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ry/Life2018. 1. 26. 12:12

위 사진은 웹에서 '자료'로 가져온 것이다. 


우리집 뒷마당에 출몰하는 희고 덩치 큰 고양이가 한마리 있다.  한 1년 전 쯤부터 본 것 같다.  처음에 나는 전신이 새하얀 털로 덮인 이 고양이에게 '스노우'라는 이름을 지어서 불렀다.  목에 가느다란 목줄도 있어서 그가 야생 고양이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는데, 그는 우리집 거실 밖에 자주 등장했다.   그런데 지난 여름에 왔을때, 우리집 아이들이 모두 이 녀석에게 화가 나 있었다.  


우리 뒷마당에 사는 눈먼 장님 고양이 --폴 (사도 바울)을 괴롭힌다는 것이다.  눈먼 고양이 폴은 크고 힘센 고양이가 새로 나타날때마다 늘 그들의 공격의 대상이 된다.  눈 먼 고양이라 만만해서 그런건가? 나의 폴은 새로운 고양이가 나타날때마다 고통스런 시간을 견뎌야 한다. 이 흰고양이가 덤불을 들 쑤시고 다니면서 눈먼 고양이를 괴롭히는 것이 종종 목도 되었고,  그래서 우리집 아이들이 이를 발견할 때마다 쫒아가서 야단도 치고, 막대기도 던지고 하면서 으르렁댔다.  지난 여름에는 나도 이 녀석에게 몇차례나 막대기를 던졌다.  그래서 나는 밉상 녀석을 '푸틴'이라고 이름을 붙여 주었다. 깡패 푸틴녀석. 아, 왜 하필 푸틴인가하면, 이 고양이의 주인이 근저 저택에 사는 미국 남자인데, 러시아에서 살때 이 고양이를 입양해서 러시아에서 함께 살다가 미국에 올때 데려왔다는 것이다. 그러니, 러시아에서 온 깡패녀석이라서 '푸틴'이라고 이름을 붙인 것이다. 


이번 겨울에  집에 돌아 와서도 한차례 막대기를 던져 녀석을 폴에게서 떼어 놓아야 했다.  얼마전에 폴의 거동이 수상쩍어서 살펴보니 엉덩이쪽의 살점이 보였다.  사납게 물어 뜯어서 털도 벗겨지고 생살이 그냥 드러나 있었던 것이다.  (내 가슴이 무너졌다).  아이들은 그 흰고양이 녀석이 그랬을거라고 믿고 있다.  내가 집을 비운 2년 동안 바깥 고양이들을 지극 정성으로 살펴오고 있는 젊은 미국인 부부들도 그 흰고양이가 그랬을거라고 믿고 있다. 그 부부는 고양이 주인 아저씨에게 고양이를 중성화 시키던가, 아니면 우리 동네에서 깡패짓 못하게 집에서만 키우던가 하라고 시시때때로 전화질을 해대고 있다는데, 녀석은 요즘 매일 우리집 밖에 출몰하고 있다. 


오늘 오전에도 덤불에서 폴이 비명을 지르길래 내다보니 폴이 해바라기 하는 덤불 입구에 이 녀석이 폴과 마주 앉아 있었다.  내가 잡아 죽일듯이, 잠옷바지만 입은채로 달려가보니 녀석이 폴 앞에 물끄러미 앉아있는데, 폴은 죽을듯이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일단 죽을듯이 소리지르는 폴을 안정시켜야 했다. 내가 간신배와 같이 간사스러운 목소리로 "나비야, 나비야, 걱정마, 내가 왔어, 나비야, 나비야" 이렇게 말해주자 폴은 비명을 멈췄고, 흰 고양이는 내 눈치를 보다가 쓱 사라졌다.  장님인 폴은 내 목소리를 듣고 안심했고, 깡패 푸틴 녀석은 내가 노려보니까 도망을 간 것이다.


그렇게 상황을 정리하고 집에 돌아와 생각해보니, 오늘 본 장면은 좀 의외였다.  장님 폴이 비명만 지르지 않았다면, 그들의 풍경은 아무런 문제도 없어 보였다. 덩치큰 푸틴 녀석은 장님 폴앞에 평화롭게 앉아 있었고, 장님 폴 역시 그를 마주 향해 앉은채로 비명을 지르고 있었던 것이니, 그들의 마주한 자세는 '평화' 그 자체였다.  폴이 평소에 당한게 있으니까 , 오늘 푸틴은 아무런 해코지를 할 의사가 없었는데도,  폴이 그냥 지레 놀라서 비명을 질렀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 혼자 중얼거렸다. "푸틴 녀석, 그 녀석은 친구를 사귈줄 모르는가보다.  깡패짓 하면 친구 사귀기 힘들다는 것을 모르고 깡패짓 해 놓고 친구 하자고 찾아 다니나보다. 멍청한 녀석." 


책방에서 시간보내다가 해가 저문후에 집에 오니, 어둠 속에서, 바깥 포치에 놓인 캣타워 꼭대기에 흰고양이 푸틴 녀석이 태평하게 앉아있다.  내가 "나비야, 나비야" 부르니 멀끄러미 쳐다보고 있다. 내가 그를 지나쳐 집안으로 들어서자, 그는 캣 타워에서 내려와 우리집 거실 유리문에 얼굴을 갖다 대고 양양거린다.  이상한 녀석이다. 내가 소리지르고, 째려보고, 신발짝이나 막대기를 던진 적도 있는데, 오늘 아침에도 구박을 해 보냈는데, 내 유리문에 코를 대고 양양거린다.   먹이를 한 그릇 주니 그걸 달게 먹는다. 뭐냐 너, 러시아에서 살다 왔다는 네 주인아저씨는 뭐 하는거냐? 밥도 안줘? 너 왜 밤까지 집에 안들어가고 여기와서 밥을 달래 응? 녀석은 배불이 밥을 먹더니 인사도 없이 가버린다.  조금 후에 장님 폴과 어미 메리가 왔다. 나는 또 밥을 준다.  


푸틴아, 배 부르게 밥 줄테니까,  눈먼 고양이 폴을 괴롭히지 말아라. 폴이 심성이 착해서 눈이 안보이는데도 제 동생들을 얼마나 잘 돌봤는데. 너에게도 좋은 친구가 되어줄테니, 제발 괴롭히지 말아라.  




Posted by Lee Eunm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