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ry/Walking2016. 7. 26. 20:59



어제 2016년 7월 25일, 하루에 50킬로미터 걷기를 시행하여 결과적으로 53 킬로미터를 약 13시간에 걸쳐 마무리를 하게 된 쾌거!를 기념하는 사진 몇장.


새벽 5시 10분 버크 호수.  아직 해가 뜨기 전이라 컴컴했다(무보정).  하늘이 보이는 호숫가도 이렇게 어두우니 여기서 나무 울창한 숲길로 들어서면 눈앞이 잘 안보인다.  그래도 조심조심 걷다보면 눈이 어둠에 익숙해지고, 작은 돌멩이가 덮인 길이 '희게' 빛난다.   그래서 노래 '이루어질수 없는 사랑'에서 '밤새워 하얀 길을 나 홀로 걸었었다....' 이 가사가 경험자에 의해 씌어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군. 달이 없는 밤이라도 대체로 길은 하얗게 보인다 (모래알갱이나 돌멩이들이 덮여 있을때). 희게 빛나는 길에 의지해서 더듬 더듬 걷다보면 날이 밝아온다.  참 신비로운 경험이다.  어둠속에 혼자 있을 때, 하느님과 가까워진다. 무서우니까 하느님 손을 꼭 잡게 되는 것이다. 







버크 호수 걷기 노선중에서 내가 '호수 요정이 숨겨 놓은 길'로 부르는 좁다란 오솔길.  바로 옆에서 호수가 찰랑거리고, 어릴적 논둑길, 밭둑길 같은 그런 아주 좁다란 길이 잠깐 이어지는 곳이 있다.  총 여섯바퀴를 도는 동안 노선을 이리저리, 방향도 이방향 저방향 바꾸면서 걸었는데 이 요정의 길은 다섯번 지나쳤다.  지나칠때마다 행복하다.  요정의 길이니까. 








이 빵 사진에 대한 정확한 기술을 위해서, 어제 아이폰 메모장에 썼던 기록을 가져와 보았다.  (최종 편집이 오늘 아침 시각으로 되어 있는 이유는 마지막 떠난 기록까지만 되어 있고, 마친 시각을 기록을 안해놔서 그걸 마저 적고 총 시간을 적었기 때문이다. ) 이 기록이 한뼘안에 들어가는 짧은 것이지만, 난 이걸 적기 위해 13시간 가까이 거북이 놀이를 해야 했다. 


기록을 보면 1-2-3 까지는 시간이 점점 단축된다.  그러니까 한바퀴에 오마일여 (오마일 조금 넘음)를 걷는것인데 90분 -- 85분 --80분으로 줄어든다. 그 전날 밤에 열대야 때문인지 두시간만에 잠에서 깨어 뜬눈으로 보내고, 잠도 안오니까 홧김에 새벽에 길을 나섰기때문에 처음에는 길도 어둡고, 몸도 무겁고, 그냥 터벅터벅. 두번째 돌때는 꾸벅꾸벅 졸기까지 했다.  두번째 돌고나서, 차에서 쉬다가 잠깐 잠이 들었다. 아주 잠깐, 한 20분쯤 푹 잠을 잔것 같다.  그런데 그 잠이 꿀잠이었던 것 같다. 세바퀴 돌때는 내 발에 날개가 달린듯 가볍고, 몸도 가벼웠다. 


세바퀴 돌았으니 목적한 거리의 절반을 수행해 낸 것이다. 그 때부터 반환점에 들어선 셈인데 몸도 슬슬 지치기 시작한다. 벌써 25킬로를 걸은거라구, 당연히 지치지.  그래서 속도가 떨어지기 시작한다.  네번째 돌때는, 배가 고팠다.  배가 쓰린듯 고팠다. 고통스럽게 여겨졌다. 나는 먹을것을 챙겨오지 않은것이다.  새벽에 가게에 들를수도 없고, 그냥 나온건데 이렇게 걸을줄 몰랐지.  네바퀴 돌고나서 나는 이렇게 적었다.  '배고프고 지친다. 먹을게 아무것도 없다.'  


별 생각없이 나왔으니 그냥 이쯤에서 집으로 가야 된다.  그런데, 내 내부에서 더 가고자 하는 의지가 어떤 의지 같은것이 솟아올랐다.  나 지금 잘 걷고 있어.  오늘 50킬로 걸을수 있을것 같아. 벌써 2/3를 마쳤다구. 이제 10마일만 더 가면 돼.  



빵의 기적 



나는 주차장의 내 차 주위를 살폈다.  하이틴으로 보이는 남녀 학생들 몇명이 차 트렁크 쪽을 열어 놓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열린 트렁크로 아이스박스가 보였다.  소풍 나왔을것이다. 소풍 나왔으니 먹을것을 챙겨 왔을 것이다.  가서 뭔가 먹을것을 구해 와야지.  내가 다가가서 (지친, 노브라, 노화장, 시커먼 오십대 아시안계 남루한 아줌마의 형상), "Excuse me, you guys have anything to eat? I'm on my walking project now.  I have enough water but I am out of food. I need something to fill my stomach. Bread or muffin or anything."  여학생들은 영문을 알 수 없다는 뚜---한 표정으로 서 있는데, 키가 장대같이 크고 빼빼마른 전형적인 미국 남자 고등학생 녀석이 "Hey, I have bread in my car..." 하더니 바로 옆 차문을 열고 가방에서 '사라 리' 식빵 봉지를 꺼낸다.   그러더니 맨 위에서부터 식빵 네장을 꺼낸다. "It it enough?" 그는 나의 의향을 묻는다. 더 필요한지 이거면 되는지. "Oh, thank you, that's good.  I can pay you. I'm just out of food, nowhere to buy here."  내가 빵값을 내겠다고 하자 소년은 손사래를 치며 됐단다.  소녀들은 여전히 뚜--한 표정으로 빵을 구걸하는 나를 쳐다보고 서있고.  


그렇게 해서 얻은 빵이 저 사진속의 빵이다. 나는 나무그늘, 차에 앉아서 이 빵 네장을 세상에서 가장 귀하고 맛있는 음식으로 먹어치웠다.  이 빵을 먹으면서 나는 알았다. 주기도문에 'Give us this day our daily bread'의 실체를. 내가 고통스러운정도로 배가 고플때, 무상으로 주어지는 딱 알맞은 만큼의 지상의 양식. 다른 무엇, 다른 어떤 가치도 이 빵을 이길수는 없는거지.  나는 '하느님'이 내게 보내신 빵을 먹으면서, 오늘 나의 프로젝트가 성공할 것임을 직감했다. 나는 결국 중도포기 하지 않고 이걸 해 낼거야.  (빵이 하늘에서 떨어져야만, 혹은 마법사의 모자에서 나오는 비둘기처럼 튀어나와야만 기적이라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평생 한번도 기적을 경험하지 못할것이다. 엉뚱한 곳에서 엉뚱한 것을 찾고 있으므로. 기적은, 그것이 거기에 있는 것이다.  내가 배가 고플때 먹을 음식이 있다면 그것이 기적이다.  구걸을 해서라도 음식을 마련한다면 은혜와 기적이 어우러진 것이다.  내가 배가 고픈데, 누군가  낯선이가 새로산 빵봉지에서 새 빵을 꺼내 몇장 준다면 은혜가 넘쳐 흐르는 일이다.  그게 하느님이 일부러 나를 위해 마련한 것이라고 믿어버리는 것은 나의 믿음의 방식이며 생존의 방식이다. 내가 용기를 내어 50킬로미터를 지옥같은 염천에 해 치우는게 가능했던 것은 -- 하느님의 빵을 먹었다는 확고한 믿음 때문이었을 것이다. ) 








얼음의 기적 






빵을 먹고, 배고픈 것을 해결하고, 쉬고 다시 걷기에 도전하는데 숲길 입구쪽에 버려진 얼음덩이들.  아마도 피크닉 나왔던 사람이 아이스박스를 정리하면서 얼음덩이를 내버린 모양.  그래서 화끈거리는 발을 그 얼음덩이위에 얹고 냉찜질을 한참 하였다.  발이 훨씬 가벼워졌다.  나는 이것을 '얼음의 기적'이라고 부른다.  주님께서 염천에 내가 걷는 것을 염려하시어 길위에 얼음덩이를 뿌려 놓으시다.  얼음 버린 사람이야 자기가 뭘 하는지도 몰랐겠지만, 그건 글쎄 우리 하느님이 내 발 찜질해주시려고 그렇게 하신거라구.  



고난의 길 


이 길은, 약 200미터 이어진 호수의 뚝방 길이다. 호수의 물높이를 조절하기 위해 만든 뚝길 일 것이다. 볕 좋은 가을날 이 길을 산책하면 참 좋다.  탁 트이고 호수 전체를 내다 볼 수도 있고.  하지만 화씨 100도를 넘는 뜨끈뜨끈하고 쨍쨍한 날씨에 이 길은 한마디로 '튀김솥'이다. 장작이 이글거리는 아궁이 속에 던져진 것 같은 미치게 뜨거운,  사진은 더위가 한풀 꺾이 오후 4시반에 찍은 것이라 그나마 내가 '이제 살겠네' 하면서 여유가 생겨서 찍은 것이다. 한낮에는 이 길을 통과하는게 너무 무서워서 사진이고 뭐고... 그냥 통과하기에 바빴으니까.  여섯번 이 길을 통과한 중에서 한낮 세번 통과는 고통 그 자체였다. 땅에서, 하늘에서, 사방에서 불길이 훅훅 내게 오는것 같았으니까.  게다가 한낮에는 숲길 산책로에도 사람이 없었다.  날이 하도 뜨거우니까, 사람들이 호수 기슭에서 뱃놀이를 즐기거나 하는 정도였고, 산책로에, 낚시터에 사람이 안보였다.  그 큰 호숫간 숲길이 그냥 '무인천지'였다.   그런 뜨겁고 찌는 날을 택해서 나는 50킬로 장정을 나간 것이다. (낸들 알았나. 알았으면 안했겠지... 하지만 난 해냈다는 것이지.)


집에 와서 지삐한테, "지삐야, 엄마 오늘 50킬로 걷고 왔다. 너도 50킬로 걸어봤나?" 했더니, 지삐 왈, "군대에서 완전무장하고 70킬로 행군 해봤는데요..."  


50킬로미터를 걸었다.


내 영혼은 좀 가벼워졌는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열두시간도 넘는 그 행군하는 동안 하느님이 내 손을 꼭 잡고 계셨다는것을 시시각각 느꼈다.  서늘한 나무 그늘, 푸른 잎사귀들, 잔잔한 물결, 새소리, 내 주위를 에워싸는 모든 것 속에서 하느님이 웃고 계셨다. 



Posted by Lee Eunmee