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2021. 10. 21. 17:30

 

 

이쁘장하게 생긴 남자 배우의 몰락이 요즘 화제다.  그 배우는 내가 방학때 미국집에 있는 동안 넷플릭스를 통해서 봤던 '백일의 낭군님'인가 하는 드라마에 나왔던 '착한 남자'다.  나는 거기 나오는 주인공이 잘생겨서 그걸 열심히 보았다. 이 사람은 주인공은 아니고 조역이었는데, 만화책에서 방금 튀어나온듯한 미소년이어서 인상적이었다. 그 배우의 전 애인이 뭔가 '보복성'글을 언라인에 올렸고 뭐 그 때부터 상황은 엉망이 되어가고 있는듯 하다. 그 사람이 요즘 뜨는 대세배우였대서 놀랐고, 그가 별로 착한 남자가 아니었대서 조금 놀랐고, 뭐 그가 폭망하게 되었다고 해서 한숨이 나왔다. 일부함원이면 오월비상인데 그걸 몰랐구나 그 만화책 미소년이. 

 

연구실 바닥에 먼지가 굴러다니길래 걸레질을 하면서 - 유튜브로 김광진의 '편지'를 틀어놓고 걸레질을 하고 하고 하고 또 하면서 내내 그 생각을 했다. 사랑은 도대체 어떻게 된거냐고.  모두들 '한때는 사랑했는데...'라고 한다.  한때 사랑했지만, 지금은 사랑하지 않으니까 지금 그 사람이 망하는 꼴을 봐야 하는걸까? 나는 이 부분이 잘 수긍이 가지 않는다. 내가 사랑했고, 둘이 서로 사랑했고, 내가 버림받으면 (혹은 상대가 내게 싫증을 느끼고 도망을 가버리면) 그것으로 그 상황이 끝난다고 해도, 그래도 사랑은 거기 있으면 안되는가?  사랑은 거기 그냥 있으면 안되나?

 

어느 여배우도 한때 둘이 어울려 연애했던(연애했다고 어느 한쪽이 주장하는) 정치인을 향해서 여러가지 '저주'를 공개적으로 퍼붓는다.  나는 어느쪽 편도 들 생각이 없지만, 여전히 생각한다, 둘이 서로 좋아서 교제하던 시절 그 시절은 그대로 폐기되어야 하는가 (만약에 둘이 연애했다면 말이다)?

 

나는 사랑의 추억을 간직하면서 사는 편이다.  나는 사람들을 사랑했다. 외사랑(짝사랑)일때도 있었고, 서로 사랑을 했을때도 있었다. 주로 내가 훨씬 더 많이 사랑을 했다. 주로 내가 더 많이, 더 오래 오래 사랑했다.  사랑을 퍼붓기도 했다.  나는 그 사랑의 기억을 가지고 산다.  그 사랑이 잘 못 되었건 어쨌건, 나의 죄는 하나님께서 판단 하실 일이고, 나는 사랑의 기억을 소중히 간직하고 산다. 내가 사랑했던 사람들은 아직도 내게 아주 소중하다. 그들 하나 하나가 아주 소중하며, 그들이 행복하게 살기를 바란다.  내가 '사랑'넘치는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그것이 '사랑'의 속성이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발끈하고, 보복하고, 망하기를 바라면서 한때라도 사랑했다고 말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사랑이면 그렇게 못하지. 사랑이 아니었던 것이지. 사랑이 아니었던 것을 가지고 사랑이었다고 말하지는 말라. 사랑이 슬프다. 

 

김광진의 '편지'를 듣고 있으니 그 '편지'가 생각난다. 

http://www.yes24.com/Product/Goods/330706

 

모르는 여인으로부터의 편지 - YES24

`-저를 전혀 알지 못하시는 당신에게-이따금 눈앞이 캄캄해지곤 합니다.어쩌면 이 편지를 끝내지 못할지도 모르겠습니다.그러나 제게 남은 힘을 다해서 일생에 단 한번 당신에게 보내는 이 편지

www.yes24.com

고등학교 한문 선생님이 어느날 한문 수업은 안하시고 - 우리들이 재미있는 얘기를 해 달라고 조르니까, 아마도 오늘같이 깊어가는 가을 오후였으리라, '모르는 여인으로부터의 편지' 이야기를 해 주셨다.  저자가 스테판 쯔바이크였다는 것은 내가 나중에 어른이 되어서 그 책을 찾아 읽었을때 알게된 것이었고 - 한문 선생님은 참 청승맞게 그 이야기를 해 주셨다. 평소에도 말씀을 단정하게 천천히 조심스럽게 하시던 차분한 분이셨는데 이야기를 듣다보니 한문 선생님이 바로 그 여주인공처럼 여겨질 정도였다.  저를 알지 못하시는 당신에게...  이 짧은 소설의 끝은, 그런데 편지를 받은 그 남자는 도무지 이 여자가 기억이 나지 않더라는 것이다. (아마도 그럴것이다. 나도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인터넷 시대에, 알고 싶지 않아도, 십년전에 헤어진 웬수도 검색 몇번만 하면 지금 어디서 뭘 먹고 사는지, 애는 몇이고, 몇번 이혼했는지 소상히 알수 있는 시대에, 고전적인 사랑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헤어져도 헤어질수가 없어 - 티브이 틀면 나오고, 카카오톡 열면 나오고, 어디서든 유령같은 그들이 살아서 돌아다니니까 잊고 싶어도 잊을수가 없어.  아마도 그래서 우리는 '가버린 사랑'을 잊을수도, 용서할수도 없는건가?  인터넷 시대에는 새로운 사랑의 방법 혹은 패러다임이 필요한걸지도 모른다. 

Posted by Lee Eunm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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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없음2021. 10. 19. 13:16

 

남루하게 입었더도 거지같이 입은 그것이 모두 명품 수백만원어치라고 해서 유명해진 어느 법조인의 모습이 테레비에 나왔을때, 나는 - 아 저 역은 '김수로'씨가 맡아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Posted by Lee Eunm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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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없음2021. 10. 17. 08:26

근래에 아주 '좋은 책'을 만났다.  그 책은 지난 5년간 분명히 늘 내 '코 앞'에 있었다.  온집안에 아무렇게나 쌓여 있는 책 더미 속에 그 책이 아무렇게나 방치되어 있었다. 그는 '증정본'이었다.  내가 관심이 있어서 내 돈 내고 사 온 책이었다면 내가 그 책을 모를리가 없었다. 그 책은 그냥 우연히 흘러들어와 비좁은 우리집 방구석에서 얌전히 오년을 기다리고 있었던거다. 

 

그런데 일단 무심코 '심심파적'으로 그 책을 집어든 나는 그자리에서 책을 읽다가 그 날 하루를 다 보냈다.  동시대의 '고민하는' 어떤 대학교수가 일반인이 읽기에도 무난하게 쓴 '사회 교양' 책이었다.  나는 그 책이 하도 맘에 들어서, 며칠 후 저자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만약에 어느 대학 교수가 저자라면 - 대학에서 프로필을 찾으면 이메일은 쉽게 찾을 수 있다).  내가 이 책이 왜 마음에 들었는지 몇가지 적고, 좋은 책을 내 주셔서 감사하다는 - 저자에 대한 인사였다.  (저자가 기뻐할 것 같았다.  저자들도 응원이 필요하다. )

 

그런데, 그냥 내가 내 흥에 취해서 보낸 이메일에 저자가 답을 보내셨다.  역시 나의 인사가 그를 기쁘게 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의 답신에 약간 '놀라운' 내용이 들어있었다.  사실 그는 그의 교수와 학자로서 그의 전공 분야 관련 연구 업적이 활발하고, 전공 관련 책도 여러권 출판을 하였다. 그런데 내가 읽고 반한 책은 그의 전공과는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는 일반 교양 수준의 책이었다. 그가 이런 '일탈 (전공과 관련 없는 글을 쓴 것)'을 하게된 계기가 놀라웠다.  그가 활발한 연구 활동을 하다가 연구년을 맞아 외국으로 나가려고 건강검진을 받았는데 '암'이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가 '암' 선고를 받았을때 - 내가 암에 걸리는게 당연하지 - 라는 생각이 스쳤다는 것이다.  그의 활발한 '업적'이 공짜로 얻어졌을리는 만무하고, 그의 삶이 '본질적인 것'에서 벗어나 있었다는 깨달음이 그를 내리쳤을것이다.  그 때 그는 '정말로 내가 쓰고 싶은 책을 써보고 싶어'라는 자각을 했다고 한다.

 

내가 읽고 반한 책은 - 한 학자가 생존을 위해서 그야말로 '필사적'으로 발버둥치며 '성곡적으로' '생존'하다가 암 선고를 받고 - '아 도대체 내가 무엇을 위해서 살아온거지?  회의를 품은 후 - 죽기 전에 내가 하고 싶은 말이나 속시원히 해보자는 심정으로 쓴 책이리라.  

 

그분은 그 후에도 소속한 학계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며 책을 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암을 잘 극복하신 듯 하다.  그런데 어쩌면 내가 읽고 반한 그 책이 그 사람을 '되살린' 책인지도 모른다.  그런 책이기에, 내가 읽고 반한 것이겠지.  아마도 그런 책이 5년이 넘도록 내 근처를 맴돌면서 이제야 나와 만난 것을 보면 - 이제 나도 다시 날개를 펼쳐야 할 때가 온 것인지도 모르지... 아, 내게도 마무리 해야 할 '숙제'가 있는 것이니. 

 

 

 

 

Posted by Lee Eunm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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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없음2021. 10. 11. 18:26
  1. 목적: 도대체 내가 왜 대학원 진학을 하려는 것인지 명확히 한다. 잘 모르겠다구? 가지 마시라. 당신에겐 너무 비싼 놀이터가 아닐까?
  2. 학업성취도: 학점 관리를 제대로 한다. 학점은 평생 당신을 따라다니며 당신을 빛나게 하거나 괴롭힐것이다. 학점이 엉망이라구? 그런데 대학원은 뭣하러 가시나?
  3. 인간관계: 나를 위해서 추천서를 써줄 관계자 (교수, 직장 상사등) 두세명을 단단히 확보해 놓는다. 없다구? 대학다니며 뭐하셨는가?
  4. 경력관리: 학점은 만점에 가까운데 학점 잘 받은것 외에 딱히 쓸말이 없다구? 학점 높은것은 자랑이 아니다. 어차피 대학원 진학하는 학생들 학점은 대체로 높다. 학점 말고 내세울것이 뭐가 있는가? 없는가? 집어치우라. 

 

 

 

한국 대학에서 대학원생들을 뽑는 계절이 돌아왔다.  한국의 유명 대학 대학원들은 대체로 10월 11월 사이에 원서를 받는다.  나는 수년간 미국과 한국의 대학원에 지원하는 졸업생들의 자문을 하고 있다. 이제는 지원자 얼굴만 봐도 이 사람이 희망하는 대학원에서 입학허가를 받을수 있을지 없을지 윤곽이 잡힌다.  (내가 관상가도 아닌데...). 

 

대학원 진학을 하고자 하나 진학 목적 자체가 애매해 보이는 졸업생의 경우 - 나는 진심으로 상담을 해주기도 한다 - 대학원에 반드시 가야할 이유를 잘 모르겠으면, 대학원 입학 신청 이런것으로 시간 낭비, 돈 낭비 하지 말고 그냥 아무것도 하지말고 , 뭘 해야 할지 고민을 더 하시라. 편의점 알바라도 하면서 밥벌이를 해도 좋고, 그냥 무위도식하면서 온종일 걸어 돌아다녀도 좋고. 집에서 눈칫밥 먹기 싫으면 나가서 뭐라도 시간제 일을 하면서 용돈벌이라도 하거나, 뭔가 새로운 것을 배워봐도 좋을것이다.  대학원이 당신을 구원하지는 않을테니까.  이세상에 구원은 없다. 

 

***   ***

 

추천서를 써오라고 하는 추천인

 

 

가끔 한국 학생들에게서 듣는 전설 같은 이야기.  모 교수에게 추천서 부탁을 드리니 "네가 써오면 내가 싸인해주겠다. 잘 써오라"고 했다는.  이런 얘기는 뭐 수십년간 '추천서'관련 전해내려오는 전설 같은 얘기이다.   내가 대학원에 가기 위해서 추천서가 필요 했을 때, 나는 극히 정상적이고 상식적인 방법으로 추천서를 받았다. 교수님들께 부탁드리고 그분들이 열심히 써주셨으며, 결과가 모두 좋았다. 석사 입학, 박사입학 모두.  내 석사때 지도교수님이었던 플라트 박사는 내게 박사 과정에 진학하라고 권하면서, "네 추천서 걱정은 하지 마라, 내가 써줄것이고 또 한 부는 *** 에게 내가 부탁해서 쓰라고 할게." 이정도로 열정적으로 나를 후원하셨다. 

 

내가 은사님들의 하늘같은 은혜를 입었으니 - 나는 그것이 정석인줄로만 알고 내 학생들이 추천서를 부탁해올때 성심성의껏 추천서를 작성한다.  (그러길래 사람은 제가 보고 배운대로 남들에게도 하는 것이고, 사랑을 받아 본 사람이 베푸는 방법도 아는 것이다.).  그러데 몇해전에 대학원 입학 지도를 하는 가운데 어느 학생에게서 그 전설같은 사례를 들었다.  스위스의 모 대학원에 입학신청을 위하여 지도 교수께 추천서를 부탁드리니 "네가 써오면 내가 싸인해주마" 했다는 것이다.  그 당시에는 '정말로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구나' 하고 지나갔다.  그 교수는 '미국인'이었다. 

 

얼마전에도 대학원 지원하는 학생을 상담해주는데 '추천서'얘기를 꺼낸다.  전공교수나 전공 관련 과목 교수나 혹은 인턴으로 일했던 부서의 디렉터나 뭐 그런 '학업이나 직무관련' 인사의 추천서를 받아야 한다고 코치를 해 줬는데 - 그래서 그 학생이 접촉한 인사가 역시 똑같은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영문 추천서가 필요하면 네가 영문으로 작성하고, 한국어 추천서가 필요하면 네가 한국어로 작성해서 가져오면 내가 싸인해 주겠다."   그 학생이 내게 의논을 한 것은 '그러니 영문 추천서가 유리할까 한국어 추천서가 유리할까' 내가 판단을 해 달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답을 해 줬다. '영문이건 한국어이건 아무쪽을 써도 상관없다면 그것은 영문이건 한국문이건 아무 상관이 없다는 거다. 내용을 보겠다는거다. 추천서에 쓸만한 내용이 있는지 그걸 보겠다는거다.  그 쓸만한 내용을 '추천인'이 잘 모를수 있으니 오히려 추천서가 필요한 본인이 알아서 잘 쓰는것이 아무래도 좀더 생생하겠지. 그래서 그 추천인은 아마도 그러 선의를 가지고 써오라고 했겠지.'   나를 위한 추천서를 진심으로 작성할만한 사람이 주위에 없다면 - 이제 앞으로는 주위에 내 편이 되어줄 성실한 조력자를 세울 궁리를 하는것이 좋을 것이다. 그런 조력자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1년 혹은 2년간 공을 들여야 하는거다.  그러한 인간 관계를 맺지 못한다면 - 어디에 가서도 '일꾼'이 되기는 쉽지 않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고, 나를 돕고 내가 도울 나의 네트워크를 내가 만들어 나가야 한다.

 

 

 

 

 

 

 

 

Posted by Lee Eunm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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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비밀댓글입니다

    2021.10.16 13:14 [ ADDR : EDIT/ DEL : REPLY ]
    • 아! 대단하십니다! 제 오랜 친구가 대학원 진학 소식을 전해주시니 - 그 소식 자체가 저에게도 '도전'이 됩니다. 무엇을 위해서, 왜, 공부를 하시는지 알수 없으나 기왕에 발동 걸린김에 쭈욱~~ 끝까지 가 보실것을 권해드립니다.

      아, 저도 문득 생각하게 됩니다. 도대체 나는 지금 어떤 도전을 하고 있는거지? (이봐 정신차리라구!)

      감사합니다, 기쁜 소식 전해주셔서.

      2021.10.17 08:31 신고 [ ADDR : EDIT/ DEL ]

카테고리 없음2021. 10. 1. 16:00

나는 캠퍼스에서 생활한다. 일하는 건물과 숙소 건물은 약 300 미터쯤 떨어져 있다. 늘 캠퍼스에서 지내다보면 불편한 점이 한가지 있는데 - 나의 삿적인 영역이 극히 제한되어 있다는 것이다. 나는 내 숙소의 문을 열고 나서는 순간부터 '공인'이다. 늘 '정상적인 어른'처럼 행동을 해야 한다.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면 안된다. 

 

며칠전에는 내 숙소 입구로 들어서려는데 어떤 곱다란 학생이 마스크를 쓴채로 반갑게 나와 눈을 마주치며 인사를 했다, "Oh! Professor 000!"  놀랍고 반갑다는 빛이 역력하다.  그래서 나는 상대가 누구인지 잘 모르지만, 그래도 역시 눈을 빛내며 반갑다고 멍멍멍 해 주고 그 자리를 지나쳤다. 

 

현장을 지나치고나서 나는 중얼거렸다, --"그런데 누굴까? 아마도 내 학생인가본데..." 

 

필시 내 학생일 것이다.  내가 채용한 인턴인지도 모른다.  학생 아니면 학생 인턴이겠지. 그런데 그가 누구인지 알 길이 없다. 

 

왜 이런일이 벌어지는가?  코로나 때문이다. 그리고 '마스크'때문이다. 

 

아, 정말 지겹다. 벌써 4학기째 학생들 얼굴을 못 보고 수업을 하고 있다.  '줌' 수업을 할 때 카메라를 켜는 학생의 수는 매우 제한적이다. 학생들은 카메라 켜기를 주저한다. 그리고 나는 카메라를 켜라고 강제할 수 없다. 나는 카메라 켜는 것을 학생들의 판단에 맡겼다. 자발적으로 카메라를 켜는 학생도 간혹 있지만 대체로 카메라를 켜지 않는 분위기 이다.그러니 나는 검은 바탕에 학생이름만 적힌 것을 보면서 토론을 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강의를 한다. 

 

커뮤니케이션 수업에서는 오디오/비디오 발표 숙제를 지속적으로 내 준다. 카메라 앞에 앉아서 비디오로 발표하는 영상을 찍어 올리는 과제를 할 때조차 '마스크'를 쓰고 하는 학생들도 있다.  분명히 자기방에서 영상 녹화를 하면서도 마스크를 쓰고 한다. 얼굴을 노출시키고 싶지 않다는 뜻이리라.  나는 얼굴도 모르는 학생들을 만나서 대화를 하고, 토론을 하고, 그들의 과제를 채점한다.  나는 내 학생들의 얼굴을 잘 모른다.  내 학생들은 카메라 앞에서 '원맨쇼'를 하는 나를 들여다보며 킥킥 웃기도 하고 - 그런 식으로 나를 만난다. 

 

나는 마치 카메라 앞에서 혼자 쇼를 하는 사람 같다. 학생들은 나의 얼굴을 기억하고, 내 표정이나 목소리나 몸짓을 기억할것이다. 수업내내 카메라앞에서 활발하게 '쇼'를 하니까.  그는 아마도 멀리서도 나를 알아 볼 것이다. 설령 내가 마스크를 껴도 그들은 멀리서도 나를 알아 볼 것이다. 나는 그들 앞에서 내내 원맨쇼를 하는 사람이니까.  반면에 나는 검은 화면을 보면서 이야기를 한다. 나는 열심히 떠들고 질문하고 대꾸한다. 상대방의 얼굴도 보지 못하면서, 검은 화면을 향해웃고 떠든다. 

 

 

그래서 - 내가 한번도 본적이 없는 학생이 먼저 나를 발견하고 반갑게 인사를 할 때, 나는 모르는 사람에게 역시 반갑다고 인사를 한다. (그를 실망시킬수 없으니까.)  학생들은 자신들이 내게 얼굴을 보여준 적이 없다는 것을 아마 인지하지도 못하고 있을것이다. 

 

 

이건 마치 내가 '스타'가 된 것 같다.  길가다가 친근한 영화배우나 탤런트나 가수를 만난다면 - 나는 '아 저 사람이 가수 000씨구나!'하고 반가워하겠지만 - 그 가수가 나를 알 리는 없다.  내 쪽에서 일방적으로 반가울뿐이다.   얼굴을 모르는 학생이 내게 반갑다고 인사를 할 때 - 나는 내 학생을 기억하지 못해도 역시 반가워해줘야 한다. 실망 시킬수없는 것이다. 

 

어서 이 상황이 끝나기를 바란다.  우리는 모두 서서히 우울감에 빠져들고 있다.  

 

 

Posted by Lee Eunm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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