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2020. 7. 11. 00:01

자정 넘어서 확인한 뉴스에서 서울시장의 사망 소식을 접했다. 만감 교차.  그를 지지하던 사람이나 반대편에 있던 사람이나 비슷한 기분이었을것다. 모두다 어리둥절하고 '뭐지?' 싶은 그런 심경. '각자 다 사정이 있었겠지' 하고 만다. 이미 그는 이곳에 있지 않으므로 우리들의 영향을 전혀 안 받을것이므로. 

 

그런데 이제서야 수긍이 가는 점이 있다.  미국에 있을 때 '성추행 관련' 상황이 발생했을 때, 내가 소속한 곳에서는 이 문제에 연루된 사람들에 대하여 극도의 '함구령'이 유지되었다.  그러니까 최초 신고자에서부터 상황에 연루된 모든 사람에게 '일체 다른 곳에 이 일을 발설해서는 안된다'는 엄중한 경계가 내려졌다.  나도 그 상황 속에 연루된 사람이었는데 가슴이 답답하고 무척 불안했다. 주변사람들에게 이 일을 알리고 뭔가 더 많은 협조를 받고 싶었지만 한정된 숫자의 사람 외에는 '쥐도 새도 모르게' 조사가 진행되었다.  

 

성추행 관련 사건에는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과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  물론 나는 피해자 측의 사람이었는데 이 조사를 얼마나 '쥐도 새도 모르게' 진행하던지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이 자신에 대한 조사가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 조차 전혀 모르는 것처럼 보였다. 피해자측 사람들은 (나를 포함) 숨이 막히는 심리적 고통의 시간을 견뎌야 했다.  이러다가 흐지부지하게 묻히는게 아닐까? 이런 불안감.  시스템 자체에 대한 불안감. 

 

그런데 결과적으로 그 일은 '공정하게' 마무리 되었다. '가해자'가 응분의 책임을 지게 되었다.  그리고 상황은 일단락 되었다. 

 

그런데, 이 상황이 얼마나 철통같이 보안이 되었던지 이 사건에 대해서 '관련 된 사람들' 외에는 전혀 '아무도' 몰랐다. 물론 수근수근하면서 알음알음 뭔가 감을 잡은 사람들도 발생할 수 있었지만, 아무도, 그 누구도 공개적으로 이 일에 대하여 이야기 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도 '아 이것이 미국에서 상황을 수습하는 방법이구나' 정도로 이해하고 지나갔다.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 상황이 끝났을때.  아무도 모른다 상황이 진행되는 동안. 오직 관련자들만 알 뿐이다. 심지어는 그래서 그 '가해자'가 소리소문도 없이 한마디 말도 없이 그곳에서 사라졌을때 주변의 사람들은 그가 '영전되어 떠났다'고 까지 상상하였다. 그런 소문이 한참을 돌았다. 그가 더 큰 물로 가기 위해서 이곳을 떠났다고.  그가 '승자'처럼 보였다. 사람들이 그가 떠난 이유를 알 수 없었으므로 상상한 것이었지만. 

 

그 당시만 해도 '그런 쓰레기 같은 사람은 아주 공개 망신을 줘야 하는데...'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한편으로 내가 그 시스템에 수긍했던 이유는 그 사람이 너무 챙피해서 자살이라도 하면 어떻게 하지?' 이런 근심에서 우리가 벗어날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자살하지 않았고, 다른 영역으로 가서 잘 살아내고 있다. 과오는 과오일 뿐이다.  그 당시에 나는 '미국 시스템이 참 맹숭맹숭하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나는 분명히 안다. 그때 그것이 공개되었더라면 '피해자'들 중에 '자살'로 뛰어들 사람도 있었다는 것이지. 어떤 사건이 공공연하게 알려질 때 '자살'가능성은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에게 찾아온다.  '눈에는 눈, 귀에는 귀' 처럼, 한 사람의 과오는 그 과오에 대하여 지적받고 처벌받으면 그것으로 족하다. 그 과오가 죽을 정도의 과오가 아니라면 죽으면 안된다. 

 

그래서, 이제 내가 나이를 먹고 이 사회에서 '성인'으로 살아가면서 다른 사람의 행동에 대하여 내가 '판단'을 해야 하는 입장에 섰을때 나는 제일먼저 '그 사람이 다치지 않을까?' 부터 생각해본다.  가령 어떤 학생이 부정행위로 걸렸다. 그래서 이를 심의해야 한다. 그럴때 내가 제일먼저 다른 동료들에게 당부하는 것은 '이건 단지 그냥 부정행위일 뿐이야. 교정이 가능해. 이 문제로 학생이 패닉에 빠지거나 이 일이 트라우마로 남게 되면 안돼. 학생이 개선하는 방향과 방법을 찾아야 해.' 

 

옛날에 메릴랜드에 살 때, 하이웨이에서 교통경찰차가 경광등을 켜고 따라붙었다.  뭔가 내가 실수를 한 모양이다.  그런데 교통경찰이 따라오면 나를 포함한 보통 사람들은 갑자기 가슴이 뛰고 두렵고 초조하고 그렇게 되지 않는가?  차를 길가에 대고 창문을 내리고 경찰을 기다리던 나는 놀란 표정으로 입을 벌리고 헉!헉!  놀란듯한 가쁜 숨을 쉬었다. 나로서는 겁났다는 싸인 랭기지 같은거였다.  눈 크게 뜨고 놀란 표정과 함께.  ---> 그런데 그런 내 모습을 본 경찰도 놀란 표정이었다. 그는 "Calm down, calm down....Can you breathe?  Alright?" 진정해 진정해. 숨 쉴수 있지? 괜찮아?  이러면서 나를 안정시키려고 노력했다. 물론 나는 괜챦았다. 그냥 놀란 리액션이 좀더 드라마틱 했을 뿐이다.  그렇지만 경찰 입장에서 볼 때는 앞에서 어떤 아시아 여자가 숨이 넘어가는 것 같았겠지.   사실 내용은 별게 아니었다.  경찰차가 갓길에 있을때는 차선을 바꿔서 (2차선을 달리고 있었다면 1차선으로 옮겨서) 경찰차와 거리를 두고 가야 했는데 나는 차선을 바꾸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런 규정이 있는줄도 몰랐다. 그날 처음 알았다.  사실은 티켓 (벌금)을 받아야 할 사항이지만 네가 너무 놀란것 같으니 앞으로 주의하라고.  (바로 그거야. 그래서 내가 대개 무척 놀란 표정을 짓곤 하지 ㅎㅎㅎ 교통경찰에게 불쌍하게 보여서 상황 모면하기 성공.)   그런거다. 매 다섯대 맞을 일에 목숨을 끊으면 안되는거다.  그리고 사회는 매 몇대 맞을일에 사람이 죽게 해서도 안되는거다. 그 교통경찰은 간단한 주의를 받을 일에 내가 숨이 넘어갈까봐 걱정이 되었던거다. 

 

잠깐 살다가는 인생인데, 한번 눈감으면 그걸로 다 끝나는데... 안타까운 일이다. 아무쪼록 피해자 분들도 마음의 평화를 되찾으시길 빈다. 잘못된 것이 바로 잡히길 원했던 것이지 그가 죽어서 사라지길 원했던 것은 아니니까. 불안하고 화가 나실 것이다. 죄책감이 들 수도 있다.  살아서 잘 견디고 이겨내시길 응원한다. 죽지 마시길.   

 

***  ***

얼마전에 유학 동문들과 밥을 먹다가 이런 이야기를 나눈적이 있다. 나의 평소의 궁금함 -- 경제, 사회, 정치적으로 대단하신 '대가리'들이 어떤 문제에 연루되어서 (뇌물이나 부정 청탁이나 파렴치 범죄나...) 교도소에 1-2년 다녀 온 후에 그들은 어떤 식으로 사회의 정상으로 다시 돌아오는가?

 

1) 경제사범들은 그들이 정말 '대가리'들이라서 황제처럼 들어갔다가 황제처럼 나오신다. 

 

2) 정치사범들 역시 그들이 정말 '대가리'일 경우 몇년후에 다시 중앙으로 복귀한다.

 

3) 사회적  '대가리'인데 '파렴치 범'인 경우가 참 애매하단 말이다.  특히 미투상황 속에서 연루되었던 사회적 '대가리'들은 어떻게 과거의 영광으로 복귀할 수 있을까? ===> 이것이 내가 던진 그날의 '화두'였다. 

 

 

경제, 정치 사범들은 제자리로 곧바로 돌아오는데 3)번 케이스에 이렇다할 모범 케이스가 안보인다. 누군가 어떤 해답을 찾았으면 한다.  뒤집어 보면 이 사회는 경제 사범들에 대하여 너무나 관용적인것 같기도 하고. 경제사범들도 파렴치범인데 성폭행범과 다를바가 없는데 그들은 영광에 둘러싸여 살고 있는것처럼 내 눈에 비쳐진다. 이 사회는 경제사범을 황제처럼 떠받들고 있는게 아닐까?   왜 사람들은 파렴치범인 경제사범은 슈퍼스타 대하듯 떠받들고 찬양하면서 성추행범만 손가락질하고 침뱉고 밟는가?  경제사범 처벌을 강화하라!!!!  성추행범의 사회적 망신에만 혈안이 될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성범죄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라!!!!  처벌강화! 처벌강화! 처벌강화!   사회적 망신주기를 멈추고 처벌을 강화하라!!  그것이 법치사회 아닌가?

 

 

뜬금없이....  문득.... 노회찬씨가 그게 그가 목숨을 버려야 할 과실이었나?  매 몇대 맞을 일에 목숨을 버리신게 아닌가?  왜 갑자기 노회찬씨가 그리워지는가... 내가 기억하는 사회적 인물들의 죽음중에서 가장 안타까운 죽음은 '노회찬'씨의 죽음이었다. 아직도 가끔 그가 그립다. 우리들의 낭만이었던 정치인. 

 

 

Posted by Lee Eunm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