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Column2011. 10. 5. 21:40

The Botany of Desire: A Plant's-Eye View of the World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1273039

“룸메이트 부모님이 사과 농장에서 따온 사과를 한 바구니 갖다 주셔서, 요즘 사과를 실컷 먹고 있어요.” 기숙사에 들어간 작은 아들이 사과 얘기를 전한다. 벌써 사과 따는 계절이 왔구나 깨닫게 된다.
 
본래 카자흐스탄이 원산지인 사과나무가 미국에서 왕성하게 번식하게 된 배경에는 전설적인 미국 사과의 아버지, 조니 애플씨드 (Johnny Appleseed, 1774-1845)의 노력이 있었다. 본명이 존 채프먼 (John Chapman) 인 그는 매사추세츠에서 시작하여, 펜실베니아, 오하이오, 인디애나, 일리노이에서 사과묘목을 대량으로 키워 신대륙에 이민 온 사람들에게 판매하였다. 그에게서 묘목을 사 가지고 간 사람들에 의해 미국은 ‘사과의 대륙’으로 변모하게 된 셈이다.

 마이클 폴렌 (Michael Pollan)은 그의 저서 ‘욕망의 식물학 (The Botany of Desire)’에서 채프먼이 북미대륙에 사과를 번식시킨 이야기를 상세히 전하면서 인간과 식물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펼친다. 채프먼이 사과를 번식시킨 것인가, 아니면 사과가 번식을 위해서 존 채프먼에게 심부름을 시킨 것일까? 인간은 달콤한 사과를 욕망하고, 사과는 달콤함으로 인간을 유혹하여 번식에 성공을 한 것은 아닌가?
 
이러한 관점의 변화는 리처드 도킨스의 명저 ‘이기적 유전자 (The Selfish Gene)’에서도 제시 된바 있다. 인간에게 자유 의지란 것이 있는가? 아니면 인간은 유전자의 번식을 위한 생존 기계인가? 인간의 존엄성을 확고하게 믿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러한 관점의 전도에 불편함을 느낄 수 도 있겠으나, 인간중심에서 약간 벗어나서 다른 시각으로 주변 현상을 관찰 하다 보면 우리의 사고가 유연 해 질 수도 있다.
 
내가 달콤하고 아삭아삭한 사과를 따러 갈 때, 나는 나의 욕망을 따르는 것이지만, 사과의 입장에서 보면, 자신을 번식 시켜주기 위한 대리자가 그 앞에 얌전하게 나타나는 격이다. 사과나무에서 사과를 따서 그 달콤한 과육을 한입 베어 무는 순간, 나는 사과의 하수인이 된다. 그런들 어떠랴.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 해도 나는 오늘 한 그루 사과나무를 심겠노라”고 공언한 철학자 스피노자 역시 사과의 하수인이 아니었던가.
 
워싱턴 생활을 시작한 이래로 나는 해마다 인근 사과 밭에 사과를 따러 간다. 볕 좋은 가을 하늘 아래서, 향기로운 사과를 실컷 따 먹고, 봉지에 담은 것만 값을 치르고 돌아오는 한나절의 소풍은 가을에 놓칠 수 없는 행사이다.
 
이태 전에는 주위의 친구가 소개한 어느 시골 사과 밭에 갔었다. 산골의 노부부가 운영하는데 규모가 작고, 농약도 치지 않는 사과 밭이라고 했다. 비포장 도로를 한참 헤매다가 찾게 된 정말 산골 구석의 과수원이었다.
 
그런데 도착해보니 마당에 사과 따는 도구며 바구니들이 널려있는 채로 집 주인은 나가고 없었다. 일요일 오전이니 모두들 예배당에 간 것일까? 우리 가족은 주인을 기다리다가, 그냥 사과 밭으로 올라가 사과를 실컷 따먹고, 들통에도 따 담았다. 그렇게 한참을 놀면서 기다려도 사과 밭 주인은 돌아오지 않았다. 사과 값을 내야 할텐데, 주인이 없으니 어쩌면 좋은가?

우리들은 가을꽃이 우거진 그 집 마당에서 주인이 오기를 기다리다 지쳐서 현관 앞에 사과 값을 놓고 돌멩이로 눌러 놓고 돌아왔다. 집에 도착하여 그 과수원에 전화를 해 보았다. 버지니아 시골 사투리의 노인이 전화를 받았다. 사과를 따고 사과 값을 놓고 왔는데 받으셨느냐고 물었더니, 그제서야 내가 일러주는 곳에 가서 돈을 발견하는 노인. 일러줘서 고맙다며 전화 너머에서 노인이 인사를 했다.
 
시월이 가기 전에 사과 밭에 가 봐야지. 그 산골 사과 밭의 사과도 잘 익어가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아쉽게도 이태 전에 내가 갔던 그 버지니아 시골의 사과 밭 주소를 잃어버렸다. 내게 사과 밭을 소개해준 친구도 이제 이곳에 없으니, 나는 그 산골 구석 노부부의 사과 밭을 찾지 못하리라. 그 사과 밭이 정말 있기나 했던 것일까?


사진 파일을 찾아 보니 2009년 10월 11일에 사과 밭에 갔었다.


2011,10,5

Posted by Lee Eunmee
Diary/Life2011. 10. 3. 20:21



'망각'도 능력이라고 한다. 망각하는 능력이 없으면, 우리의 기억도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  인간은 보고 듣고 생각한 것을 모두 기억하지 않는다. 선택적으로 기억을 하는 것이다. 내가 사람 많은 시장에서 스치고 지난 모든 사람을 기억한다면 내 머릿속은 너무나 복잡할 것이다.  나는 대부분을 잊고 지나가는 것이다. 오직 특별한 것들만 내 기억 장치에 남게 된다. 이것도 생존의 기술이며 능력인 것이다.

쥐 실험을 보았다. 쥐를 커다란 수조에 빠뜨린다. 쥐는 물에 빠져 죽지 않기 위하여 필사적으로 헤엄을 친다. 수조 어디쯤에 깡통 모양의 물건을 놓아둔다. 이것은 물 속에 감춰져 있지만, 일단 이 깡통에 다다르면 물에 빠질 염려는 없다. 물속에 감춰진 섬인 셈이다.

쥐는 필사적으로 헤엄치다가 우연히 그 깡통섬을 발견하고, 그 섬위에서 잠시 안도하게 된다.  이런 식으로 몇차례 쥐를 수조에 빠뜨리고, 그 쥐는 몇차례 동일한 위치에 있는 깡통섬을 발견하고, '학습'하게 된다. '좋았어, 물에 빠지면 나는 그 깡통섬으로 헤엄쳐 가겠어.'

그러다가, 깡통섬의 위치를 옮긴다.  대부분의 쥐들은 본래 깡통이 있던 자리 주변을 찾아 헤메다가 곧 포기하고 다른 곳으로 이동하여, 새로운 위치에 놓여진 깡통을 찾게 된다. 상황 변화를 파악하고, 새로운 위치로 이동 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쥐들이 그렇게 행동한다.  이는 새로운 학습이면서, 동시에, 전에 학습한 것을 망각하는 행동이다.  (우리는 전에 살던 집의 주소나 전에 사용하던 전화번호를 잘 기억하지 못한다. 현재의 주소나 번호를 더욱 선명하게 기억한다. 전의 주소나 번호를 기억해내기 위해서는 머리를 갸우뚱하거나, 혹은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그런데, 뇌의 어느 부분에 손상을 입은 쥐의 경우, 그 쥐는 본래의 깡통섬 주위를 끊임 없이 맴돈다. 번번이 깡통섬이 그곳에 없음을 체험하면서도 번번이 물에 빠졌을때 그 쪽으로 향한다. 이 쥐는 깡통섬의 위치는 기억하지만, 그것이 더이상 그자리에 없다는 것은 기억하지 않는다. 혹은 인정하지 않는다. 이제 그 기억을 지워야 하지만, 지우지 않는다. 혹은 지우지 못한다. 자꾸만 그쪽으로 향한다.

쥐만 그런게 아니지.  사람들이 쥐 실험을 하는 이유는, 쥐의 행동에서 인간의 행동을 추측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http://www.opposingviews.com/i/health/alternative-medicine/israeli-study-marijuana-blocks-ptsd-symptoms-rats

According to a new study conducted at the Haifa University psychology department and published in the Neuropsychopharmacology Journal, rats that were treated with marijuana within 24 hours of a traumatic experience successfully avoided any symptoms of PTSD (post- traumatic syndrome).

Dr. Irit Akirav, who led the study, said: "There is a critical window of time after trauma, during which synthetic marijuana can help prevent symptoms similar to PTSD in rats."

In the experiment, rats were exposed to extreme stress and then divided into four groups: the first given no marijuana, the second given a marijuana injection two hours after being exposed, the third after 24 hours and the fourth after 48 hours.

The researchers examined the rats a week later and found that the group that had not received marijuana, as well as the one that received the injection after 48 hours, displayed PTSD symptoms and a high level of anxiety.

Although the rats in the other two groups also displayed high levels of anxiety, the PTSD symptoms had totally disappeared.

"This shows that the marijuana administered in the proper window of time does not erase the experience, but can help prevent the development of PTSD symptoms in rats. We also found that the effects of the cannabinoids were mediated by receptors in the amygdala area of the brain, known to be responsible for mediation of stress, fear and trauma," Akirav said.

While a decisive parallel between emotional states in humans and animals cannot always be drawn, Akirav was confident psychiatrists will take her research forward to implement it on huma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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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ee Eunmee
WednesdayColumn2011. 9. 28. 20:05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1268922

 독서의 계절로 일컬어지는 가을이 강물처럼 우리 곁을 지나고 있다. 가을이 아주 가기 전에 좋은 책을 많이 읽고 싶다. 그런데 올 가을에는 나 혼자 방구석에서 읽는 대신에 어디 볕 좋은 공원에 나가 바람을 쐬며 누군가를 위해 조롱조롱 책을 읽고 싶어진다.

 워싱턴DC의 Landmark E Street Cinema 영화관에서 프랑스 영화 ‘마거릿과의 오후의 데이트 (My Afternoons with Margueritte)’가 상영 중이다.

 프랑스 어느 시골 마을에 바보 사나이가 산다. 글도 제대로 읽을 줄 모르고 순박하고 어수룩하여 마을 사람들은 그를 바보 취급한다. 이 바보 사나이가 어느 날 공원의 벤치에서 책을 읽는 95세의 할머니, 마거릿과 조우하게 된다. 글을 잘 읽는 작고 상냥한 할머니와 글 읽을 줄 모르는 순박한 중년 사나이. 할머니는 소리 내어 글을 읽어주고, 사나이는 할머니가 읽어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할머니는 자신이 책 읽어주는 것을 들어주는 사나이가 고맙고, 사나이는 책 읽어주는 할머니가 고맙다.

 그런데 어느 날 할머니가 시력이 나빠져서 더 이상 책을 읽어 줄 수 없을 거라고 말한다. 사나이는 낙심한다. 사나이는 할머니를 기쁘게 해드리기 위하여 돋보기를 꺼내 들고 책 읽는 연습을 한다. 시력을 잃어가는 할머니가 너무나 딱해서. 그런 할머니를 기쁘게 해주고 싶어서. 그래서 동네의 바보였던 사나이는 책 읽는 남자가 된다.

 이 영화를 보니 3년 전에 보았던 ‘The Reader (책 읽어주는 남자)’라는 영화가 떠오른다. 2차대전 당시 나치의 형무소를 지키던 여자는 글을 읽지 못했다. 수감된 유태인들이 여자에게 책을 읽어주었다. 전쟁이 끝난 후 전차 안내원으로 살아가던 여자는 한 소년을 만나게 된다. 여자는 소년에게 책을 읽어달라고 한다. 아무도 여자가 문맹이라는 사실을 모른다.

후에 여자는 나치에 협력한 죄로 감옥살이를 하지만 여전히 자신이 문맹이라는 것을 발설하지 않는다. 어른이 된 소년은 형무소에 수감되어 있는 여자에게 책을 읽어 녹음해 보내준다. 남자가 보내주는 테이프를 열심히 듣던 여자는 어느 날 책을 꺼내 들고 책에서 흘러나오는 소리와 책에 적힌 글자를 대조해 가면서 혼자서 책 읽기를 깨치고, 마침내는 아주 서툰 글씨로 남자에게 편지를 쓰게 된다.

 신경숙씨의 소설 ‘엄마를 부탁해’의 주인공인 엄마 역시 문맹이다. 엄마는 아들에게서 편지가 오면 학교에 다니는 딸에게 편지를 읽게 했고, 그 딸에게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받아 적게 했다. 그 편지를 받아 적던 딸이 소설가가 됐다. 엄마는 딸이 쓴 소설을 읽고 싶었다. 엄마는 자신이 자원봉사로 일하는 고아원의 사회 복지사에게 눈이 침침해져서 읽기가 어렵다며 책을 소리 내어 읽어 달라고 부탁한다. 엄마는 그렇게 문맹인 채로 가족들을 돌보다 사라졌다.

 내 고향 시골 마을에 살던 윗집 아주머니 생각이 난다. 어쩌다 우체부가 편지를 놓고 가면 아주머니는 편지를 들고 우리 집으로 서둘러 오셨다. “눈이 침침해서 그려, 이 편지 좀 읽어 주소.” 그러면 우리 식구 중 아무나 편지를 큰소리로 읽어 드렸다. 때로는 할아버지가, 때로는 고모가, 때로는 나 같은 어린 꼬마가 그 편지를 읽었다. 우리는 이웃 아주머니가 가져오는 편지를 큰 소리로 읽어드리며 기쁜 소식에 함께 기뻐했고, 슬픈 소식에 함께 슬퍼했다.

 내가 아이 엄마가 되었을 때, 나는 내 아이들을 위하여 소리내어 책을 읽어주었고, 몇 해 후에는 읽기를 배운 아이들이 낭랑한 목소리로 엄마인 나를 위하여 책을 읽어주었다. 돌이켜보니 내 아이들이 종알종알 소리내어 내게 동화책을 읽어주던 것이 가장 아름답고 달콤한 책 읽기였던 것 같다.

 누군가를 위하여 소리 내어 책을 읽는 행위에는 함께 나눈다는 공감의 정서가 흐른다. 책을 읽기에 좋은 가을이 우리 곁을 지나가고 있다. 누군가를 위해 조롱조롱 책을 읽어 주고 싶다. 하늘이 높다.

2011,9,28
Posted by Lee Eunmee
Books2011. 9. 25. 11:58

Willpower: Rediscovering the Greatest Human Strength
Baumeister & Tierney


2011년 9월에 발표된 신간. 며칠전 NPR에서 이 책 소개를 하길래 기억을 해 두었다. 어제 '프로젝트' 한가지를  끝내고 나서, 홀가분한 기분으로 킨들북을 주문하여 읽기 시작.  읽다보니 플로리다, 탤라하시 얘기가 나오길래 검색을 해보니 바우마이스터가 현재 플로리다 주립대 심리학과 교수이다.  플로리다 주립대 심리학 프로그램이 제법 번듯하고 잘 나가고 있었는데, 아마도 대학에서 사회심리학계의 대가 한분을 초빙했던 모양이다.  '자기조절력 (self-regulation, willpower)' 과 관련된 사회심리학계의 고전이 되는 각종 실험 이야기가 재미있게 이어진다. 

함께 작업한 전문 작가 (Tierney)의 글솜씨가 좋아서, 쉽게 잘 읽힌다.  휙휙 지나가는 실험용어나 학문적인 용어가 쉬운 글속에 잘 스며있다.

자기 조절력에 대하여 평소에 사람들이 상식적으로 파악하고 있었던 것들을 학문적으로 설명해주는데, 내가 잘 못 파악하고 있던 것도 새로 알게 되고, 흥미진진하다. (이기회에 자기 조절력을 어떻게 키울수 있을지도 알아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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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ee Eunmee
WednesdayColumn2011. 9. 21. 21:00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1264444

“별들은 창공에서 빛나고
대지는 달콤한 향기로 넘쳤네.
과수원의 문은 삐걱거렸고
모랫길을 밞는 발자국 소리
꽃같이 향기로운 그녀가 들어와
내 품에 안겼었지.

내 생의 마지막 시간이 흐르고, 이제 나는 죽네. 희망도 없이
삶이 이토록 고귀한 것인 줄 여태 몰랐네.”

 
 플래시도 도밍고가 감독을 맡고 있는 워싱턴 국립 오페라단이 지난 10일부터 오는 24일까지 케네디 센터 오페라 하우스에서 푸치니 (Giacomo Puccini)의 오페라 토스카 (Tosca)를 공연하고 있다. 위에 적힌 노래는 오페라 토스카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아리아 ‘별은 빛나건만 (E lucevan le stele)’의 일부다.

 ‘토스카’는 본래 5막짜리 드라마였는데, 푸치니가 이를 3막의 오페라로 새롭게 탄생시켜 불후의 무대 예술로 거듭나게 된 셈이다. 1막은 성 안드레아 성당 안으로 잠입하는 탈옥수 안젤로티와 이를 발견하는 주인공 카라바도시. 이들은 친구 사이로 카라바도시가 친구를 숨겨주기로 한다. 카라바도시가 자신의 그림 앞에서 부르는 노래 ‘오묘한 조화 (Recondita armonia)’가 유명하다.

 2막은, 경찰서장 스카르피아의 방. 스카르피아는 카라바도시를 체포하고, 그의 목숨을 살려주는 조건으로 애인 ‘토스카’와의 하룻밤을 요구한다. 이때 토스카가 부르는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 (Vissi d'arte)’가 유명하다. 오직 사랑과 예술만을 위해서 살았으며 주님께 헌신하고 착하게 살아왔는데 자신 앞에 왜 이런 불행이 닥친 것인지 알 수 없다며 한탄하는 노래다. 토스카는 애인 카라바도시의 목숨을 살려서 도망갈 수 있도록 조치를 한 후에, 스카르피아를 살해한다.

 3막은, 성의 감옥. 카라바도시가 처형의 시간이 다가오자 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토스카와의 아름다웠던 시간을 회상하고, 죽음 앞에서 슬퍼하는 노래를 부른다. 그것이 바로 그 유명한 ‘별은 빛나건만’이다. 이 때 감옥에 찾아온 토스카는 처형할 때 실탄을 쓰지 않을 것으로 약조가 되어 있으니 죽는 시늉만 하면 된다고 알려준다. 그 후에 안전하게 외국으로 떠나면 되는 것이다. 두 사람은 기쁨에 넘쳐서 사랑의 노래를 부른다. 하지만, 약속은 이뤄지지 않았다. 카라바도시는 실탄에 맞아 운명하고, 절망한 토스카는 성에서 투신하여 죽고 만다.
 
사실 ‘오묘한 조화’,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 ‘별은 빛나건만’과 같은 노래들은 이 오페라를 본 적이 없던 나로서도 구구단 외우듯 그냥 “토스카에 나오는 노래지…” 하는 정도로 친숙한 것들이다. 유명한 성악가들이라면 무대에서 앞다투어 불렀고, 집에 쌓여있는 음반에도 많이 실려 있고 제목만 들어도 기본 멜로디는 흥얼거릴 수 있는 그런 것들이다. 그런데 평소에 듣던 ‘노래’들을 오페라 무대에서 전개되는 이야기 속에서 듣게 되니 가슴을 울리는 감동같은 것이 있었다. 평소 평면적이었던 노래가 이제야 입체적으로 다가왔던 것이었으리라.

 이것은 마치 미술 책에 편집되어 실려있는 명작 그림이나 조각을 매일 들여다보다가, 어느 날 미술관에 가서 실제 작품을 발견하고 그 질감을 눈으로 확인하고, 그 입체감을 돌아보는 것과 흡사하다. 에펠 탑 사진을 보다가, 에펠 탑 앞에 가서 서보고, 에펠 탑 꼭대기까지 올라가 세상을 내려다보는 기분. 현장에 가서 봤을 때만 다가오는 생생함 그리고 감동.

 이제 라디오에서 ‘오묘한 조화’가 흘러나올 때, 나는 케네디센터 오페라 하우스의 무대와 그날 밤 총총한 별이 포토맥 강에 비쳐 흘렀다는 것과, 가을 저녁이었다는 것까지 떠올리게 될 것이다. 오페라가 있는 가을 밤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슬픈 사랑의 노래는 얼마나 가슴에 사무치는가. 오페라 무대가 있어 우리의 삶은 얼마나 풍요로워지는가! 공연은 24일까지 계속된다.




Posted by Lee Eunm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