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2020. 7. 11. 21:01

 

지난 밤부터 오늘 아침 사이에 성경 통독을 모두 마쳤다. (낮에는 쿨쿨 자고 밤에 일어나 성경읽기를 하는 삶이었다).  성경은 처음에는 내가 읽기 시작하는데, 어느 순간부터 나는 사라지고 누군가가 읽는다.  나는 사라지고 성경의 숲을 관통하는 내 발길이 빨라진다.  

어느부분은 대충 눈을 거치는 식으로 넘어갔고 어느 부분은 소리 내어 읽었다.  어느 부분에서는 울었다. 모든 일이 순식간에 일어났다.  마치 초저속 카메라로 하늘의 풍경을 찍은 것 처럼, 그것을 정속으로 풀었을때 갑자기 하늘에서 번개가 치고 고요해지고 파란 하늘, 다시 구름이 한꺼번에 미친듯이 돌아가듯이 성경을 읽는 나의 시간이 그러하였다. 

 

지금 돌아봤을때 가장 매력적인 부분은 (매번 통독 할 때마다 포인트가 조금씩 변하는데 올해 통독하였을때는) -- 욥기.  욥기가 너무나 아름답다.  요나에서는 깔깔 웃음이 나왔다. 

 

가장 놀라운 부분은 -- 이전에 읽을 때 재미없이 통과했던 '성전 건축'의 부분이 이번에 눈에 확 들어왔다. 아 그 지난한 역사.  예수님이 '날아가는 새도 집이 있고 여우도 돌아갈 굴이 있는데 사람의 아들이 머리 둘 곳이 없구나' 하셨던 대목처럼 구약에서 '언약궤'는 머리 둘 곳도 없이 정처없이 떠돌아야 했다.  심지어 모세는 하느님의 십계명 돌판을 홧김에 집어 던져 박살을 낸적도 있지 않은가.  참 더럽게 말 안듣는 '자식'들 덕분에 '여호와 하나님'도 뒷방 노인처럼 인간들의 배은망덕과 오만불손과 온갖 구박을 다 견디셔야 했다.  그걸 그분이 왜 그렇게 참으시고 견디셨는지 나도 잘 모르겠다. 그분이 '사랑'이라서 다른 방법이 없으신건가?  아무튼 그를 위한 성전은 쉽게 세워지지 않았고, 한번 세워진 후에도 편할 날이 별로 없었다.  구약-신약을 통틀어서 그 '성전'이 눈에 들어왔다.  아직도 내 '집'을 정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떠도는 내 신세가 그 문제에 투사가 되어서일까?  나의 '정처없는 이 발길'의 삶을 성경속에서 위로 받고 싶었던 것일까? 그리하여, 내 가슴속에 솔로몬의 영광기에 세워진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으로 채워진 성전과 같은 -- 아름다운 성전을 세워야 한다는 어떤 상념에 이르렀다.  그것이 무너지면 나는 또 세운다.  무너지지 않는 성전은 --- 내 가슴에 예수님을 온전히 간직하는 것이지.  (그건 내게 쉬운 일이 아니지...) 

 

예언자들의 예언서가 대개는 '재앙'이 닥쳐올것에 대한 경고, 그리고 그럼에도 하나님의 구원의 빛이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로 이루어져 있는데 예언자들이 슬퍼하는 것을 보면서, '이사야, 엘리야, 예레미야 모두들 울고 있지 않은가?' 문득 -- 이것은 성경에 기록된 '우울증'의 여러가지 증상들이 아닐까?  정신과 의사들은 성경속의 인물들에 대하여 어떤 '진단'을 할까?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욥기'를 가장 아름답다고 봤던 이유도 '욥기'는  '우울증'의 여러가지를 그대로 보여준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우울증에 빠지면 그냥 우울감에서 끝나는게 아니라 정말로 몸도 고통스러워지고 정말로 사는게 힘들어지지 않던가?   인간이 당할수 있는 고통중의 고통을 모두 겪은 자가 욥이 아닐까?  그렇지만, 그러하므로 그는 찬란한 하나님의 음성과 가르침을 듣는다.  그는 회복된다. 참 아름답다. 특히 하나님의 등장 부분은 풀오케스트라의 연주와 같다. 

 

성경을 제한된 시간안에서 최대한 빨리 속독하여 통독 할 때 일어나는 일은 -- 구약에서 반복되었던 어떤 메시지들 혹은 '어휘들'이 신약에서도  반복되면서 그러한 것들이 한줄에 휘리릭 꿰어진다는 것이다.  성경이 방대하고 '하느님의 메시지'이므로 한자 한자 한구절 한구절 곱씹고 곱씹다 보면 정말 부분 부분만 사색하고 지나가게 되는데 -- 그런 성경 읽기를 하다가 일년에 한번쯤 번개치듯 통독을 하면 소나기를 맞은것처럼 머리가 시원해지면서 '큰 그림'을 다시 갖게 된다.  내비게이터의 메시지만 듣고 운전을 하다가 문득 벽에 걸린 세계지도를 대략 찬찬히 살필때의 느낌.  우리는 세세한 내비게이터도 커다란 지도도 모두 필요하다.  정독과 통독이 모두 필요하다. 

 

볼때마다 우는 대목은 --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나타나시는 장면들  처음 베드로에게 나타나셨을때, 그리고 마지막으로 베드로에게 나타나셨을때.  베드로가 강변에서 물고기 잡는 것에 훈수를 두신 분이 예수님이셨다는 것을 자각하고 허둥지둥 외투를 걸치고 달려 갈때.  예수님과 베드로의 관계가 그려지는 장면에서 나는 늘 운다. 그보다 아름다운 '사랑'의 장면이 또 있을까?  일설에 예수님께서 '요한'을 애지중지 하셨다고 하지만 (이번에 읽으면서 '사랑의 요한'을 알겠더라. 요한 1-2-3서가 온통 사랑 타령이더라) 내 눈에 가장 아름다운 연애는 베드로와 예수님 사이의 연애가 아닐까 한다.  다가옴 - 못 알아봄 - 알아봄 - 함께함 - 배신 - 도망 - 후회 - 연민 - 사랑 - 떠남 - 기다림  뭐 이런 '사랑 이야기'의 요소들이 예수님과 베드로 사이에 있다. (말귀 못알아듣는 어떤 미친 기독교인이 내 글을 우연히 읽고 이게 무슨 게이 스토리냐고 예수님 모독하지 말라고 잔소리하는 댓글이 달리지 않기를 바란다. 지겹다, 말귀 못알아 듣는 가짜들.) 

 

아, 그런데, 성경통독은 아직도 내게는 '용기'가 필요한 프로젝트이다. 올해 겨울 방학때 다시 한번 할 수 있을까?  코비드가 진정되지 않아 겨울에도 다시한번 자가격리를 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그때 통독을 하게 될까?  아직 장담하거나 약속하지 않기로 하자. 나는 하나님께는 함부로 약속을 안드린다. 그것은 위험한 일이다... 생각만 하고 있자.

 

이런 생각은 해 봤다.  누군가 뜻이 맞는 사람들과 일주일에 딱 한시간 만나서 다른 것은 안하고 인사도 무엇도 생략하고 정해진 시간에 모여 앉아서 성경을 소리내어 교독하는 것이다. 천천히 한구절 한구절 돌아가면서 읽다가 한시간이 지나면 모두들 자리를 털고 일어나는 것이다. 이런 모임을 해보면 어떨까 생각했다.  왜?  그냥 그러고 싶으니까. New International Version 으로. 

 

 

 

 

 

자가격리를 돕는 최고의 장치는 '온라인 쇼핑'이다. 자가격리의 숨은 영웅은 '택배 요원'이다.  서리태 (검정콩)을 온라인으로 주문한지 24시간도 안되어 문앞에 도착하였다.  오늘부터 서리태로 콩물을 만들어 먹기로 했다. 남편에게 매일 콩국수 사다 달라고 하다가 아예 매일 콩국물을 직접 만들어 먹기로 한거다. 

 

 

나도 어쩔수 없이 나이를 먹어 - 그 무서운 '갱년기' 증상이 이렇게 저렇게 나타나고 있다. 문득문득 다가오는 '발열감'은 차라리 견딜만 하다. 안면홍조도 없고 선풍기 바람도 필요하지 않고, 그냥 발열감일 뿐이니까.  (전에는 열이 난줄 알고 타이레놀 먹고 그랬는데 체온계로 재보면 체온은 오히려 저온이란 말이지...). 한달 전부터 왼쪽 손이 그냥 얼얼하고 아프다. 손마디도 아프고 손끝도 맵다는 느낌이 든다.  나는 이걸 '내가 잠을 잘 못자서, 몸으로 손을 덮치고 자서 그런가?' 그런 추측을 했는데 검색해보니 전형적인 갱년기 증상이란다.  생각해보니 우리 언니가 몇해전부터 손이 아프다고 파라핀 온열치료기도 쓰고 뭐 그랬다. 나는 우리 언니가 부지런한 살림꾼이라서 손을 하도 많이 써서 아픈가보다 했는데 - 요즘 나도 손이 아프다. 난 일 안하는 게으름뱅이이고 내가 손쓰는 일은 자판 두드리는 것 정도이다. 내가 손이 아플일이 없다. 그런데 손이 아프다.  갱년기 증상인 것이다.  그래서 검색을 해보니 갱년기에 도움이 되는 식품들이 있는데 그 중에 으뜸이 검은콩이더라 (하하하)  나는 콩국수도 좋아하므로 콩국물은 언제나 좋아한다. 잘 됐다. 내가 콩국물을 직접 만들어서 매일 먹으면 되겠구나. 이런 결론. 

 

 

 

콩 삶아서 (6-7시간 불리고 10분쯤 끓는 물에 삶는다, 너무 오래, 너무 짤게 삶지 않고 적당히. 그것이 10분쯤이란다) 물, 우유하고 함께 갈아서 소금 약간 뿌려서 먹는다.  매번 삶기 귀챦으니까 한꺼번에 삶아서 삶은 콩을 봉지봉지 담아 냉동실에 얼렸다가 한봉지씩 꺼내서 갈면 되지 않을까?  일단은 2회분만 삶아보았다.  몸이 삐걱삐걱 녹스는것 같다. 운동을 못하니 배도 나온다. 아 ... 나도 늙는구나. 

 

Posted by Lee Eunm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