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etch2019. 10. 2. 19:09

연구실에서 쌓인 일을 '전투 모우드'로 해 치우고 있는데, 이슥한 저녁, 여학생 한명이 찾아왔다. 내 연구실은 대체로 문이 반쯤 열려 있으니 와서 기웃거린다. 

 

"왜?" 

 

나는 마치 시골 가겟방을 지키는 아주머니가 무심한 표정으로, 문지방을 넘어 들어서는 동네 아이를 대하듯 묻는다. 

 

 

"교수님, 혹시 우산 있으세요? 밖에 비와요." 

 

비가 오겠지. 태풍 미탁이 상륙 했다고 하니, 밖에 비가 오겠지. 그 학생이 학교 근처 오피스텔에서 지내면서 걸어서 통학한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운전하며 외출하는 길에,  걸어가는 그 학생을 몇차례 본 적도 있다.  나는 그냥 턱짓으로만 문앞 의자 옆에 세워져 있는 우산을 가리킨다. 

 

 

"저깄다."

 

"저 써도 돼요?"

 

"응" 

 

"그럼 교수님은 비오는데 어떻게 하세요?"

 

"난 그냥 비 맞으면 된다." 

 

"어머! 그러면 제가 못 빌리지요....전 교수님이 우산이 여러개 있는가 보러 왔지요." 

 

"너를 비를 맞게 하느니, 내가 비를 맞고 말지. 너는 나의 소중한 학생이니까." 

 

나는 빙글빙글 웃는다. (거짓부렁이라는 뜻이다.). 비가 온들, 나는 사실 비 맞는일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데, 왜냐하면 나는 후드셔츠를 입고 있고, 내가 연구실에서 숙소로 달려가는 길은 정말 짧다. 비를 맞을 거리는 더 짧다.  그런 이유로 나는 우산을 세워 놓을 뿐, 웬만한 비는 그냥 맞고 돌아다닌다. 

 

 

학생은 내 우산을 들고 연구실을 떠났다. 

 

나는 다시 일을 한다.

 

문득, 비오는 날 내 생각을 해 낸 그 학생 얼굴이 떠오른다. 비가 올 때, 우산이 필요할 때, 나를 떠올렸다니 내가 그에게 영 나쁜 사람은 아닌 모양이다.  누군가에게 우산을 줄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나라면, 나 아주 실패한 인생은 아닌것도 같다.  우산을 빌리러 온 내 학생이 우산보다 더 큰 위안을 내게 준것도 같다.

 

돈을 많이 버는 것도 아니고, 명예라는 것도 없어진지 오래고, 시정잡배와 다를 바가 없는 오늘날의 대학교수라는 직업.  나는 감히 학생들이 나를 존경해주길 바라지 않는다.  내가 학생들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는지도 나 스스로 의문스럽다. (나는 엉망이다.  인정한다.)  그냥, 비가 오는 날 우산이 필요할 때, 혹은 손을 다쳐서 위로가 필요할 때, 그럴때, "교수님, 저 우산이 없어요. 교수님, 저 손을 다쳤어요" 뭐 이런 아무것도 아닌 일로 내게 말을 걸어주는 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내 사명을 다 할 수 있을 것 같다. 

 

스무살 친구, 넌 내게서 우산을 얻었고; 나는 너에게서 위안을 얻었다. 

 

 

'Sketch'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국 개신교는 침몰하고 있는가?  (0) 2019.10.31
설리를 애도함  (0) 2019.10.15
우산  (0) 2019.10.02
'위안부'가 자발적 매춘이었다고?  (0) 2019.09.27
관점의 문제 (framing)  (0) 2019.09.27
지난 5년간 서울대학교 수시입학허가생 서류 검토  (0) 2019.09.16
Posted by Lee Eunmee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