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ry/Life2018. 10. 9. 16:26


Pain and Prejudice

보이지 않는 고통

What science can learn about people who do it

캐런 메싱 지음, 김인아 김규연 김세은 이현석 최민 번역


원제 Pain and Prejudice 는 얼핏 Jane Austin 의 소설 'Pride and Prejudice'를 연상시킨다.  '오만과 편견'에 대비해서 '고통과 편견'으로.  번역서 제목 '보이지 않는 고통' 도 탁월해보인다.


'보이지 않는 고통' 제목은 어딘가 중의적이다. 

(1) 내가 보이지 않아서 내가 보이지 않는 고통 -- 예컨대 내가 매일 마주치는 누군가를 사랑하는데 그 사람은 매일 마주치면서도 나를 알아보지 못하고 그저 지나가는 행인으로 간주한다. 그에게 나는 보이지도 않고 존재하지도 않는 그림자 같은 존재이다. 그러면 나는 내가 그 사람에게 보이지 않아 고통스럽다.


(2) 말 그대로 invisible pain 눈에는 보이지 않는 고통. 타인들이 겪는 고통이 눈앞에 있어도 내 눈에 띄지 않는다. 


작가가 의도했건 안했건, 번역서의 타이틀을 지은 사람이 의도했건 안했건, 이 책은 위 두가지 '고통'에 대해서 현상의 목소리를 토대로 기술하고 있다. 


이 책을 꿰뚫는  key word 는 'empathy gap (공감 격차)'이다. 


어떤 정책 결정자들이 정책을 결정할 때 정말로 그 정책의 영향권아래에 있는 사람들의 실생활에 대해서 상세히 알고 있을까? 정말로 그 정책이 그들의 삶을 개선해줄만한 정책일까?  선거철만 되면 시장으로 달려가서 시장상인들과 악수하고, 어묵을 먹는 사진을 찍는 그들이 정말로 서민의 삶을 알까?  우리는 의심한다.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스마트폰, 그 아름다운 기계를 만드는 공정에 대해서 우리가 알 필요는 없다.  그런데 누군가가 그 기계에 필요한 작업을 하다가 원인불명의 질환에 시달리다 죽는다면, 그 사건은 우리와도 관련이 된 것이 아닐까?  그것은 그의 책임이고 우리는 이미 돈을 지불했기 때문에 아무 상관이 없는걸까?


갓 군대를 제대한 청년이 물류창고 컨베어벨트 아래에서 감전사 당했을때, 그것이 나하고는 상관이 없는 문제인걸까? 오늘도 내 문앞에 택배기사가 상자 하나를 던져놓고 종종 걸음쳐 급히 다음 행선지로 이동하는데. 


책에서 저자가 말한 '공감격차'는 단지 책속에 소개되는 '노동현장'에만 적용되는 내용은 아니다. 사회의 곳곳에서 우리는 타인의 고통을 안보고, 몰라서 못보고, 외면하고, 기피하고, 못들은척, 안 본척 하면서 산다.  


사실 나는 직장에서 마주치는 청소하시는 분에게 꼬박꼬박 예절바르게 인사를 한다. 하지만 한번도 그의 얼굴을 똑바로 본 적이 없다. 매일 마주치고 매일 인사하지만 나는 그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한다. 단지 예절바르게 인사만 할 뿐이다. 나는 그에게 정말 예의 바른가?


책의 저자는 평생 교수로 일했고, 평생 학술지에 올려서 이름을 드러낼 글만 열심히 써대다가 마침내 삶의 황혼기를 맞이하여 '진짜' 글을 쓰기로 작정했다. '학술지'에서 실어주지 않지만, '모두'에게 하고 싶은 얘기가 있었던 것이다. 그의 세세한 에피소드와 문제의식 앞에서 내가 자꾸만 작아진다.  그렇지 않아도 자의식이 밑바닥인데 이런 분들 만나면 어딘가 안보이는데로 숨고 싶어진다.  그래도 한 편 다행이다. 이 세상에는 나의 '스승'이 아주 많은 것이다. 


http://americanart.tistory.com/2828   <아픔이 길이 되려면>의 김승섭교수가 추천사를 썼다. 




Posted by Lee Eunm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