칭이 맘에 안든다. 여사, 여교수, 여의사, 여사장, 여류 시인, 여류 소설가 이런 '여'의 공통점은 어떤 사람을 일단 '여자'로 묶어 놓는다는 것이다.  사람이기 이전에 '여자'다. 이런 어휘나 호칭은 정치적으로 중립적이거나 올바르지 못하다.  그런 이유로 나는 일단 '여사'라는 호칭이 거슬린다. 

 

남편의 지인 중에 유학 동기가 한분 계신다. 남편을 통해서 알게 된 분인데, 우리가 한때 같은 대학에 소속해 있었고, 먼 타국 생활을 하는 동안 같은 도시에서, 같은 캠퍼스에서 시간을 보냈다. 뭐 그것 뿐이다. 친하지도 않았고, 그냥 아는 사이 정도였으며 몇년 사이에 두세번 조우했을 뿐이다. 그냥 어쩌다 스치면 '아이고 안녕하십니까' 하고 인사를 하는 정도.  그분도 모대학 교수가 되었고, 나도 교수가 되었다. 교수 사회에서는 서로 '아무개 교수님'이라고 불러준다.  어느날 이분이 연구하는 일로 내게 뭔가 물어볼것이 있어서 연락을 취하셨는데 꼬박꼬박 내게 '사모님'이라고 불렀다. 우리의 대화 주제가 연구자들 사이에서 나누는 연구에 관한 이야기인데 이분은 내게 꼬박꼬박 '사모님'이라고 칭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나는 그 '사모님'이라는 경칭이 내 몸에 붙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 왜냐하면 - 나는 그냥 내 이름으로 사람들에게 기억되길 바랬기 때문이다. '차라리 '아줌마'라고 불러라. 차라리 그게 낫겠다.  내 이름을 모르면 그냥 평범하게 '아주머니, 아줌마'라고 불러라' 말하자면 이런 입장이었다.  '사모님'이란 어휘에는 '아무개의 부인'이라는 뉘앙스가 강한데 나는 '아무개의 부인'으로 칭해지는 것이 싫다. 나는 누구 부인 이전에 나다. 나는 누구 딸이기 이전에 나다. 나는 누구 엄마이기 이전에 그냥 나다. 나는 나다.  아무튼 몇차례 전화 통화를 하거나, 내 연구실까지 방문하여 나와 의논을 하는 동안 그는 내게 꼬박꼬박 '사모님'이라는 경칭을 썼는데 - 나는 그 '사모님'소리를 들을 때마다 점점 화가 났다. 남편의 지인만 아니었으면 벌써 사단이 났을것이로되, 남편 체면 생각해서 듣기 싫은 호칭을 꾹꾹 참고 들어주었다.  그러다가 남편에게 지나는 말로 한마디 했다 --"당신 그 후배 그분 말야, 꼬박꼬박 나보고 사모님이래. 아유 기분나빠..."  남편은 내가 뭘 기분나빠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냥 그분에게 내가 기분나빠하고 있다고 알렸다고 한다. 그랬더니 그 분 설명으로는 '사모님' 호칭이 상대방을 가장 높여서 부르는 호칭이라서 내게 그렇게 불렀다는 것이다.  어떤 사회에서는 여성에 대한 극존칭이 '사모님'인 모양이었다.  그 후로 그분은 내게 아무런 호칭을 쓰지 않으면서 대화를 한다. 가령 그 전에 "사모님 안녕하세요!"라고 했다면, 이제는 그냥 "안녕하세요!" 한다.  그 '사모님' 소리 안들어서 그나마 나도 안도했다. 

 

 

'여사님'이 '사모님'과 다른 한가지는 '사모님'에게 '남편'이 필요하다면 '여사님'은 홀로 여사일수 있다는 정도일 것이다.  그래도 '김여사 운전'의 예처럼 과연 '여사'가 존칭인지는 애매하다. 요즘 존칭이 대세라서 '여사님!'하고 부르는 상황이 다양하다. 집에 청소하러 와 주시는 도우미님게게도 '여사님'이고 뭐 그냥 전에 '아줌마'라고 부르는 상황에서 요즘은 '여사님'이라는 말을 자주 쓴다. 그 여사라는 호칭이 정말 존칭이기나 한지 나는 헛갈린다.

 

 

그래서, 나는 '아무개씨'라는 호칭을 선호한다. "여사님", "사모님" 이런 이름 말고 그냥 "아무개씨", "아무개님" 이 더 좋다고 생각한다. 누군가 나를 얕보기 위해서 "아무개씨"라고 부른대도 나는 괜챦다. 그게 원래 내 이름이니까 말이다. 

 

 

Posted by Lee Eunm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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