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ry/엄마2011. 7. 17. 00:16



2011년 7월 15일 금요일. 리버벤드 파크.  유은렬
Posted by Lee Eunmee
Diary/엄마2011. 7. 16. 01:12




엄마는 아침 해가 뜰때의 색깔과, 한낮의 해와 해가 넘어갈때의 해의 색깔이 모두 각기 다른 이유를 잘 모르신다.  왜 어떤 사람은 해를 빨갛게 칠하고, 어떤 사람은 해를 노랗게 칠하는지, 무엇이 정답인지 내게 물으신다. (난감하도다).  그리고 마침내는 왜가 어떻게 뜨고 지는건지 물으신다.  엄마 눈앞에 지구본이 있어도, 엄마에게 지구는 평평한 세상이다.  그리고 동쪽에서 해가 올라와서 서쪽으로 내려가는거다.

저녁을 먹고나서 한가롭게 앉아있는 내게 이런 질문을 하시길래, 마침 눈앞에 지구본과 플래시가 보이길래. 엄마를 앉혀놓고 엄마 앞에 지구본을 놓고, 내가 커다란 플래시를 들고 서서 지구본을 플래시로 비추며 해가 뜨고 지는 원리를 눈앞에서 보여주었다. "해가 가만히 있는데, 지구가 빙그르 도니까. 해가 비추는 곳은 낮이고, 해가 안보이는 반대편은 밤이고. 그러니까. 지금 한국에 해가 비추고 있으니까, 여기 워싱턴은 그 반대에 있으니까 밤이지. 자 플래시는 가만히 있으니까, 엄마가 지구를 돌려봐."

엄마는 해와 지구의 관계를 눈으로 보면서 확인 하셨다. (제대로 알아 들으신것 같아 보였다.) 
"엄마를 집안의 태양이라고 그러지? 엄마는 중심이야. 해와 같은거야. 항상 빛나고 있어.  태양은 항상 빛나. 꺼지지 않아. 그리고 자식들은 지구처럼 태양을 중심으로 바삐 움직이는거야.  지구는 태양의 새끼야."


나는 지구나 태양이 별이라는 얘기를 해준다. 엄마는 이해가 안간다는 표정이다. 별은 저렇게 작고, 태양은 저렇게 크고, 지구는 이렇게나 크고 넓은데, 지구가 아주 작은 별이라니?  
"엄마 저기 저 밖에 저 나무 보여? 저 나무 진짜 그 앞에 가보면 우리 아파트보다 키가 큰 나무야.  그렇지?  그런데 여기서보면 저 나무는 아주 작아보이고, 나는 아주 커보이지?  나는 가까이에 있으니까 커 보이는거고, 저 나무는 멀리 있어서 아주 작아보이는거야.  그러니까 별이 작아보이는 이유는 아주 아주 아주 멀리서 빛나고 있기 때문이야.  지구의 엄마는 태양이지만, 사실은 태양에게도 엄마별이 있어. 태양도 결국 어떤 별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을거야.  우주는 쉬지 않고 움직이고 있어."

엄마는, "아유, 무서워. 우리가 그런 속에 살고 있는거니?  그러면 우리가 사는 지구를 잘 지켜야 하는거구나. 지구를 어떻게 해야 지키니?"

나는 픽 웃으면서, "엄마 그래서 환경보호론자들이 운동도 하고 그래~ 그래서 '환경보호'를 해야 하는거지." (엄마는 지구와 환경보호의 관계를 이제 이해하는 눈치이다.)

엄마는 해와 달이 어떤 관계인지 묻는다. 해는 낮에 뜨고 달은 밤에 뜨니까 둘다 아주 큰 별인가보다고 생각하신다.  그래서 나는 다시 물체와 거리와 시각의 문제를 설명해준다.  작은것도 가까운것이 커보이고, 큰것도 멀면 작아보이고.  그런식으로 해와 지구와 달의 관계를 설명한다. 엄마는 한가지 원리는 제법 정확히 이해하시는것 같다: 달의 엄마는 지구, 지구의 엄마는 해. 지구는 해의 새끼, 달은 지구의 새끼. 지구에게도 새끼가 있군. 저렇게 큰 달이 지구의 새끼군!


이제 엄마는 "그런데 달은 왜 맨날 사람을 따라다니니?"하고 묻는다. 하하하. 그래서 나는 다시 지구본에 플래시를 비춘다. 플래시를 멀리서 가까이서 비춰본다. 플래시를 멀리서 비추면 지구의 절반이 달빛을 받게 된다. 플래시를 가까이서 비추면 일부분만 빛을 받게 된다. 

"엄마, 엄마가 이 지구위에 대한민국, 그 속에서도 일산에 살고 있어. 이 지구본에서 일산을 찾기가 힘드니까 그냥 서울이라고 치자고. 서울 여깄지. 이 먼지만한 점이 서울이야.  이 먼지만한 서울 속에 먼지보다도 작은 인간이 꼬물꼬물 걸어가고 있어. 엄마, 인간이 몇시간을 걸어도 그 움직이는 것이 보이지도 않을거야. 그렇지?  달에서 보자면 인간이 제자리에 있는것처럼 보일거야. (엄마, 끄덕끄덕)  바로 그거야. 인간이 걷는 걸음으로 아무리 걸어봤자, 달하고 인간의 거리가 별로 변하는게 없어.  그러니까 달이 따라오는것처럼 보이는거야.

만약에 엄마, 이 지구위에 아주 커다란 거인이 있어서, 거인이 달빛 아래서 성큼성큼 걸으면, 세걸음만에 거인은 달빛 밖으로 가버릴걸. 그 거인은 달이 따라온다는 생각을 안 할거야.  달과 거인의 거리가 변하니까.  (엄마, 끄덕끄덕).


엄마는 사람들이 이런것을 어떻게 알아냈느냐고 묻는다. 
"엄마처럼 이런것이 궁금한 사람들이 있었어. 그런 사람들이 질문을 하고 답을 찾고 그러면서 알게 된 것이지. 그러니까, 엄마도 아주 위대한거야. 모르는것에 대해서 질문을 하는게 중요해. "

나는 엄마가 무식해서 한심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엄마 자식이고, 엄마는 나를 낳아 키웠으니까. 엄마가 모르는것은 내가 설명 해 드리면 되는것이니까. 나는 엄마가 아직도 뭔가 질문을 던지는 사람인것이 자랑스럽다.  내가 모르는것은....나도 공부해야 하는거지.  어차피 달에서 보기에 엄마의 지식이나 내 지식이나 차이가 없어보일걸. 하하하. 내 눈에도 달이 나를 따라오는것으로 보이기는 마찬가지이니까. 하하하. 지식은 ...허망한거다. 어차피 지식은 허망한거다... 하지만 지식은 달콤한 사탕처럼 달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사탕이 필요하다~




Posted by Lee Eunmee
Diary/엄마2011. 7. 15. 01:36



메트로폴리탄에 로댕의 '칼레의 시민'이 있다.  높다란 유리벽 너머로 뉴욕 센트럴파크가 펼쳐져 있다. 이 조각품 왼쪽에 카페가 있다.

작품 칼레의 시민의 배경이 되는 역사가 있다. 백년전쟁 당시에 영국군이 프랑스 칼레지방을 정복한다. 칼레 시민들은 완강하게 저항하다 패배하고 마는데, 영국의 에드워드 3세는  저항이 심했던 칼레 지방 사람들이 괘씸했을것이다. 그는 칼레의 모든 사람들을 죽이고 싶어했다.  하지만 주변의 만류도 있었고, 결국  칼레를 대표하는 여섯명을 처치하겠다고 했다.

누가 칼레를 위해 죽을 것인가? 

이때 칼레의 어느 귀족이 '내가 죽겠다'고 자원하고 나섰다.  그러자 칼레의 고위 귀족들이 차례차례 나섰다. 여섯명의 자원자가 나타났다.  결국, 에드워드 3세는 이 여섯사람을 방면하고, 칼레의 시민 어느누구도 희생당하지 않았다.

'귀족정신'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사례가 될 만하다. (아무나 이런 행동을 할 수 있는것은 아니다.)

이야기도, 로댕의 작품도 모두 감동적이다.

하지만, 이보다 더 나를 감동시킨 것이 있다.

나는 이 작품앞에서 엄마에게 별다른 설명을 안하고 그냥 지나쳤다. 엄마도 별 말 안하고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내가 휠체어를 미는대로 그냥 가만히 지나가셨다.

그런데, 나중에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앞 계단에서 스케치를 할때, 엄마는 이 칼레의 시민을 스케치를 하셨다. 여섯명의 사람이 모여 서 있는 그림.  "엄마,, 근데 이건 뭐야?" 내가 이 사람들의 정체를 모르고 엄마에게 묻자, 엄마가 말했다. "그 조각있쟎아. 사람들이 서 있는 조각. 그 사람들이 여섯명이 서 있었어. 그치?"

엄마는 제목도 모르는채로 그 여섯명의 사나이를 기억하고 있었다. (난 사실 칼레의 시민이 여섯인지 다섯인지 기억을 못하고 있었다.)  엄마는 이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는채로, 이것을 선명하게 떠올리고 있었다.  (이 대목에서, 나는 엄마가 뭘 모른다거나, 무식하다거나, 딴소리만 해 댄닫거나, 내 말귀를 못알아듣는다고 단정할수 없다는 것을 자각하게 된다.)  엄마는 분명, 내가 못보는 - 모르고 지나치는 것들을 보고 있다.

나는 엄마에게 작품 칼레의 시민의 배경 이야기를 해 드린다.  엄마는 내가 해 드리는 얘기를 기억할까? 알수 없는 노릇이다. 엄마는 자신의 스케치에 칼레의 시민이라고 적어 놓았다.


Posted by Lee Eunmee
WednesdayColumn2011. 7. 14. 09:54

[살며 생각하며] 세상을 두 눈으로 볼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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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가 들리지 않는 사람만이 소리를 듣는 것의 의미를 알 수 있고, 오직 앞을 볼 수 없는 사람만이 무엇을 본다는 것이 얼마나 축복인지 절실히 알 수 있을 것이다.” 타고난 시청각 장애를 딛고 일어나 영감 가득한 작가로 변신한 헬렌 켈러(1880-1968)는 그의 수필 ‘세상을 사흘간 두 눈으로 볼 수 있다면 (Three Days to See)’에서 이렇게 역설한다.

 헬렌 켈러가 사흘의 시간이 허락 된다면 보고 싶었던 것들은 무엇이었을까?

 첫째 날, 그는 자신을 교육시켜준 설리반 선생님의 얼굴을 보고 싶다고 꼽는다. 그리고 가까운 친구들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 보고 싶다고. 그 다음으로 그가 꼽는 것은 사랑하는 개, 그리고 그의 일상을 지키는 물건들. 매일 그의 손이 닿지만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소중한 물건들. 오후가 되면 숲으로 가서 자연의 아름다움을 보고, 밤이 되면 인간이 만든 조명의 아름다움을 쳐다보고 싶다고.

 둘째 날, 새벽에 동이 트는 것을 지켜본 후에, 그는 인류가 수 천 년을 살아오면서 이룩한 자취들을 보기 위하여 박물관에 가고 싶다고 한다. 그가 가장 보고 싶어한 곳은 뉴욕의 자연사 박물관과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자연사 박물관에서 자연과 인간의 역사를 볼 수 있다면,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은 인간이 이룩한 예술의 성전이라고 그는 말한다. 저녁이 되면 그는 영화관이나 공연장을 찾아가 무대 위에서 진행되는 연기와 빛과 움직임을 보고 싶다고 한다.

 셋째 날, 새벽 동이 트는 것을 본 후에 그는 사람들이 분주하게 하루를 시작하는 도시의 풍경을 보고 싶기 때문에 뉴욕으로 가고 싶다고 한다. 수백만의 사람들이 바쁘게 움직이는 광경은 굉장할 것 같다고 그는 상상한다. 그리고는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으로 그는 바삐 달려가 발 아래 펼쳐지는 도시를 내려다보고 싶다고.

그리고 나서 도시의 골목에 서서 사람들을 쳐다보면서 기쁨과, 슬픔을 느끼게 될 것이라고 그는 상상한다. 마지막 날 저녁이 다가오면, 그는 극장으로 달려가 유쾌하고 웃기는 연극을 보겠노라고 한다. 그는 아마도 깜깜한 어둠으로 돌아가기 전의 슬픔을 달래고 싶었던 모양이다. 헬렌 켈러가 마지막 날 아주 웃기는 연극을 보겠다는 글을 읽으면서, 그의 슬픔이 전이가 되어 나는 그만 눈물을 흘리고 만다.

 만약에 나에게 남겨진 시간이 사흘뿐 이라면, 나는 어디서 무엇을 하면서 그 마지막 사흘을 보낼까? 가끔 이런 상상을 하면, 매일 똑같이 흐르는 일상이 갑자기 보석처럼 빛나 보이기도 한다. 언젠가 ESL 학생들을 대상으로 수업을 하면서 “오늘이 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는데, 학생들 대부분 집으로 가서 가족과 함께 마지막 시간을 맞이하고 싶다는 답을 했다. 어느 여학생이 가족 얘기를 하며 눈물을 글썽이자, 그 눈물이 전이가 되면서 여러 명의 학생들이 눈물을 질금거리는 상황이 벌어지고 말았다.

 헬렌 켈러는 “내일 갑자기 시력을 잃게 될 것처럼 그렇게 오늘 세상을 바라보라”고 말한다. 그것이 평생 어둠 속에서 상상으로만 세상을 바라봤던 한 사람이 우리에게 건네는 조언이다. 한국에서 엄마가 오셨다. 나는 시간을 쪼개어 엄마를 모시고 워싱턴 일대의 미술관들을 돌아다닌다. 엄마는 거동이 불편하셔서, 미술관에 가면 무료로 대여해주는 휠체어를 빌려 엄마를 태우고 다니며 엄마에게 내가 사랑하는 작품들을 보여드린다. 나는 엄마가 아직 기운이 있을 때, 아름다운 이 세상을 많이 보여드리고 싶다.

 내일은 엄마를 모시고 새벽에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으로 떠난다. “엄마, 엄마가 가는 그 미술관은, 옛날에 평생 아무것도 볼 수 없었던 사람이, 눈을 단 한번이라도 뜰 수 있다면 가장 먼저 가서 보고 싶어하던 곳이에요. 그러니까 엄마도 꼭 보셔야 해요. 그런데, 엄마, 나는 이 세상 무엇보다도 엄마 얼굴이 가장 보고 싶을 거예요.”

*** 월요일에 급히 원고를 써서 보냈는데, 신문이 나온 날은 뉴욕에 다녀온 다음날 (수)이 되고 말았다. 그렇다고 원고 쓰면서 벌써 다녀왔다고 쓸수도 없었고, 고민을 하다가, 그냥 '내일은'으로 썼다...
Posted by Lee Eunmee
Diary/엄마2011. 7. 14. 09:35



Posted by Lee Eunm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