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ry/Walking2010. 9. 1. 04:14

2010년 8월은, 내 생애에서 '기록적인' 기간이었다고 할 만하다. 매일 거르지 않고 '운동'을 했다는 점에서. :)

 

내 일생을 따라다니는 '낙인'같은 트라우마가 몇가지 있다면, 그 중에 한가지는 우리 아버지가 내 가슴에 찍어놓은 낙인이다: "의지박약이고 뭣 한가지 끈기있게 하는 것이 없는 아이."

 

물론, 우리 아버지가 내내 나를 쓸모없는 자식으로 경멸하며 지냈다는 것은 아니다. 원래 우리 아버지는 자식이 잘하는 것에 대한 칭찬은 인색했고, 오로지 문제점만 가지고 지적하고 꾸중하고 그런 스타일이었다.  야단을 안치면 그건 칭찬이다.  아버지는 어떤 면에서 나의 저력을 놀라워했을지도 모르고, 만만치 않은 자식임을 인정했을지도 모른다.  말로 표현을 안 했을뿐.  아버지와 나 사이에는 서로 건널수 없는 오해의 골이 깊었을수도 있다.  :) 뭐, 내가 돌아봐도 내가 시작했다가 집어치운 일이 한두가지가 아니고, 그런면에서 나는 의지박약처럼 보였다. 내가 그리 오래 산 것은 아니지만, 내가 이 세상을 전전하면서 거친 직장도 참 여러가지이고 다양하고, 많다. 대학졸업한 해에 내가 입사했다가 퇴사한 기록만도 3월 입사 - 오월 다른 회사에 입사 - 7월 다른 회사에 입사 - 9월 다른 회사에 입사. 돌아보니 3-5-7-9. 2개월마다 직장을 갈아치웠다. 모두 사업 분야가 다른 회사들이었다. 이들의 공통점 한가지는 - 모두 영어 잘하는 직원이 필요했다는 정도가 될 것이다. 대체로 나의 고용주들은 '일 잘하게 생겨서 잘 가르쳐놨더니 나가버린다'고 섭섭해 했다. 나로서는 한 두달 재미있게 일을 배우고나면, 나머지가 지루하게 여겨졌다. 그날이 그날같은 일상이 지루해지고, 비전이 안보인다 싶으면 그 자리에 있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다른 일거리를 찾았다. 일을 배우는 것은 재미있었지만, 지루한 일상은 '지옥'같이 여겨졌다.

 

그래서, 직장을 이리저리 전전하면서 나는 어느정도 우리 아버지의 '낙인'을 수긍했을것이다.

 "의지 박약에 끈기 없는 인간."

 

내 인생에서 가장 긴 회사 이력은 2년. 그 후에 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기 시작했을때, 한 학교에서 3년 일한것이 가장 긴 이력이다.  그러고보면, 아무래도 '학교'에서 가르치는 일이 가장 내 취향과 적성에 맞았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학교에서 3년이상 버틸수 있었던 결정적인 이유는, 그것이 계약제 시간강사 일이어서 일주일에 정해진 시간만 나가서 일하면 되고, 보수가 좋았으며, 아무도 나를 간섭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잡지사 기자나 리포터, 혹은 시간강사등, 내가 독자적으로 일을 할 수 있고, 남이 내 일에 필요이상 간섭하지 않는 분야에서 나는 싫증을 덜 냈다.  내게 가장 적응하기 힘든 곳은 정시 출퇴근을 해야 하는 회사.  무조건 책상을 지켜야 하는 곳. 그런 곳에서는 숨이 막혀서 견디기가 힘들었다.

 

아무튼, 온갖 종류의 직장을 전전하고 짧게는 두달에서 길어봤자 3년을 채우고 마는 내 성질머리를 보건대, 나는 정말 의지박약이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나를 그런 사람으로 대충 정리해 두었었다.

 

내가 이런 나에 대한 '정리'를 수정하리라고 마음 먹은 것은,

내가 내 공부를 모두 마쳤을 때 였다.

나는 가방끈이 길다. 제도권에서 가장 최고 학력이라는 관문까지 모두 마쳤다.

내가 내 최종 학위를 받았을때, 나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나는 의지 박약이 아니야. 의지박약이었다면 그 힘든 공부를 다 마쳤을리가 없어. 그러니까, 나는 의지박약이 절대 아니야. 내게 위기가 닥쳤을때도 나는 물러서지 않았어. 나는 어떻게든 이것을 마쳤다구. 그러니까 앞으로 나를 의지박약이라고 부르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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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나는 매일 여러가지 계획들을 세우고, 많은 것들을 중도 포기하거나 집어치운다. 계획을 끝까지 수행해 내는 것보다 중도에 그만 두는 것들이 더 많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그런 일로 나를 내가 비난하지는 않는다. 잘 살아내는 것만 해도 장한 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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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한달동안, 나는 매일 (하루도 거르지 않고) 일정거리를 걸었다. 매일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운동화를 신고 걸으러 나갔다.  나의 처음 목표는 일주일에 닷새 이상이면 족하다는 것이었다. 하루에 3마일정도 일주일에 닷새정도 걸을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A+ 점수를 주겠다고 스스로 기준을 정했다.

 

그런데, 걷다보니 기록이 올라갔다. 내가 잘 해내고 있었다. (내 적성에 맞나보다).

그래서 계획을 약간 수정했다.  한달내내 90마일 이상을 걸으면 하루 평균 3마일을 걷는 셈이니 칭찬을 받을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는 걷기에 아주 재미가 붙고 말아서 90마일을 일찌감치 성취해 냈다.

 

그래서 그 다음 목표로, 한달에 120마일을 걸으면, 하루 평균 4마일 걸은거네. 그걸 이뤄보면 어떨까?  이렇게 계획수정을 했다. 그리고 그것을 금세 이뤘다.

 

그래서 또다니 내 계획을 수정한다. 이번달에 150마일을 걷는다면 하루 평균 5마일...  그리고, 기특하게도 나는 그 150마일 고지를 훌쩍 뛰어 넘고 말았다.  이쯤되면 내가 내 머리통을 쓰다듬으면서 '기특하도다, 기특하도다' 칭찬을 해 줘야만 한다.

 

그래서, 나는 8월 첫날 세웠던 계획보다 훨씬 많이, 그리고 꾸준히 운동을 하러 나갔다. 참, 장한 일이다. 세상에 이런 별것도 아닌 일을 가지고 장하다는중, 자화자찬을 하다니, 유치해 보일지도 모른다. 아, 난 원래 심대하게 유치하다. :)   이런게 내가 사는 낙이다. 작고 사소해보이는, 그러나 내게 도전이 되는 일을 잘 해내는 것. 내가 여태까지 가보지 않은 영역까지 가보는것. 남들에게 사소해 보이는 일이라도, 그것이 내게 새로운 것이고, 내게 의미있다면, 나는 그것만으로도 얼마든지 유쾌해질수 있다.

 

자, 8월이 끝나가고 있다.

내일부터 9월이다.

9월에는 8월만큼 잘 해낼 자신이 없다.

왜냐하면, 가을학기도 시작되었고, 찬홍이도 열심히 챙겨줘야 하고, 찬홍이가 대학입학 신청 절차를 잘 밟을수 있도록 돕는것이 내 주요 일과가 될 것이므로. 8월만큼 시간 여유가 있을것 같지가 않다.  그래서, 하루 3마일을 내 목표로 정하기로 한다. 9월 한달 90마일을 채우면 성공으로 볼 것이다. 그것을 초과하면 나는 또 열열히 나 자신을 칭찬해 댈 것이다.  인생 사는 재미, 뭐 별 것 없다. 하루하루 뭔가 사소한 것에 도전하고 그것을 이루는 것. 그 하루가 만족스러운 것. 주어지는 음식을 기쁘고 고맙게 먹고, 한번이라도 더 웃으면, 인생 복된것이지.

 

 

 

 

 

Posted by Lee Eunm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