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2020. 10. 7. 15:24

나는 기도를 잘 못한다.  미국에서 '나의 집'이라고 내가 이름 짓고 기쁘게 다니던 나의 감리교회에서 일주일에 한번씩 30분간의 짧은 기도 모임을 가질때, 7-8명이 둘러 앉아서 차례차례 소리내어 기도를 하곤 했다. 짧게 한 두 문장으로 감사나 고민을 하느님께 올렸다. 나는 주로 '감사'를 올렸는데 그것이 가장 쉬웠기 때문이다. 

 

 

교회에 새벽기도를 드리러 꾸준히 드나들때에도 나는 도무지 어떻게 기도를 해야 하는지 감이 안 잡혔다. 한국 교회 스타일대로 어떤 분들은 울부짖으며, 소리지르며 기도도 하고 그러는데 나는 도통 소리내어 기도하기가 힘들었다. 그렇다고 소리 안내고 차분히 기도하느냐 하면 사실 그것도 아니고, 대개는 눈을 꿈 감고 이런 저런 생각들을 했다.  아이고 하느님 저좀 살려주십시오라고 마음속으로 외치기도 하나 그것은 순간적인 일이 아닌가. 삼십분씩 한시간씩 그러고 앉아 있을수는 없지 않은가?  그러니 내 기도는 영 하는둥 마는둥이나, 그래도 나는 기도를 한다고 앉아있곤 했다.  가끔은 기도 하다 졸기도 했는데, 그렇게 한 숨 졸고 깨어나면 참 가뿐한 기분이 들기도 해서, 이것 역시 기도의 축복인가 했다. 

 

 

나의 기도 실력은 이렇게 졸렬한 형편이라서 - 2년 가까이 학교에서 기도모임을 운영해 가면서도, 돌아가면서 대표기도를 드리는 방식이면서도, 내가 대표기도를 드린 것은 한번인가 두번인가 그렇다. 나는 사람들 앞에서 기도를 드릴 자신이 없다. 하도 졸렬해서. 뭐라고 할 말도 생각나지 않아서.  나는 글로 써서 표현하기가 말하기보다 쉽다. 

 

 

 

오늘도 기도회를 마치고 정리를 하려는데, 온라인 '줌'으로 기도회를 함께 했던 분이 내 연구실로 뛰어오셨다. 기도회 마지자 마자 그냥 내게로 오신듯 했다.  그래서 조용한 장소로 가서 이야기를 조금 나눴다.  대면을 피해야 하는 이 코로나 시대에 나를 보러 왔으면 그럴만한 사정이 있으리라.  그래서 차근차근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역시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필요했던 것 같다. 이야기를 마치고 일어서려는데 "기도 해 주셔요"하고 그분이 말했다.  아 그런거구나.  그래서 손소독제로 손을 싹싹 소독하고, 그이의 손을 꼭 잡고 소리내어 기도를 드렸다.  내가 무슨 기도를 드렸는지 별로 기억나지 않는다. 홍해를 건너던 모세의 용기를, 약속의 땅으로 향하는 여호수아의 용기와 지혜를 간구하긴 했는데 그 외에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런데 나와 손을 잡고 내 기도를 들은 그분은 그 속에서 새로운 용기와 알수 없는 힘을 얻었다고 한다. 그러면 그 부분은 하느님의 몫이시리라. 그가 영적으로 감응한 대상은 내가 아니고 하느님이시겠지.  나는 그냥 도구로 거기 있었으리라. 

 

 

내 기도로 용기를 얻었다는 기도친구의 코멘트가 내게 용기를 준다. 내 기도가 말짱 황은 아닌가보다. 내 기도도 쓸모가 있나보다.  그러면 나는 더욱 좋은 기도자가 되기 위해서 나를 더욱 잘 다스려야 하리라.  내 몸의 주인은 누구인가?  물론 나는 아닐것이다. 내 몸은 누가 다스리는가.  나를 만드신이가 다스릴 것이다. 나는 내 몸의 관리자이다. 내 몸을 잘 청소하고, 꽃밭을 가꾸고, 아름답게 관리하여야 한다. 그리고 아름다운 마음을 키워야 한다.  그렇게 해서 내 몸과 마음을 성전으로 만들어야 한다. 내 안에 깃드신 하느님이 기쁘시도록.  

 

 

나는 좋은 기도하는 사람이 되고싶다.  그 외에는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이렇게 아름다운 가을에. 

 

 

 

Posted by Lee Eunm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