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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2.03.25 청춘
  2. 2022.03.01 특권: 하나님과 대화 할 수 있다는 것
카테고리 없음2022. 3. 25. 03:16

일주일 내내 창가에서 연세대 교정을 내려다 봤다. 정문에서부터 백양로, 독수리상을 지나 주욱 올라가다 저 낡고 오래된 건물 앞에서 왼쪽으로 구부러져 올라가는 길가에 '윤동주 시비'가 서 있고, 거기서 조금 더 올라가면 내가 드나들던 건물.  20년 전 봄에 나는 저 길을 걷고 있었다. 그때도 '청춘'이라고 말하기엔 나는 내가 너무 나이가 많다고 생각했었다.  나는 늘 내가 뭔가 새로 하기엔 나이를 많이 먹어버렸다고 상상했었다.  지금도 나는 내가 지금 '첼로'를 배우기엔 너무 나이가 많다고 생각한다.  첼로는 갖고 다니기에도 너무 벅차게 크고...(하지만 피아노보다 훨씬 작고, 조금 크지만 갖고 다니는데도 별 문제가 없지 않은가?)

 

창밖의 중앙도서관 앞 길을 내려다보면서 개미만하게 작은 사람들이 돌아다니는 것을 내려다보면서 "저 속에 20년전의 나도 있겠지. 나는 걸어가고 있겠지"하고 상상을 하기도 한다. 

 

사람이 '청춘'을 말할때, 그는 이미 청춘이 아니다. 조망할때 그 때 모든 것이 뚜렷해진다.  전에는 병원에 들렀다가 '암병동' 간판만 봐도 뭐랄까 어린시절 '장례식장' 혹은 '장의사' 간판을 발견했을때처럼 간담이 서늘해지고 뭔가 무시무시한, '재수없는' 느낌이 들어서 아예 그리 시선도 돌리지 않았었는데 내가 그 '소굴'에 있다니 하하하.  있어보니 별게 아니더라... 해외여행보다 값진 경험이다. 하느님께서는 나에 대하여 여러가지 계획을 갖고 계심이 분명하다. 나는 매일 그와 많은 대화를 나누고 있다.  

 

 

매일 연세대학교 교정을 내려다 볼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다. 늙그막에 찾아온 아름다운 시간과 풍경이었다.  하느님은 어쩌면 이렇게 내가 좋아하는 것을 다 주시려하시는지.

 

(일주일 전 사진이다. 그 후에 눈이 한 차례 펑펑 쏟아졌고, 그리고나서 봄빛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Posted by Lee Eunm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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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없음2022. 3. 1. 11:03

어느 단체에서 내게 '장학생' 한명을 추천해 달라는 의뢰가 있었다. 성적이나 뭐 별다른 조건은 없고, 심지어 휴학중인 학생이어도 상관이 없다고 했다. 한가지 조건은 '공부하고자 하나 경제적으로 힘들어서 책값이라도 도움이 필요한 대학생'이면 그만이었다. 게다가 내가 추천하면 그냥 무조건 학생에게 장학금이 갈 수 있다고 했다.

 

내 머릿속에 번개치듯 떠오르는 한 학생이 있었다. 학기 내내 너무 힘들어보였다. 공부도 열심히, 공부 이외의 활동도 열심히. 봉사 활동도 열심히, 게다가 신앙생활도 타의 모범이 되게 열심히, 학비를 벌기 위하여 시간제 일도 열심히 - 모든 것을 성실하게, 열심히 꾸려나가느라 그 학생은 가끔 위경련을 일으켰고, 학기말에 번아웃을 겪기도 하였다. 그래서 막판에 다소 나를 실망시키기도 했으나 - 나는 그것이 그 학생의 불성실 때문이라기보다 너무 힘에 부치게 뭐든 열심히 하려는 그의 여러가지 선택들이 딱하게 느껴져 크게 실망하거나 질책조차 하지 않았다.  그 학생은 학기말에 실수한 것이 미안했던지 개학이 되어도 내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 

 

나는 그 학생을 생각했다. 경제적으로 힘들어서 책값이라도 도움이 필요한 대학생. 바로 그 학생이었다. 나와 긴밀하게 일하면서 내 일을 많이 도왔던 학생이라 카톡으로도 연결되어 있었기에, 카톡을 뒤져보았다. 그 학생이 보이지 않았다. 카톡 대화 기록을 뒤져봐도 그 학생이 보이지 않았다. 카톡을 닫은 것일까? 아무튼 카톡에서 그 학생이 사라졌다.  전화를 걸수도 있지만 - 나는 학생들과 전화통화를 하지 않는다. 이메일을 뒤져보았다. 겨울 방학 동안에 내게 보낸 이메일이 한통 있었다. 학기말에 나를 실망시킨 것에 사죄하며 - 잠시 학교를 떠난다는 (휴학) 메시지와 함께, 그래도 혹시 도움이 필요하시면 연락주시면 곁에서 도와드리고 싶다는 예의바른 메일이었다.  그 당시에도 나는 약간 화가 나있던 중이라 이메일을 자세히 보지 않고 그냥 넘겨버렸기 때문에 그 학생이 휴학을 한다는 사실도 모르고 있었다.  휴학 했구나. 그래서 이 친구가 개강을 했는데도 내 앞에 안보였던것이구나.  학교에 있었다면 반드시 들러서 방긋거리며 인사를 했을텐데.

 

카톡을 뒤져본다.  이름을 알 수 없는 '이름이 지워진' 누군가와의 대화 기록이 아직 그대로 남아있다. 열심히 내 지시사항을 듣고 일 처리 결과를 알려오던 우리들만의 대화였는데 - 대화 상대가 그냥 이름 없는 모르는 사람으로 남아있다. 카톡을 지웠거나 아니면 나를 차단한건가? 잘 모르겠다. 어쨌거나 그는 긴밀한 대화 채널에서 스스로 사라졌다. 

 

그리고, 나는 그 학생에게 연락하는 것을 포기하고 다른 추천 대상을 향한다. 네가 그자리에 그대로 있기만 했어도, 나는 너를 추천했을텐데. 너의 수고와 고민과 성실함을 너무나 잘 아니까. 너는 아주 훌륭한 학생인데.

 

그 학생과 내가 카톡으로 연결되어 있고 우리가 업무를 해결하기 위하여 긴밀하게 소통하고 있었다는 것은 - 사실 별게 아닐수도 있다. 그 학생에게는 어쩌면 그냥 내가 별로 의미없는 존재가 되어 버렸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어찌 생각하면 - 일대일로 나와 긴밀한 소통 체계를 갖고 있던 그 학생에게 그 소통 채널은 '특권'이었을수도 있다. 나와 연결되는 특권. 뭔가 기회가 오면 내가 제일먼저 그 기회를 줄수 있는. (비록 내가 별것 없는 인생이긴 하지만.) 그런데 그 특권을 그 학생 스스로 포기했거나, 버렸거나, 차단했다. 

 

나는 문득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를 생각했다. 

 

내가 기도를 통하여, 명상을 통하여, 상념을 통하여, 시도 때도 없이 한숨 지으며 '주여...' 혼자 중얼거림을 통하여 하나님을 부를때 주님은 분명 거기 계신다.  설령 주님이 아무 말씀 안하시고, 내 메시지를 '씹'는 것 처럼 보일지라도, 여하튼 나의 메시지는 계속해서 주님께 가서 쌓인다. 그리고 주님도 알고 계신다, 내가 끝없이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는 것을. 

 

내가 주님을 잊거나, 차단하거나, 포기하거나, 아주 뒤돌아서 떠나버리면 - 그것은 내가 스스로 주님과 소통하는 채널을 포기하는 것이고, 주님과 소통하는 '특권'을 놓아버리는 것이다. 그것은 내가 그렇게 하는 것이다. 내가 침묵하고 돌아 앉아있을때에도 - 주님은 문득 내 생각을 하시고 '요즘 이 아이가 왜 이렇게 조용한가? 어디가 아픈가?'하고 돌아보시게 될지도 모른다.  하나님께 기도드리고, 찬송의 노래를 부르고, '어디 계신가요? 한말씀만 하소서!'하고 내가 그를 부를때, 하나님은 들으신다. 나는 그 특권을 포기하면 안된다.

 

나는 이런 생각들을 갑자기 사라진 학생의 빈 카톡 계정을 물끄러미 들여다보다 - 하게 되었다. 

 

 

 

 

Posted by Lee Eunm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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