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2020. 7. 9. 22:17

점심에 남편이 약속대로 콩국수를 사다 줘서 맛있게 먹었다.  내일도 그 콩국수를 사다 달라고 했다.  콩국수가 좋은 이유는 일단 부드럽고 고소하고 속이 편안한데다가 국물 자체가 '두유'이므로 국물도 음료수 마시듯 안심하고 먹을수 있기 때문이다. 

 

 

자가격리에서 무사히 해제되기 위해서는 다음주에 재검 받을 때 음성 판정을 받아야 한다. 첫 검사에서도 깔끔하게 음성이 나와주었으므로 재검에서 다시 깔끔하게 음성 판정을 받는 것이 지금으로서는 내가 기대할수 있는 최선이다.  (사람의 일은 알 수가 없고, 갱년기 여성인 나로서는 내 건강도 장담을 못하므로 조심 또 조심이 상책이다.)   나는 정말로 그동안, 이 오피스텔에서 한발짝도 나가지 않았다.  체온계라던가 필수 아이템 주문한 것이 문앞에 배달되었을때 문을 빼곰히 열고 그것을 집어 들이거나, 남편이  내 '먹이'를 갖고 올때 빼꼼이 문을 여는 것이  전부였다.  나는 무사히 자가격리에서 해제되어 저 멀리 눈앞에 보이는 '나의 숙소'로 귀환해야 한다. 

 

어제 회의를 했다. 동료들은 회의실에 모여있었고, 나는 온라인으로. 이제 이런 온라인 회의가 일상이 되어 크게 불편함도 없다. 나는 평소대로 있다가 화면 앞에 앉을때 립스틱만 바른다. 립스틱이 에티켓이다.  내게 자가격리에 대해서 궁금한 것을 묻는다.  조만간 미국에 다녀와야 하는 동료들이 있으므로.  그래서 내가 일목요연하게 영문으로 정리하여 알려주기로 했다. 나는 마치 내 조직에서 '선발대'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동료들 중에서 '자가격리'를 경험한 최초의 구성원이고 '아무도' 이게 어떤 것인지 모르고 있다. 뉴스나 언라인에서 정보를 구할 뿐.  그래서 자가격리중인 내가 회의에 참석하여 내가 살고 있는 풍경을 보여주니 -- 회의 주제보다는 '자가격리' 주제로 더 많은 이야기가 오갔다.  돌아보면 내 인생은 어떤 면에서 늘 '선발대' 같았다.  늘 새로운 것을 먼저 경험하고 그것에 대하여 종알거리곤 했다.  우리집 아이들도 늘 그런 얘기를 한다.  '엄마는 늘 뉴에이지, 얼리 어댑터고 우리는 엄마를 따라 가느라 헉헉 댔어요'가 두 아들이 내게 하는 말이다.  이제 그들이 나보다 앞선 테크놀로지의 일꾼이 되어 있긴 하지만 그들은 아직도 내 얘기를 경청하는 편이다.  내게는 그들 전문영역의 지식은 없어도  그 너머를 내다보고 있으니까. 어떻게?  책을 읽으니까...  내가 어떤 영역의 전문가들인 내 아들들을 아직도 선도할수 있는 이유는 내가 그들보다 더 많이 책을 읽기 때문이다.  책속에 다 씌어 있는데 뭐.  그리고 나는 매일 하느님한테 길을 물으니까.  아 아무튼 내 경험에 미루어 내 동료들 그리고 가을학기 미국에서 한국으로 입국하는 외국인 학생들을 위한 자가격리 정보를 정리해야 하는 새로운 숙제가 생겼다. 

 

 

 

 

내 일상은 대개  낮에 종일 낮잠이나 뒹굴거리면서 보내다가 해가 지면 깨어나서 성경읽기에 들어가는 것이다.  모든 난관을 거슬러 올라가 본래 하느님께 약속드린대로 성경 통독을 마칠것이다. 

 

****    ****

성경통독을 하면서 내가 새삼스럽게 깨달은 것은 (매번 성경 통독을 할 때마다 나는 늘 조금 새로운 것과 만난다) -- 속독으로나마 성경을 통독한다는 일은 내 영혼에서 조금씩 조금씩 무너져내린 성전을 재 건축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구약에서 보면 하느님의 언약궤를 모시고 강을 건널때 이적이 일어나기도 하고, 전쟁중에 적군에게 빼앗기기도 하고, 잊혀지기도 하고 그 언약궤에 많은 일들이 일어나는데 다윗 시대에 다윗이 언약궤를 모실 성전을 짓고자 하나 여호와께서 이를 승인하지 않으신다.  네 아들 솔로몬이 짓게 하겠다고 하신다.  그래서 솔로몬 시대에 이르러 성전의 완성을 보게 되는데 그 성전을 짓는 동안에도 많은 방해와 난관이 이어진다.  이 지루하고 재미없는 성전 건축의 역사를 재미없어 머리를 벅벅 긁으며 읽다가 문득 이런 각성을 한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의 언약궤를 모실 성전을 짓는 일이 이토록 어려운 일이었던 것이구나.  지루하고 재미없는 고난의 연속이었던 것이구나.  그래서 완성된 성전을 묘사할때 그 언어가 그렇게 화려하게 치장되었던 것이구나.  화려한 치장에 재미없어 할 것이 아니라 성경 저자들이 왜 이렇게 기쁨에 들떠서 세밀한 묘사를 했던 것인지  생각을 해 볼 만 하구나. 

 

감옥에 갇혀 있는 듯한 자가격리 공간에서 한여름에 지루한 묘사로 이어지는 구약을 읽으면서 나는 문득 깨달았다: 나는 지금 내 영혼의 무너진 성터를 다시 건축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지루하고 재미없어도 내 무너진 성전을 다시 쌓아 올리도록 하자.  코로나 핑계로 여러가지 핑계로 나는 조금씩 조금씩, 아주 조금씩 하느님께 기도드리는 삶에서 멀어진 것이 아닌가. 예배를 드리나 딴짓을 했고, 기도를 드리나 딴짓을 했고, 기도한다고 하나 정말로 기도했는가 돌아보면 나는 안이하고 나태하다.  하느님은 말없이 나를 지켜보신다. 그 지켜보시는 눈을 마주하고 다시 나를 일으켜 세워야 한다.  왜냐하면 분명 내가 이 세상에 온 사명이 아직 남아있을것이므로.  오늘 밤도 성경속에서 보내야겠다. 

 

명불허전

 

 

미국에서 20년 가까이 살면서 내 삶의 많은 부분이 미국식으로 채워졌다.  Victoria's Secret 도 내 삶의 일부인데 20년 가까이 그 속옷을 입고 살았다. 대개 세장에 얼마씩 싸게 판매하는 것 위주로 여러장씩 사다가 입는 식이었다. 한국에서 근무하면서 미국을 오갈때마다 꼭 들러서 실용적이고 편안한 속옷들을 사서 나도 입고 가끔은 언니나 조카에서 선물도 하고 르했는데,  이번에  미국에 갔을 때는 쇼핑을 못했다. 대부분의 매장이 문을 닫은 상태였고, 나도 거의 '자가격리'와 같은 생활을 했으므로 살 기회도 없었다. 

 

 

티브이 홈쇼핑에 한국산 속옷을 예쁜것을 팔길래 '일명 엄마 속옷'이라는 -- 아가씨들은 입지도 않을 평범하고 펑퍼짐해보이는 속옷 세트를 샀다.  인견으로 만들었다는 알록달록하고 경쾌한 무늬의 속옷인데 '세상에 다시 없이 편한, 안 입은것 같은' 속옷이라는 칭찬이 자자했다.  언라인으로 리뷰를 봐도 나쁘지 않았고 엄마와 딸이 함께 입는다는 말도 있고. 그리고 원래 한국에서 이런 실용적인 속옷을 참 잘 만들지 않는가?  그래서 믿고 샀다.  왔다.  모두 빨아 널어 말려가지고 예쁘게 정리도 해 놓았다. (감옥살이니까 심심풀이로).  그런데 오늘 새거 한장 입어보고 실망했다.  불편하다.  내가 평소에 입는 Victoria's Secret 보다 크기도 크고 펑퍼짐한 디자인이고 신축성도 좋고 촉감도 좋고 색상도 좋고 다 좋아서 정말 눈으로보고 손으로 만질 때는 '우리 나라 속옷 정말 잘 만들어!!!' 감탄했는데 -- 막상 입으니 매우 불편하다. 

 

 

어떻게 불편한가 하면 그 Y zone 이라는 부분의 고무줄이 살을 파고든다. 내가 살이쪄서 고무줄이 살을 파고 든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Victoria's Secret 입을때는 불편하지 않은걸.  가위로 고무줄 부분을 잘랐다. (그러면 속옷은 망가지는거지. 그래도 잘랐다) 고무줄 자르면 옷은 망가지지만 편안 할 줄 알았다.  살을 파고드는 고무줄을 잘라서 숨통을 트여 놓아도 여전히 불편했다.  작은걸 샀냐고? 아니 넉넉하게 입으려고 아주 풍신하고 펑퍼짐한 사이즈로 샀다. 그런데 내 체형에 안맞는다. 그러니까 촉감도 좋고 펑퍼짐하고  다 좋은데 고무줄이 살을 파고든다. 숨이 막히는 것 같다.  새로 산 속옷들을 아마도 가위로 고무줄 부위를 잘라서 딱 한 번 입고 버리게 될 것 같다.  그래서 내가 Victoria's Secret 속옷하고 맞대어 놓고 비교를 해보니 VC의 편안함은 그 디자인에서 오는 것으로 보였다.  VC는 Y zone 에 편안함 을 주기 위하여 그 선을 피해서 재단을 하고 마감을 해 놓았다. 살이 겹치는 곳에는 살만 겹치게하여 속옷의 이물감을 제거했다.  여기서 산 속옷의 문제는 살이 겹치는 곳에 고무줄도 겹쳐서 내 숨이 턱턱 막히는 느낌이 든다.  그걸 들여다보면서 '명불허전'을 생각했다.  괜히 VC가 속옷의 선두주자로 자리잡은것이 아니군. 속옷 디자인에도 전문가적 식견이 필요한 것이군.  그래서 오늘 새삼스럽게 평소에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던 Victoria's Secret 의 탁월성을 깨닫게 되었다.  VC 팬티와 브라는 내 평생에 가장 즐겨입는 가장 내 몸에 편안한 속옷이다. (인정). 

 

* 나는 양말목도 조인다 싶으면 가위로 잘라서 신고, 뭐든 내 혈관을 누르거나 조이는 것은 가위로 잘라서 숨통을 트이게 하는 편이다. 아니면 그냥 버리거나. 혈관을 조이거나 숨통을 조이는 것을 참지 않는 편이다.  편한 빤쓰 찾아 입기도 쉬운 일이아니구나. 싸건 비싸건간에 빤쓰가 편해야 몸이 편하지... (결론). 

Posted by Lee Eunm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