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ry/Life2018. 9. 12. 09:03


헌법재판관 후보에 오른 한 법관의 삶이 청문회의 도마위에 올랐다. 이분은 '주민등록증'을 '엄마'가 평생 관리해 오셨고, 자녀의 학업 문제며 주민등록 이전의 문제며, 거의 모든 삶의 디테일을 '엄마'가 관장해 주셨다고 청문회에서 밝혔다. 


내 또래인 이 분의 일생이 놀랍다.  (우리 엄마는 대체 뭐를 한거냐?  저런 엄마도 있구만!  슬슬 이런 생각마저 든다. )


그래서, 과연 이분이 헌법재판소에서 판사로 일 할 자격이 있는가 없는가?  세수하고 수건으로 얼굴을 물기를 닦으며 생각해보았다.  나는 사실 헌법재판소가 뭐 하는데인지도 잘 모른다. 재판소가 뭔지도 모르는 무지렁이 같은 세월을 살았으므로.  나는 그러니까 파출소나 재판소나 뭐 이런 공공기관에 대해서 '공포심'을 갖고 있는고로 평생 그 근처에도 가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병원에도 안가는게 상책이고. 뭐 아무튼 권력자들이 있는 곳이 무섭다. 나는 아주 소심한 소시민이므로.


그래서 아무튼 내가 분류를 해 보았다.

(1) 그는 헌법재판소에서 일 할 자격이 있다

  1. 자격이 있으니까 일단 청문회 자리에 앉아 있는것 아닌가? (아무나 거기 가는가? 나는 가보고 싶어도 불러주는 위정자가 없어서 못 간다. 나 털면 나올거 없는데. 아, 아니야 털면 털리는게 인생. 안가는게 상책이다.)
  2. 결격 사유라고 하는것이 기껏해야 주민등록 주소지를 이리저리 임의로 옮긴 전력이 있는것
  3. 집 살때 실거래 가격과 신고 가격에 차이가 있다는 것, 이러한 결격 사유를 가지고 '자격도 안되는 (뒤지고 살피면 더 더러운) 의원들이 게거품을 물고 그를 물어 뜯는데 이를 통해서 그가 부동산 폭리를 취하거나 그런 것 같지도 않고 (그가 폭리를 취했으면 저 개떼같은 국회의원들이 그걸 가만히 보고만 있겠는가?)... 간신간신히 아파트 한채 사거나 팔아본 사람이면 알거다. 실거래 가격과 별도로 부동산 중개인이 "이 경우에는 이정도 신고하시면..."하고 훈수까지 둬 가면서 사실 갑남을녀 대충 경험하는 '위법'이 아닌가.  뭐, 인간적인 정리로 보면 사안이 '경미'하다고 불 수도 있겠다. 

(2) 그는 헌법재판소에서 일 할 자격이 없다.
  1. 때려쳐라, 나가라 이럴수도 있다.
  2. 이럴 수는 있다. 그는 정말 합리적이고 정의로운 판사로 평생 일해 왔을수 있다.  집안일, 개인 신변따위 모두 ''엄마'에게 맡기고 오직 정의로운 판사가 되는 일에만 전념해 왔을수 있다.  그런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 분이 아주 욕심사납게 생기지도 않았고, 나름 반듯한 인상이다.  그리고, 우리 사회에서 출중하게 두각을 나타내는 위인들 중에는 이런 분이 많을 것이다. 집에서 엄마나 부인이나 남편이 모든 것을 다 책임져주고 "너는 가서 일만 잘해라, 그게 애국하는거다" 이렇게, 온 가족이 헌신적으로 그 사람을 도왔을수 있다.  한때 우리나라 경제정책을 책임지고 총리직까지 거친 어떤 어른은 ATM에서 현금서비스 받을 줄도 몰랐다고 그의 최측근 (사모님)이 증언한 바 있다.  어떤 전문가가 전문영역의 고위직을 수행해 내기 위해서는 '아랫것들'의 일까지 다 살필 여유가 없는 것도 감안할 만 하다. 아인시타인이 제 집 전화번호도 몰랐다는 예를 들어서 이들을 변호하고 싶어진다.  대단하신 분들에게는 대단한 일만 맡기고, 나머지는 아랫것들이 다 알아서 하는 시대분위기에서는 이러한 상황도 가능하다. 이분이 그 사례를 보여 주신 듯 하다.
   그러니까. 이걸 감안하면, 그가 자격이 없다고 말 해서는 안된다.



판단을 하기가 참 애매하다. (내가 자꾸 그 판사님쪽으로 동정적으로 흐른다.)

 
   그런데, 출근하기 위해서 얼굴에 썬크림을 바르다가 문득 생각했다.

한 사람이, 한 전문가가, 자신의 삶의 디테일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세상 돌아가는 것에도 관심이 없고, 오직 자신의 영역에서만 불편부당하고 합리적으로 일을 잘 해내도 되는 사회라면, 그래도 되는거라면, 우리는 '인간 판사'가 필요하지 않다. 그런 일은 AI 인공지능 판사가 더 잘 해 낼 것이다.  그런 일은 사람이 아니라 '기계'가 더 잘 할거다.  차라리 헌법재판관을 '기계'로 대체하라. 기계가 불편부당하고 합리적으로. 인간적 정리에 치우치지 않고 더 잘 할테니까.


뭐, 아직까지 판사를 대체할 기계가 마련되지 않았다면, 아직까지는 문제의 그 판사가 일을 맡아도 무방할 것으로 보인다. 뭐 크게 해 먹은게 있는것 같지도 않고, 그 자리까지 갔을때는 그만한 자격도 쌓았겠지. 올곧고 정의로운 판결을 많이 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를 인간적으로 판단할 생각이 없다. 나는 그럴 자격이 없는 사람이다.  하지만, 어쨌거나... 당신은 기계가 없어서 하는수 없이 충원된 존재에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너의 출세를 위해서 내가 시키는대로만 하여라" 줄기차게 자식을 내려다보면서 모든 것을 판단하고 지시하는 부모를 지칭해서 Helicopter Parent/Mom 이라고 한다.  이아무개 판사님의 어머니는 그 헬리콥터계의 수퍼 히어로 혹은 선구자이셨던 것 같다. (조롱할 생각은 없다... 씁쓸할 뿐이다.)  우리 엄마가 헬리콥터질을 했다고 해도 내가 크게 됐을것 같지도 않고, 저분이 잘 나신것은 부동의 사실이다. 어쨌거나 이판사님 화이팅 하시고... 나는 나의 삶에 만족할 뿐이다. 



이건 딴 얘긴데, 더스틴 호프만과 스티브 맥퀸이 주연했던 옛날 영화 '빠삐용'에서 이 두죄수가 탈옥을 하기 위해서 산전수전 다 겪고, 마침내 스티브 맥퀸이 '빠삐용' 섬에서 탈출(탈옥)하지 않는가? 더스틴 호프만은 섬에 그냥 남았지 아마.  영화에서 주인공이 꿈을 꾸던가? 어떤 환상속에서 재판을 받는데 주인공은 '무죄'를 강변한다. 그런데, 재판관이 그에게 '유죄'를 선고하는데, 그의 죄목은 "인생을 낭비한 죄."   주인공은 수긍하듯 고개를 숙인다. Yesterday's world was a dream like the river that runs through my mind... 법을 잘 모르는 소심하고 비루한 소시민이 보기에 이판사는 큰 죄가 없다. "자기 인생을 자기 인생으로 살아오지 않은 죄" 라면 그도 유죄일지 모른다. 



Posted by Lee Eunm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