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etch2019. 10. 31. 20:31

 

내가 '그 어떤 감리교회'에 대해서 회의적이었던 이유는 그 교회를 세웠다는 '원로목사'라는 분의 설교가 괴이쩍고 납득이 안갔기 때문이다.  우선 그는 박근혜씨가 아직 대통령이던 시절, "세월호는 이제 그만 잊어야 합니다. 언제까지 그걸 문제삼아야 합니까" 이따위 소리를 해서, 내가 너무 화가 나서 '크리스마스 예배'도중 자리를 박차고 나온 적이 있었다.  그는 동성애자들이 축제벌이는 곳에 '반대시위'를 하러 다니던 목회자였다. 그리고 그는 그것을 설교 시간에 다시 설교 재료로 삼았다. 

 

내가 그따위 교회를 그래도 꾸역꾸역 다녔던 이유는 단 한가지, 그가 곧 정년퇴임을 하여 물러날 것이라는 지대한 희망 때문이었다.  그 원로목사님의 휘하에 두명의 부목사님들이 있었는데, 이분들은 극히 정상적이고 바른 분들처럼 보였다. 설교도 정상적이었고 원만해 보였다.  그래서 저 이상한 노인이 정년퇴직하여 교회를 나가면 저런 정상적인 부목사님들이 목사님이 될 것이고 교회는 정상적이 될거야라는 얄팍하고 순진한 희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 중간에도 부목사님 한분이 잔뜩 불행한 표정으로 사역하다가 따로 살림차려 나갈때 (개척교회하러 떠날때), 나도 그쪽으로 옮길까 하고 흔들린적도 있었지만, 그냥 귀챦아서 그 노인이 나가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나도 게으른 인간이니까 조금 참아서 될 일이면 참는쪽으로 하는 편이다. 

 

드디어 올해 초에 고대하고 고대하던대로 그가 정년퇴임/은퇴를 하긴 했는데 '원로목사'라고 스스로 자기를 추대하였다. (그리고 그는 한달에 400만원의 원로목사 월급을 받아 간다고 한다. 은퇴후에 그의 얼굴을 한번도 교회에서 보지 못했지만 그는 한달에 400만원 생활비가 적다고 신경질을 부린다고 한다. 물론 그 월급은 그가 퇴직금조로 빼간 수억원과는 별도로 지급되는 것이다. 나는 그 사실을 듣고, 그 다음부터 그 교회에 돈을 안 내겠다고 작정했지....  에라이 날도둑 목사놈아. ) 그리고 교회는 엉망이 되었다.  일설에 의하면, 그가 그 사층짜리 신축교회를 그대로 곱게 '남에게' 넘기고 물러날 생각이 추호도 없거니와,  교회는 (1) 지금 다른데서 목회를 하고 있는 그의 '아들'이 그 교회를 물려받는것이 마땅할 수도 있지 않겠냐는 일부 장로들과  (2)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냐, 교회 세습은 말도 안된다, 부목사님이 일 잘하시니 그냥 그 분이 자리 넘겨 받으면 된다는 일부 장로들의 전쟁터가 된 것이다. 

 

그 노인이 자취를 감춘 후 6개월동안 교회는 '원로목사파'와 '부목사파'로 '분단국가' 처지가 된 것 같았는데 '국민투표'식으로 전교인 투표를 해봐도 70퍼센트가 '부목사'를 새로운 담임목사로 추대하자는 찬성표가 나왔지만, 그렇지만 국민투표고 지랄이고간에, 지방 감리교단이 '원로목사'의 수중에 있었다.  자취도 보이지 않는 원로목사 뜻대로 움직여지는 것 같았다.  결국 몇년 후에는 그의 아들이 그 교회를 차지하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가 분분해졌다. 게다가 현재 부목사님은 '난'을 일으켰다고 징계를 먹는다나 뭐라나.   교회 사정에 밝은 전문가들에게 문의를 해보니, 교단이 원로들 수중에서 놀아나면 개혁이고 뭐고 없는것이 한국 교회의 현실이라는 것이다.  나는 그래서 이 지역 감리교단 자체가 완전히 썪었다는 판단을 하게 되었다. 

 

에잇.  어디가서 예수쟁이라는 말도 못하게 생겼다. 너무 부끄러워서.  예수님이 부끄러운게 아니라, 예수님을 팔아먹고 사는 목사라는 직업인들이 내 삶에 끼어들었다는게 챙피스럽다는 것이다. 

 

아무튼, 그래서,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가, 일단은 쫒겨나는 부목사님들이 손을 잡고 새로 세운다는 교회쪽으로 가서 예배를 볼까 생각하고 있다. 

 

내가 왜 이 썩어빠진 감리교단을 떠나지 못하는가, 그 이유는

1) 어차피 사방 눈씻고 찾아봐도 개신교 교단 전체가 썩어가고 있다. 희망이 없다. 의탁할 곳이 없다.

 

2) 천주교나 성공회에 간들 뭐 그들이라고 크게 다르겠는가? 사람 사는 곳이 다 그렇지.  예수님을 십자가에 처형한 인간의 후예들이 다 거기가 거기지. 사람 자체를 신뢰하면 안되는거다. 원래 나는 사람을 신뢰하지도 않는다. 

 

3) 그럼에도 나는 예수님께 의지하여 일평생 살기로 서약한 바, 어쨌거나 예배드리고 찬송하고 그래야 한다. 그러니 예배처에 가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아무튼 예배를 계속 드리기 위한 방편으로 새로운 교회로 발길을 돌리기로 했다. 

 

그래서 나는 새로 교회를 세우느라 고생중이신 목사님께, '나는 당신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고, 당신을 신뢰하지도 않소. 나는 단지 예수님을 따르고, 예수님만을 믿을 뿐이오. 당분간 당신과 함께 예배를 보기로 했으니 한동안 좋은 길 동무가 되기를 희망하오' 뭐 이런 메시지만 보내놨다.  

 

미국 감리교는 '중앙에서 파송'하는 시스템이라서 목사들이 '이건 내가 세운 내 교회, 우리 아들 준다' 뭐 이따위 소리하는 작자가 없다. 공립학교 선생님들처럼 몇년 있다가 떠나면 새사람이 오고 그런다.  한국 감리교는 '이건 내교회, 내 아들에 아들에 아들에게 물려줄 내교회' 이따위 생각 가진 목사들이 넘치는 것 같다.  내가 다니던 미국 감리교가 새삼 그립다. 어쨌거나, 나는 오늘도 기도하고 찬송하고, 예수님 손을 꼭 붙들고 살고 있다. 

 

한국에는 참 나쁜 목사놈들이 많다. 에라이... 나쁜 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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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ee Eunm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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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없음2019. 10. 16. 12:25

이건, 아직 조국씨가 법무장관에 있고, 법무부와 검찰이 샅바 싸움을 하고 있던 시기에 내가 '정치 장기판'을 혼자 들여다보며 생각해 낸 것이다.  

 

안타깝지만 조국을 장기판에서 빼고,  법무장관에 윤석열을 갖다 꽂는거야. 그리고 윤을 제대로 한 번 써보는거지.  어차피 조가 여기저기 먼지가 묻어서 쓸수 없는 패라면, 윤이라는 칼을 제대로 한 번 쓰는거야.  한 번 쓸 칼이긴 하니까.  사냥개에게 제대로 사냥터를 열어주자 이거지 뭐.  본래 명견이나 명마는 주인을 가리는 법이다.  윤석열은 어떤 면에서 아직 '주인/파트너'를 못 만난 외로운 명마나 명견 같은데가 있다.  그래서 혼자 고삐 풀린 것처럼 저러고 있는거지.  그를 비난하면 안된다. 그를 잘 써야하는거지.   윤을 무조건 패 죽이려고 하면 우리가 가진 자원의 낭비다.  윤이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그의 쓰임새는 딱 거기까지라는거다.  

 

조가 이쁘다거나 윤이 이쁘다거나 그런 얘기가 아니야. 난 둘 다에 별 관심 없고, 누가 무슨 짓을 해도 심드렁한데, 내가  장기를 둔다면, 이 난국에 이런 수를 써볼 수 있다는거지. 하지만 뭐 누가 내 의견 따위에 귀를 기울이겠냐구.  멍멍. 

 

 

Posted by Lee Eunm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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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없음2019. 10. 16. 12:16

이틀전 (10월 14일) 오후에 동시에 발견했던 두가지 뉴스 

 1. 법무부장관 사퇴

 2. 설리 사망

 

이 뉴스는 어찌보면 동일한 내용처럼 보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수업마치고 앉아서 쉬다가 문득). 

 

물론 법무장관이었던 조국은 죽지 않았다. 나는 그와 그의 가족이 안녕하기를 희망한다. 전두환과 그의 일가족도 잘 살고 있고, 역대 군사정권 앞잡이와 그 가족들도 한국에서 미국에서 떵떵거리고 잘 살고 있는 마당에 말이다. (내가 미국에서 살때, 내 친구가 성당에서 어떤이를 가리키며 저이가 정아무개 장군 여식이라고 알려준 적이 있다. 그들은 바퀴벌레들처럼 번식하며 잘 살고 있다.) 

 

설리는 죽었어도 그 죽은 사망기사에도 악플이 지속되고 있고, 조국은 장관 그만두었는데도 여전히 그에대한 악플이 범람하고 있다.  설리에 대해서 혹은 조국에 대해서, 그 일가족까지 포함하여 아주 부관참시라도 하려는 것 같다.  "이들이 한국사람 맞나?" 의문이 들 정도다.  정많고 한많은 한국인들이 아니었나? 나의 한에 비쳐 남의 한을 들여다보고 그러는것 아닌가?  조국이, 설리가 죽을 죄라도 진걸까?  너는 털면 아무것도 안 나올것 같은가?

 

나는 심지어 이런 생각도 했었다.  '만약에 내가 장관 후보가 된다면, 어떤 사람들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을 내 사생아까지 찾아내어 내 품에 안겨줄것이고...  덕분에 나는 없던 딸자식까지 하나 덤으로 얻게 되는게 아닐까?  유명 남자배우가 내 연인으로 둔갑을 하는게 아닐까?  웬 떡이야 해야 할 판이겠다.'  그러나 나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나는 장관 후보가 될 일이 없을테니 털릴 일도 없으니까.  미남 배우를 연인으로 갖게 될 일도 없어지는거지. (한숨). 옛날에 나는 안성기 오빠를 좋아했는데, 요즘은 딱히 좋아하는 배우도 없다... (또 한숨).  정우성님이 잘 생기신것 같다. (한숨.) 

 

한달에 일억씩 쳐 주고 입원해 있는 죄수는 다시 교도소로 돌아가는게 어떠한가? 지가 지 돈 쓰는데 내가 뭐랄건 없지만, 인심이 사나워지니 나도 물이 들어 인심 사나운 소리 한번 지껄인다. 쳇. 퉤퉤. 

 

아, 점심 먹으러 나가기 귀찮아서, 배는 고픈데, 잡설. 

 

 

 

 

 

 

 

 

Posted by Lee Eunm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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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etch2019. 10. 15. 19:34

설리

 

어제, 퇴근후 무심코 열어본 스마트폰 뉴스채널에서 두가지 뉴스를 동시에 발견했는데, 법무장관의 사표 소식과, 연예인 설리가 사망한것 같다는 보도였다.  내가 먼저 클릭한 것은 설리씨의 사망에 관한 뉴스였다.  아니, 그 꽃같이 예쁜 아가씨가 정말로 이 세상을 떠났다는 말인가?  

 

법무장관이야 누가 하거나 말거나, 결국 누군가 할 것이고, 세상은 뭐 이럴때도 있고 저럴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설리'를 대체할 자가 누구란 말인가?  아무도 그를 대체할 수 없으니, 설리를 잃은 것은 참 슬픈일이다.

 

나는 이 사람에 대해서 잘 모른다. 이 사람이 한창 연예인으로 활동을 하던 시절에 나는 미국에서 내 터전을 쌓느라 분주했고, 내가 한국에 돌아왔을때 그는 왕성한 시기를 지나 있었을 것이다.  그가 왕성한 가수 활동을 계속 했대도, 쇼프로를 보지 않는 내게는 결국 마찬가지로 눈에 안띄는 존재였을 것이다.  그가 내 눈길을 끈 것은, 어느 화장품 회사 모델로 나온 그의 모습이 너무나 독보적으로 상큼 발랄, 요정같이 산뜻해서 '저이가 누군가?' 궁금해하다가, 그의 이름이 '설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실 그것 외에 나는 그를 잘 모른다.  이따금 가십성 기사에서 그의 일상 사진이 사람들 입에 오르내린다는 정도였는데, 어쩌다 보이는 가십성 기사의 사진 속에서도 그는 '요정'처럼 여전히 아름다워서, '이렇게 요정 같이 산뜻, 풋풋한 아가씨라면 뭘 해도 사랑스럽겠다' 이런 생각을 하곤 했다. 

 

내가 평생에 처음으로 아주 빨간 (오리지날 빨강) 립스틱을 하나 마련한 것도 순전히 '설리'가 빨간 립스틱을 발랐을때 단지 그냥 립스틱만 바른 것 뿐인데도 그가 너무나 요정 같아 보여, 나도 모르게 홀려서 나도 빨간 립스틱을 집어 들었던 것이지.  물론 내가 설리의 빨간 립스틱을 아무리 바른대도 절대 절대 설리의 사랑스러움을 먼지만큼도 얻어 올 수 없음을 안다고 해도 말이다.

 

그런데 이 상큼한 스물다섯 아가씨가 이 투명한 가을날, 그렇게 가볍게 세상을 떠나버리다니.  세상에서 다시 보기 힘든 꽃 한송이가 문득 사라진 것같아, 영 아쉽고 안타깝다.  나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는 사람이라고 해도, 그래도 상실감이 문득 찾아온다.  그 예쁜 사람을 다시 볼 수 없다니...  

 

그래서 나는 생각해보았다. 나하고 아무 상관이 없는 사람이라고 해도, 무조건, 무조건, 사람에게 친절하자.  그 사람이 나때문에 상처받지 않도록 조심하자.  그리고 무조건 응원해주자.  그가 내 응원에 마음을 돌이킬지도 모르지 않은가? 죽음에서 삶으로.  좀더 적극적으로 친절하고, 좀더 적극적으로 편이 되어주자.  너무 슬퍼지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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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ee Eunm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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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없음2019. 10. 3. 13:27

 

 

요즈음 대통령의 아들이 자신에 대한 공격적인 뉴스에 대해서 공개적으로 피드백을 보내고 있다.  역대 대통령 자식들과는 약간 다른 행동이다.  나는 누가 얼마나 정당하고 옳은지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이러한 현상을 보면서 어딘가 속이 후련한 기분이 든다는 것만 말하고 싶다. (어딘가 나의 한풀이를 하는 듯한 기분이다.)

 

 

물론 나는 유명인의 자식이 아니다. 내 아버지나 어머니가 대통령이나 장관이나 의원이나 뭐 재벌이나 그런 대단한 사람들은 아니셨다.  그냥 평범하고 착한 이땅의 가장이며 부모로서 자식들을 열심히 키워내신 분들이다.  그런데, 설령 내 아버지가 '아무것도 아닌 어떤 사람/가장'이라고 해도 그에게도 분명 어떤 '직장'이 있었고, '직책'이 있었고 국가에서 주는 훈장도 받고 그러셨다.  아버지가 받으신 훈장이 뭐였더라?  한 개인이 어떤 전문분야에서 평생 일을 하면 정년기에 이르렀을때 국가가 그 노고를 인정하는 무슨 '꽃'이름이 들어간 훈장이다. 목련인지 무궁화인지 라일락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 소시민인 내 아버지의 이름이 학교에 들어서는 순간 나를 따라다녔다.  어딜 가나 누군가 나를 알아보고, "얘, 너희 아버지 *** 이시지?  내가 네 아버지하고 동기다 (친구다, 함께 근무했다, 등등) 너, 아버지를 많이 닮았구나. 한 눈에 알아보겠다. 공부 잘하지?"

 

 

어딜가나 그 모양이었다. 내가 '어딜가나' 할 때, 그게 기껏해야 학교 언저리이지 뭐 내가 어딜 돌아다녔겠는가.  어쨌거나 나는 아주 불편했다. 도처에서 '내가 네 아버지하고 잘 아는데....'하는 사람들이 나를, 나의 행동거지를, 내가 친구들에게 막 욕지거리 퍼부으면서 거칠게 놀고 있는 것을, 내가 지각하는 것을, 그 모든 것을 샅샅이 아버지에게 '고자질' 할 것 같은 께름칙한 느낌 속에서 초중고대학교 시절을 보냈다. 16년간의 나의 학교 생활은 늘 주변을 살피고, 누가 나를 보고 있는지 아닌지, 내가 하는 못된 행동이 아버지 귀에 들어갈 것인지 말것인지 늘 그걸 두려워하고 주눅들어 있었다. 

 

 

초중고등학교에 다닐땐, 내가 애국조회 시간에 단상에 올라가서 뭔가 근사한 상을 받는 '우수한 학생'이 아닌것이 아버지께 미안했다. 그는 별로 신경을 안쓰고 있었지만 말이다. (사실 아버지는 나 따위의 일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도 없었다. 나 혼자 미안했을 뿐이다.)  대학은, 내가 가고 싶은 학교에 가지 못했는데, 아버지가 그리 가라고 해서 그냥 그리 갔다.  거기는 감옥이나 마찬가지였다. 그 대학에는 도처에 아버지를 아는 사람들이 쫙 깔려있었으니까. 나는 숨도 쉬기 어려웠다.  물론 숨도 쉬고, 웃고, 장난도 하고 그랬다. 하지만 자유로웠던적은 없었다.  나는 '착한 어린이'로만 살려고 노력했다.  그래봤자 우리 아버지는 나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지만 말이다. 

 

 

단지 아버지 때문이었다. 아버지의 체면을 구기는 자식이 되고 싶지 않았다. 뭐라도 한마디도 실수를 해서 아버지의 명예에 해를 끼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전력을 다해서 아버지의 명예를 지켜드리려고 했다.  아버지는 나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지만 말이지. 

 

 

아버지는 내가 선택해서는 안되는 직장, 장소도 분명히 못을 박았다. 자신이 평생 일군 영역에 대해서는 그쪽으로 머리도 돌리지 못하게, 발 그림자도 들이지 못하게 못을 박았다.  애비 직장 근처에 자식이 기웃거리면 '불명예'이고 '쪽팔리는' 일임을 누누히 귀에 못이 박히게 주장하셨다.  그래서 나는 일찌감치 아버지와 동일한 계통의 직업과는 38선 철책보다 무서운 담장을 쌓았다.  헹! 그 쪽으로는 기침도 안할테니 걱정 마시라!  이게 자존심 강한 나의 입장이기도 했다. 

 

 

지금도 나는 생각한다. 아버지가 돌아가시지 않고 아직 살아계신다면 -- 나는 대학교수 직업은 꿈도 못 꾸었을 것이다. 아버지가 격렬하게 앞장서서 방해를 했을것임이 분명하니까. 

 

 

 

유명인을 아버지로 모시고 그의 자식으로 사는 것은 -- 누군가에게는 '아빠 찬스' 패를 쓸수 있는 행운이기도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족쇄'나 '수갑'같은 것일수도 있다.  생각해보자. 대통령의 자식도 그가 성인이면 이 나라의 시민일 뿐이다. 그는 직장도 가져야 하고, 일도 해야 하고, 다른 평범한 사람들처럼 생활인으로 살아내야 한다.  어떤 사람이 대통령의 아들이기 때문에, 며느리 이기 때문에, 딸이기 때문에 숨을 죽이고 할말도 못하고, 욕을 먹어도 엎드려 있어야 하고, 이런 사회라면 이게 정상적인 사회라고 할 만한가?  나는 아무것도 아닌 어느 아버지의 딸로 사는 동안에도 숨이 막혔다. 할말을 못했고, 기를 펴지 못했다.  아버지가 나 때문에 망신스러우면 안된다는 그 한가지 생각으로 숨도 제대로 못 쉬고 살았단 말이다.  

 

 

좀 엉겨붙지 좀 말라. 숨 좀 쉬게 내버려 두라.  행패부릴데가 그렇게 없는가? 정말로 사회 구조적인 문제를 들여다보고 고통겪는 사람들의 문제를 들여다보고 고민해야 할 시간에, 기껏해야 별 것도 아닌 사람 하나에 올가미를 매려 드는게 온전한 것인가? 그게 국회의원이 할 짓인가?  정말 지긋지긋하다.  대통령의 자식도 할 말은 편안히 하고 사는, 그냥 편안한 사회에서 살고 싶다.  내 아버지는 대통령도 국회의원도 삼성장군도 아니셨지만, 내가 겪었던 고통으로 다른 자식들을 들여다본다. 

 

할말은 하고 살자. 당신/우리/나는 쥐새끼가 아니다. '사람의 새끼'이다.  쥐죽은 듯이 엎드려 있기보다는, 사람처럼 일어나서, '사람의 말'을 하고 살자. 

 

 

Posted by Lee Eunm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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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etch2019. 10. 2. 19:09

연구실에서 쌓인 일을 '전투 모우드'로 해 치우고 있는데, 이슥한 저녁, 여학생 한명이 찾아왔다. 내 연구실은 대체로 문이 반쯤 열려 있으니 와서 기웃거린다. 

 

"왜?" 

 

나는 마치 시골 가겟방을 지키는 아주머니가 무심한 표정으로, 문지방을 넘어 들어서는 동네 아이를 대하듯 묻는다. 

 

 

"교수님, 혹시 우산 있으세요? 밖에 비와요." 

 

비가 오겠지. 태풍 미탁이 상륙 했다고 하니, 밖에 비가 오겠지. 그 학생이 학교 근처 오피스텔에서 지내면서 걸어서 통학한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운전하며 외출하는 길에,  걸어가는 그 학생을 몇차례 본 적도 있다.  나는 그냥 턱짓으로만 문앞 의자 옆에 세워져 있는 우산을 가리킨다. 

 

 

"저깄다."

 

"저 써도 돼요?"

 

"응" 

 

"그럼 교수님은 비오는데 어떻게 하세요?"

 

"난 그냥 비 맞으면 된다." 

 

"어머! 그러면 제가 못 빌리지요....전 교수님이 우산이 여러개 있는가 보러 왔지요." 

 

"너를 비를 맞게 하느니, 내가 비를 맞고 말지. 너는 나의 소중한 학생이니까." 

 

나는 빙글빙글 웃는다. (거짓부렁이라는 뜻이다.). 비가 온들, 나는 사실 비 맞는일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데, 왜냐하면 나는 후드셔츠를 입고 있고, 내가 연구실에서 숙소로 달려가는 길은 정말 짧다. 비를 맞을 거리는 더 짧다.  그런 이유로 나는 우산을 세워 놓을 뿐, 웬만한 비는 그냥 맞고 돌아다닌다. 

 

 

학생은 내 우산을 들고 연구실을 떠났다. 

 

나는 다시 일을 한다.

 

문득, 비오는 날 내 생각을 해 낸 그 학생 얼굴이 떠오른다. 비가 올 때, 우산이 필요할 때, 나를 떠올렸다니 내가 그에게 영 나쁜 사람은 아닌 모양이다.  누군가에게 우산을 줄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나라면, 나 아주 실패한 인생은 아닌것도 같다.  우산을 빌리러 온 내 학생이 우산보다 더 큰 위안을 내게 준것도 같다.

 

돈을 많이 버는 것도 아니고, 명예라는 것도 없어진지 오래고, 시정잡배와 다를 바가 없는 오늘날의 대학교수라는 직업.  나는 감히 학생들이 나를 존경해주길 바라지 않는다.  내가 학생들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는지도 나 스스로 의문스럽다. (나는 엉망이다.  인정한다.)  그냥, 비가 오는 날 우산이 필요할 때, 혹은 손을 다쳐서 위로가 필요할 때, 그럴때, "교수님, 저 우산이 없어요. 교수님, 저 손을 다쳤어요" 뭐 이런 아무것도 아닌 일로 내게 말을 걸어주는 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내 사명을 다 할 수 있을 것 같다. 

 

스무살 친구, 넌 내게서 우산을 얻었고; 나는 너에게서 위안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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