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ry/Life2018. 11. 14. 10:26



영어클럽.


둘이 꼭 붙어다니던 남학생.여학생 커플이 있는데 여학생만 왔다.  본래 이 클럽에 가자고 먼저 꼬드긴 것은 남학생이고 남학생이 훨씬 열성적인 멤버인데 왜 여학생만 온 것일까?

네 짝지는 왜 안 왔냐고 물으니, 남학생은 바깥 로비에서 기다리기로 하고 자신만 왔노라고 대답한다. 왜? 왜 안 들어오고 문밖 로비에서 기다리고 앉아 있는가?  여학생이 머뭇대다 털어 놓는 사연은, 남학생이 원어민급으로 영어를 하면서 영어가 서툰 자신을 자꾸만 놀리고 약을 올리고 그래서, 그 남학생과는 영어로 대화를 나누기가 싫고, 부담스럽고, 그래서 (둘이 사이좋은 친구사이이니까) 남학생이 클럽을 양보하고, 여학생이 시간을 보내는 동안 바깥에서 숙제를 하면서 기다리기로 했다고. 


이 여학생은 대학에 오기 전에 외국에서 '직장생활'까지 하던 영어 사용자인데, 남학생친구가 '발음'을 가지고 자꾸 놀려먹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오히려 영어에 주눅이 든 것 같다고.


여학생과 좀더 깊은 대화를 나누기로 했다.  몇가지 종류의 영어대화 파트너 중에서 누구를 선호하는가?



 1. 본인(영어를 대충하는 한국인) -- 영어원어민 (미국에서 온 미국학생) = 희망사항이다. 문제는 미국인 학생과 대화 할때 갑자기 영어가 생각이 안나고 어쩔줄을 모르겠다. 그래서 희망사항이긴 하지만 상대하는것은 피곤하다.


 2. 본인(영어를 대충하는 한국인) -- 영어를 원어민처럼 능숙하게 구사하는 한국학생 = 악몽같다. 나를 놀리거나 조롱하는 기분이 들기도 하고 나를 주눅들게 한다. 


 3. 본인(영어를 대충하는 한국인) --  비슷한 수준의 한국학생어딘가 과연 좋은 대화 파트너일지 잘 모르겠다. 영어 대화를 나누기에 마음은 편하지만 이렇게 해서 영어가 늘지 의문이 든다. 원하는 상대는 아닌것 같다. 


여학생에게 물었다. 네 앞에 앉아있는 나는 1번이나 2번의 중간쯤 어딘가에 걸쳐진 사람 이고 '선생님'이고 너보다 한참 나이도 많고, 네게 부담스럽지 않니?  여학생의 대답은, 내게 영어를 할 때 부담도 없고, 부지불식간에 내 영어를 따라서 배우는 기분도 들고, 안전하고 편안해서 그래서 이 클럽에 계속나온다고 (심지어 남자친구를 밖에 기다리게 해 놓고). 


일반적으로 위의 예에서, 영어를 대충 하는 한국인들에게 1번은 선호대상이고, 2번은 한국 영어학습자들이 죽어라고 기피하는 (가장 대화하기 어려운) 대상. 3번은 신뢰받지 못하는, 사실은 아주 좋은 상대라고 할 수 있다. 




이 학생의 희망사항은 이번학기가 첫 학기이니까 이 영어클럽에서 영어에 대한 자신감을 키워서, 다음 학기에는 외국학생들과 짝이 되어 활동하는 클럽에서 놀고 싶다고.  올커니. 애초부터 그것이 이 클럽의 설립취지이긴 했지. 영어를 잘하건 못하건 기본적인 '자신감 결여'가 발목을 잡는 학생들에게 '자신감'과 '안정감'을 키워주는 것. 그래서 '영어'를 '모국어' 사용하듯 '자신감을 가지고' 사용하도록 키워내는 것. 외국에서 '영어'를 사용해서 어린 나이에 밥벌이까지 해결했던 사람이 영어 발음이 조금 후지다고 주눅이 들다니...또한 그를 주눅들게 하다니...



사실 이 여학생의 경우는 어떤 '상황'을 조금 확대해서 현미경으로 봤을때 보이는 현상이다.  피상적으로 보면 이런 상황은 국제대학이나 국제학교에서 지역 원어민과 국제 학생들이 어울려서 영어로 소통할 때 발생할만한 일반적인 현상이다.  대체로 상황을 잘 수습해가는데, 현미경으로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런 현상이 나타날수 있다는 것이다. 이 여학생의 경우, 자신의 영어 능력에 비해서 스스로 자신을 과소평가하는 성향이 있고, 또한 이것을 극복해내려는 의지도 강한 편이다. (꾸준히 영어클럽에 자발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 이 영어 클럽은 동네 카페처럼 오고 싶으면 오고 말고 싶으면 마는 곳이라서 오직 자신의 의지로만 지속적으로 참여하게 된다.)


나는 곰곰 생각해보았다.  그러면, 나의 어떤 (클럽 운영의 어떤) 면이 이 학생에게 안전하다는 느낌을 주는걸까?  장점을 더욱 살려서 더 많은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면 좋을것이다.  이 클럽의 프로그램이나 운영 방식을 좀더 연구를 해야 한다. 운영자인 나의 장단점도 분석을 해 보고.  다음 학기부터는, 이 클럽의 이름도 좀더 그럴싸하게 짓고, 클럽을 위한 장소도 잘 만들어서, 정말로 영어 때문에 스트레스 받는 학생들에게 위로와 격려가 되는 공간으로 만들려고 궁리중이다. 장소 확보를 위해서 프로포절을 아주 잘 써야 한다... 


'소크라테스 클럽'이란 것이 있었지. 동네 카페에서 철학을 논하던.  그런 개념에 '영어'를 첨가하면 될까...


아무튼 나는 현재, 일주일에 1회 신기루처럼 열리는 '영어 카페'의 '가오'마담인 셈이다. 하 하 하.  진짜 주인은 카페 이용객들이시다. (여기서 '가오'란 일본말 '얼굴'이라는 말이다. 센과 치히로에 나왔던 '가오나시'는 그래서 '얼굴 없는' 친구라는 말이다. 여기서 '나시'란 '소대나시'처럼 '없다'는 말이다. 여기서 소대나시란 소매없는 옷을 말한다 ㅋㅋㅋ 죄다 일본어휘에서 빌려온 말인데, '얼굴마담'이란 말보다는 어딘가 '가오마담'이란 말에 어떤 '정서'가 배어있다.  '우덜이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 이런 영화 대사에서도 이걸 '얼굴'로 바꾸면 맛이 안난다. 여기서 가오란 단순히 '얼굴'이 아니고 '얼굴'이 상징하는 어떤 정체성, 명예, 프라이드, 자부심 뭐 그런것을 의미할걸요 아마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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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ee Eunm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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