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2021. 1. 26. 06:41

15일간의 의무적인 자가격리는 사람에 따라서 매우 고통스러울수도 있다.  오죽하면 어떤 사람들은 착실히 있다가 출소 만기 2-3일 앞두고 뛰쳐 나가서 '사건사고'의 주인공이 되겠는가.  나도 그 심정 백분 이해한다. 아마 없던 병도 생길지도 모른다. 폐쇄공포증 같은 것이 생길수도 있을 것이다.

 

나 역시 여름에 자가격리를 끝내고 나가서 - 가족이나 친지들에게 자가격리 경험을 얘기 할 때, "한번은 하는데, 이게 얼마나 힘든지 알고 난 다음에는 두번다시 못 할 것 같다. 너무 괴롭다"고 토로했었다.  그렇지만 어쩌겠는가, 코로나는 종식되지 않았고 나는 이걸 두번째 하게 되었다. 피해 갈 방법이 없다. 비가 오면 맞는거지 뭐. 

 

여름에는 보름동안 성경통독을 계획했는데 - 통독을 열흘에 끝내고 나니, 그 후에 '패닉'이 왔다. 나머지 5일이 괴로울정도로 지루했다.  먹고 - 티브이 보다가 자고 - 책 좀 보다가 (책도 잘 안 읽힌다) - 먹고 - 자고 - 홈쇼핑 채널 보면서 막 뭐 사고 싶어지고 - 또 자고 뭐 이런 '식충이' 같은 며칠을 보냈는데 -- 나중에는 강한 자기혐오 까지 오더라. (왜나햐면 체중이 불어나는 것이 느껴졌기 때문에).

 

이번에는 보름동안 뜨개질로 꽃 백송이가 들어간 블랭킷을  만들려고 계획하고, 원자재 (털실)까지 다 마련해 뒀었는데, 여러가지 할 일이 생겨서 털실은 그냥 집에 남아있다. 나는 매일 규칙적으로 운동을 하고 해야 할 일들을처리하고 있다. 지루할 틈도 없고 게으름을 피울 시간도 별로 없다.  뭐 그렇다고 바쁜 것은 아니고, 매일 피곤하지 않을 만큼만 일을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자가격리 하면서 두가지 좋은 습관을 만들게 되었다. 

 

첫째: TV에서 해방 되었다. 

나는 티브이를 좋아하는 편이다. 주로 CNN 같은 뉴스채널을 틀어 놓는데 그러다보면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게 되고, 그러다보면 멀거니 오락프로를 보면서 시간을 흘려보내기도 한다. 티브이는 달콤한 사탕같다. 시간이 잘 간다.  그런데 내가 정한 자가격리  오피스텔에는 TV가 없었다.  그래서 열흘간 TV없는 생활을 했는데 - 이게 처음에는 뭐랄까 '답답한 고요함' 같은 느낌이 들었다. 소음을 내는 것이 없으니까 갑자기 그 고요가 답답하게 여겨졌다.  그렇지만, TV 소리 대신에 KBS 1FM에서 내게 익숙한 클래식 음악이 그 빈곳을 채우기 시작했고 서서히 나는 TV 없는 일상에 익숙해졌다.

 

새로 옮긴 장소에는 대형 TV가 벽에 걸려있다.  그런데 나는 그것을 켠 적이 없다.  나는 안다, 내가 TV를 켠 순간부터 나는 다시 TV의 노예가 되어 TV의 소음속에서 시간을 보내리라는 것을.  그래서 의도적으로 TV 리모컨을 내 손이 안 닿는 곳에 올려 놓았다. (퇴소할때 원위치 시키고 나가야지...)  TV가 없으면 - 사방이 고요해진다.  상업광고 없는 FM에서 흘러나오는  고전음악들은 내 영혼에 안락감을 준다. 고요함에 달콤함을 더한다.  라디오마저 끄고 멍하니 창밖을 내다보는 일도 즐겁다 (창밖에 너른 바다와 섬들이 펼쳐져 있으니 더욱 즐겁다).  이것을 습관을 만들면 - 나는 TV에서 완전히 해방 될 것이다. 내 삶은 더욱더 바깥에서 운동을 하거나, 내면을 들여다보며 사색하고 연구하는 시간으로 채워지게 될 것이다. 

 

둘째: 커피를 끊고 차의 향을 만나다. 

 

사실 나의 자가격리는 지난 12월 미국으로 향할때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미국에서 나는 거의 자가격리자로 살았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그때부터 커피를 끊었다. 그냥 끊기로 마음먹었다. 내 위장이 몇가지 내 나이 또래의 사람들이 보이는 징후들이 보인다고 해서, 잘 달래줘야 할것 같아서 커피부터 일단 끊은 것이다.  커피 안마시고 과식 안하고, 맵고 짠 음식 안먹으면 그런대로 괜챦을것이다.  술담배는 안하니까.  미국집에서도 내내 월마트에서 사온 (국내에서도 동일한 가격에 판매가 되더라) 오가닉 노카페인 티를 몇가지 구비해 놓고 커피 생각이 날때마다 티를 마셨다. 나머지는 가방에 싸들고 한국으로 돌아와 자가격리를 하는 중에도 그것들을 마셨다. 그것들이 다 떨어져서 - 남편에게 동네 편의점에서 카페인 없는 평범한 차를 사다 달라고 했다. 그는 고심끝에 둥글레차와 보이차 (그냥 편의점에서 판매하는 싼거)를 사다 주었다.  아침 공복에는 둥글레차를 마시고, 식사후 낮에는 보이차를 마신다. 보이차에 미량의 카페인이 있다고 해서 식전에는 안마신다. 

 

그런데, 보이차 티백 하나를 몇차례씩 뜨거운물로 우려 먹고 있는데 (여러번 우려도 차향은 남아있고 - 연하게 먹어도 좋으니까) 문득, 여태까지 느껴보지 못한 차향을 발견하게 되었다.  어느 순간 보이차에서 '장미향기' 혹은 '꽃향기' 같은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이제 그 '꽃향기'를 알아차리게 되었다.   그리고, 종일 차를 마시다가 빈 찻잔을 닦지 않고 머리맡에 놓은채 잠이 들었는데 - 깨어서 빈 컵에 남아있는 '꽃향기'를 발견했다. 차가 남은줄 알고 마시려고 했는데 -- 찻물은 없고 향기만 남아있더라.  찻물은 없고 향기만 남아있더라.....  이 때 '차'의 묘미를 발견한 것 같다.  놀라운 발견이었다.  그래서 이제 나는 '차를 마시는 사람'으로 다시 태어난 것 같다. 

 

나중에 생각나면 마저....

 

 

 

 

 

 

 

 

 

Posted by Lee Eunm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