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ry/Life2011. 1. 9. 04:06




지팔이 녀석은 떠나기 전 날 밤까지 친구 만나야 한다고 돌아다니고, 그리고는 밤새워서 부엌과 거실을 난장판을 만들어 놓았다.  (도대체 훤한 불빛과 달그락대는 소리 때문에 내가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공항에 네시반에는 도착을 해야 해서 나도 자는둥마는둥하다가 세시반에 일어나서 샤워하고 나갈 채비를 했는데,  이놈은 밤새 무슨 멕시칸 음식을 만들어 놓았다.  (찬홍이 먹으라고.)

새벽에 떠나기 전에 왕눈이 끌고 나가서 산책시키고, 집 떠나기 전에 한장.

나: 야, 지팔아 너 한국 가면 이년 반쯤 후에나 미국에 돌아 올텐데, 그때 왕눈 할아범이 살아 있을까?
지팔: 오늘 보는게 마지막이 아닐까요?
나: 염려 말아라, 왕눈이는 완전 '건강남'이니까 잘 살아있을거다. 그 전에 내가 한국에 들어갔을지도 모르지.
지팔: (왕눈이에게) 왕눈아, 왕눈아, 이 놈아, 너는 내가 간다는데 잘 가란 말도 안하냐?

왕눈이와 지팔이는 우리가 함께 살아온 6년이 넘는 세월동안 '앙숙'으로 지냈다.  왕선생이 일방적으로 지팔이를 무시했다. 으르렁대거나 물으려고도 했다. 언젠가 지팔이한테 으르렁대다가 뺨에 한번 이빨자국을 낸 적이 있다. 지홍이 뺨이 긁힌듯 핏자국이 약간 생겼다.  왕눈이는 그날 나한테 죽도록 맞아 터졌다.  그 후에는 함부로 이를 드러내지는 않는데, 그래도 지팔이와는 늘 으르렁댄다.  아웅다웅하면서 정이 들어버려서 줄창 그런 관계를 유지하는 것 같았다.

오죽하면, 지팔이의 소원이, "나도 나중에 돈벌면 강아지 한마리 사가지고, 내가 오냐 오냐 키울거다. 왕눈이 너떠위는 쳐다보지도 않겠다" 이런거다.  다른 개를 더 사랑하는 식으로 왕눈이에게 복수하겠다는 것이다. 그 발상이 참 애처로워서 내가 웃고 만다.  그렇게 지팔이는 왕눈이를 위한다. 일방적 짝사랑이라도 왕눈이를 잊을수는 없다는거다.

내가 잠 안와서 뒤척거리며 부엌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를 듣다보니 지팔이와 왕눈이가 두런거리는 소리도 난다. 이런 식이다.

지팔이: 왕눈아 왕눈아, 너 내가 가면 어떻게 살지?
왕눈이:  갔다가 빨리 와 이놈아
지팔이: 너 내가 어디가는줄 알아?
왕눈이: 너 이녀석아 기숙사에 가는거쟎아. 까불지 말고 공부나 열심히 해.
지팔이: 왕눈아, 나 한국가는거야.
왕눈이: 한국은 또 뭐냐? 맛있는거냐?

지팔이와 왕눈이가 대화를 한다고?  그렇다. 우리 식구들은 이런 식으로 왕눈이와 대화를 한다. 왕눈이를 데리고 앉아서 혼자 일인 이역으로 종알대는 것이다. 지팔이와 말상대를 할때 왕눈이는 늘 이놈아 저놈아 이런식으로 지팔이를 부른다. 건방을 있는대로 떤다.  아마 우리 식구들은 이런식으로 약간 정신나간 일인이역 쇼를 하면서 이 미칠것같은 세상을 견뎠을 것이다. 왕눈이는 말하자면, 우리들의 카운슬러였던 셈이다.

식구들이 두명이 한국으로 가버리고, 왕눈이는 시무룩하게 누워있다. 어제 나는 온종일 침대에서 자거나 깨거나 또다시 잠드느라 꼼짝도 안했는데, 그렇게 24시간을 보내고 나와보니 왕눈이가 식당 구석에 상태가 안좋은 똥을 싸 놓았다. 지금은 멀쩡하다. 왕눈이가 말 못하는 짐승이지만, 우리 말을 대개는 다 알아듣고 있을 것이다. 왕눈이는 그리워도 그립다는 말을 못하니 참 답답하겠다.





지팔이놈이 어질러 놓고 간 부엌이며 거실을 두시간 걸려서 말끔히 치웠다. 각자 열심히 살아야 하는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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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ee Eunm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