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etch2019. 9. 27. 16:19

연세대학교 류석춘 교수가 사회학 강의중 '위안부'가 자발적 매춘 제도였다는 강의를 했다고 하는데  내가 역사 전공자도 아니고 사회학 전공자도 아니지만,  내 증언은 남길수 있다.

 

 

우리 엄마가 1935년생이다. 광복되던 해에 만 10세 어린이였다는 말씀이다. 육이오는 엄마가 15세에 발발했다. 엄마는 우리가 어릴 때, 당신의 어린 시절 '왜정'때 얘기며, '소학교' 다니던 시절 얘기며 '피란'가던 얘기를 아주 생생하게 들려주곤 하셨다. 엄마가 우리에게 자신이 겪은 일에 대하여 거짓부렁을 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엄마가 '왜정'때 겪은 얘기 중에 '정신대' 얘기도 있다.  지금은 '위안부 (Comfort Women)'으로 표기하지만 엄마는 왜정때의 말인듯 '정신대'라는 말을 쓰셨다.  엄마의 증언은 대략 이런 식이었다:

 

 "왜정때, 느이 이모 (너희 이모)도 일찍 시집을 갔어. 처녀들을 왜놈들이 정신대로 잡아갔거든. 그래서 처녀들 정신대로 끌려갈까봐 빨리 시집을 보내는 집에 많았어.  새댁들도 멀리서 왜놈 순사가 보이면 정신대 끌려갈까봐 얼굴에 검정 재를 칠하고, 여자들을 헛간에 숨기고 그랬어. 정신대 끌려가면 죽는거야.  어린 나도 느이 외할아버지가 '저기 순사온다!' 그러고는 얼굴에 재를 검게 묻혀가지고 숨기고 그랬지."

 

이것이 경기도에서 식민지 시절에 성장한 여성, 우리 엄마의 무한 반복되던 증언이다. 어릴때  '왜정' 얘기와 '육이오'얘기를 하도 실감나게 들어서 마치 내가 경험한 것 같은 공포를 느낄때도 종종 있었다. 

 

 

위안부가 자발적 매춘 행위였다고?  혹시 류모 교수 엄마나 가까운 가족분들이 자발적으로 일황에게 충성하기 위해서 몸을 바치셨던 드라마틱한 가족사가 있었는지는 모르겠는데, 경기도 일원에서 성장한 사람들 얘기는 류모씨의 얘기와는 참 많이 동떨어져있다. 류교수라는 분은 혹시 개인적으로 가족사에 그런 그림이 있었던 것을 일반화 하는 것은 아닌지 궁금해진다.  만약에 그것이 류교수 가족의 문제였다면 자발적으로 일본에 애국하기 위해서 위안부의 길을 걸어간 그분들에 대하여 역시 슬프게 생각한다. 류교수 힘내고 당신 가족중에 그런 분들을 많이 위로하시라.  그러나 일반화는 하지 말기 바란다.  부끄러운줄 아시라.  아주 옘병을 해요, 옘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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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etch2019. 9. 27. 15:54

엄마 집에 있던 김치 냉장고가 작동을 멈췄다. 그 자리에 있은지 십년도 넘은 것이고, 형제 중에 누군가가 쓰던걸 엄마한테 넘긴 것이라고 하니, 수명이 다 할법도 할 것이다. 그 김치 냉장고는 내가 기억하는 한 고대의 시간부터 영원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나는 내 집에서 김치냉장고를 가져 본 적이 없어 그것이 왜 필요한지 그것도 잘 모른다.  김치를 많이 먹지도 않으니 필요성도 느끼지 못한다. 

 

이런 내 시선으로 볼 때, 엄마 집에서 김치 냉장고가 사라진대도 별로 상관이 없어 보였다.  엄마 집 냉장고는 우리집 냉장고보다 두배쯤 클 것이다.  사실 엄마의 김치 냉장고에 김치가 많이 들어있던 것도 아니다. 그냥 '창고'처럼 이것저것 구겨 넣은 것처럼 보였으니까. 그래서, 그냥 그 김치냉장고를 내다버리고 덕분에 넓어진 주방을 향유하시면 되는 일처럼 보였다. 

 

그런데, 어쩐지 엄마는 고장난 것이라도 그냥 끼고 살고 싶은 표정이었다.  노인들은 뭘 버리는 것을 무척 섭섭해하신다.  그래서 살살 달래며 이리저리 물어보니, 그 자리를 비게 놓아두면 안되고, 그러면 추석 명절에 자식들이나 손자 손녀들이 드린 용돈이 꽤 된다며 그것으로 김치냉장고를 하나 사면 되겠다고 하신다.  어딘가 마음이 아려온다.  엄마가 왜 돈이 없지? 엄마가 왜 손자 손녀들이 드린 용돈을 모아서 살림을 사실 생각을 하시는거지? 그렇게 돈이 없었어? 왜? 여러가지 의문이 든다. 엄마가 구차스럽게 살만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형제들 사이에서 중론은, 지금 엄마 냉장고만해도 충분히 크니까 김치냉장고가 딱히 필요하지 않다는 결론에 이르고 있었다.  김치냉장고 내다 버리고 그냥 냉장고로 생활해도 불편할게 없다는 것이다. 내 생각도 동일했다. 

 

그런데, 

 

꼭 사지 않아도, 언라인으로 외국 유명 패션 브랜드의 신상품 카탈로그를 보거나 패션쇼를 보는 일은 눈요기만으로도 즐겁다. 그리고 그걸 구경하다보면 하나 사고 싶다는 허망한 욕망이 질기게 들러붙기도 한다. 모 패션브랜드의 가을 카디건 한장에 백만원도 넘는 것을 눈요기로 구경하다가 문득, 저게 한 오십만원이라면 내가 그냥 눈 질끈 감고 사지 않을까? 왜냐하면, 갖고 싶으니까.  백만원이 넘는 지갑 한개를 침 흘리며 들여다보다 생각한다 - 나 기분 내키면 저것도 지금 당장 살 수 있는데...

 

그러다 문득, 엄마의 김치냉장고 생각이 났다.  노인 살림에 어마무시한 김치냉장고도 필요없고, 엄마가 원하는것은 그냥 박스형 단촐한 것인데. 그거 얼마나 하나? 검색을 해보니 예쁘장한 것이 육십만원 정도면 되는 정도다. 

 

만약에 엄마가 어느 백화점 가방가게 앞을 지나치다가 이쁘장한 육십만원 짜리 가방을 가리키면서, "저것 이쁘구나. 나 저것 갖고 싶다" 이렇게 말씀하시면 나는 두 말 않고 그것을 사 드릴 것이다. 나라면 돈 아까워서 안 사도, 엄마가 사달라면 예쁜 가방 기꺼이 사드린다.  쓸데도 없는 가방을 말이다.  그런데, 엄마가 김치 냉장고를 내다버리고 나면 허전하니 그 자리를 김치냉장고 자그마한 것으로 채우고 싶다는데, 내가 왜 그것을 '필요하지 않다'고 단정지어 버린것인가?  예쁜 옷은 꼭 필요해서 사는가? 그냥 예쁘니까 산다.  내가 신발이 없어서 기십만원 짜리 구두를 사나? 아니 그냥 그 구두가 예뻐서 갖고 싶어서 산다.  명품 가방은 필요해서 사는가? 아니, 그냥 그게 갖고 싶어서 갖는거다.  그러면 김치냉장고는 반드시 필요해야만 사는가?  그것도 엄마가 갖고 싶다고 하면 사드리면 되는거다.  

 

그래서 나는 언라인으로 엄마가 갖고 싶어하시는 자그마한 김치냉장고를 주문하여 엄마 주소를 찍어 보냈다.  그러고나니까 머릿속이 맑아졌다. (사람이 돈을 쓰면 잠시 잠깐 마약 효과가 나는것 같다. 머리가 맑아지고 가벼워진다. 하하하.)  나는 왜 내가 좋아하는 패션 용품은 돈 아까운줄 모르고 사면서, 엄마의 생필품인 김치냉장고를 단지 '냉장고 넓으니 그것이 따로 왜 필요한가?' 이런 꼬리표를 달고 필요없다고 단정한건가?  

 

내가 무엇이 필요하다/불필요하다고 판단할 때, '실용성'의 측면이 아니라 '애장품'의 측면에서 바라보니 그림이 전혀 달라진다. 엄마 옷 오십만원짜리는 망설임없이 사 줄수 있으면서, 김치냉장고는 왜 그렇게 매몰차게 '필요없다'고 말하는가?  그걸 엄마가 좋아하는 옷이나 가방이라고 생각하면 그만인데.

 

그래서, "엄마, 곧 김치냉장고가 갈거야. 빨간색 예쁜 김치냉장고가 갈거야"하고 전화를 드리니 어린아이처럼 기쁘게 반기신다. 저렇게 좋아하시는걸 내가 그냥 지나칠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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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ee Eunmee
Humor2019. 9. 25. 08:59

공 작가는 "그의 요청으로 동양대에 강연도 갔었다"고 진 교수와의 친분을 언급하면서 그에 대해 평가했다. "실은 고생도 많았던 사람이었다. 좋은 머리도 아닌지 그렇게 오래 머물며 박사도 못 땄다"는 것이 공 작가의 평가다. 이어 그는 "사실 그(진 교수)의 논리라는 것이 학자들은 잘 안 쓰는 독설"이라며 "그의 단정적인 말투와 거만한 가르침을 보며 똑똑한 거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고 깎아내렸다.

[출처: 중앙일보] 공지영, 진중권에 독설 "좋지 않은 머리···돈주면 개자당 갈듯"

 

 

심했다. ABD라고해서, All But Dissertation - 과정은 모두 마쳤는제 학위 논문을 아직 쓰지 못한 상태를 가리키는 타이틀이 있다.  박사학위 공부를 모두 마치고, 마지막 관문인 학위 논문을 해결하지 않는 사람들은 이 세상에 많이 있다. 문제의 '진교수'도 아마도 그런 분들중 한분일 것이다.  그러면, 그분들이 '좋은 머리가 아니라서' 박사학위를 마치지 못한걸까?  소설가라는 분이라면 소설적 상상력으로 뭔가 한 사람이 학위를 마치지 않은 것에 대해서 기발한 상상도 할 수 있으련만, '머리가 좋지 않아서'라니. 이건 너무 심심하고 단순하지 않은가? 

 

 

내가 박사학위 공부 할 때, 내 주위에는 온통 '천재'들만 있는 것 같았다. 왜 아니겠는가. 대체로 본국에서 '국비장학생'으로 미국에 와서 공부하던 아주 젊은 친구들이었는데다가, 정말 머리들이 좋아서 학술저널 한번 쓱 보고는 수업중 토론할 준비가 다 되어 있었다. 나는 오직 '시간'을 들여서 사전 찾고, 읽고, 또 읽고, 줄치면서 읽고, 요약해보고, 그래도 정작 수업에 들어가면 생각이 잘 안나서 천재같은 동기생들이 교수와 진지하게 토론 하는 것을 옆에서 침 삼키며 구경만 하고 있었다.  (이 잘난 내가 그랬단 말이다.)

 

 

나는 정말 내 동기생들을 존경했다. 진심으로.  그래서 그들을 졸졸 따라다녔다. 똑똑한 천재들 속에 끼어 보려고.  물론 그들은 기꺼이 나를 '친구'로 인정해 줬는데, 그것은 내가 인심 좋게 가끔 한국식 김밥도 싸가지고 가서 나눠먹고, 순전히 '아줌마' 특기로 그들의 환심을 사거나, 그들이 아직 어려서 '창의력'이 부족한 부분을 나의 '관록'과 '이력'과 '경력'으로 채워서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하거나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평범한 아이큐의 소지자였고 (딱 대한민국 평균 아이큐이다), 그들은 국가대표 천재급 신동들이었다.  내가 석사로 들어갔을때, 그들은 박사학위과정으로 입학을 했다. (유펜 이런 명문대에서 석사 마치고 옮겨오고 그랬다.) 그러면 내가 출발선이 그들보다 한단계 늦지 않은가?

 

 

그런데 학위는 내가 제일 먼저 땄다. 나는 석박사 하는데 4년 걸렸고, 내 동기생들은 박사 하나 하는데 5년 이상 걸렸다. 내가 그들보다 머리가 월등하게 좋아서가 아니었다.  머리는 그들이 나보다 훨씬 좋았다. 영특했다. 나는 항상 그들을 존경했다. 

 

 

내가 머리 한참 좋은 내 동기들보다 진도를 빨리 뺄수 있었던 이유는 간단하다. 간절함이다. 간절함. 간절함. 간절함.  목숨걸고 공부를 해 내는 간절함 같은게 내 삶을 지배해서다. 그냥 그 간절함으로 주변을 움직여 나간것 뿐이다.  오직 학점과 내 연구 과제에 촛점을 맞추고, 거의 모든 시간을 도서관에서 살면서, 그냥 공부와 연구작업만 들이 판 결과다. 

 

 

머리 좋은 내 동기생들이 방학이면 고국에 가서 쉬다 온다거나, 라스베가서, 뭐 비행기타고 미국 '명승지'에 놀러다닐때, 나는 텅빈 도서관에서 공부만 했다. 천재같은 동기들과 '경쟁'을 할 생각도 하지 않았다. 어차피 그들은 나보다 잘났다. 경쟁 대상이 아니다.  그 대신 나는 시간과 경쟁을 하고 있었다. 빨리 학위를 마치고, 나를 기다리는 가족에게 돌아가야 한다는 절실함. 그것만이 나를 지배했다. 

 

 

내가 존경하던 내 친구들은 미국의 이름있는 주립대의 교수로 가서 활동을 잘 하고 있다.  나도, 먼 길을 돌았지만 결국 내가 향하던 곳에 이르렀다.  나도 내 계획대로 잘 지내고 있다. 

 

 

나는 지금도 나보다 한참 어린 내 동기들을 존경한다. 그들이 박사학위를 나보다 길게 한참 한 것은 그들이 머리가 나빠서가 아니었다. 나는 절실했고, 내 논문에 필사적이었고, 그들은 넓게, 깊게 학문의 바다에서 헤엄을 치고 있었던 것이니, 그들의 학문의 깊이가 나보다 훨씬 깊었을 것이다. 

 

 

지향성의 문제다. 어떤 사람은 학위논문까지 가지 않기도 한다. '이만하면 족하다'고 스스로 그 쯤에서 정리 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그 사람 '머리가 안좋아서'라고 말 할수는 없다. 박사공부에 입문했으나 학위를 마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각자 이유가 있다.  정말로 재수가 없어서 이상한 지도교수 아래에서 고생만 죽어라 하다가 물러 났을수도 있고,  혹은 중한 병에 걸려서 퇴장을 하기도 한다. 그냥 어디쯤서 힘이 빠져서 학위 논문 대신에 다른 길을 선택 할 수도 있다. 이 사람들이 모두 '머리가 안좋아서' 그런 길을 가게 된 것은 아니다. 

 

박사학위... 내 경험에 비추어 보면, 미국이건 한국이건 간에 박사학위는 빼어나고 영특한 지능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그냥 좀 평균 수준의 아이큐를 가지고, 꾸준하고 성실하게 공부와 연구를 하고, 마지막 관문인 논문만 써내면 되는 것이다.  박사학위 논문 안쓰고 수료만 하신 분들중에 정말로 머리가 뛰어난 분들 많다.  그래서 나는 가끔 '박사학위'를 가지고도 나는 왜 이것밖에 못하고 사나? 이런 자괴감이 들기도 한다.  학위 논문을 잘 써내는 '성격'의 사람이 있고, 두루 넓게 공부하는 '성격'의 사람도 있고 그런 것이다. 

 

 

진교수가 박사학위가 있는지 없는지 나는 알지 못했지만, 우리집에도 그가 지은 미술 교양서적이 많이 있다. 대체로 잘 쓴 책 들이다. 그거면 족하지 않은가? 그렇게 좋은 책들을 써낸 사람을 향해서 '머리가 안좋아서'라고 말한다면, 도대체 책 한권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리지 못한 사람들은 다 나가서 죽으란 말인가?  머리는 왜 들먹이는가? 비난하고 싶으면 좀 우아하게 하면 좋을텐데.

 

 

그나저나, 진교수 요새 죽을 맛 이겠다. 이분은 소속 정당에서 나가고 싶을 뿐 아니라, 소속 직장에서도 나가고 싶으실것 같다. 아예 지구를 떠나고 싶을 것도 같다. 참 ... 이게 뭐냐 싶으시겠다.  그 한심스러운 상황에 깊이 공감한다.  어지러운 세상이다. 

 

* 진교수, 영어 되시면 나도 내 클래스에 특강 부탁드려보고 싶다.  영어 강의만 가능한 곳이라서, 난관이 있긴 한데...그냥 유창하지 않으셔도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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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etch2019. 9. 16. 13:07

 

 

어느장관의 자녀로 인해 대한민국 수시입학과, 힘있고 돈있는 이 사회의 부모들의 넘치는 후계자 사랑이 도마위에 올라있다. 뭐,  장관 따님의 입학 서류는 5년 기한이 지나 모두 폐기되었다고 하는데, 그것은 검찰이 알아서 조사할 일이고, 사실 그 일에는 그다지 관심도 없다. 늘 그런 식이었으니까.

 

그냥, 좀, 궁금해진다.  최근 5년 사이에 한 해를 정해서, 그 한해에 서울대학교에 수시 입학한 학생들 서류를 싹 다 조사를 하여, 특히 학계, 재계, 언론계, 정계, 관계, 기타 힘쓰는 부모들 슬하의 자녀들 중심으로 이들의 스펙이 서로 어떤 연관성을 갖는지 연구를 하는거다. 빅 데이타 연구자들 몇 명 투입하면, 관계도가 나오지 않겠는가? 

 

문제가 발견되면, 5년 데이타 다시 조사하고, 각 '인기있는 대학'으로 조사를 확대해 나가는거다. 자식가진 죄인으로 넘쳐나는 기묘한 사회.  힘없는 부모를 가진 청소년들도 공평하게 기회를 가질수 있는 사회를 구축하는 일이 참 요원해보인다. 

 

나 역시 자식 가진 죄인이니 뭐라고 입도 뻥긋 하지 못할 처지이긴 한데, 그래도...나는...내가 근무하는 대학에서, ESL 프로그램 책임자로 있으면서도, 가끔 자식 데려다가 학교 일도 막 시켜 먹었으면서도,  내 자식 인턴 따위는 상상조차 하지 않았다.  하러들면 왜 못하겠나.  상장도 만들어 주러들면 왜 못하겠나.  하지만, 그건 참 비루하고, 염치없고,  남 부끄러운 일이라고 여기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그걸 그렇게 부끄러운줄도 모르고 할 수 있다니...내가 바보가 된 기분이다. 그냥 바보로 남기로 하자, 기왕에 이렇게 된거.) 

 

돌돌 말은 달력을 소중하게 옆에 끼고

오랜 방황 끝에 되돌아온 곳

우리의 옛사랑이 피흘린 곳에

낯선 건물들 수상하게 들어섰고

플라타너스 가로수들은 여전히 제자리에 서서

아직도 남아 있는 몇 개의 마른 잎 흔들며

우리의 고개를 떨구게 했다



부끄럽지 않은가

부끄럽지 않은가

바람의 속삭임 귓전으로 흘리며

우리는 짐짓 중년기의 건강을 이야기했고

또 한 발짝 깊숙이 늪으로 발을 옮겼다

 

김광규의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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