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ry/Walking2010. 8. 11. 05:41

 

우리들의 귀염둥이 할아범 왕눈선생이 요즘 수상쩍어졌다.

전에는 예컨대, 내가 "왕눈이 어~~ 가자~" 하면 밖으로 나가자는 말이라는 것을 알아듣고

벌떡 일어나 깡총거리며, 기대에 가득한 눈빛으로 현관문과 나를 번갈아 쳐다본다.

어서 나가자는 뜻이다. 어서어서 밖으로 산책을 나가자고 안달이 나는 것이다.

 

그런데 요즈음,

내가 아침에 나갔다 하면 최소한 학교까지 왕복,

혹은 '운이 억수로 나쁘면' 조지타운 까지 최소 6마일, 길게는 8마일 거리를 다녀와야 하는 지옥의 코스가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왕눈이가 '실전 경험'을 통해 터득 한 것이니,

올해 춘추 만 아홉살을 넘기신 왕눈 선생에게는 매일 진행되는 이 장거리 산책이 부담스러웠던 모양이다.

 

 

그래가지고 요 며칠,

요놈이

새벽에 내가 일어나서 "왕눈아!" 하고 늘어져 자는 것을 깨우면

발딱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쓱 쳐다보고는

매우 침울한 표정 / 혹은 매우 미안한 표정을 지으면서 슬그머니 찬홍이 방으로 사라진다.

그리고 내가 현관에서 개줄을 흔들며 왕눈이를 불러도 못들은척 대꾸도 안한다.

 

이것은 분명

 "난 나가기 싫으니까 너나 나갔다 오렴!" 하는 뜻이 분명하렷다.

 

사실 지난 토요일에 조지타운 멀리 돌아오기 8마일 워킹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왕눈이는 차에서 노란 물을 토해냈다. 힘들어서 체액이 올라왔던 모양이다.

(나도 가끔 아주 힘들면 왕눈이처럼 토한다. 그래서 놈의 상태를 짐작 할 수 있었다.)

하여, 나는 앞으로 조지타운에 갈때는 왕땡이를 대동하지 않기로 방침을 세웠다.

 

하지만, 아침에 찬홍이네 학교에 다녀오는 것은

왕땡이는 트랙 돌기 안하고 앉아서 쉬니까

기껏해야 2마일 조금 넘치게 걷는것인데, 그건 왕눈이에게 부담스러운 거리가 아니다.

 

왕땡이는 단지, 조지타운 다녀온 것이 너무나 기운이 빠져가지고

그냥 나하고 나가는 일에 진저리가 난 것일지도 몰라.

 

요 며칠 아침마다 왕땡이가 숨어버리거나 못들은척하고 자빠져버리는 상황이 지속되었는데,

그래도 나는 녀석을 달래서 학교에까지 끌고 다녀온다.

녀석도 싫은 눈치를 하다가도 일단 집을 나서면 동당거리고 잘 따라다닌다.

 

내가 왕땡이를 아침에 끌고 나가는 이유는

(1) 왕땡이도 운동을 해야 건강을 유지하고, '근육남'으로 매력을 발산하며 장수할수가 있으니까.

(2) 왕땡이에게는 아침에 산책나온 다른 집 개들과 사교하는 일과도 매우 중요하다.  왕땡이는 멀리서 개가 보이면 헥헥거리며 달려가 인사를 나누고 싶어하고, 그것은 다른 개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므로 사회성 발달을 위해서라도 조치를 취해줘야 하는 것이다. 내게 친구가 필요하듯, 왕눈이에게도 '개'친구가 필요한 것이다.

 

하여, 요즘 영 딴전 피우고 나하고 나가기를 꺼리는 왕선생을 모시고 산책을 나가고 있다.

왕땡아, 사실 나도 개똥 봉지까지 챙겨가지고, 니 따끈따끈한 똥 집어 담아 가면서

인생 개똥 냄새 나게 살고 싶은 생각 없다구.

하지만, 한번 태어난 니 생애도 중요한거라구.

그러니 조금 귀챦은 생각이 들어도 우리는 걸어야 하는거다. 알겠냐 왕선생~

 

 아무튼 요즘 왕선생이, 내가 나가자고 하면 인생 피곤하다는 표정이 역력하다.

그대신 찬홍이가 나가자고 하면 신나서 따라 나선다.

찬홍이는 아파트에서 슬슬 바람쐬다가 왕눈선생이 똥을 누면 그걸 치우고 잽싸게 들어와버리니깐.

 

 

Posted by Lee Eunm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