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2020. 10. 5. 11:32

 

"오늘 신교수랑 만나서 배나 한척 사가지고 멀리 떠나자는 모의를 하겠어."

"그러셔, 제발. 나도 그 배 좀 타보자. 마스크 단단히 쓰고. 손 세정제 챙기셨어?"

 

오늘 아침 모처럼 외출을 하는 남편과 (그는 재택근무 중이라 방콕 신세다) 나눈 대화. 현관문을 나서며 비장한 표정으로 그는 말했고, 나는 깔깔댔다. 

 

장관의 남편 노릇하기가 쉽지 않음을 요즘 발견하게 된다. 세상에 쉬운 일이란 것이 없구나. 내가 장관이라면 나는 기분이 어떨까? 상상해보니 - 집 나가는 남편의 다리 뭉둥이를 분질러 놓고라도 주저 앉히고야 말았을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장관이 못 되는거지. 하하하.)  어쨌거나 장관은 꽤나 곤혹스러울 것이다. 

 

 

그런데, 어떤 은퇴한 할아버지가 여윳돈이 조금 있어서 그럭저럭 품위유지하며 은퇴 생활을 하다가, 뭐 배를 사가지고 바다를 떠돌겠다고 집을 나간들 그게 대수인가 싶기도 하다.  내가 그 사람만큼 돈이 많지 않다는 것이 배가 아플 노릇이지만 뭐, 그 사람은 그렇게 살다가 죽겠다는데 남이 나서서 뭐라 할 상황은 아닌것도 같고.  아무튼 이 할아버지는 내게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한다.  그것이 옳은 일인가 아닌가. 마땅한가 아닌가. 내가 그 사람의 일에 대해서 왈가왈부 할 일인가 아닌가. 뭐 개인의 행복과 공동체 의식 사이에서 갈팡질팡.  그냥, 내가 장관 입장이 되면 "이 인간이 미쳤나? 너 죽고 나죽자!' 하고 한판 붙기 딱 좋은 그림이긴 한데...하하하. 

 

남편이 철 없이 배 산다고 돌아다니다 바가지나 쓸터이니, 내가 알아서 한 척 사주던가 해야 하리라.  

Posted by Lee Eunm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